지난번꺼 우울해서 하나 더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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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안느란 사람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단어는 욕망일 것이다.
그녀는 자유롭고 유능하며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였다.
마음에 드는 인형을 찾으면 시도때도 없이 말썽을 일으켰고 그렇다고 위에서 뭐라하면 시무룩해져서 자취를 감췄다.
그 와중에 할 일은 끝내놓고 사라지니 여간 골치덩이가 아닐 수 없었다. 헬리안은 술 마실때마다 이를 불평했지만 별 수 있나. 안고 살아야지.
어찌됐든 우리 지휘부는 그렇게 현재 나와 장시안느 두 명의 지휘관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누군지는 알아도 친하기는 커녕 말도 잘 건네지 않는 철저한 사무관계였다.
장시안느는 오로지 예쁜 인형 밖에 관심이 없었고 나는 인형에게 시달리지 않는 게 관심사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장시안느가 변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날은 유독 짜증이 오른 날이었다. 식사는 맛없고 일은 어려웠는데 퇴근길에 비까지 내렸다.
우산을 펼치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에 나는 새삼 폭우가 왜 폭우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건너편에서는 장시안느가 이 폭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낭만적인지 허언증인지 비가 와도 결코 우산을 쓰지 않았다.
대신에 땅바닥만 바라보며 사람에게도 인형에게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빗속을 걸었다. 거 깡다구 좀 있네.
나는 휘파람을 불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귀찮았다. 오지랖을 떨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폭우는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계속되었다. 덕분에 나는 장시안느가 젖은 몸을 이끌고 걷는 걸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물을 먹은 흰 블라우스는 하얀 속옷과 뽀얀 살갖을 내보였으나 그 모습은 야하기보다 무서웠다. 카리나도 저건 아니지라며 한소리할 정도였다.
결국 난 P7을 시켜 우산을 몰래 장시안느에게 갖다주라고 말했다.
P7은 처음에 "뭐? 장시안느?"라며 난색을 표했지만 주말에 놀이동산을 같이 가는 조건으로 수락을 하였다.
이러면 오지랖도 안 떨고 양심도 지킨 거겠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퇴근길에 몰래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시안느는 그날도 우산을 안 쓴 채 폭우 속을 걸었다.
나는 역시 괜한 짓이였나며 기우제나 지낼껄 후회하였다. 장시안느는 여전히 온몸을 적시며 비를 맞고 있었다.
한데 전과 다르게 조금 신난 것 같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내가 준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콧노래까지 불렀다.
마치 선물받은 아이처럼 말이다.
다음날부터 장시안느가 업무 외 농담을 걸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모두에게 부드러워졌다.
헬리안과 카리나에게도 꼬박꼬박 인사를 하였고 인형들에게 성희롱을 하는 버릇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좋은 변화였다. 덕분에 지휘부의 분위기도 한결 나아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건 다른 얘기지만 이날부터 나는 매일 사탕을 받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누군가가 내 책상 위에 사탕을 하나 놓고 갔다.
장시안느의 머리칼과 같은 분홍색 사탕. 그것은 설탕을 듬뿍 발랐는지 혀가 떨릴만큼 달콤했다.
*
그일이 있은지 몇 달이나 지났을까. 지휘부에 있으면서 느낀 건데 지휘관이란 인간은 보통 무언가 하나 결함이 있는 환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형들과 어울릴 이유가 없을테지. 그래도 이것엔 나름 장점이 있다. 결코 배신하지 않을 사람과 평생 함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오랜 연애끝에 나는 FG42란 2성 인형과 서약하기로 발표하였다. 우리는 서로가 남보다 모자랐지만 그것이 가까워지게 된 이유였다.
인형들도 사람들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 우리를 축하해주었다. 헬리안은 어쩐지 화나 보였지만 그래도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우리는 서약날짜를 예약한 후 복도를 걷다가 장시안느를 만났다. 그녀가 웃는 얼굴로 내게 다가와 악수를 하였다.
축하해. 고마워.
그런 말을 한차례 주고 받으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어쩐지 장시안느가 내 손을 도통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FG42가 내 손을 잡으며 이제 가야한다며 빌미를 만들어줬다. 그때였다.
짜악.
장시안느가 반대쪽 손으로 FG42의 따귀를 때렸다.
나도 FG42도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과 인형도 그 모습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어디서 인형주제에 끼어들어! 건방진 년이!"
장시안느는 욕지거리를 뱉으며 마구 FG42를 때리기 시작했다. 인형은 인간에게 반항할 수 없다.
하물며 장시안느는 지휘관. 결국 나와 카리나가 떼어놓을 때까지 FG42는 울면서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복도에서 단 둘이 장시안느를 만나 왜 그랬는지를 물었다.
벌받는 아이처럼 장시안느는 내게 고개를 숙인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창밖의 비를 보더니 영문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길고양이는 매일매일 배가 고파서 음식 하나 던져주면 장난일지라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해.
별 수 없잖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관심을 가져준 건 그 사람 하나뿐인걸."
장시안느는 그렇게 말하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지휘관은 버리지 않을 거지?"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결국 서약하는 날까지 장시안느는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친구를 하나 잃은 느낌이라 섭섭했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 여겼다.
그녀에겐 그녀의 인생이, 그리고 나에겐 나의 인생이 있는 법이다. 이런 편이 좋을 것이다.
내가 그리 안심하고 기지개를 켜자 욕실에서 FG42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쩐지 부끄러워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시간은 곧 있으면 자정. 오늘은 우리의 신혼 첫날이다.
FG42는 샤워하러가는 그 순간까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긁으며 달아오른 얼굴을 숙여 숨겼다.
"어디로 가면 안돼요, 지휘관."
마지막까지 한마디하고 샤워하러가는 모습에 나는 그녀가 굉장히 귀엽다고 느껴졌다.
시간이라도 죽일 겸 서랍장을 열어 그녀의 짐을 대신 정리해주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안에서 익숙한 물건이 하나 나왔다.
우산이었다.
내가 장시안느에게 전해준 그 빨간 우산. 그것이 FG42의 짐에서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을 때 휴대폰이 경고음처럼 울렸다.
발신자는 놀랍게도 FG42였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건너편에서 처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관... 도망쳐요..."
그것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 나는 이때 오래전 안젤리카에게 들은 말이 기억났다.
사람을 인형으로 위장하려면 엄청난 고통이 수반한다고 한다. 팔 하나 바꾼 것으로도 힘들었다며 투정했던 안젤리카.
그렇다면 모습도 목소리도 FG42처럼 속이기 위해 그녀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욕실문은 이미 활짝 열려서 조명 너머로 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이미 가발조차 던지고 본래의 짧은 머리로 돌아와있었다. 목소리도 원래대로 돌려놓고선 요염한 포즈로 다가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물에 적셔진 맨발이 매혹적인 발소리를 내었다.
그녀, 아니 장시안느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천천히 뒤에서 나를 안았다.
"지휘관..."
속삭이듯 귓가에 맴도는 야릇한 목소리. 그러나 그 속에서 난 애정이 아닌 공포를 느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 버튼을 제대로 누를 수 없었다. 장시안느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더니 휴대폰을 뺏고는 벽에다 던졌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고양이처럼 내 뺨에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때는 너무 추웠어, 지휘관.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길고양이는 주인을 얻었어.
그리고 오늘 주인님의 사랑을 받기 전까지 애교를 멈추지 않을꺼야. 왜냐하면..."
이젠 우리 둘뿐이니까.
땀방울이 비오듯 내린다. 그날의 폭우처럼 내 몸을 장시안느가 애정으로 적셔가고 있었다. 나에게 우산은 필요없다.
장시안느가 곧 우산이었다. 그녀는 팔뿐만 아니라 다리도 요염하게 들고선 나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한방울 흐르는 땀을 혀로 닦아주었다.
입가에서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매일 아침 놓여졌던 그 사탕과 같은 향기.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필요없겠지.
지금 그녀에겐 사탕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먹이가 들어왔으니까.
장시안느는 내 손과 깍지를 끼고서 천천히 아래에서부터 기어올라왔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내 온기를 느꼈다. 그 숨소리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찔해서 나는 차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시간은 충분하다. 사탕을 녹여먹듯 장시안느는 오히려 내게 얼굴을 비비며 이 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곧 그 은밀한 손길이 내 모든 걸 빼앗아 가겠지.
나는 눈을 감고서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그저 이 밤이 일찍 끝나길 빌며.
장시안느는 침이 고인 입을 열더니 아 씨 롤챔스
속옷이 보인다길래 뭔가 야시시하더니 갑자기 안데레물 ㅎ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