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시간을 거슬러
https://universe.leagueoflegends.com/ko_KR/story/out-of-time/
*펄스 건 5부작 중 4편(전체 내용은 링크 참고)
시간의 톱니바퀴
'자기랑 너무 닮아서 싫은 사람을 만나 본 적 있어? 그런 사람을 보면 자기 단점이 조오오금 더 잘 보이잖아.
하지만 에코는 그래서 싫어하는 게 아니야.
문제는 저 닭 볏 같은 머리라고.'
"다시는 보지 말자더니." 에코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랬지."
"넌 이렇게 말했지. '그동안 즐거웠지만, 앞으로 서로 안 엮이는 게 좋겠어.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라고." 녀석은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기억나."
"그리고 4초 만에 다시 왔네." 에코는 손에 쥐고 있던 큐브를 내려놓더니 팔짱을 끼며 돌아섰다. 세상에. 저걸 손에 넣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던지.
"나한텐 4초가 아니라 4백 년 같았어." 징징대는 것 같아서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널 확실히 만날 수 있는 시간대와 장소가 지금, 여기였을 뿐이야."
"매몰차게 떠난 것 치고 구차하네." 건방진 미소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사고를 쳤어?"
"별일 아니야." 녀석의 아지트에 있는 도구들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시공경관이랑 문제가 좀 생겨서..."
"늘 있는 일이잖아."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게..."
"손대지 마." 고립된 시간 영역 안의 화분을 만지려고 하자 에코가 말했다. 화분 안의 식물은 꽃에서 싹이 되었다가 다시 자라기를 반복했다. 이상 현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시간을 왜곡하고 있었다. 에코는 이것을 '시공간 붕괴'로 불렀다. 난 고개를 저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펄스 건 기술의 활용법이었다. 시공경관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야말로 천재의 솜씨였다.
나는 속이 뒤집혔다.
"새 펄스 건 코어가 필요해. 내 건 망가졌거든." 여자 시공경관에게 그랬듯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혹시 남는 거 있어?"
에코는 웃음을 터트렸다. 다만 나를 비웃는 건 아니었다. 워낙 오래 함께 지낸 탓에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기는 매한가지였다.
"알았어. 그럼 고쳐줄 수 있을까?"
에코는 가까이 오더니 내 흉갑을 살폈다. "세상에, 엉망이 됐잖아? 직격으로 에너지포를 맞기라도 한 거야?"
"...어쩌면."
에코의 입이 떡 벌어졌다. "코어부터 보호했어야지!"
"난 얼굴이 더 중요해!"
"얼굴도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는데." 녀석이 쏘아붙이며 부러진 코를 만졌다. 나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그럼 새로 만들 수 있어, 없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젓는 에코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다. "왜 안 돼? 네 수트도 처음부터 직접 만들었잖아."
"그래. 대신 그때는 경관한테 슬쩍한 코어가 있었지. 너처럼 말이야."
큰일이었다. 에코도 못 하는 게 있다니.
더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망연자실한 채로 의자에 앉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마지막 도약을 여기 오느라 써 버렸어. 고치지 못하면... 여기서 살아야 해."
"그건 안 되지." 에코가 가면과 큐브를 집으며 말했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내가 도와줄 테니 '내' 시간대에서 꺼져."
고개를 파묻은 채 그에게 물었다. "어쩌려고?"
"코어를 훔쳐야지."
"이미 시도해 봤어. 생각보다 어렵더라."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녀석이 뭔가를 만지더니 시공간 붕괴 장치를 등에 멨다. "멍청한 녀석을 찾아서 빼앗으면 돼."
에코가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고개를 들자 준비를 마친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그 난리를 겪고 피곤했을 텐데도, 건방진 미소를 띠며 날 도와주려고 하고 있었다. "가자, 이 멍청한 녀석아."
나는 웃으려다가 멈칫했다.
바로 그거야. 그 멍청한 녀석은 바로 나였어!
"넌 역시 최고야." 나는 에코를 끌어안았다.
"뭐야? 달라붙지 마!"
녀석이 몸부림쳤지만,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온 지 얼마나 됐지?"
"1분 정도? 끔찍이도 긴 시간이었지."
내 얼굴을 밀치고 있는 녀석의 손목을 잡았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으로 시간을 돌려줘."
"대체 무슨—"
"마지막 시간 도약을 쓰기 전으로 가야 해. 그렇게만 해 주면 우리는 영원히 안녕이야."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자, 녀석이 손목을 잡았다.
"머리 만지지 말랬지?"
"에코,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지난번처럼, 응?"
녀석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지난번도 마지막이라며? 게다가 시공간 붕괴는 한 사람밖에 못 써."
"나도 알아. 언젠가는... 그동안의 은혜는 꼭 갚을게."
"아까는 영원히 안녕이라더니."
나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4초 뒤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지긋지긋한 녀석." 에코는 눈을 굴리며 시공간 붕괴 기기를 작동시켰다.
"고마워, 에코. 이 빚은 꼭 갚을게."
"이걸로 네 번째야." 녀석은 내 몸을 끌어당겼다. 기기의 줄을 잡아당기자 시간이 느려지더니 곧 멈췄다. 그리고 빠르게 뒤로 감기기 시작했다.
에코, 너는 역시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