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Rival)
보름달이 뜬 깊은 밤이었고, 깊은 숲이었다.
달은 마치 태양처럼 환하게, 하지만 차갑게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숲은 보통 어두운 장소다. 특히 밤에는 자기 모습도 보기 힘들어질 정도로 캄캄해진다. 하지만 오늘 같이 달빛이 환한 날, 빛이 나뭇잎 사이로 하얗게 내려앉을 때, 숲은 그저 어두운 장소가 아니게 된다. 환상의 무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화려한 무대가 이곳에 세워진다.
주인공의 등장.
두 포켓몬은 마치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어둠 속에서부터 스르르 나타났다. 아직 서로를 눈치채지는 못한 듯한 여유롭고 평화로운 움직임이다.
주인공들이 가까워진다. 낮이었다면 금방 알아차릴 거리였겠지만 나뭇잎이 교묘히 만들어낸 그림자가 두 포켓몬의 존재를 감춰주었다. 아직 서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곧 빛이 움직인다. 바람은 조명 감독이 되어, 나뭇잎을 움직여 주인공들에게 빛을 비춘다.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바람의 잘못인지 나뭇잎의 잘못인지 주인공들의 얼굴은 비추지 못했다. 그저 몸의 일부분만을 비출 뿐. 어쩌면 그건 감독의 연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차가운 조명이 비추는 부분은 하필이면 그들의 흉터. 오랜 다툼 끝에 그들 몸에, 아니, 영혼에 영원히 새겨진 잔혹한 흉터. 그것은 그들의 일생이자 역사다. 흉터는 얼굴보다 명확하게 그들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제 두 포켓몬은 서로를 알아차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주인공들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 무언가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작고 경직된 움직임을. 하지만 그건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변화. 조명 감독은 아직 그 부분을 비출 생각이 없다.
바람은 움직일 생각이 없다.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리려는 듯. 그 동안 두 포켓몬 모두 준비를 끝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명에 비추이는 부분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 달빛에 두 흉터가 차갑게 식어간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두 포켓몬은 그 때를 알고 있다.
조명 감독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자 날카로운 빛이 어둠 속에서 요동을 쳤다. 그 사이 언뜻언뜻 비추는 것은 분노, 증오, 원한, 광기로 점철되어 일그러진 얼굴들. 하지만 약간의 희열도 느껴진다. 두 포켓몬은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듯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언제라고 할 수 없는 그 순간, 달빛이 칼날처럼 춤추는 무대에, 둘은 격돌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둘이 맞부딪혔다. 그들은 그 때를 알고 있었다.
그것이 라이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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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소설 태그 있었네요
여기다 한 번 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