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6기 던파캐스터 냠키입니다.
던파X픽션 콜라보 이벤트에 참가하며 쓴 글을 업로드해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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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옥시텔은 이제 열두 살이 된 여자아이이다. 라나의 부모는 가족을 지하로 대피시키다가 위장자에게 죽임을 당했다.
비명 소리,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소리가 마을 전체에 맴돌았다. 그 소리는 너무도 가깝게 들려서, 귀를 막고 움츠리는 수밖에 없었다. 라나는 이 순간을 하나의 악몽으로 치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가 위장자가 된 부모에게 살해당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탓에 잊을 수가 없었다. 친구를 죽이는 부모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일렁이던 것을 똑똑히 보았다. 울음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흐느꼈다. 함께 살아남은 라나의 외할아버지 페드로의 손을 붙잡고.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비명은 멈추고, 무거운 발소리만이 끊임없이 들렸다. 바깥에서 들리는 발소리는 사람의 그것과는 달랐다. 거리를 거니는 이들은 이제 위장자 뿐이라는 의미이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페드로는 결단을 내렸다. 지하실 구석에 있는 투척용 작살을 잡았다. 옥시텔 가문은 대대로 사냥을 해왔다. 때문에 작살은 물론 숫돌도 함께 비치되어있다. 날을 갈고 있는데 라나가 다가왔다.
“할아버지. 뭐해……?"
대답 대신 아스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머리칼을 쓰다듬고는 작살을 들어올렸다. 위장자가 불사신은 아니다. 죽일 수 있는 존재들이다. 옥시텔 가(家)의 오두막은 마을 변두리에 있다. 누군가가 시선만 끌어준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 제 몸이 어떻게 되던, 페드로는 라나를 달아나게 할 생각이었다.
페드로는 작살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충분하다. 소싯적에 몬스터를 자주 사냥하지 않았던가. 그 모습에 메리다가 반했었지.
‘메리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 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두렵고 외로웠다. 이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그 뿐이다. 위장자보다도, 이 아이를 잃는 게 더 두려웠다. 라나를 불렀다. 쪼그려 앉아있던 라나가 부름을 듣고 다가왔다. 페드로는 라나를 바라보다가 있는 힘껏 안았다. 다시는 못 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상도 해낼 각오가 되어있었다.
“라나. 할애비가 먼저 밖으로 나갈 테니, 조심해서 나오거라. 집 뒤에 숲이 있지? 그리로 가.”
“할아버지도 같이 가는 거지?”
“쉬이. 목소리를 낮춰라. 그래야 괴물들이 우리를 못 찾을 게야.”
라나가 입을 다물었다. 페드로는 작살을 들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삐걱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심장이 너무도 세차게 뛰었다. 마른침을 연신 삼키며 발을 내딛었다. 작살을 쥔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위장자가 나타나면 곧바로 찌를 생각이었다.
달칵.
걸쇠를 붙잡았다. 손이 떨려 자꾸 미끄러졌다. 라나는 숨을 죽이고 할아버지가 걸쇠를 젖히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손이 미끄러져 큰 소리가 날 때마다 급히 숨을 들이켰다.
걸쇠를 여는 데에만 일 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문을 열 준비가 되었다. 페드로는 숨을 참았다. 어쩌면 문 앞에 딸의 시신이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딸이 페드로와 라나를 지하실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았으니까. 그 생각만 하면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작살을 쥔 손은 떨리지 않았다. 스스로를 지독할 정도로 붙들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려던 그때였다. 바깥에서 굉음이 들렸다. 땅이 진동했다. 그 바람에 지하실의 전등이 흔들렸다. 라나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진동이 연이어 울렸다. 쿵. 쿵.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문 밖에서부터 따스한 기운이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그 기운이 몸에 닿자 고통이 수그러들고 마음이 맑아졌다. 이들을 괴롭히던 굶주림도 점차 잦아들었다. 페드로가 문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다행일까, 문 밖에 딸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곳곳에 선명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두막 문이 열려있었는데, 그 문으로 사람들이 보였다.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마을을 종횡무진하며 위장자들을 때려죽이고 있었다. 그들의 주먹은 신성한 빛으로 감싸여 푸르게 빛났고, 신비한 문양이 그려진 토템이 우뚝 서서 사방에 힘을 퍼뜨리고 있었다. 조금 전의 굉음은 토템이 땅에 박히며 난 소리였다. 페드로는 감격하여 움직이지 못했다. 굵직한 고함이 들려왔다.
“위장자를 척결하라!”
“신께서 우리를 수호하신다!”
끔찍한 괴성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위장자였다. 하지만 살육을 벌이며 지르는 쾌감 섞인 신음과는 달랐다. 그 괴성은 죽음을 앞둔 위장자가 내지르는 공포의 비명이었다. 몸이 떨렸다. 지하실에 갇힌 이후로 흘린 적 없는 눈물이 비로소 터져 나왔다.
“성직자야……. 교단에서 보냈어! 라나야! 우린 살았어! 교회가 우리를 구하러 왔다!”
위장자의 수는 많았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성직자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들은 성안의 미카엘라가 창시한 격투술 ‘신격권(神擊拳)’을 배운 인파이터들이었다.
“위장자만을 죽여야 한다! 생존자를 해치지 않도록 해!”
“아직까지는 생존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 여기요! 이쪽을 보시오!”
페드로의 고함을 듣고 한 성직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외쳤다.
“무사하십니까! 지금 그리로 가겠습니다!”
그때였다. 페드로의 옆에 위치한 오두막에서 위장자 둘이 튀어나왔다. 흉측하게 변이된 손톱을 앞세워 성직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피가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위장자들은 그 옆의 토템까지 부숴버렸다. 아는 얼굴이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갓 수확한 사과를 나누러 왔었는데. 한때 이웃이었던 위장자들이 고개를 돌려 페드로를 바라보았다. 안광이 이글거렸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등 뒤에 손주가 있다는 사실만이 그를 버티게 했다. 위장자들이 달려들었다.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아주 지독한 악몽을.
그 순간, 건너편에서 쏘아진 푸른 섬광이 위장자를 앞질렀다. 페드로와 위장자 사이에 선 그가 주먹을 내지르자 돌풍과 함께 위장자의 몸이 찢겨져나갔다. 위장자의 검은 피도 풍압에 의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괜찮으십니까? 피가 묻지는 않으셨지요?”
성직자가 다급히 물었다. 페드로는 손을 급히 저었다. 피는커녕 살점 하나도 묻지 않았다. 위장자의 피에는 저주가 서려있기 때문에 닿기만 해도 위험할 수 있다.
“난 괜찮네. 어서 내 손주를 데려가게!”
“손주라고요?”
뒤늦게 지하실 아래에서 떨고 있는 라나를 발견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을 입구 방향으로 가세요!”
“고맙소, 정말로……. 어서 가자꾸나.”
페드로가 라나를 등에 업었다. 부서진 문 밖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위장자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때마다 라나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종종 이들을 노리고 위장자가 습격했지만 그 때마다 성직자들이 나섰다. 한 번은 전신을 변이시킨 거대한 위장자가 달려들었는데, 주먹에 심장이 파괴되어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죽었다. 마을 입구 방향에 성직자 한 명이 서 있었다. 그에게 달려갔다. 성직자가 그들을 보더니 놀라 외쳤다.
“생존자가 있었군요! 다행입니다. 어서 쉬세요.”
“아아…… 정말, 정말 다행이야…….”
페드로의 무릎이 힘을 잃고 꺾였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어지러웠다. 작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바탕 토악질을 했다. 라나를 내려주고 그대로 누웠다. 얼마만에 보는 하늘인지. 지하실에서 보낸 시간은 지옥같았다. 하지만 이제 무사하다. 성직자들이 구해주었으니까. 그러다 퍼뜩, 라나를 안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렇게 어린데, 부모마저 잃고 말았다. 모든게 제 탓 같아 페드로는 가슴을 부여잡고 흐느꼈다. 몸을 일으켰다. 뒤를 돌아 손주를 꽉 안아주었다. 아이가 힘겹게 떨고 있었다.
"할아버지……."
"그래, 이제 괜찮다. 아가…… 이제 괜찮아……."
"하, 할아버지…… 나 이상해……."
라나의 떨림이 점차 심해졌다. 눈을 보고 다독여주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떨림이 경련으로 바뀌어갔다. 페드로가 라나의 양 팔을 붙잡았다. 경기이다. 간혹 어린 아이가 놀라 경기를 일으키는 일이 있다. 그럴 만도 하지. 황급히 아이를 바닥에 눕혔다.
"이보시오! 이리 와서 애 좀 붙잡아주시오!"
그런데, 성직자의 시선이 심상치않았다. 마치 불길한 징조라도 본 양 긴장하고 있었다. 페드로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그는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르신. 그 애에게서 손 떼세요."
"경기를 일으키고 있잖나! 라나가 다치기 전에 어서 오게!"
"어르신!"
페드로가 우뚝 멈추었다. 섬뜩한 추측 하나가 떠올랐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추측은 떠나가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성직자는 위장자를 알아볼 수 있다. 확인해야한다. 제발. 아니기를 절실히 바라며 라나의 몸을 반 바퀴 돌렸다. 등을 바라보았다.
"……!"
하늘이 무너졌다. 정말이다. 페드로의 하늘은 무너져내렸다. 이럴 리가 없다. 현실이 아닐 것이다. 저 지옥에서 드디어 빠져나왔는데. 이럴 리 없어. 아니야. 아니어야 하는데. 그런데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페드로가 쓰러졌다. 눈물이 바닥으로 자꾸만 떨어졌다. 라나의 등과 목덜미에 뿌려진 새까만 피는 아이를 잠식해 가는 듯 했다. 페드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성직자는 고개를 돌렸다. 목에서 갈라져가는 신음이 나오다가, 이내 오열로 바뀌었다. 변이가 시작된 손녀를 붙잡은 노인의 울부짖음은 무너진 하늘로 퍼져나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에 링크 있어요!
정성에는 항상 추천이로세
정말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추 천
이힣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