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핀 단편 소설: 전석 매진
by 대니얼 코츠
https://universe.leagueoflegends.com/ko_KR/story/seraphine-color-story/
자운과 필트오버가 서로 노래했다. 후렴은 오래된 상처와 불의, 고통으로 가득했다. 그 노래는 나에게만 들리는 듯했지만 우리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의 그늘에서 들려오는 콧노래는 자운인과 필트오버인 모두를 거슬리는 불협화음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난 모두가 함께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난 그 소리를 들었다. 어쩌다 한 번씩 단편적으로 들려오는 짧은 화음에 내 가슴은 가능성에 대한 희망으로 욱신거렸다. 한번은 아름답게 밀려드는 화합과 희망의 해일이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으로 마법공학 수정의 소리를 들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목소리는 동시에 천 개의 찬가를 불렀다. 하나하나는 산사태 속의 자갈과도 같아 흩어진 음 이상은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목소리는 날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싶었지만 자운과 필트오버의 협화음이 끝나자마자 그 소리는 어렴풋한 흥얼거림으로 줄어들었다.
내가 무대 뒤 어둠에 숨어 있는 이곳 중간층에서는 그 듀엣이 더 선명히 울릴 것이다. 자운의 꼭대기이자 필트오버의 밑바닥. 공중에 감도는 잿빛 대기 때문에 망치로 두들겨 붙인 필트오버 청동판에 때가 껴 있었다. 자운의 화학공학 등불에 비친 필트오버 스테인드글라스가 필트오버 도구로 세심히 깔린 자운의 자갈길에 색을 흩뿌렸다.
두 도시에서 온 이들은 이곳으로 오며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열렬한 영혼의 노래를 가져왔다. 아래에서 밀려드는 자운인들은 각기 다른 음조의 열정으로 수없이 다양한 악기를 퉁겼다. 산만한 아이들을 이끄는 어른들은 잠깐의 평화를 바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트럼펫 소리와 함께 물결처럼 내려오는 필트오버인들은 밝고 위풍당당하게 눈을 반짝였다. 중간층보다 필트오버의 분위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저 위쪽 최상층에서 하강기나 계단, 경사로를 통해 내려온 것이었다. 다 함께 웃고 떠드는 이들은 임시 야외 공연장의 운치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감탄했다.
처음에는 신이 났다. 모두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나는 눈을 감고 수정에 집중하며 다시 말해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수정은 전과 같이 있는 듯 없는 듯 어렴풋이 흥얼거리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여러 노래가 충돌하며 듀엣이 다툼으로 변하자 그 소리마저 속삭임에 가깝게 희미해졌다. 필트오버인의 웃음소리에서 불편한 조소가 묻어났다. 자운인의 함성은 성난 표정으로 잦아들었다. 이내 군중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무리를 나누어 딱 절반으로 갈라섰다.
자운과 필트오버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다. 중간층은 모두가 모이는 곳이되 이어지는 곳은 아니었다. 두 도시에 어딘가 맞닿는 부분이 있어야 했기에 생긴 곳일 뿐이다. 필트오버인 하나가 발을 헛디뎌 두 무리 사이의 완벽한 경계를 넘을 뻔하자 곧바로 동행 둘이 붙잡아 보호라도 하듯 무리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으! 여기 다 같은 이유로 왔으면서! 잠시라도 좋으니 경계를 풀고 서로 어울리면 안 되나?
난 왜 이런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할까? 나도 그저 한 사람일 뿐인데. 세라핀일 뿐인데. 몇 년 동안 거의 집 밖에 나오지도 못했으면서 저들에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 주지? 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애초에 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지?
갑자기 조명이 켜지자 그제야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늘한 팔뚝과 떨리는 손에 쥐어진 마이크가 느껴졌다. 난 관객을 바라봤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들렸지만 대부분은 다른 쪽에 있는 무리와 섞이지 않으려고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난 숨을 쉬었다.
필트오버 관객 쪽에서 순수하고 익숙한 영혼의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이 나는 쪽을 살피자 나를 보며 지친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샬라가 보였다. 샬라의 노래에 빠져들자 주위 관객이 잠시 배경으로 흐릿해졌다. 부모님 가게에 들렀을 때 샬라는 자신이 쓴 논문에 관해 얘기하며 부모가 아이에게 열심히 이야기책을 읽어 주듯 논문 내용을 읽어 주었다. 지난번 대학에서 논문이 반려된 뒤 무엇이 바뀌었는지 얘기해 준 것이다. "원래 행운은 일곱 번째에 오는 법이야." 지난번 얘기했을 때 샬라가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긍정적인 말에서도 의심의 소리가 묻어났다. 샬라는 여섯 번 떨어졌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문이 피어오르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샬라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샬라의 회의감이 내 안에 자리 잡자 숨을 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선율에 또 다른 노래가 섞여들었다. 이번에는 자운인이 모여 있는 쪽이었다. 음이 나는 쪽을 살피자 롤런드가 보였다. 예술가의 경지에 오른 은 세공사였다. 처음에 음악 소리를 듣고 롤런드의 작은 공방으로 이끌렸던 게 떠올랐다. 롤런드는 구석에서 밴드 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 몇 명에게 공간을 내주려고 공방 한쪽에 상자와 물품을 전부 쌓아 놓고 있었다. 소음이 있어야 더 집중이 잘된다면서 공간보다는 소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어차피 다음 세공품이 잘 팔리지 않으면 이만큼 작은 방을 쓰는 데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롤런드의 노래와 샬라의 노래가 하나로 얽혔다. 하나는 북과 금관 악기가 어우러진 거친 목소리, 하나는 관악기와 뿔피리가 어우러진 조용조용한 목소리였다. 비슷한 점이라곤 찾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무엇인가 두 노래를 하나로 이었다. 한 노래는 회의감으로, 다른 노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확고하고 세차게 울리는 박자는 두 노래가 따로 떨어져 사라지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두 노래의 박자는 같았다. 샬라도 롤런드도 자신의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결의가 어둠 속으로 떨어져 가는 내 결의를 찾아 붙잡았다.
다음 숨결은 달콤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필요는 없다. 난 그것을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저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래도 괜찮았다. 수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안정적인 리듬이 점점 커지며 윙윙거렸다. 희미해도 분명한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에 닿고 싶었다.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난 눈을 감고 마음속에 샬라의 노래와 롤런드의 노래를 가득 채운 후 애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펜을 씹던 샬라가 깨달음으로 눈을 크게 뜨더니 논문에 완벽한 결론을 써 내려갔다. 한쪽 눈을 꼭 감은 채 화려한 은테에 마지막 디테일을 조심스레 새겨 나가던 롤런드는 작품이 완벽히 완성되자 물러서서 씩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어깨를 타고 기어오른 자그마한 폭발이 척추, 머리까지 이어지며 몸 전체가 음악으로 타올랐다.
나는 노래했다.
각자의 목소리는 조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목소리도 마찬가지일지 몰랐다.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 그랬다. 난 무엇도 억누르지 않았다. 다들 그러지 않을 테니까. 공포, 근심, 회의감. 모든 것을 노래에 쏟아부었다. 너무 많이 쏟아부어 울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 노래는 창유리에 맺힌 빗방울이었다. 샬라의 빗방울과 내 빗방울이 하나가 되어 작은 물줄기를 이뤘다. 우리는 롤런드를 찾아 기꺼이 하나로 뭉쳤다. 이렇게 하나가 된 우리는 관객을 찾았다. 각각의 물방울은 계속해서 하나로 합쳐져 노래와 감정의 홍수가 되었다.
관객이 조용히 거대한 영혼의 물결을 이루기 위해 음악에 마음을 열면서 그 홍수는 점점 더 커져 갔다. 전에는 이 소리의 폭풍 속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롤런드와 샬라, 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저들이 느끼는 것을 느꼈다. 저들은 우리를 움직이는 것, 나를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난 정말 감사했다. 이 마음을 모두에게 확실히 표현해야 했다. 난 그 감정을 하나의 음에 밀어 넣었다. 그 순간에는 우리가 만드는 음악이 하늘도 꿰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나고 눈을 뜨자 관객이 보였다. 하나로 뭉친 무리가 시끌벅적한 환호와 함께 무대로 밀려들며 나를 반겼다. 자갈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내 뮤즈들이 무리 중앙에서 서로를 찾았다. 더는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중간층은 아름다운 곳이다. 난 관객석에서 가장 좋은 곳에 앉아 있었다. 구석에 숨겨져 있는 작은 탁자는 운 좋은 후원자가 은밀히 앉아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지나가는 세상을 지켜볼 수 있는 곳이었다.
공연은 한참 전 끝났지만 관객은 자리를 뜨지 않고 함께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인근 장사꾼들은 탁자와 의자를 깔고 가게를 열었다. 전력이 꺼진 후 한쪽으로 밀려난 무대는 필트오버와 자운의 아이들이 서로 온갖 장난을 치며 뛰노는 임시 놀이터가 되었다. 흥분에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다.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날에 느껴지는 신나고 경이로운 감정이 가득했다.
편히 앉아 김이 나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싼 나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다들 경이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필트오버와 자운의 듀엣이 조금 더 이어졌다.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희미하지만 다급한 소리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며 내 영혼이 날아올랐다. 무엇이 들릴지, 이번에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들어야 한다는 사실만 알았다.
그 노래는 오케스트라의 파도로 부풀어 올랐다. 나는 곧 밀려들 산사태에 대비했다. 그것이 부를 수많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그러나 난 듣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단편 소설: 숙주
by 아만다 제프리
https://universe.leagueoflegends.com/ko_KR/story/the-host/
난 죽을 것이다.
불규칙하게 끊기는 숨을 쉴 때마다 괴로웠다. 누군가 녹슨 톱으로 내 가슴을 열어 그 틈을 이빨로 채운 느낌이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그자'의 짓이었다.
그자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차마 볼 수 없었다. 눈물이 고인 눈으로 벽돌 천장에 자그맣게 난 채광창을 응시하며 변한 내 모습 외에 뭐든 보려고 애썼다. 저 너머에는 내가 살던 도시 자운이 있었다. 하지만 분주히 움직이는 수천 명의 사람 중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전의 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딸깍
녹음 장치가 켜지고 밀랍 실린더가 서서히 돌아가자 다시 숨이 턱 막혔다.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가 말했다.
"실험체 '생각하는 자'의 기능은 손상되었다. 하지만 아직 청력과 인지력이 남아 있다."
딸깍
눈에 고인 눈물과 관찰용 창의 두툼한 녹색 유리 너머로 이름을 알 수 없는 남자의 모습이 기괴하게 뒤틀려 꼭 반쯤 녹은 밀랍처럼 보였다. 푹 꺼진 짝짝이 눈이 창백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뚝뚝 떨어졌다. 남자가 내 상태를 자세히 보기 위해 창 뒤에서 쉬지 않고 서성이자 그 움직임에 맞춰 남자의 입을 가린 붕대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내게 머물던 남자의 예리한 시선이 감방 구석에서 낮게 끙끙거리고 있는 존재에게로 돌아갔다. 그곳을 돌아보자 거대한 형체가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빛나는 파이프와 관이 그것의 팔뚝을 이리저리 휘감아 관통하고 있어서 안 그래도 커다란 팔뚝이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나처럼 위축되고... 변한 저 짐승 같은 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 반으로 뚝 부러뜨릴 수 있었다.
딸깍
"실험체 '부수는 자'가 4시 6분에 의식을 되찾았다. 예상보다 빠르다. 조짐이 좋다! 실험은... 4시 7분에 시작한다."
딸깍
안 돼. 안 돼, 안 돼! 또 실험이라니.
딸깍
"기준선 정립 중. 생각하는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가능한 한 빠르고 정확하게 답해라."
"무슨—"
"첫 번째 질문이다. 네 본명이 뭐지?"
"안 해! 내 말 들려? 당장 날 풀어 줘. 난 협조할 생각 없어. 이런 역겹고 뒤틀린..." 내 말이 점점 작아졌다.
딸깍
남자가 녹음 장치의 송화구를 내려놓더니 밸브가 모여 있는 창문 가장자리로 향했다. 나나 구석에 있는 존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한 밸브를 돌리자 얼음장 같은 지하동굴 물이 거세게 쏟아져 들어와 날 벽으로 내동댕이쳤다.
입에서 비명이 나오는 것 같다.
영원 같은 시간이 지난 후 위축된 손과 무릎을 덜덜 떨며 숨을 쉬려고 헐떡였다. 천천히 빠져나가는 물속에서 매달릴 곳을 찾으려고 바닥을 더듬거리던 그때 손목에 뭔가 걸려 반사적으로 팔꿈치가 구부러지자 얼굴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난 생경한 고통으로 타오르는 팔을 붙잡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때 가슴과 바닥 사이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것은 날카롭게 꿈틀거렸다. 마치 내 밑에 깔린 울론 전갈이 날 할퀴고 달아나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몸을 굴렸지만 그 감각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내 맨살에 붙어 있었다. 할퀴고 꿈틀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에 구역질이 났다. 난 발길질과 함께 손톱을 휘두르고 소리를 치면서 그것을 떼어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겹군."
손이 피투성이가 됐다. 손목이 뭔가 이상했다. 몸에 붙어 있는 것도 떼어 낼 수 없었다. 가시와 갈고리가 잔뜩 달린 그것은 마치 내, 내 가슴에 파고든 것 같았다.
가슴에 이빨이 있었다.
이제야 기억났다. 몸에 전갈이 붙은 게 아니었다. 그 남자가 한 짓이었다. 남자는 내 몸을 갈라 날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양쪽 손목에는 흡입 송곳니가 이식되었고, 목부터 허리까지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촉수 두 개가 달려 있었다. 남자는 내가 이것을 이용해 나와 함께 갇힌 존재를 물었으면 했다.
남자는 우리를 녹슨 철제 들것에 함께 묶어 놓은 적이 있었다. 빠른 속도로 바늘을 움직이며 무자비하게 우리를 하나로 이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수술과 화학공학으로 내게 주입한 본능이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며 '과정'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자 모든 것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숙주'가 되어야 할 존재와 함께 갇혀 있었다.
딸깍
"실험체가 초기 자극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기초 질문을 재개한다. 생각하는 자가 본명을 말하지 않는다면—"
"제발 그만해. 이 정도면 됐잖아!" 나는 소리쳤다.
"시간과 강도는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아니, 세 배가 좋겠군."
딸깍
남자가 날 똑바로 바라봤다. 눈만 보고는 붕대로 가린 입이 웃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다시 밸브를 잡았다. 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깨달았다. 몸을 숨길 곳도 붙잡을 곳도 없었다. 배관이 우르릉거리자 가능한 한 몸을 작게 말고 숨을 깊이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찬물이 거세게 부딪치자 폐에서 공기가 터져 나왔다. 난 표면에 이리저리 부딪혔다. 위아래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발목에서 쿡쿡 쑤시는 통증이 느껴졌다. 마침내 물세례가 끝나자 난 몸을 비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요동이 멈추자 꼼짝 않고 널브러져 있었다. 남은 물이 방에서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내가 그 어느 때보다 약하게 느껴졌다.
난 죽을 것이다.
쾅. 화학 물질에 절은 감방 동료가 관찰용 창을 강타하는 소리에 몸이 움찔했다. 분노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거대한 강화 주먹으로 유리를 치는 그것의 목구멍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원시적 고함이 터져 나왔다.
유리와 그 뒤에 있는 괴물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부수는 자'로 불리는 성난 야수를 피해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간신히 끌어 조용히 반대편으로 갔다. 계속해서 유리를 치는 야수의 주먹에서 피가 났지만 유리는 부서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완고한 건지 멍청한 건지, 그것은 포기하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노호가 잦아들어 말 없는 흐느낌으로 변한 후에도 부어오른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딸깍
"부수는 자의 근력은 화학흡입 근육 강화 시 예상한 범위 내에 있지만 문제 해결 능력은 그다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딸깍
우리의 고문자는 부수는 자의 상처에서 나온 피로 얼룩진 유리 반대편을 무감정하게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날 돌아보았다.
딸깍
"반면 생각하는 자는 빨리 이름을 말할 수도 있었지—"
"내 이름은 하드리야! 하드리 스필웨더. 난 사람이지 그놈의 '생각하는 자'인지 뭔지가 아니야." 난 남자의 마음에 남아 있는 일말의 연민이라도 이끌어 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거짓말이라도 지어내야 했다. "난 아들이 있어! 그 앤... 두 살배기야. 날 애타게 찾고 있을 거라고."
"아들?" 붕대를 두른 남자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름이 뭐지?"
"로, 로크야. 로크 스필웨더. 정말 귀엽고 누구보다—"
"그만. 넌 가족이 없어. 전부 네가 앓고 있는 그 유전병 때문에 노화가 가속되고 온갖 비참한 병증에 시달리다가 명이 다했지. 지난 13년 동안 넌 자운 과학원에서 네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붙잡고 귀찮게 굴면서 치료 방법을 찾아다녔어. 아니, 구걸하고 다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
물처럼 차갑게 밀려드는 그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데도 내가 준 특별한 선물을 반항과 쓸모없는 데이터로 보답하다니." 남자는 화가 나 보였다. "넌 앞으로 살날이 5년 남았다고 예상했지.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니야. 기껏해야 3년만 있으면 침을 질질 흘리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신세가 될 테니까. 네가 누나와 아버지에게 했듯 널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의 말이 맞았다. 치료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에 불과했다. 과학원은 날 도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모두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었다. 다들 자신이 매달리거나 욕심을 부리는 연구가 있었다. 난 그저 널리고 널린 가망 없는 불쌍한 외톨이일 뿐이었다.
난 죽을 것이다.
"하지만 죽을 필요는 없어."
난 남자의 눈을 휙 바라봤다. 이 감정은... 혐오? 증오? 분노? 희망이다. 어떤 근거로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나는 간신히 물었다. 결국 물어봤다는 사실이 역겨웠다.
그는 말로 답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둥글게 말고 나와 함께 갇혀 있는 형체, 부수는 자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까딱할 뿐이었다. 부수는 자는 피가 나는 손을 붙잡고 앞뒤로 몸을 흔들며 우리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말을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육질로 이루어진 부수는 자의 몸은 나보다 무게가 세 배는 더 나가 보였다. 그것도 팔에 저 알 수 없는 증강체를 달기 전의 얘기였다.
부수는 자와 함께 들것에 묶였을 때가 떠올랐다. 우리는 똑같이 갇힌 신세였다. 괴물처럼 강화된 힘만 제외하면 둘 다 무력하긴 마찬가지였다. 붕대를 두른 남자는 내가 부수는 자에게 들러붙기를 바라는 것일까? 부수는 자를... 버팀대로 삼도록? 살아 있는 보철 장치로 삼도록?
스스로 한 생각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나는 부수는 자로부터 허둥지둥 멀어지며 헛구역질했다.
"실망스럽군." 남자는 지루한 듯 말했다. "네게 3년은 너무 멀게 느껴지는 모양이야, 생각하는 자. 그럼 더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 주지. 지금처럼 약해진 상태에서는 아까와 같은 자극을 받을 때마다 여기저기에 골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네 번만 더 자극하면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돼서 물에 얼굴을 박고 아주 천천히 익사하게 될 테지."
남자는 유리를 통해 음흉한 시선을 던졌다. "지금까지 관찰한 결과를 보건대 꽤 고통스러운 일이 될 거야."
딸깍
방이 너무 작았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부수는 자가 관찰용 창을 마구 치는 것처럼 심장이 갈비뼈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부수는 자와 시선을 마주하자 부수는 자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상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두 눈에는 나와 같은 공포뿐 아니라 연민과 흡사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날 가둔 남자보다도 훨씬 더 인간적이었다.
난 남자의 차갑고 계산적인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렇게 한다면..."
딸깍
"외부 기생 결합이 진행되면 결합체의 특성, 숙주 등에 대한 기생체의 행동 변경 능력 범위, 결합한 초개체의 회복력에 관한 검사를 실시할 것이다. 실험은 종료되고 이것도..." 남자가 방, 관과 밸브, 관찰용 유리창을 가리키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전부 끝나겠지."
딸깍
난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일이라도 되는 양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뜩 현실을 깨달았다. '개체의 회복력을 검사한다.' 그 말은 즉 메스로 죽을 때까지 고문하겠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치료가 아니라 사형 선고였다.
아주 조금씩 몸을 움직여 차가운 벽돌 벽을 끌어안고 간신히 일어선 나는 이미 부러진 발목 때문에 잠시 숨을 헐떡이며 비틀거리다가 몸을 돌려 창밖에 있는 적을 마주 봤다.
"싫어."
긴 침묵이 흐르자 자운의 소리가 들려왔다. 배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멀리 있는 펌프, 잠들지 않는 기계가 편안한 저음으로 울리는 소리였다. 어렴풋이 다섯 번째 종이 울리는 것도 같았다.
난 남자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남자의 행동에 초연할 수는 없었다.
딸깍
"실험체가... 비협조적이다."
딸깍
남자가 밸브를 끝까지 돌렸다.
고통스럽다. 산처럼 덮쳐 온 물이 나를 벽, 천장, 바닥으로 이리저리 내동댕이쳤다. 더는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알 수 없었다. 소음만이 있었다. 어둠만이 있었다. 고통만이 있었다.
그때 빛이 나타났다.
너무 밝아 눈꺼풀 뒤의 세상이 금빛으로 변할 정도의 빛이었다. 허파를 울리는 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진 채 정신을 차렸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쑤시고 미친 듯이 추웠다. 난 위를 올려다보았다.
뭔가 변했다. 기세가 약해졌지만 배관에서는 계속해서 물이 쏟아졌다. 천장 근처에 뚫린 구멍에서 빛이 흘러들어 왔다. '탈출구인가?' 노란빛이 몇 번 더 번쩍이더니 멀리서 폭발음이 뒤따랐다.
귀에서 맴도는 울림을 뚫고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포에 질린 나는 그것이 부수는 자가 내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을 감싼 부수는 자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렀다. 부수는 자는 벽으로 돌진하더니 휙 돌아 물속으로 자빠졌다.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허둥지둥 구멍 쪽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목에 박힌 송곳니가 물 아래 돌에 긁히자 이를 악물었다. 쑤시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뭔가 걸린 게 있는지 확인하려고 몸을 뒤틀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떨어진 잔해 덩어리가 허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위험하지만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저 구멍에서 떨어져 나온 듯했다. 잔해를 발로 찼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밀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난 최선을 다해 꿈틀거리고 미약하게나마 몸을 움직이며 소리를 질렀다. 서서히 잔해가 옆으로 굴러떨어지며 물속에 빠졌다. 주변에서 차오르는 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실험은... 5시 2분, 아니, 3분에 끝났다."
고개를 돌리자 붕대를 두른 남자가 창문에서 멀어지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나갔다. 갑작스러운 폭발, 내 마비 아니면 반항 중 어떤 변수 때문에 그렇게 신경 쓰던 실험을 내던지고 물을 쏟아 내는 것인지 궁금했다.
망할 자식.
난 잔해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내 피는 어둑한 자운의 불빛에 비쳐 검게 보였다. 속에서 열이 빨려 나가 안쪽부터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흐느낌. 부수는 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부수는 자는 절망에 빠진 돌덩어리처럼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팔에 감긴 관이 희미한 초록빛을 발했다.
난 목소리를 낮췄다. "이, 이봐."
부수는 자가 휙 고개를 들었다. 유리 뒤의 남자가 팔에 설치한 관에서 희미한 빛이 나와 엉망이 된 눈 주위의 검은 줄기를 비추었다. 부수는 자는 고뇌와 상실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내 말을 듣기 위해 미친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부, 부수는 자?" 몸이 떨렸다. 말을 내뱉기가 힘들었다. "이봐, 미, 미, 미안한데 진짜 이름을 몰라서—"
부수는 자가 첨벙거리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화학 물질을 주입한 장비가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부수는 자가 내 쪽으로 달려오자 나는 눈을 꽉 감고 충격에 대비했다.
그 순간 머리에서 뜨겁고 거대한 손길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부수는 자가 내 앞에 쭈그린 채 서툴게 내 얼굴과 어깨를 쓰다듬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진짜인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멀리서 번쩍이는 빛이 천장에 난 틈으로 들어오며 호박색 번개처럼 부수는 자를 비추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부어오른 그는 너무 순진해 보였다. 외로워 보였다.
난 죽을 것이다.
하지만 부수는 자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수는 자? 부, 부수는 자, 내 마, 말 잘... 들어." 내 손을 잡은 그가 고개를 돌려 한쪽 귀를 가까이 댔다. "나, 나가는 길이 있어. 천장에 난 구멍 말이야. 여, 여기서 나가고 싶지?"
여전히 내 손을 쥔 부수는 자가 어찌나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던지 내 몸까지 앞뒤로 흔들렸다. 얼음장 같은 몸에 화끈한 고통이 퍼졌다. 이런 열기조차 반가울 지경이었다.
"아! 그래. 좋아. 자, 잘 들어. 잘 들어! 일단 내 소, 손부터 놓고—"
부수는 자는 싫은지 내 손가락을 더 꽉 쥐었다.
물이 내 가슴에서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가시 촉수에 철썩거리고 있었다. 촉수는 자신의 먹잇감이 되어야 했을 대상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숙주에 들러붙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죽을 것이다.
차오른 물이 내 피로 붉게 물든 것을 보니 시간이 얼마 없었다. 서둘러야 했다.
난 다른 손으로 부수는 자의 손을 살며시 풀었다. "괘, 괜찮을 거야, 부, 부, 부수는 자. 약속할게. 일단... 안전한지 확인부터 해야 해." 호흡이 더 힘들어졌다. "해, 해 줄 수 있지? 그럼 우, 우리 둘 다 나, 나갈 수 있어."
거짓말이었지만 부수는 자가 손을 놓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부수는 자의 팔꿈치를 붙잡고 일으켜 세운 나는 통증을 참고 몸을 움직이며 떨어져 나간 틈 쪽으로 조금씩 부수는 자를 떠밀었다.
양팔을 다시 얼음처럼 차가운 물 속으로 늘어뜨렸다. 아마 부수는 자의 온기가 내가 느낀 마지막 온기였을 것이다.
"내, 내, 내 말만 들어. 나, 나가게 해 줄게!" 어느새 물은 목까지 차 있었다. 몸이 어찌나 떨리는지 뭘 똑바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 자, 잔해가 있으니 조심—" 부수는 자가 떨어진 잔해에 정강이를 박아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 괘, 괘, 괘, 괜찮아. 바, 밟고 올라가. 좋아. 이제 벼, 벼, 벽으로 소, 손 뻗어. 닿지? 좋아. 잘했어. 벽돌 사이에 틈이 있어. 틈을 밟고 오, 올라가. 이제 위로 가. 위로 가, 부수는 자. 그렇지, 거기가 나, 나가는 곳이야."
난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물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나마 몸의 감각 대부분이 사라져 다행이었다.
"올라가, 부, 부수는 자." 난 숨을 헉 들이쉰 후 목을 쭉 빼고 캑캑거렸다. "자, 잘 있—"
물이 얼굴 위로 차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마지막 숨을 참고 있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시끄럽게 울렸다. 마음에 드는 소리였다. 이 소리가 그리울 것이다.
폐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때가 됐다. 심장이 아우성쳤다. 감각 없는 팔이 허우적거렸다. 눈이 움찔거리며 떠지고 가슴은 공기를 갈구하며 들썩였다. 마지막 숨을 토하자 씁쓸한 지하동굴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은 공포뿐이었다.
손에 뭔가 닿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밀어 움직이려고 했다. 위쪽이든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꼼짝도 안 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공기가 없는데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난데없이 시야에 부수는 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안 돼! 둘 다 죽을 순 없어! 난 버둥거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몸이 단념하고 있었다. 나도 단념하고 있었다. 시야가 좁고 어두워지며 잿빛으로 변했다. 부수는 자가 몸을 돌리는 모습을 본 나는 그가 살아남길 바랐다.
뭔가 잘못됐다. 아니, 잘됐나?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온기와 움직임이 느껴졌다. 몸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경련이 일며 일순간 시야가 예리해졌다. 물속에서 부수는 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내 가슴, 아니, 가슴에 있는 것들이 자신을 누르는 척추를 감지하곤 뒤로 한껏 몸을 젖히며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반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안 돼. 돼. 안 돼!
...난 죽고 싶지 않아!
가슴에 있는 촉수가 표적을 옥죄자 나는 부수는 자의 목 양쪽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으드득.
나/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여전히 물속에 있었지만 우리의 폐는 공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비어 있었다.) 우리의 팔다리는 튼튼하고 강력했다. (그리고 약하며 부러져 있었다.) 우리는 다시 볼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우리는 희미한 빛을 향해 물속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앞을 가로막은 쇠막대를 밀어내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손은 놀랍도록 크고 생각보다 왼쪽에 있어 하마터면 헛손질을 할 뻔했다. 아니다. 이제 감을 잡았다. 가볍게 밀려난 쇠막대는 저 뒤로 날아갔다. 우리는 다리를 차며 천장에 뚫린 구멍을 향해 끝까지 헤엄쳤다. 마침내 밖으로 나온 우리는 지붕에 털썩 드러누웠다.
공기다.
우리는 우리의 폐에 찬 물을 토해 내는 한편 다른 폐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아니 '우리'의 폐가 아니라 '나'의 폐였다. '나'의 심장이 강하고 빠르게 박동했다. '나'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난 강력한 팔로 건물 옆을 기어 내려왔다. 발에 닿은 땅이 멀면서도 조금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들려오는 소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이 깊이 있고 명확했다.
냄새를 맡아 보니 자운 깊숙한 곳인 듯했다. 주위에는 뭔가 새어 나오는 용기와 흠뻑 젖어 꿈틀거리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낡은 공장 뒤에 있는 뜰이었다. 저 멀리 위쪽에서는 쓰러진 탑의 일부가 갈라진 벽에 위태롭게 기대어져 있었다. 이차 폭발로 생긴 노란 섬광과 굉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 자유의 근원지이자 탄생의 근원지였다.
뒤쪽 감방 벽에서 잔해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에 흠칫한 나는 내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자' 때문이었다.
여기 있어선 안 됐다. (무섭다!)
난 나도 모르게 달리고 있었다.
기분이 짜릿했다. 세상이 이렇게 빨리 스쳐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내 다리가 이렇게 가벼이 움직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난 순식간에 골목을 달려 내려갔다. 앞을 가로막은 관문이 보였지만 삐져나온 배관을 지지대 삼아 도약한 후 위에 늘어진 철책에 매달려 뛰어넘었다.
과거의 나는 둘 다 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나는 할 수 있었다. 너무도 쉬웠다.
나는 속도를 거의 늦추지 않고 가볍게 착지했다. 그 충격에 부러진 척추 쪽이 아파 왔지만 예전과 달리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이제 내 강점은 서로를 강화하고, 약점은 인식 후 보완되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나는 전보다 낫고 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나 자신이 든든했다.
앞으로 성큼성큼 뛰어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영광된 진화단 교회를 나오는 신자 몇 명과 마주쳤다. 다들 기계 다리와 산소마스크, 이질적인 금속 팔 등 이상한 증강체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하지만 증강체에 집착하는 이 불안정한 광신도들은 하나같이 그 자리에서 딱 멈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등에 뭐가 있어." 기계 눈이 달린 남자가 말했다.
"저게 대체 뭐야?" 등에 인공 폐를 지고 있는 여자가 물었다.
"저 사람을 먹고 있어!" 무리 뒤쪽에서 누군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사람들의 표정이 충격에서 혐오로 바뀌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쳤지만 둘러싸이고 말았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밀쳤다. 난 그만하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 —알 내— —어."
"—발 나— —버려 두—"
두 입에서 말이 순서대로 떠듬떠듬 이어져 나왔다. 처음으로 들은 새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신도들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머리 옆으로 돌이 날아왔다.
"그만해-해. 내가 무슨-슨 짓을 했다-했다고 이래-래." 나는 빌었다. 말은 여전히 제대로 나오지 않아 마치 메아리를 통해 말하는 것 같았다. 입에서도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들 역시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무리에서 노란 머리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증강된 손목에는 무거운 망치처럼 보이는 증강체가 달려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들어 올려 공격하려고 했다.
"내버려 두라고 했지!" 내 진정한 목소리였다. 소란 속에서도 또렷하고 조화로웠다. 하지만 지금 말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자 위에서 골목을 연결하는 증기관이 보였다. 남자가 공격하기 직전 뛰어오른 나는 증기관을 끌고 내려와 공격을 막았다. 망치가 관을 꿰뚫자 남자의 얼굴로 고온의 증기가 터져 나왔다.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바로 도망치자 신도들이 고함치며 협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어두운 자갈길을 달려 내려갔다. 공동 주택 구역과 길모퉁이에 자리한 가게들을 지나 죽마를 탄 배관 청소부 둘과 용수철 상인을 지나쳤다.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모퉁이를 돌았다. 전력으로 질주하며 비교적 작은 다리를 건너자 발밑에서 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때 한 노점상에서 반쯤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난 빈 가판대 뒤에 몸을 숨기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음 한구석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냄새였다. 이곳은... 엄마와 함께 오곤 했던 곳이다. 난 엄마에게 쇠붙이 두 개를 받아 귀리죽을 파는 아줌마에게 주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을 집으로 들고 갔다.
집.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물이 났다. 숨을 만한 곳, 쉴 수 있는 곳, 안전한 곳이었다.
집은 여기서 멀지 않았다!
이번에는 애타는 마음으로 달려 나갔다. 협곡 쪽에 있는 돌계단을 세 층 올라가 망가진 옛 온실을 지난 후 팩토리우드 끝으로 두 거리를 내려갔다.
어느새 나는 내 집이었던 곳에 도착해 있었다. 방치된 지 오래된 집은 까맣게 탄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곳은 나의 집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난 이곳에서 엄마, 형제와 함께 살았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엄마는 벽을 노랗게 칠하며 노란 페인트가 액체 형태의 햇빛이라고 말했다. (난 여기 와 본 적이 없다.)
수없이 많은 폭풍우에 젖어 뒤틀린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갔다. 손에 닿는 난간이 익숙했다. (낯설었다.)
엉망이 된 문을 밀어젖히자 환영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밝게 웃던 시절의 행복한 기억이 불탄 잔해만이 널린 현실과 충돌했다.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곳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안방으로 이어지는 문은 경첩에서 떨어진 지 오래였고 지붕은 무너져 내렸지만 내 시선은 왼쪽 구석으로 이끌렸다. 내가 잠을 자곤 했던 작은 침대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난 가까이 다가가 처음으로 옆쪽 벽에 새겨진 이름을 읽었다.
"팔로."
나였다. 내 이름은 하드리— 아니, 팔로였다. 둘 다 나였지만 이곳에 살던 나의 이름은 팔로였다. 하드리의 어머니가 출산 중 죽은 것과 달리 팔로는 엄마의 손에서 자랐다.
무슨 일이 있었지? 사고가 났나? 공격을 받았나? 엄마가 화공 남작을 잘못 건드렸나? 내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닐까?
엄마의 책상은 흠뻑 젖어 엉망진창으로 부서져 있었다. 그런데 쌓여 있는 나무 파편 속에서 뭔가 반짝였다. 엄마의 손거울이었다. 열 때문에 금이 간 것처럼 보였다. 나는 손거울을 집었다. 하드리였을 때는 붕대를 두른 남자가 날 어떻게 바꿨는지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전 일이었다. 난 여러모로 달라졌다. 이제는 알아야 했다.
나는 거울을 봤다.
악몽이 나를 마주 보았다.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 눈먼 남자가 서 있었다. 팔뚝에는 빛나는 초록색 관과 선이 둘둘 감겨 꽂혀 있었다. 남자의 등에는 허약해 보이는 기생체가 매달린 상태였다. 남자의 목에 오그라든 팔을 감은 기생체는 주사기 같은 송곳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여윈 다리는 쓸모없이 덜렁거렸다. 남자의 어깨 뒤에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던 번들거리는 혈안이 공포로 휘둥그레졌다.
혐오감이 엄습했다. 나는 거울을 떨어뜨리고 제일 큰 손으로 허겁지겁 숙주에 붙은 기생체를 떼어 내려고 했다. 나는 흉측했다. (나는 똑똑해졌다!) 나는 실패한 실험체일 뿐이다. (나는 더 나아졌다!) 이제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내가 좋다!) 나는 언제까지나 혼자일 것이다. (혼자 있고 싶진 않다!)
혼자.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두 생명의 격렬한 외로움이 밀려들자 난 머리를 뒤로 젖히고 울부짖었다. 누구도 느껴서는 안 되는 감정이었다. 누구도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두 배가 된 상실감, 공유된 상실감에 울부짖었다. 나 자신과 깊은 상실감에 빠진 두 생명을 연민하며 울부짖었다. 자운 전역에서 동물과 인간, 동물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그 외침에 답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외로움으로 하나가 되는 모순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무릎을 털썩 꿇었다. 뒤쪽 바닥에 쓸모없는 발이 스쳤다.
나는 살아갈 것이다. 팔로도 하드리도 아닌 삶을. 부수는 자도 생각하는 자도 아닌 삶을. 나는 둘 모두이자 전부였다.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나는 벽에서 불타다 만 커튼을 뜯어 어깨 위에 걸치며 시야를 가리지 않게 조심했다.
내 기억은 너무 이상했고, 복잡했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문밖으로 걸어 나가 계단을 내려가며 어딘가 나 같은 괴물이 갈 만한 곳이 있을지 생각했다.
딸깍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진 것이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침내 숙주 실험의 첫 번째 단계가 완료되었다."
딸깍
몸이 얼어붙었다. 집 앞으로 난 좁은 길에서 날 감금했던 남자가 공압식 화살 총을 겨눈 채 서 있었다. 남자의 허리띠에서 알 수 없는 액체(뜨거운 것이다!)로 가득 찬 유리병이 쨍강거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등에 멘 가방을 보니 그보다 끔찍한 것도 잔뜩 가져온 듯했다.
'저 남자'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두 가슴에 차오르는 분노가 느껴졌다. 두 심장이 갈비뼈만을 사이에 둔 채 서로를 향해 쿵쾅거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남자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어딜!" 남자가 경고했다. 남자는 태연히 화살 총을 옆으로 휙 돌리더니 방아쇠를 당겨 커다란 청록색 딱정벌레에게 화살을 명중시켰다. 나는 화살에 든 액체가 딱정벌레의 몸에 주입되는 것을 두렵게 지켜보았다. 액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딱정벌레의 비명이 네 개의 귀로 지나치게 생생히 들려왔다.
어느새 다시 장전된 화살 총이 나에게 겨눠졌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딸깍
"지금부터 하는 질문의 대상은 생각하는 자다.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의욕이 나도록 압박을 가하겠다."
"뭐?"
"입 다물어. 첫 번째 질문이다. 네 본명이 뭐지?"
남자의 길고 얼룩진 손가락이 녹음 장치의 스위치 위를 맴돌았지만 화살 총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하드리 스필웨더." 나는 탈출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디로든 도망쳐야 했다.
"좋아. 다음 질문이다. 네 아버지 이름이 뭐지?"
아버지? 난 아버지가— 잠깐, 아니, 나에게는 아버지가 있었다. 난 병이 악화한 아버지를 간호했다. 아버지 이름... 아버지 이름은...
"어서 질문에 답해!" 붕대를 두른 남자가 재촉했다.
"아번! 아번 스필웨더!" 예상보다 안심한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필사적인 목소리였다.
"흠. 더 빨리! 사는 곳은 어디였지? 네 직업은 뭐였지? 과학원에서 날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자기소개를 하면서 말한 이름은?"
"여기야! 난 여기 살— 아니, 잠깐. 여... 여기가 아니라... 451호! 스멜블룸 하숙집 451호였어! 직업? 그... 점원이었나? 기억이... 기억이 안 나. 너무 오래전 일이라고!"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딸깍
"형편없군. 참 안타까워. 일종의 게슈탈트 상태로 넘어가 주요 정신의 순도가 오염되었다. 더 이상 연구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홱 돌아서 가 버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치미는 분노로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자'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저자'가 화학 물질로 우리 집에 불을 질렀다. 이제야 집이 어쩌다 불탔는지 떠올랐다. '저자'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내 희망까지 이용했다.
이제 '저자'가 죗값을 받아야 했다.
남자는 네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제 두 걸음이었다. 그때 자리에서 휙 돈 남자가 내 발밑에 뭔가 든 유리병을 깨뜨렸다. 걸음을 내디디려던 나는 신발이 땅에 단단히 달라붙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아슬아슬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나는 헛되이 허공을 할퀴었다.
"생각하는 자라는 이름이 아깝군. 내가 너무 낙관적이었어. 두 번 다시 해서는 안 될 실수야."
남자는 한 걸음 길게 물러서더니 몸을 돌려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레븐 골목길. 똑똑히 기억났다. 나는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쭈그리고 앉아 재빨리 신발 끈을 풀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힘차게 뛰어올라 골목길을 내려가는 남자를 맨발로 살그머니 뒤쫓았다.
골목은 어두웠지만 내 청각은 예리했다. 첫 번째 모퉁이 끝에서 남자가 실험체이니 출처이니 하며 계속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골목은 악취가 심했다. 나는 좁은 틈과 판자로 막은 문간을 지나며 발에 밟히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첫 번째 모퉁이에 다다랐을 즈음 남자는 쭉 뻗은 다음 구간을 절반 정도 내려간 상태였다. 어두운 데다가 스모그가 끼어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몸을 굽혀 땅에 떨어져 있는 부러진 배관을 들었다. 무기로 쓸 만해 보였다. 그러나 몸을 일으킨 나는 다급해졌다.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나는 앞으로 성큼성큼 뛰어가며 문간을 전부 확인했다. 역겨운 공기에 터져 나오는 기침을 커튼으로 막아 보려고 했지만 두 입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점점 어지러워졌다. 내가 온 길을 돌아보았다. 안개가 짙었다. 너무 짙었다.
남자가 가스를 쓴 것이 분명했다! 나는 한 입을 커튼으로 감싸고 다른 입은 내 어깨에 묻은 채 최대한 숨을 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함정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왔을 때보다 모퉁이가 멀어 보였다. 반드시 돌아가야 했다. 달리기 시작한 나는 징 박힌 붉은 금속 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다.
팔다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너무 무거웠다. 내 무게가 등에 매달린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미 숨을 쉬기도 벅찬 상태였다.
난 죽을 것이다.
붕대를 두른 남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내 살인자를 올려다본 나는 마침내 기억해 냈다.
남자의 얼굴 위로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 겹쳤다. 색안경을 끼고 턱을 말끔히 면도한 남자였다. 수년 전 처음 만난 남자는 실험실에서 강의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나는 높은 자리에 오른 남자를 존경과 선망, 알 수 없는 감정(두려움!)을 담아 올려다보았다. 남자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희미한 향수 냄새가 났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날 바라보았다. 익숙한 동정의 시선이 아니라 흥미와 기대가 어린 시선이었다. 남자는 자신을 소개했다.
"신지드. 당신은 자신이 신-신지드 교수라고 했어."
두 목소리가 떨어져 나왔다. 마지막 순간에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참담할 정도로 철저히 혼자였다.
신지드는 필사적으로 뭔가를 찾으며 가지고 온 물건을 미친 듯이 뒤졌다. 치료제? 자비를 베풀려는 것일까?
신지드가 찾은 것은 녹음 장치였다. 신지드는 녹음 장치를 켠 후 쭈그리고 앉아 관찰했다.
"잘했다, 생각하는 자 4호. 이걸로... 그래... 생각하는 자 2호보다도 답을 더 많이 맞혔군! 아주 큰 도움이 됐어."
신지드의 녹음 장치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그것이 내가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kda에 기생하는 숙주?
세라핀이 당의 숙주라는거여?
kda가 숙주고 세라핀이 기생충이라는 뜻이네
캐릭 컨셉 중국인답게 확실하구먼 ^^
기생충 인증하는 제목
세라핀이 당의 숙주라는거여?
kda에 기생하는 숙주?
세라핀이 숙주란거지?
기생충 인증하는 제목
kda가 숙주고 세라핀이 기생충이라는 뜻이네
캐릭 컨셉 중국인답게 확실하구먼 ^^
세계를 숙주삼은 기생충인 중국을 암시하는거지?
제목 한번 잘 지었네
님들 세라핀이 아무리 싫어도 숙주는 신지드 단편소설 제목임...
이말 하려했는데 ㅋㅋㅋ 진짜 요즘 댓글보면 제목만 대충보고 감으로 파악해서 글쓰는 사람 너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