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주소: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3777
아버지란 이름의 성폭력 가해자를 벌해주십시오.
19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성폭력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대한민국을 떠난 딸이 17년 만에 죽을 각오를 하고 다시 돌아와 아직은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에 간절히 청원합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저는 교도관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언니와 남동생을 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셋째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저에게 집은 ‘감옥’이었고 아버지는 저희 세 자매를 자신이 관리하는 재소자 다루듯이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손찌검은 예사였고, 교도관들이 신는 워커발로 사정없이 짓이긴 건 물론 방안에 감금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직장인 교도소에서조차 악질수형자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는 쇠사슬이 달린 족쇄를 우리 자매들의 발에 채우고, 손에는 수갑을 채워 침대에 묶은 채 방에 감금을 하곤 했습니다. 구타와 감금의 이유는 언제나 저희 세 자매가 말썽을 부리고 가출과 비행을 일삼는다는 것이었지만, 저를 비롯한 언니들이 가출을 하게 된 건...바로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2살 무렵. 아버지의 폭행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정말 ‘살기 위해’ 집을 나가셨고, 그때부터 저와 언니들은 ‘폭행’ 외에 또 다른 폭력을 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성교육도 받지 못했고 성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저를 대상으로 아버지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여러 차례 저질렀던 겁니다. 다 큰 저를 목욕시켜준다며 옷을 벗겨 놓고 몸 구석구석을 만지고 감상한 건 물론, 밤에는 자는 저에게 몰래 다가와 속옷 벗기고 유사 ㅁㅁ을 저질렀습니다. 그 행동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깨닫게 된 건, 중학생이 되면서였고 그때부터 저는 그런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갔습니다.
두 언니가 당한 성폭력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첫째 언니에게도 밤에 몰래 다가가 속옷에 손을 넣고 유사 ㅁㅁ을 저질렀으며 둘째 언니의 경우엔 버릇을 고쳐 놓겠다며 옷을 다 벗기고 사정없이 구타한 뒤, 족쇄와 수갑을 채워 방에 감금시키고는 그것도 모자라 새벽에 다리를 벌리게 한 후, 똑같은 만행을 저지르곤 했습니다.
더욱 비참 한 건, 저와 언니들은 모두 아버지의 피를 나눠 받은 <친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의붓아버지였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친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걸 믿어줄 사람이 없었기에 저희 세 자매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살기 위해 가출을 하고, 거리에서 잠을 자고 배를 곯으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저희를 잡으러 온 아버지에게 붙잡혀 집으로 끌려가면 어김없이 폭행과 추행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버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학교에서 자해하고 가출을 반복하다가 결국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하며 춥고 배고프고 절망적인 10대를 보내야 했습니다.
17살에 아버지를 신고하려고 경찰서에 갔었지만, 아버지의 직업을 들은 경찰들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했고 그때부터 저는 이 대한민국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단돈 6만 원을 들고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고 이를 악물고 버틴 끝에 지금은 하와이에서 혼자 살며 한국에 남아 있는 언니들과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자립도 했습니다.
아버지를 피해, 실망스러운 대한민국을 버리기 위해 선택한 미국 행이었지만 타지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다 보니 어린 시절의 기억은 더욱더 또렷해져만 갔고, 결국 얼마 전부터는 숨도 제대로 못 쉬겠고, 잠도 잘 수 없고, 밥을 먹기도 힘든 상황이 반복되면서 ■■을 시도하고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12살부터 아버지에게 당한 성폭력의 상처가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생생히 남아있는 탓에 저는 누구를 사랑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도 없는 채로 20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언니들 역시 저처럼 지난 20여 년간 아버지에게 당했던 폭행과 성폭력의 기억을 끌어안은 채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인 아버지는 교도관으로 명예퇴직을 한 뒤, 연금을 받으며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해 너무도 평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에 과연 정의라는 게 있는 걸까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이제 12살 어린 소녀가 갇혀 있는 상자 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죽을 각오로 저는 대한민국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저희 세 자매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아버지를 고소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발을 디디자마자 경찰서를 찾아가 아버지를 고소한 저희 세 자매에게 경찰이 한 대답은 “공소시효가 지나서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였습니다.
20년 전에도 저희 세 자매를 지켜주지 못하는 경찰에 실망해 떠났던 대한민국인데 2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요. 저는 이대로 다시 미국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또다시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저와 언니들의 이야기를 이곳에 적습니다.
저는 법에 대한 지식도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와 제 언니들이 당했던 일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부모에게, 친척에게 성폭력을 당하고서도 침묵한 채 병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를 위해, 그 딸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죽을힘을 다해 외쳐봅니다 .
친족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해 주십시오.
저처럼 어린 시절에 성폭력을 당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더는 견딜 수 없어 죽을 각오로 법에 호소하는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주십시오.
친딸인 저와 언니들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 채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희 세 자매, 그리고 그 시절 저희 자매처럼 고통받았던 모든 사람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소중한 생명이라는 걸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국민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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