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끝난 <영광의 날>의 뇌절의 뇌절입니다.
안녕하살법!!
내가 있는 이곳은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 같은, 인공지능이 발전해 결국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지는 것이 실현된 세계야.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 같은 소설 속 세계관이라고 해도 좋고.
쉽게 얘기하자면 이런 세계지ㅋㅋ
인간의 의식조차도 전자 스캔을 하여, 인공지능을 지닌 안드로이드 소체에 이식하는 게 가능해진 세계야.
나의 자아는 유기물질에 불과한 뇌를 벗어나, 꾸준히 유지 보수만 한다면 전자회로 속에서 거의 불멸할 수 있어.
그런데 예상치 못한 버그로, 내 의식 속 특정 부분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우는 것이 가능해졌어.
나는 지난 200년 동안 가족의 상실로 인한 슬픔 때문에 고통 받아왔어.
기억 삭제는 이 슬픔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 백업은 당연히 없고.
나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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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민 끝에 결국 이 기억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어.
내 기억을 삭제한다면 나는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지만, 내 가족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같아.
내 가족이 소멸했는데 그 기억조차 소실된다면, 내 가족이 존재했다는 그 의미조차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테니까.
기록도 없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얘 말이 맞는 것 같아.
시간은 비대칭적이고 비가역적이기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절대 이를 되돌릴 순 없어.
화염과 연기와 숯을 가지고 나무를 만들 수는 없듯이... 엔트로피는 무조건 항상 증가만 하네.
그래서 모든것은 소멸하지. 원자핵의 양성자조차 시간이 지나면 붕괴해.
나는 결국 소멸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어...
난... 사랑하는 모든 것에는 이별이 따른다는 것을 인정했어.
그치만...
그치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니쨩, 내겐 관심도 없는 걸!
손나 박하나! 그럴리가 없잖아!
...는 아니고,
그치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그 '존재의 의미'는 불멸해.
모든 존재는 절대 영도에 가까운 허무의 공간 속으로 무너져 결국 소멸되겠지만,
내 기억이 소실되지 않는 한 그 존재의 의미는 소중한 가치를 갖고 있어.
그래서 난 절대 그 존재의 의미를 잊지 않을 거야.
생명체가 진짜 죽는 것은 언제일까?
심정지 상태에 이르는 순간? 의사의 사망판정이 나올 때?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갈 때?
난 바로 모두에게 잊혀지는 순간이 진짜 죽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유기체였던 '나'를 정의할 수 있었던 것은 뭘까?
내 육체를 이루고 있던 대부분의 세포들은 한달이면 교체돼.
출생 당시의 나와 20살의 나는 물리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나'인것을 알고 있어.
나는 '나'를 정의하는 것은 내가 갖고 있던 '기억'이라고 생각해.
나는 비록 육체를 버리고 차가운 금속 속에 들어갔지만, '나'는 절대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이 아냐.
그것이 심지어 거짓된 기억일지라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난 생명력이 생긴다고 생각해.
나를 이루고 있는 기억이 손실된다는 것은 '나'의 일부가 손실된다는 것과 같아.
나는 내 선택으로, 나의 일부를 잃는 것을 거부했어.
내가 잃어버린 그 존재는 나의 기억 속에서, 존재했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아주 소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야.
소멸했지만 그래서, 그것, 그 사실, 그 기억 또한 나를 이루고 있는 일부야.
나는 결국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어.
난 슬픔에 빠질 수도, 이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도 있어. 나는 선택을 할 수 있어. 나는 여전히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야.
그래서 난 잘못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