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본 그녀에 모습을 나는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압도당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다만,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우는 내 모습에 당황하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이후에 나는 그녀와 함께 하기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녀와 함께 걸었고
그녀와 함께 대화를 하고
그녀와 같이 식사를 하고
그녀와 같이 웃었다.
그녀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예전에 소년과 함께 지내던 시간보다도 더욱 값진 시간이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항상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가까워졌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였고 그녀는 나를 받아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대하였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나누었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그 날은 꽤나 어두운 날이었다.
어둠침침한 하늘을 날아다니는 니로우의 소리만 들릴뿐 꽤나 조용한 날이었다.
그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키우미집 창고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비록 지독한 냄새가 나기는 하여지만 잠을 자기에는 충분했다.
내게 들리던 소리는 저 광활한 하늘에서 내려오는 얇고 가느다란 빗줄기 소리뿐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잠을 자던 도중에 나는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 소리는 날카로웠으며 고통이 담겨 있었다.
나는 누군가 싸우기라도 하는 가 싶어 밖으로 슬금슬금 나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직은 어두워 그리 주변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더 비명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키우미집에서 싸움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곳은 굉장히 평화로운 공간이다.
싸움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는 대부분 먹이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면 서로 정식으로 대결을 신청하는 경우도 가끔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번 건은 평소와는 달라보였다.
소리로 짐작하건데 분명 누군가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평범한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였다.
나는 잠시 엘레이드로 변하고서 소리의 발원지로 다가갔다.
앞으로 달려갈수록 서서히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본 모습은 끔찍했다.
한 소년이 한 포켓몬을 학대하고 있던 것이다.
빗소리가 강해 소년의 말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화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다시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점점 다가갈수록 그들의 모습은 선명해졌으며 그들의 정체를 본 나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 소년은 나를 이곳에 버린 그 소년이었으며 폭행을 당하던 이는 내가 사랑하는 가디안이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는 다시 그들을 보았다.
소년은 주위에 자신의 포켓몬들을 꺼내 놓고 있었으며 그들은 자신의 주인과 함께 가디안을 공격하고있었다.
가디안은 염동력을 쓰면서 막아보려 하였지만 빠르게 오는 기술들은 막기에는 너무나 약했다.
그녀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가 나있었으며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오랜 시간 애린 비에 의해 축축하게 젖어진 초원에 일방적으로 그녀는 맞았으며 거의 죽으 것 같은몰골을 하고 있었다.
비명을 지를 힘조차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가디안을 향해 소년은 계속 화를 내고 있었다.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들어보니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굉장히 화난 듯한 말투로 말을 하더니 그녀를 자신의 오른발로 걷어찼다.
발은 정확히 그녀의 얼굴에 적중했고 이윽고 그녀의 머리에는 상처가 나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숨소리를 거칠어졌으며 온몸의 상처에 의해 고통스러워하였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너무나도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나를 이곳에 버린 후 다시 만났을 때의 그 표정이었다.
그의 웃음을 보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라는 짐승이 울부짖는 것을 느꼈다.
나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까먹고 있었다.
우리 포켓몬은 저 사악한 인간의 노예일 뿐이라는 사실.
우린 그들의 노예이자 도구일 뿐이란 사실말이다.
나는 왜 까먹고 있던 것일까?
필요가 없는 포켓몬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왜 까먹고 있던거지?
우리들, 포켓몬들은 어째서 이런 삶을 살아야하는 거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저 포켓몬이기에?
나는 마음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를 참아낼 수가 없었다.
분노는 조금씩 나를 갉아 먹었고 이내 나는 분노에 의해 집어 삼켜졌다.
분노에 휩싸인 내 마음속에는 오직 증오만이 남았다.
끊임없이 느껴지는 증오에 의해 결국 나는 미쳐버렸다.
나는 한동안 기억을 잃었다.
당시 분노에 집어삼켜진 나는 미쳐 날뛰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의 분노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저 본래의 나만 남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았다.
푸른 초원은 타버려 재가 되어버렸으며
그 노인이 살던 집은 무너져내려 폐허가 되어버렸다.
주위에서 화목하게 웃고 떠들던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오직 고요함만이 나를 반겨주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던 나는
“이게...무슨 일이지..”
라며 주변을 둘러보며 앞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를 바라보며 걷다가 나는 무언가가 내 발에 걸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밑의 물체가 무엇인지 보기 위해 내려 보았다.
내 작고 검은 두 눈에 들어온 것은 시체였다.
가디언의 시체,
내가 사랑했던 그 가디언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참담했다.
한쪽 팔은 잘려나가 있었고
온 몸은 자기 자신의 피로 덮혀져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피의 이불을 덮은 것만 같았다.
그녀의 배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으며
얼굴에는 죽기 전의 느꼈던 공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표정만 보더라도 그때 그녀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난 다시 엘레이드로 변하고서 나의 두 팔로 가디안을 들어올렸다.
내 두 손을 통해 가디안의 감촉과 함께 피의 느낌이 한꺼번에 전해졌다.
그녀의 몸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녀의 기운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죽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며
나는 그저 한 마리에 불과한 포켓몬일뿐이다.
난 신이 아니었기에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다시 웃게 만들 수도 없으며
그녀가 다시 즐거움을 느끼게 할 수도 없다.
그녀가 이제 다시 웃을 일은 없으니까.
그녀는 이제 영원히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을 지으며 살것이니깐.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내가 어떤 장난을 쳐도 그녀는 내 곁에 없을 것이니깐.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억누르고 키우미집 근처의 숲을 향하였다.
숲에서 괜찮은 땅을 찾고 양손을 몰드류의 팔로 변화시킨 후 땅을 파냈다.
어느 정도 파낸 후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내려놓았다.
이제 그녀를 볼 일이 없을리라 생각하니 너무나도 슬펐다.
흙을 던져 그녀를 덮는 순간에도 나는 그녀가 갑자기 깨어나 나를 보고 웃어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의 모습 그대로 누워있었다.
무덤을 전부 제작한 후 적당히 큰 돌을 그녀의 무덤 앞에 두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절각참의 손처럼 변화시킨 후 그녀의 얼굴을 그려놓았다.
나는 글을 몰랐기에 그녀를 상징하는 것을 그려 넣었다.
그림을 완성한 후 나는 몇 발짝 뒤로 물러서 그녀의 무덤을 바라보며 과거를 생각해보았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말이다.
행복했던 그 시간들
행복한 줄 모르던 그때의 시간들
행복한 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살던 그 시간들
비록 2주 밖에 안 되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나에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 값진 시간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그때만큼 행복감을 느낄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돌아갈 일이 없을 거라 머릿속으로 알고 있지만
정말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돌아가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러고 다시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녀가 죽은 것에 대한 슬픔과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욕망은 그녀를 죽게 만든 나 자신에 대한혐오감으로 변질되었다.
그러고 그 혐오감은 시간이 흘러 그 사건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소년에 대한 원망으로 변질되었고이윽고 그 감정은 인류 전체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한번에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진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 혼란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리자몽으로 변화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찬 바람을 느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후 나는 눈을 뜨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그저 내 본능에 맡기고 이 넓은 세상의 어딘가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