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르기.
“그러니까. 이건 진짜 획기적인 방식이라니까? 개체수에도 문제가 없어?”
한 남자가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을 꺼냈다.
“야 리멘! 정말 이런식으로 가도 된다는 거야? 이렇게 비인륜적이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은 리멘이라는 남자의 손 부분을 촛불로 밝히며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 있었다.
“인륜? 야 그 비룡새끼들한테 인륜을 챙겨도 된다는 말이야? 생존력이 바퀴벌레보다도 높고 개체수도 끊임없이 증가하는데, 이렇게라도 해야 다른애들도 살아남지. 안그래?”
리멘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앞에 놓인 거대한 벽같은 비늘을 앞에 두고 깊게 조충곤의 날을 찔러 넣어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그런가...”
남자가 중얼거렸다.
“아 거 드럽게 찡찡대네! 그럼 내가 혼자 했다고 한다! 너 나중에 공로 인정 안받을 수도 있어?”
“어...그래. 그냥 그렇게 해. 나는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래! 의리없는 자식 같으니.”
리멘이 두 팔에 체중을 실어 힘껏 당기자, 길게 그어진 검은 공간이 토하듯 붉은색 선혈과 함께 둥그렇고 육중한 살덩어리가 꺼내져 나왔다.
“이거야...! 이게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줄거야!”
“그럼... 이거 이대로 갖고 가면 되는거야?‘
“그렇다니까! 나만 믿어!”
남자는 촛불로 길을 앞장서고, 리멘은 자신의 등에 살덩어리를 이고 어두운 둥지를 헤쳐나왔다.
“이래봬도 내가 10기나 11기 조사단장을 노리고 있는 헌터 아니냐? 이래저래 수렵을 하면서 느낀게 있는데, 고룡종에서는 안 그런데 비룡종에서만 유독 특별한 케이스가 있더라구”
“그래서 너가 요즘 역전개체 안 잡고 비룡종만 잡으러 다녔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아무튼 비룡들을 잡으면서 알게 된건데, 이건 연구원들도 몰라.”
“아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비룡의 돌연변이 종 중 몇몇 종들은... 난소와 자궁이 재생성돼.”
리멘의 말에 촛불을 들고 앞장서던 남자가 우뚝 멈춰 섰다.
쾅-!
그 바람에 리멘이 앞을 제대로 못보고 걷다가 남자의 등에 부딪혀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으악! 이새꺄 똑바로 안 걸어!?”
“뭐...? 자궁? 그럼 지금 니가 들고 있는게 리오레이아 변종의 자궁이란 말이야?”
“그래! 여태 뭔 줄 알았어? 이거면 우리가 더 이상 쓸데없는 인력낭비 안하면서 비룡종에 대한 연구도 할 수 있다니까? 이건 혁신이야!”
“너 지금... 리오레이아의 배를 찢고 자궁을 탈취해 온 거냐고! 너 미쳤어!?”
“그게 왜?”
“인간이 할 짓이 있고 못할 짓이 있지!”
이번엔 남자가 뒤를 돌아 리멘의 멱살을 잡았다.
“멍청한 소리 한다. 너 또 너만 착한 척 하게? 야. 매 주 매 달마다 비룡종 연구한답시고 비룡의 알 채취해오는 퀘스트를 하는 헌터들. 열에 아홉은 신입이야. 그 9명 중 5명은 다쳐. 그리고 그 중 3명은 반ㅂㅅ이 되어서 연구원을 하든 교역선 타고 집으로 돌아가든 한다고! 자궁만 있으면! 만약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새끼들이 태어나는 걸 볼 수 있다면!”
남자의 팔을 잡더니 이내 몇 번의 움직임 만으로 간단하게 리멘은 남자의 목을 쥐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알이 자궁 내에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의 신입 조사단 헌터들을 안 다치게 만들 수 있어!”
리멘은 화가난 듯 속에 담아뒀던 말들을 쏟아냈다.
“우리가 여태 포획한 수백 수천마리의 리오레이아들에게 단 한 번도 자궁 자체를 채취할 생각은 안했어. 왜? 그냥 몰랐으니까! 그놈의 비인륜적 비인륜적. 비룡들이 신입 헌터들이나 신대륙의 민간인들을 쳐 죽이는건 비인륜적이지 않아? 반대로 헌터들이 수천 수만마리의 몬스터들을 닥치는대로 사냥하는건 비인륜적이지 않아? 오히려 난 이 상황을 타개할...”
“닥쳐. 넌 절대 못 지나가. 왠지 알아?”
남자는 목이 죄어진 채로 자신의 왼팔에 슬링어를 장전했다. 리멘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니가 나랑 싸우면 이길 것 같아?”
“너는 일반종이 아니라 돌연변이 종들 중 몇몇만 자궁이 재생됨을 알았지... 그건 어떻게 안건데? 그동안 네가 잡았던 수십 수백마리의 비룡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목숨만 부지하고 있을지 모르는 비룡 암컷들은? 우리의 수렵은 우리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야. 생태계의 보존 때문이지.”
“지랄한다 지랄 해. 우리가 감히? 생태계를 우리가 감히 보존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아직도 한단 말이야? 우린 그냥 우리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거야. 리오레이아가 임신한 걸 난 똑똑히 체크했고, 이걸 조사거점에 가져 갈 거야. 우리 인간들은 발전할거고, 넌 잊혀지겠지. 비켜”
남자는 끝까지 리멘을 막아섰다.
“지옥에서 보자. 쓰레기같은 자식아.”
남자가 말을 끝내고, 슬링어를 겨누자,
푸욱.
리멘의 조충곤 날끝이 남자의 심장을 꿰뚫고, 남자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주 어두운 밤이라 흐느끼듯 울먹임을 참고 호흡을 가다듬는 리멘의 눈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1년 뒤.
“야 빨리 최대한 둥지랑 비슷하게 만들어!!”
고온 다습한 내부를 가진 부화기가 습도 조절의 부재로 잠시 건조해졌을 때, 자궁은 미세한 균열들이 건조함을 틈타 완전히 벌어졌고, 알은 존재를 드러냈다.
인간들의 손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이 태동했다.
*
조사병단이 신대륙에 당도한지 45년. 이 때 등장한 한 전설적인 헌터에 의해 신대륙의 몬스터들은 씨가 마르고, 되려 인간들에 의해 종족 보전 및 연구가 자행된다. 이들은 어떤 생태와 몬스터든간에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뜻에 ‘유저’, 혹은 ‘플레이어’라는 칭호로 불리운다. 유저의 활약 덕분에 신대륙을 넘어 설산대륙, 용암 리아스구 등 수많은 대지를 개척해 나간 인간들은 몬스터와의 중립적인 상생을 추구했으나, 27년 유저의 급작스러운 수렵병의 발병 이후 상황은 급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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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본대륙은 이미 몬스터들의 공격과 수렵병의 대대적인 발병, 환경 오염 등으로 멸망 직전인 상태이며, 현재 신대륙을 인간들의 터전으로 잡기 위해 몬스터들의 세력을 밀어내려 한다.
몬스터들 또한 이에 맞서 신대륙을 두고 인간과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