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 동안 대략 34시간 동안 해서 파판 13 엔딩을 봤습니다.
일자형 진행, 마모루 판타지, 펄쓰의 팔씨가 코쿤의 르씨를 퍼지 등 파판13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직접 해본 것은 게임 발매 후 10년 만이었습니다.
일단 스토리
사람들이 마모루 판타지라길래 '마모루'(지키다)라는 단어가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는 않더라구요. 물론 후반부에 코쿤으로 다시 돌아가서는 마모루라는 단어가 종종 나왔고 그때마다 '마모루 판타지'라는 드립이 떠오르기는 했습니다만...
극단적인 일자형 진행은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아예 하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45일 동안 34시간이라는, 하루에 한 시간도 안 하면서 하고 세이브 포인트 두어개만 하고 끄는 등 깔짝깔짝해서 덜 지쳤던 점도 있던 것 같습니다.
10장까지의 일자형 여정이 물론 길다고 느껴지긴 했고 중간에 삿즈랑 바닐라가 유원지에서 노는 것은 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정말 아쉬웠습니다.
펄스가 있고 그랑펄스가 있고 신도 있고 팔씨도 있고 르씨도 있고
세계관의 설정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고 얘네가 왜 여정을 떠나는지, 누가 스토리상의 적인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코쿤을 그렇게 지키자고 하는데 왜 코쿤을 지켜야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르씨들을 박해하기도 하고 그냥 놔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캐릭터들은 6명이 골고루 조명받는 것 같으면서도 후반부에는 비중 편차가 좀 생기더군요. 후반부에는 바닐라와 팡 위주로 가는 것 같고 이외의 사람들은 조금 비중이 뜨는 것 같았습니다. 조연들은 더욱 그랬구요. 제가 11장부터는 팡-라이트닝-바닐라로만 싸워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게임 중에 계속 추가되는 클립이나 설정을 읽으면 좀 나았겠지만, 별로 읽고 싶은 마음이 안 들더군요. 게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엔딩을 보고 나서도 그렇게 이야기가 이해되지는 않았는데, 엔딩 장면을 봤을 때 조금 감동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멋진 엔딩이었어요.
다음은 전투
저는 지금껏 RPG는 스토리가 제일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파판13을 하고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전투 역시 RPG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스토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이 게임을 끝까지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전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ATB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행동을 고민할 틈을 안 주고 계속해서 3~4명의 캐릭터를 정신없이 조종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ATB 전투 방식이 아닌 파판 X를 재밌게 했었죠.
하지만 저는 파판 12도 꽤 재밌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민할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전투 전에 미리 고민해서 갬빗 설정하면 됐으니까.
파판13도 파판12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리 옵티마를 설정하고 전투 중에 옵티마만 바꿔주면 되니까 정신없지 않았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초중반에 계속 두 명이서 전투할 때는 조금 답답하고 빨리 세 명 데리고 전투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세 명으로 전투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재밌어지더군요.
파판12에서는 갬빗설정만 잘하면 조작을 1도 안하고 보스전도 깰 수 있어서 좀 싱거운 면이 있었지만, 파판13에서는 계속 옵티마를 바꿔줘야해서 전투가 좀 더 다이나믹하고 재밌었습니다.
조금 아쉬웠거나 개선되길 바랐던 점은
옵티마 체인지 모션을 없앨 수 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3명이 한 번에 변하면 그나마 나은데 한 명이 차례대로 바뀌면 뭔가 딜 손해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리고 옵티마 설정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었으면... 6개는 적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단지 상상인데 파판X 처럼 전투 중에 멤버를 수시로 바꿀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CP는 어차피 공평하게 들어와서 성장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쓰는 캐릭터만 써서 조금 패턴이 단조로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멤버를 실시간으로 바꿀 수 있었으면 난이도가 좀 더 쉬워졌겠지만요.
전 이 게임을 이지 모드로 즐겼습니다. 스토리만 후딱 보자는 생각으로요. 이지 모드 덕인지 10장까지는 꽤 수월하게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렵다는 보스도 한 번에 무난하게 깼구요.
그런데 후반부를 겪고 엔딩을 본 지금은 '이지 모드 아니었으면 이걸 어떻게 깼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0장까지 마주치는 적들 한 번도 안 피하고 다 싸우고 오기도 했고 이지모드여서 무난히 클리어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1장 그랑펄스부터는 얘기가 달라지더군요. 킹 베히모스가 툭툭 치니 너무 쉽게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세진 몹들에 좌절해서 며칠동안 게임을 쉬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똥개 노가다를 알게 되어서 신나게 노가다를 했습니다.
똥개 노가다를 총합 1시간 좀 넘게 했을까요. 크리스탈리움을 4렙까지 쭉 올리고 후반부를 쭉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13장에서는 몹들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체력이 높은 것도 높고 세크리파이스인가 병사들이 시해로 변한 것은 데스도 막 날리더군요. 대부분 미스 뜨고 피해만 입히지만 한 번은 리더에게 적중해서 그대로 게임 오버 당한 적도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하면서 무기 개조 한 번도 안하고 스모크도 안쓰고 소환수도 안쓰고 쭉 했는데 최종 보스 직전에 처음으로 무기 개조를 했네요.
결국 최종 보스까지 다다랐습니다.
스모크 쓰고 가니 첫 번째 형태는 2분도 안 되어서 클리어했습니다. 설마 이게 끝인가 했는데
문제의 두 번째 형태...
무정한 심판으로 체력을 왕창 깎는 것은 물론 상태이상을 무수히 날려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구요.
2번을 실패하고 상태이상 내성 액세서리 갈아끼고 다시 했습니다.
그리고 상태이상 막 걸릴 때 소환수 소환해서 때리고...(게임 34시간 하면서 소환수는 이때 처음 소환했네요...)
직전에 얻은 엘릭서까지 쓰면서 다시 소환수 소환하고 겨우 이겼습니다.
이게 끝이겠지 했고, 제발 끝나기를 바랐는데 한 번 더 있더군요...다행히 마지막 형태는 쉬워서 금방 깼습니다.
이지 모드로 하긴 했습니다만 난이도는 적당했던 것 같습니다. 무작정 쉽지도 않고 이상하게 어렵지도 않았던 정도...
아슬아슬한 난이도의 경계를 잘 맞춘 것 같았습니다. 힐이 좀만 늦어도 죽을 것 같이 맞고 왜이리 적의 피가 안 깎이지 싶다가도 계속 때리다보면 잡히는...
당장 13-2나 라이트닝 리턴즈를 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드네요. 먼 훗날 13 트릴로지가 한꺼번에 리마스터나 리메이크 됐을 때면 모를까...
전체적인 총평은
스토리텔링이 좋지 않은 것을 전투가 멱살 잡고 끌고 갔다...
인것 같습니다.
점수는 7 / 10 입니다.
또 뵙네요 ㅎ 방갑습니다 ㅎ 저랑 생각이 비슷한 것 같네요.(특히 ~씨로 시작하는 설정부...첨엔 먼소린지도 몰랐..) 욕먹는 부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부각됐다랄까요. 그런 측면이 많았던것 같아요. 13-2랑 리턴즈 넘어오면 지적받았던 점을 고쳐 나간 흔적이 있는데요. 머랄까 이후작은 13-1 때문에 손해보고 시작한다는 느낌이더군요. (개선점이 있는건 좋은데 동료가 죄다 제명된다거나 난데없이 플레이시간 제한 건다거나..새로운 문제도 있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12탄부터 디렉터가 죄다 사임하는 바람에 시리즈의 연속성이랄까요. 발전이랄까요... 그런거 없이 그냥 넘버링 하나로 끝나버리는 것 같아 아쉽네요. (저는 3탄 > 5탄, 4탄 > 6탄식으로 발전하는 방식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제가 아는 장인급 디렉터는 노무라 한사람 남은것 같습니다. 이 분이 만든건 호불호야 있지만 고집있게 확실하게 만드니까요. 이런 사람이 파판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데...(12탄 디렉터 개인적으로 레전드급이라 생각하는데 정말 아깝습니다...)
여기서 또 뵙게 되네요. 반갑습니다 ㅎㅎ 파판13이 2006년 E3 에서 첫 공개되고 2009년 말에 발매가 되었으니 개발 기간은 3~4년 정도로 그렇게 촉박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첫 HD 작품이라 그런지 첫 멀티 플랫폼 발매라서 그런지 아니면 정식 넘버링을 처음 디렉팅 맡은 디렉터 때문인지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는 게임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만큼 완성해줬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판 12와 파판 15를 한 이후로 더 이상 버튼 누르는 턴제 RPG는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파판 13은 정말 전투를 재밌게 했습니다. 게이머들의 여러 의견이나 나O위키 같은 데를 찾아보면 파판 13 트릴로지를 "(오리지널 파판14와 함께) 파판 시리즈 최대 흑역사"라고 정의하던데 파판13 트릴로지가 애초에 한 게임에 묶어 나왔거나 13-2,13-3이 아예 안 나왔으면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뭐 개발기간/자금/인력, 게임 분량/용량 등의 문제를 차치하구요. 당장은 13-2나 13-3을 할 생각이 들진 않네요. 13-1로도 완결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팔씨니 르씨니 하는 설정을 좀 더 알기 위해서 후속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이게 스토리텔링의 실패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파판 시리즈는 그 명성에 맞게 게이머들에게 항상 논쟁와 얘기거리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당장 여기 루리웹만 보더라도요. 여기 게이머들 중 많은 의견이 '파판은 12탄부터 계속 나사가 빠져 있다' 라는 것이더군요. 물론 과거의 파판5,6,7,10 편과 같이 극찬에 극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최근 파판들 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12편과 15편도 정말 재밌게 했어요. 13편도 나름 만족했구요) 그래서 곧 나오는 파판7 리메이크가 파판 시리즈 뿐만 아니라 스퀘어 에닉스에게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키타세와 노무라, 노지마 등 원작을 만든 제작진이 총출동하다시피 달려들었으니까요. 파판 7R 가 완성도 높게 나와서 이후에 나올 파판 16,17 등도 그 기세를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파판 13 클리어하고 파판 7R의 데모를 플레이한 탓인지 파판 뽕이 차올라서 파판 7R 나오기 전에 파판4를 해볼까 파판 6을 해볼까 파판7 오리지널을 해서 스토리를 미리 알아볼까 하다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시하자마자 사서 즐기는 파판은 파판7R이 처음일 것이기에 기대가 많이 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자세하게 쓰셨네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