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석. 얘 저번 분기 우승한 걔네?”
경기장 근처의 숙박시설. 성균은 외삼촌 김윤열과 같이 16강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에 설치된 PC는 물론이고 윤열이 개인적으로 가져온 태블릿과 PDA, 둘의 스마트폰과 성균의 D-패드까지. 가진 모든 기기를 펼쳐놓은 채 둘은 경기 준비에 진심으로 몰두하고 있었다.
삼촌의 말대로 성균의 16강 상대인 현석은 직전에 개최된 LT유스 서머의 우승자. 얕볼 상대가 아니다.
이번 대회가 본선 첫 진출이라는 선수에게 준우승자 무진이 탈락했다곤 하나 우승자는 엄연히 우승자다. 방심해서 득 볼 부분이 없다.
“밴은?”
“후완에 하려고요. 걘 솔직히 붙기 싫으니까요.”
성균의 말에 윤열이 작게 고갤 끄덕였다. 전 팀 동료들과 같은 의견이다. 성균이 가진 덱들과 상성이 너무 나쁜 덱인 만큼 밴 우선순위는 무조건 1번.
“저쪽이 후완 밴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네.”
저번 분기 현석의 밴픽 목록을 보면 [후완다리즈]는 셀프 밴에 딱 한 번 올랐던 덱이다. 오히려 4강은 후완다리즈가 아니었다면 이기지 못했을 치열한 초접전이 펼쳐졌고, 이러저러해도 여전히 강력한 덱이다. 현석이라면 충분히 이 덱을 쓰고 싶을 것이다.
후완다리즈에 밴 카드를 쓴다면 현석의 자가 밴은…
“자가 밴은 너라면 어떻게 할래?”
“셀프 밴… 메가리스로 할 거 같아요. 중학생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안 먹힐 덱이에요.”
만일 밴 카드가 겹쳐 더블 밴이 성사되도 메가리스라면 걱정할 것 없다. 성균의 기세가 만족스러운지 굳이 더 묻지 않는 윤열.
상대방의 밴픽이 끝났다면 이번에는 이쪽의 밴픽 차례다.
“염왕은 쓸 수 없겠지. 역시.”
대회 예선 거의 직전에 염왕의 추가 지원이 발매됐다. 발매 직후부터 새 카드들은 엄청난 관심을 모았고 시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지만 성균의 외삼촌 윤열에겐 그런 건 상관없었다. 재력이 있고 인맥이 있고 조카를 위해 카드를 구해줄 열정까지 있었다. 성균이 그 카드들을 입수했을 거라는 이야기는 이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말이 소문이지 확인할 필요도 없을 진실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저쪽의 밴 카드는 염왕에 갈 것이다. 가지 않았다면 오히려 절호의 기회다.
“셀프 밴은 생각해둔 거 있니?”
“지금 생각 중인 건…”
성균과 윤열은 거의 동시에 시선을 같은 덱, [소환수-제너레이드]로 보냈다. 이 덱도 절대로 약한 덱이 아니지만 염왕만큼 오버파워는 아닐 뿐더러 예선에서 너무 자주 보여서 전략과 전술도 많이 노출돼버렸다.
나오면 껄끄러운 덱을 쳐내고, 나와도 전혀 상관없을 덱을 남긴다면 대비할 덱은 이제 하나. 현석의 마지막 덱은…
“[갤럭시]…”
성균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윤열이 하나씩 덱 이름에 취소선을 그었다. 어느새 태블릿에 써진 덱 이름이 하나씩 지워지고 마지막 하나만 남았다. 현석의 [갤럭시]는 결승전 승리의 주역이던 덱.
그때는 경기 결과만 듣고 본방송은 시청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결승 경기를 본 후로 성균은 그 덱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후완다리즈는 플레잉이 굉장히 특이한 덱이라면 저 덱은 대응도 어렵지 않고 메타 카드가 적지도 않으나 특정 상황에서의 고점만 하늘을 뚫을 듯 높은 덱.
저번 준우승자 무진 역시 서서히 자신 방향으로 게임을 가져오고 있었지만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듯 필살의 일격으로 승부가 갈렸다.
16강. 8강, 4강까지 내내 밴 당한 이유를 보여주듯이.
그리고 지금 예상대로라면 갤럭시의 상대는 오늘을 위해 윤열과 성균이 같이 빌딩한 이 덱.
윤열은 조카를 믿는다.
그러나 이 대회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마지막 한 장에, 처음 한 장에 승부가 결판나는 일은 그 역시 세기 힘들 정도로 자주 있었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최대로 준비했으니 남은 일은…
“성균아.”
윤열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덱 리스트를 읽고선 조카의 이름을 불렀다. 염왕의 발매는 호재였으나 덱의 핵심이 되는 카드 하나가 금지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이 덱과의 상성도 좋은 테마도 여러 이유가 겹쳐 덱에서 빠졌다.
성균은 윤열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윤열보다 먼저 성균이 입을 열었다.
“삼촌이랑 만든 덱이잖아요. 걱정 마세요 삼촌. 저는 저도 믿고 삼촌도 믿고 이 덱도 믿어요. 이 덱이면 저 누구랑 붙어도 이길 자신 있어요.”
그 말에 윤열은 예전의 일이 문득 기억났다. 성균이가 중학생 때였지.
…
“삼촌, 저도 프로 듀얼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백제’ 김윤열은 정말 롱런한 선수 중 하나였다.
‘적제’ 나의주가 가장 먼저 은퇴했고, 다음 해에 ‘황제’ 박정욱마저 은퇴한 뒤에도 현역의 자리에서 팀을 지탱했다.
둘의 은퇴 후에도 몇 년을 더 달린 끝에 은퇴한 그는 자신이 뛰어온 길을 돌아봤다. 그러고나니 보람만큼 후회도 많았다.
“성균아.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거야.”
넓지도 않은 숙소 건물에 열 명 넘는 사람이 바글바글 몰려서 어떻게 산 건지 모르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 시간과 잠깐의 휴식 시간을 빼면 끊임없이 듀얼하고 다음 상대의 덱과 팀을 분석한다.
그마저도 중요한 경기를 앞뒀다면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연습과 분석을 늘린다. 여기에 윤열은 아주 오랫동안 팀의 에이스고, 주장이며, 구심점이었다. 성인이 되기도 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례적인 케이스라 그 기간이 더 길었다.
연봉 순으로 세면 리그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이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현역 시절 그 연봉을 원하는 대로 펑펑 써본 적이 거의 없었다.
팬이라면 거대한 경기장 하나를 통째로 메울 만큼 많다.
하지만 정작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자신의 듀얼로 누군가의 추억을 만들어준 횟수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하지만 학창시절의 추억 같은 건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다.
누구보다도 사람들의 열정을 뜨겁게 불태우는 일이건만 정작 자신은 차갑게 식은 수도승처럼 살아왔다.
게다가 직업병으로 건강도 정말 나빠졌다. 귀도 예전 같지 않고, 자고 일어나면 왼팔 관절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괴롭다. 밝게 빛나는 솔리드 비전의 영향 탓일까? 이제는 빽빽하게 들어찬 텍스트는 D-게이저의 도움 없이는 시선을 가져가기 겁난다.
일상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일상이 불편한 건 부정할 수 없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몸 곳곳에 아픈 곳을 달고 산다.
정욱이 형도 후유증과 직업병을 너무 많이 달고 다녀 방송을 피할 정도다. 게다가 성균은 현역으로 뛴 기간도 평균 이상이었다.
"아니에요. 저 자신 있어요!"
"공부나 제대로 하고 말해 얌마."
"열심히 하고 있다구요."
"그래? 그러면 삼촌이랑 내기하자."
이런 곳에 윤열은 조카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그러나 그 연료로 인간의 생명을 불태우고 있는 장소가 듀얼리스트의 세계다.
그래서 윤열은 일부러 무리한 조건을 걸었다. 조카 성균이가 듀얼리스트의 세계에 올 일이 없게.
"네가 만일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교 한자릿수 안에 들면, 내가 팍팍 밀어줄게."
"정말요? 약속했어요!!"
윤열이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성균의 각오와 열정이었다.
삼촌이 조카를 포기시키려 무리하게 요구한 그 약속을 성균은 진짜로 믿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이를 악물고 반드시 이루리라고 각오했다.
거두절미하고, 성균은 정말로 그걸 성공해왔다.
"삼촌."
성균은 부모님보다도 윤열에게 먼저 성적표를 보여줬다. 윤열은 성적표에 기재된 숫자들을 보고 할 말이 없었다.
전교 4등에 반에서 2등. 국어는 아예 만점이었다.
인원수가 적은 깡촌 학교도 아니다. 성균의 중학교는 수도권에 자리했고 한 학년에만 반이 열 개가 넘는 커다란 학교다.
그런데 성균은 오직 듀얼리스트가 되겠다는 각오로 윤열과의 약속을 지켰다.
"정말로 듀얼 가르쳐주시는 거 맞죠?"
윤열은 성적표를 읽고는 입을 함부로 열지 못했다. 윤열은 성균의 듀얼실력까진 모른다.
하지만 각오는 봤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조카니까… 혹시 모른다.
"성균아."
"네!"
"딱 1년. 1년이다. 진짜로 듀얼리스트가 되고 싶으면 1년간은 무조건 이 삼촌 믿고 따라와."
…
그 1년간 성균은 정말 많이도 듀얼했다.
윤열이 당시를 '폐관수련'이라고 회상할 정도로 정말 듀얼, 듀얼, 그리고 듀얼을 했다.
유망주와 맞붙기도 했고 2군, 3군 선수의 연습 상대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정말 이 악물고, 무조건 이루고 만다는 각오로 삼촌의 뒤를 따라왔고 1년이 지날 무렵에는 듀얼 아카데미에 합격, 듀얼리스트의 첫 발도 가볍게 내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까지 왔다.
성균은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적당한 수준까지 풀고 있었다. 오히려 객석에서 조카를 올려다보는 윤열이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옆에서 그걸 보는 사람들이 김윤열 본인이 직접 저 자리에 서도 저렇게까지 긴장하진 않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16강에서는 여기가 단언코 가장 기대받는 매치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번 분기 우승자 오현석 선수, 그리고 그 상대는 권성균 선수!."
-"오현석 선수가 저번 시즌 우승자로써 갖는 네임밸류 또한 있겠습니다만은 권성균 선수 역시 김윤열의 수제자, 김윤열의 조카라는 이름값이 갖는 후광에다 마침 올해 초 남부 교대표 우승자라는, 절대 밀리지 않는 이름값 들고 여기까지 왔거든요."
-"말씀드리는 순간, 밴픽~~~~ 시작합니다!"
LT유스 특유의 밴픽을 알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모니터에 양 선수의 덱 리스트가 공개됐다.
현석의 덱 리스트는 [후완다리즈], [메가리스]에 [갤럭시]까지. 전부 윤열의 예상 안이었다.
성균의 덱은 [제너레이드], [카오스], [염왕].양 선수의 얼굴을 카메라가 비춘 후 현석의 밴픽이 먼저 공개됐다.
-"먼저 오현석 선수, [염왕]에 밴 카드 사용합니다."
-"네, 염왕. 정말 말 많은 뜨거운 감자죠.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밴입니다."
-"이렇게 되면 셀프 밴은… [메가리스]. 그렇죠."
순식간에 성균의<염왕>이 어두워졌고 현석의 <메가리스>는 붉은 빛으로 변했다. 거의 그 직후 성균 쪽의 패널도 색이 변했다.
-"거기에 권성균 선수… 네, [후완다리즈] 밴합니다. 셀프 밴 카드는 [제너레이드]."
-"이렇게 되면 양 선수의 덱은 [갤럭시]와 [카오스]로 확정!"
성균의 밴픽 역시 고민 없이 아주 짧고 빠르게 끝났다. 무대 중앙으로 우자트의 눈이 그려진 거대한 동전이 올라왔다.
익숙하지만 언제나 고양감과 긴장감을 부르는 바람과 함께 회전하던 동전은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가… 성균과 눈을 마주쳤다.
그대로 자리에 멈춰섰다.
""듀얼!!""
“속공 마법 [긴급 텔레포트]발동!”
성균은 콧잔등을 검지로 슥 문지르고 패에서 카드 한 장을 뽑았다. 남해는 성균이 낼 카드가 뭘지 입가에 손을 가져가고 집중했다.
염왕에서 쓸 카드는 아니고 소환제너에서 쓸 카드도 아니다. [유령토끼]가 목적이라면 이렇게 쓰진 않을 것이다.
“덱에서 레벨 3 사이킥족 몬스터, [NO-PUNK 세아민]을 특수 소환한다!”
[NO-PUNK 세아민/Lv3/600/600]
타탁-! 맑은 타악기 소리와 함께 기모노를 입은 중성적인 외모의 배우가 필드로 올라왔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조명이 배우를 이리저리 비췄다.
배우가 자신을 따라 올라온 샤미센을 튕기며 짧은 곡조를 연주했다. 잠깐의 연주가 끝나고 덱에서 카드가 한 장 뽑혀나왔다.
“세아민의 효과로 패에 넣은 [NO-PUNK 폭시 튠]를 버리고 효과 발동! 패 한 장을 묘지로 보내고 덱에서 레벨 5 [NO-PUNK 디어 노트]를 특수 소환한다!"
-권성균/LP 8000 → 7400
[NO-PUNK 디어 노트/Lv5/2100/1800]
두둥. 탁-!! 세아민의 옆에 마치 쌍둥이처럼 닮은 외모의 배우가 한 명 더 올라왔다. 두 배우는 손을 맞잡고 성균을 한 번 돌아본 다음 꼭 헬리콥터의 회전익처럼 제자리를 빙빙 돌다가 팡-!!하는 소리와 함께 빛으로 변했다.
"레벨 5 디어 노트를 레벨 3 폭시 튠에 튜닝!
흑도 백도 근본은 하나, 그 경계를 넘나드는 혼돈의 지배자! [혼돈마룡 카오스 룰러]를 싱크로 소환!!"
[혼돈마룡 카오스 룰러/Lv8/3000/2500]
계속해서 보지 못한 카드만 나오던 때에 처음으로 남해도 아는 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춘계 교대표 결정전 남부 리그에서 성균을 결승까지 견인해준 성균의 에이스 카드였다.
…동시에 남해의 하리파이버처럼 올해가 마지막 불꽃이 될 몬스터기도 하고.
"카오스 룰러의 몬스터 효과 발동, 덱 맨 위 카드 다섯 장을 확인한다! 이벤트 호라이즌!!"
성균이 주먹 쥔 손을 펼치며 팔을 넓게 휘두르자 허공에 카드 다섯 장이 반투명한 모습으로 주르륵 생겨났다. 성균이 카드 한 장을 가리키자 반투명하던 [쉘 오브 카오스]가 선명하게 변했고 나머지 네 장은 스르륵 데이터로 변해 사라졌다.
이렇게 카오스 룰러를 꺼내 필요한 카드를 패에 잡고 남은 카드는 묘지로 보내 자원으로 쓴다. 아직 일반 소환도 쓰지 않았다. 이제부터 성균이 어떻게 해나갈지 남해는 어느 때보다도 집중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혼돈각-[쉘 오브 카오스]-을 패에 넣고 남은 네 장은 묘지로 보낸 다음 디어 노트의 효과로 묘지의 세아민을 소생시킨다. 이제 패에서 마법 카드 [조율] 발동! 덱에서 [어썰트 싱크론]을 패에 넣고 덱 맨 위의 카드 한 장을 묘지로 보낸다!"
성균이 패에 넣은 [어썰트 싱크론]은 자체적으로 패에서 소환되는 효과를 가진 몬스터. 성균이 카드를 패에 넣자마자 그 새를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멀리에서 비행기를 닮은 몬스터가 성균의 필드로 날아왔다.
-권성균/LP 7400 → 6700
"남해 너 지금 엄청 집중해서 보는구나."
"당연하지."
남해가 듀얼에 집중하는 일은 자주 있었다. 승부욕으로 활활 불타오를 땐 폭군 같은 눈을 하고 누구 하나 베어야 멈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곤 했다. 지금 남해는 듀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낙랑은 그래도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성균처럼 남해 역시 상대에게 라이벌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남해를 탈락시킨 장본인 역시 성균이다.
"이제 비튜너 몬스터를 더 소환하고 전개를 잇지 않을까?"
"하긴. 아직 일반 소환권도 안 썼으니."
다른 관객의 이야기를 듣던 윤열은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려던 입꼬리를 진정시켰다.
아니요.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제 조카가 잠시 손을 멈춘 건 다음의 플레잉이 막혀서가 아니라 달려가기 위해 잠시 웅크린 것 뿐입니다.
그 생각대로라는 것처럼 성균의 주변에 어느새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레벨 8 혼돈마룡에 레벨 2 어썰트 싱크론을 튜닝! 결전의 시간이 됐다. 백합꽃 흩날리며 여기[플뢰르 드 바로네스]등장!!"
[플뢰르 드 바로네스/Lv10/3000/2400]
콰앙-!!! 성균의 주변에 가득 흩날리던 꽃잎을 한순간에 걷어내며 성균의 필드에 중무장한 기사가 추락하듯 착지했다.
기사를 태운 군마는 전투를 준비하듯 몸을 흔들고 달려갈 태세를 갖췄다.
-"플뢰르 드 바로네스!!"
-"권성균 선수 저 카드까지 가지고 있었나요! 선공 잡았으니 기세 타고 그대로 숨도 못쉬게 찍어누르기 시작힙니다!!"
-"바로네스가 까다로운 이유가…"
낙랑은 그 몬스터를 보고 남해를 한 번 확인했다. 레벨 10 싱크로 몬스터에 간단한 소환 조건과 강력한 성능까지 남해의 덱과 상성이 정말 좋은 몬스터였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지.
바로네스의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너무 폭증하다보니 가격이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분명 남해도 몇 번이나 눈독들인 카드였지만 남해는 끝까지 손에 넣지 못했다.
-"그토록 찾아도 영입하지 못한 인재가 정작 맞수의 수중에는 있다니. 허."
생각해보니 저 카드가 정말 발매됐을 때는 남해도 잠시 눈을 믿지 못했다.
설마하던[퍼미션도 하고 기동효과로 제거도 되면서 양호한 능력치에 소환하기도 쉬우면서 상황에 맞춰 교환도 되는 몬스터가 있다면 좋겠다]같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 실제로 이뤄질 줄이야.
남해는 여러가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남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성균이 D-패드로 손을 가져갔다.
"묘지의 [코어 오브 카오스]를 제외해 [쉘 오브 카오스]를 특수 소환!"
성균의 필드에 검은 균열이 일어났다. 그 안에서 황동색 금속으로 이뤄진 기계장치가 허공을 부유하며 성균의 필드로 이동했다.
비행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들고 옮기는 듯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쉘 오브 카오스/Lv4/1600/0]
"이때 혼돈각의 효과로 제외된 [코어 오브 카오스]를 패에 추가. 이제 레벨 4 혼돈각을 레벨 3 세아민에 튜닝!
레벨 7 [F.A 라이트닝마스터]를 싱크로 소환!"
성균의 필드에 포탈을 열고 은빛 레이싱카가 안에서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레이싱카를 뒤따라 포탈 안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색채의 구체도 따라왔다. 이윽고 레이싱카의 운전사가 옆자리를 향해 무언가 던졌다. 금사과였다.
"…사과?"
"싱크로 소환에 성공한 턴, 묘지의 링고블룸을 제외하고 필드에 [백금 토큰]을 특수 소환할 수 있다! 여기에 묘지의 종말의 기사를 제외하고 [코어 오브 카오스]를 특수 소환하고 혼돈핵-코어 오브 카오스-의 효과로 제외된 혼돈각을 패에 다시 더한다!"
사과는 바닥에 닿자마자 확 팽창하며 거의 어린 아이만한 크기까지 커졌고 그 옆에 거의 비슷한 크기의 광채도 생겨났다.
"레벨 2 백금 토큰에 레벨 2 혼돈핵을 튜닝! 레벨 4 [아크 디클레어러]를 싱크로 소환!"
[아크 디클레어러/Lv4/600/1000]
”윽.“
성균의 필드를 본 금선이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찌푸렸다.
마법/함정을 한 번 무효로 할 수 있는 라이트닝마스터, 효과의 발동을 한 번 무효로 할 수 있는 바로네스, 무효 한 번에 지속 효과로 패/덱의 카드가 묘지로 가면 제외해버리는 아크 디클레어러.
아무리 적어도 세 번째 카드까진 가야 뭔가가 가능한 답답한 포진이다. 보는 자신이 다 역겨웠다.
"카드를 한 장 세트하고 차례를 마친다."
-권성균/LP 6700/패 1장
드디어 현석의 차례. 현석은 슥 성균의 필드를 둘러보고 카드를 뽑았다.
그러고도 현석은 표정관리를 하는 건지 뭔가 생각이 있는 건지 한참을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진짜 이 경기, 진짜 아직 끝난 거 아니에요. 아직 8강 진출자도 딱 반 가려진 참입니다."
-"게다가, 아직은 어느 쪽이 확실히 좋다고 단정짓기도 이른 때라서. 곧 추측할 만한 흐름은 나올 겁니다. 그래도 후공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시작되어야 어느 쪽이 유리하다, 결정이 지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해도 성균의 포진이 탄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해설자의 말 또한 맞다고 생각했다. 패트랩이 없다는 이야기는 가진 카드 전부 공격권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현석은 고민을 마치고 패 세 장을 동시에 뽑아들었다. 그리고 하나씩 차례로 D-패드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패에서 [블랙홀]발동."
"라이트닝마스터의 효과 발동! 레벨을 2 내리고 그 발동을 무효로 한다!"
[F.A. 라이트닝마스터/Lv 7 5/A 2100 → 1500]
"패에서 [블랙홀]발동."
"바로네스의 효과 발동! 그 카드도 무효다!"
현석이 연달아 낸 블랙홀 두 장이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났다. 아직도 꺼낼 카드가 더 있는지, 현석은 손에서 카드 하나를 더 꺼냈다. D-패드에 떠오른 정보를 확인한 성균이 순간 멈칫했다.
"이번에는 [포톤 델타 윙]을 일반 소환. 그리고 델타 윙의 몬스터 효과 발동."
"아크 디클레어러의 효과 발동, 자신을 릴리스해서 그 발동을 무효로 한다!"
아크 디클레어러가 빛으로 변해 사라졌고, 포톤 델타 윙은 산산조각났다.
현석을 담당하는 매니지먼트과 김석재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패를 셋 쓰고 일반 소환권까지 넘겨줬지만 어떻게든 퍼미션은 전부 넘겼다. 아직 패가 3장 남았다. 지금부터가 본 페이즈다. 현석은 여기까지도 예상 안이라는 것처럼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카드를 하나 더 냈다.
"패에서[갤럭시 솔저]의 몬스터 효과 발동. [포톤 점퍼]를 버리고 특수 소환."
-"아니 저렇게 구축해놓은 포진인데, 지금 퍼미션 모조리 쓸 때까지 일분도 채 안걸렸어요!"
-"퍼미션이 3개 있으니까 그냥 카드 세 장 주고, 내가 할 거 하면 그만이다! 진짜 오현석 선수 다운 발상입니다!"
"허, 참. 어이가 없네."
윤열은 그 플레잉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비록 어이없어 보일만한 방법이지만 아무튼 현석은 성균의 퍼미션을 모조리 걷어냈다.
여전히 조금도 변하지 않는 표정으로 현석은 묵묵히 플레잉을 이어갔다.
"두 몬스터의 효과를 발동. 점퍼의 효과로 패에 넣은 [갤럭시 익스페디션]을 발동해 [갤럭시아이즈 포톤 드래곤]을 덱에서 특수 소환.
갤럭시아이즈가 있으므로 솔저의 효과로 패에 넣은 [갤럭시아이즈 애프터글로우 드래곤]또한 특수 소환."
-"오현석 선수, 그대로 정석 플레이 들어갑니다!"
-"이대로라면 8레벨 몬스터가 둘, 옵니다 옵니다 옵니다!!"
현석의 필드가 눈부시게 밝아졌다. 빛은 이내 별들로 변했고 별들은 은하를 구축했다. 그리고 은하는 용의 눈이 되었다.
[갤럭시아이즈 포톤 드래곤/Lv8/3000/2500]
[갤럭시아이즈 애프터글로우 드래곤/Lv8/3000/2500]
별빛을 발하며 거대한 드래곤 두 마리가 현석의 필드에 소환됐다. 갤럭시 익스페디션으로 등장한 [갤럭시 포톤 드래곤],
그리고 자신의 효과로 패에서 소환된 [갤럭시아이즈 애프터글로우 드래곤].
현석의 듀얼을 연구하며 성균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본 조합이다. 꺼냈다면 반드시 경기의 향방을 거기서 결정짓는 현석의 필살기.
-"패에 블랙홀만 둘씩 잡고도 지금 필요한 카드가 다 모았어요! 패트랩 없던 건 오현석 선수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진 수단 다 써버렸는데 지금 여기서 묘수 없습니까?!"
-"아직 패랑 세트 카드 있어요. 아직은 모릅니다. 아직은 몰라요."
"레벨 8 포톤 드래곤과 애프터 글로우 드래곤, 두 장의 몬스터로 오버레이 네트워크를 구축! 승리를 쫓아 진화한 궁극의 은하룡! [No.62 갤럭시아이즈 프라임 포톤 드래곤]을 엑시즈 소환!!"
[No.62 갤럭시아이즈 프라임 포톤 드래곤/Rk8/4000/3000]
원래 세상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봤고, 이 세계에서 드라마로도 봤던 모습이다. 그리고 그걸 이런 커다란 무대에서 펼쳐지는 듀얼로 보는 건 또 다르다는 건 그동안 자주 느꼈다.
방금 전 두 드래곤이 내는 울음소리는 멀리서 울리는 신비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지금 등장한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울부짖음은 심장을 울리는 강자의 포효였다. 무감정해보이던 현석의 눈빛도 어느새 저 드래곤처럼 승리에 대한 갈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D-패드의 [Battle Phase]패널까지도 불이 들어왔다.
"배틀. 갤럭시아이즈 프라임 포톤 드래곤으로 플뢰르 드 바로네스를 공격. 이 순간,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몬스터 효과가 발동!!"
어느새 무감정하던 현석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마치 거대한 항성을 공전하던 위성처럼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주위를 멤돌던 엑시즈 소재 하나가 궤도를 틀어 프라임 포톤의 몸 속으로 흡수됐다.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갑옷이 전개되면서 그 아래 포톤 드래곤의 몸이 빛났다.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공격력은 4000. 여기에 공격선언 시 자신의 효과로 공격력이 1600 더 오를테고…
-"거기에 갤럭시아이즈 애프터글로우 드래곤의 몬스터 효과까지!!"
-"공격력 11200!! 지금까지 퍼미션 깔고 이득 봤던 거 이렇게 되면 아무 소용 없어요 공격 한 방으로 게임이 끝나버리는데!!"
-No.62 갤럭시아이즈 프라임 포톤 드래곤/A 4000 → 11200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등 뒤로 희끄무레하게 빛나는 포톤 드래곤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동작에 맞춰 그림자처럼 그 움직임을 따라하던 실루엣은 이내, 프라임 포톤 드래곤과 함께 은하수처럼 빛나는 섬광 두줄기를 쏘아냈다.
"잔광의 맥시멈 스트림!!"
"세트 카드 발동!!"
라이트닝마스터의 차체가 일순간 빛났다. 그리고 새카만 번개로 변해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몸통을 들이받았다. 그와 함께 프라임 포톤 드래곤이 마치 시동 꺼진 기계처럼 온 몸의 빛이 암전됐다.
바로네스를 향해 코앞까지 들이닥쳤던 두 섬광 역시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바로네스의 갑옷에 긁힌 자국조차 내지 못했다.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불안감 가득한 눈으로 현석이 프라임 포톤 드래곤을 올려다봤다.
"설마…"
"라이트닝마스터를 릴리스해 [카오스 버스트]를 발동!!"
쿠웅, 쿠궁…성균의 외침과 함께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거체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균열 아래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남해는 경기의 향방을 직감했고 윤열은 그제야 안도감에 가득찬 미소를 지었다.
"저것 참, 사람 놀래키긴…"
-"이거는, 이거는 진짜 오현석 선수 권성균 선수한테 완전히 당한 겁니다!!!"
-"네, 그, 지금 권성균 선수 덱 구축은 사실상 극전개 이후 퍼미션 왕창 깔고! 벽을 못 무너트리면 이쪽에서 밀어서 그거로 압사시킨다!! 그런 식으로 된 구축입니다. 불순물은 최대한 정제해서 첫 턴에 5장 자원 꽉꽉 쥐고 그거로 필드 상대 완봉해서 턴 받겠다는, 받아야 되는 구축이에요. 이런 덱 구축에서 저런 카드, 절대 안 씁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권성균 선수는 썼어요!! 안 쓸 카드니까, 예상할 수 없는 카드니까! 이건 무조건 먹힌다고 확신하고 덱에 넣은 거에요!!"
-"이러면 전선 무너집니다. 프라임 포톤이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돌아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지!"
"패에서 속공 마법, [하이퍼 갤럭시]발동! 프라임 포톤 드래곤과 바로네스를 릴리스하고 두 번째 포톤 드래곤을 특수 소환한다!!""
콰앙-!! 더는 프라임 포톤 드래곤의 몸이 버티지 못하고 대폭발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폭발 속에서 갑주를 벗어던진 갤럭시아이즈 포톤 드래곤이 날아올라 현석의 필드에 착지했다. 프라임 포톤 뒤에 있던 갤럭시아이즈의 실루엣도 구체적인 형체를 갖춰 그 옆에 자리잡았다. 두 갤럭시아이즈를 본 성균은 시선을 갤럭시 솔저에게 옮기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갤럭시아이즈 둘의 공격력 합계는 6000. 지금 자신의 라이프는 6700. 갤럭시 솔저까지 가담한다면 게임은 거기서 끝이지만… 자신의 효과로 소환된 갤럭시 솔저는 수비 표시. 공세에는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두 장의 포톤 드래곤으로 상대를 직접 공격한다. 포톤 트윈 스트림!"
성균을 향해 빛나는 섬광 두 줄기가 쇄도했다. 성균은 여유를 유지한 채 한 팔을 들어 눈부시게 밝은 빛을 가렸다.
-권성균/LP 6700 → 700
현석의 D-패드에서 [Battle Phase]패널이 암전됐다. 현석의 눈빛도 방금 전처럼 타오르지 않았다.
이제는 이 궁색한 필드로 어떻게 다음 차례를 버틸 지를 생각할 차례다.
-"이건 오현석 선수가 방심한 게 아니에요. 카오스 싱크로가 쓰는 함정이래봐야 카오스 판타즘 정도 예상하는게 사실 합리적인데 권성균 선수 필드랑 제외 존 상태론 카오스 판타즘 써서 괜찮은 몬스터 부를 여건 아녔거든요."
-"네, 게다가 아디클 깔아두고 가장 마지막에 쓴 거, 무조건 점퍼랑 솔저 염두에 둔 겁니다. 아크 디클레어러가 아무리 공격력이 낮다고 해도 배틀 페이즈는 한 번. 만일 디클레어러부터 치우고 전개 시작한다고 하면 권성균 선수가 무조건 땡큐죠."
-"오현석 선수 갤럭시 솔저가 지금 너무 야속할 거 같은데요. 수비 표시로 소환되는 몬스터만 아니었어도 이번 공세에 같이 참여시켜서 승부 냈을텐데 진짜 마지막 한발짝 앞에서 권성균 선수가 버텨버렸는데 참…"
현석이 D-패드의 패널을 몇 번 누르자 갤럭시아이즈가 다시 별빛으로 변해 나선을 그리며 소용돌이쳤다. 갤럭시아이즈를 마치 갑주처럼 두른 것 같은 모습의 전사가 나타났다. 전사는 방패를 들고 현석의 앞으로 나아갔다.
"두 장의 갤럭시아이즈로 오버레이 네트워크를 구축, [No.90 갤럭시아이즈 포톤 로드]를 수비 표시로 엑시즈 소환한다."
[No.90 갤럭시아이즈 포톤 로드/Rk8/2500/3000]
포톤 로드의 방패 끝이 타악, 하고 듀얼 필드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End Phase] 패널이 한 번 점멸했다. 현석의 차례가 완전히 끝났다.
마침 객석을 비춘 카메라가 윤열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윤열은 무대 위의 성균보다도 더 십년감수한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참이었다. 성균은 힘차게 덱에서 카드를 뽑았다.
-오현석/LP 8000/패 없음
"드로우!"
"포톤 로드의 몬스터 효과 발동, 덱에서 [포톤] 카드인 [크리포톤]을 서치."
-"아! 크리포톤!"
-"이러면 한 차례는 넘길 수 있습니다. 만일, 만일 두 번 버티면 프라임 포톤 공격력 8000으로 필드에 복귀하고, 그러고 나면 정말 아무 몬스터나 툭 쳐도 라이프 700 깎는 건 일도 아닙니다. 지금 포톤 로드 소재 구성도 좋아서 효과 파괴 내성도 있고 1퍼미션 있으니까 최대한 버텨보고, 정 안되겠다 싶어지면 크리포톤 던져봐야 합니다."
-“근데 전제조건이 하나가 있어요. 크리포톤이 막히지 않아야 해요.”
"상관 안해. 묘지의 폭시 튠을 게임에서 제외하고 패의 혼돈각을 특수 소환한다. 혼돈각의 효과로 제외된 혼돈핵을 특수 소환한다."
현석의 체인은 아직 걸리지 않았다. 성균은 언제 오는지 한 번 보자는 각오로 계속 D-패드를 터치했다.
혼돈각이 조각조각났고 이내 혼돈각의 파편들이 혼돈핵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레벨 4 혼돈각에, 레벨 2 혼돈핵을 튜닝! 혼돈의 사자, 레벨 6 [카오스 비스트-혼돈의 마수-]를 싱크로 소환! 카오스 비스트의 효과로 게임에서 제외된 혼돈핵을 패에 넣는다!"
[카오스 비스트-혼돈의 마수-/Lv6/2000/1800]
새카만 야수의 몸에 너무나도 대비되는 새하얀 사자의 머리가 돋은 괴물이 흰 소용돌이 안에서 나타났다.
"포톤 로드의 몬스터 효과 발동. 카오스 비스트의 효과를 무효로 하고 파괴."
포톤 로드가 쥔 검으로 엑시즈 소재 하나가 흡수됐다. 이윽고 필드에 포탈을 열던 카오스 비스트를 향해 포톤 로드가 방패를 뒤로 당기며 앞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 그리고 가볍게 별빛처럼 빛나는 검을 휘둘렀다. 동작과 너무 괴리되는 강렬한 검기가 카오스 비스트를 덮쳐 산산조각 내버렸다.
"의도가 뭘까?"
"아마 어떻게든 어드만 안 주겠다는 거 같아."
낙랑의 물음에 남해가 대신 대답했다. 지금의 포톤 로드는 효과 파괴 내성이 있고 수비력도 3000에 달한다.
대부분의 레벨 8 싱크로, 그것도 광/암으로 풀을 잔뜩 좁힌 상태라면 뚫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묘지의 카오스 룰러의 공격력도 3000에 달하지만, 그럼에도 3000. 수비 표시의 포톤 로드를 격파할 순 없다.
최대한 어드밴티지만 주지 않으면서 지금 포진을 되는 데까지 유지하고 한 번, 그리고 패의 크리포톤으로 한 번 더 버티면 프라임 포톤이 복귀한다.
"크리포톤으로 한 턴은 확실히 넘길테니까 한 차례만 더 버티면 어떻게 뭐, 프라임 포톤이 돌아올 거고. 그때까지 최대한 버텨보겠다는 거지."
그 말을 들은 낙랑은 다시 포톤 로드를 올려다봤다. 무슨 생각인지는 이해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은 거 같네."
낙랑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처럼, 윤열은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을 지었다.
"묘지의 [카오스 테리토리]를 제외하고 라이트닝마스터를 대상으로 2번 효과를 발동한다."
첫 차례에 조율의 효과로 묘지로 갔던 카드다. 어드밴티지를 수복할 수단 같은 건 이 덱에는 얼마든지 들어있다.
현석이 D-패드를 연달아 터치했다.
"체인, [크리포톤]의 몬스터 효과 발동. 라이프 2000을 지불해 이 차례 내가 받는 데미지를 전부 0으로 만든다!"
-오현석/LP 8000 → 6000
현석의 직감이 경고하고 있다. 저 카드는 무조건 위험한 카드일 거라고. 현석의 등 뒤에서 소환된 크리포톤이 잽싸게 앞으로 날아갔다.
곧 크리포톤은 보호막을 쳐 현석을 보호했다.
콰직-!! 그 순간 바닥에서 순식간에 녹색 손이 솟아났다. 그 손이 크리포톤을 낚아채는 모습이 현석에게는 꼭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 거대한 손이 크리포톤을 꽉 쥐자, 주먹 쥔 손가락 사이로 푸른 불꽃이 폭음과 함께 번쩍였고 손은 그대로 땅 속으로 사라졌다.
"패에서 [무덤의 지명자]발동! [크리포톤]을 제외한다!"
-"오현석 선수 대위기! 크리포톤까지 막혔습니다!!"
-"지금 권성균 선수 무덤의 지명자 턴 시작할 때 탑드로로 뽑은 카드에요. 진짜 이건 알았어도 못 막는 흐름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턴이 이번 대회 오현석 선수의 마지막 턴이 될 확률이 높은데요."
아직 포톤 로드가 서있다. 하지만 포톤 로드는 이미 퍼미션 효과를 썼고, 높은 수비력과 효과 파괴에 대한 내성도 있지만 무적의 몬스터는 아니다. 남해는 그 시점에서 듀얼의 결과를 확신했다.
성균의 묘지에서 카드 두 장이 뽑혀나왔다. 한 장은 제외 존으로, 한 장은 엑스트라 덱으로 돌아갔고 두 장의 카드가 자리를 찾아가자 덱 맨 위에서도 새 카드가 뽑혀나왔다
"그러면 테리토리의 효과로 한 장을 드로우하고… 묘지의 아크디클과 혼돈마수를 제외하고 혼돈마룡의 몬스터 효과 발동! 필드로 복귀해라, 카오스 룰러!!"
성균의 필드에 검은 빛줄기와 하얀 빛줄기가 나타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이윽고 그 안에서 카오스 룰러가 부드럽고 날렵한 움직임으로 날아올랐다. 카오스 룰러를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성균은 방금 드로우한 카드까지 D-패드에 냈다.
"이제 [시노비네크로]를 일반 소환한 다음 레벨 8 혼돈마룡을 레벨 2 시노비네크로에 튜닝! 레벨 10, 빛과 어둠 모두를 품은 거신,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카오스의 날개! [카오스 앙헬 -혼돈의 쌍익-]을 싱크로 소환!!"
[카오스 앙헬-혼돈의 쌍익-/Lv10/3500/2800]
앞서 나온 어느 몬스터보다도 거대한 흑백의 천사가 성균의 필드로 내려왔다. 거의 그리온간드에 비교될 엄청난 크기. 카오스 룰러가 저 덱의 에이스라면 저 몬스터가 틀림없이 저 덱의 히든카드라고 남해는 확신했다.
"카오스 앙헬이 소환에 성공하면, 필드의 카드 한 장을 대상으로 제외할 수 있어. 포톤 로드를 게임에서 제외한다! 디멘션 앱신드!!"
카오스 앙헬이 양 손을 휘두르자 포톤 로드의 머리 위와 발 밑에 선이 생겼다. 그리곤 마치 그곳만 잘라낸 것처럼 공간이 일그러졌다. 포톤 로드의 모습이 이상하게 비틀리다가 이내 사라졌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현석을 향해 카오스 앙헬이 오른손을 뻗었다.
"카오스 앙헬로 상대를 직접 공격. 포톤 스피어 블래스트!!"
콰치이이잉-!! 새카만, 하지만 그 겉을 찬란한 순백의 빛이 껍질처럼 둘러진 에너지 폭풍이 현석을 덮쳤다. 현석은 너무 눈부신 빛에 그만 눈을 감고 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아직 라이프는 남아있다. 성균 또한 남은 카드가 없으니 이제 돌아오는 턴 뽑을 카드에 운명을 걸어보자. 빛이 걷히자 현석은 재빨리 팔을 내리고 눈을 떴다.
찌이이이잉-!! 그런 현석의 가슴팍에 새빨간 광선이 닿았다. 가슴팍에 생긴 붉은 점에 현석이 그 궤적이 날아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리고 카오스 룰러가 상대를 직접 공격. 볼프 레이에 스타라이트!! "
-"카오스 룰러가 여기서!!"
-"방금 싱크로 소재로 쓰인 카오스 룰러는 원래 2번 효과의 디메리트로 게임에서 제외됩니다. 네, 그런데! 그런데 권성균 선수 묘지에 있는 [어썰트 싱크론]의 2번 효과!!"
-"필드의 드래곤족 싱크로 몬스터가 릴리스, 혹은 제외된다면 묘지의 자신을 게임에서 제외해, 그 몬스터를 필드로 복귀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필드로 돌아온 거지."
윤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석의 가슴팍에 닿은 아주 가늘은 붉은 선을 따라, 새빨간 핏빛 레이저가 현석에게 작렬했다.
-오현석/LP 6000 …0
빠아아아아앙-!!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다. 성균은 이를 악물고 터져나오려는 환호성을 참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겼다. 이겼다. 진짜로 이겼다. 저번 분기 우승자에게 진짜로 이겼다. 그 사이 현석이 성균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먼저 한 손을 내밀었다.
"수고 많았습니다. 좋은 듀얼 감사합니다."
졌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자신의 전력을 쏟아부었고, 성균도 전력으로 임한 것이 보였다. 후회할 시간이 있다면 진 이유를 분석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방법을 찾자.
패자인 현석의 얼굴은 오히려 후련하고 시원한 표정이었다. 성균은 그 악수를 받아줬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또 보진 말죠! 너무 강해서 또 만나기 두려우니까!"
"감사합니다."
악수가 끝나고 링을 내려가는 두 선수. 그리고 둘의 듀얼을 지켜본 남해는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갔다.
밴픽부터 시작해서 듀얼 로그까지… 둘 다 정말 강했고, 어느 쪽이라도 이길만한 선수였다.
저 실력이라면 8강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 자신도 8강 상대를 격파한다면 4강에서 다시 한 번 성균과 만나겠지.
"벌써 4강 생각해?"
"응? 응…"
"8강부터 뚫는 게 우선이지!"
낙랑의 말에 남해는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8강 상대부터 쓰러트리고 4강을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에게는 단 한 번이라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필살기'가 있으니까.
"그럼 남은 16강 승부들이…"
낙랑은 남은 대진을 살펴보다가 슬쩍 남해의 눈치를 살폈다.
남은 대진들 중 가장 마지막에 펼쳐질 8번째 16강 대진. 거기서 맞설 두 선수들 중 한 명이 미아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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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이번 로그는 시작 부분을 좀 많이 애먹었습니다. 어떻게 파워 상한선이나 캐릭터 이미지에 맞는 덱을 찾아보다가 이거다!!! 하고 카오스 싱크로에 꽂혀서 바로 골랐는데 덱이 굴러가는 기반인 비스테드랑 카오스 룰러에서 막히더라구요. 비스테드는 성능도 좀 선 넘는 애들이 이미지마저 '서자' 이미지라 성균이랑 안 어울리는데다 카오스 룰러는 금지 카드… 그렇다고 둘 다 떼니까 와 이게 종이뭉치야 덱이야?
“근데 남해도 하리파 넣었는데, 성균이는 왜 카룰이 안됨?”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냥 카룰 쓰는 걸로 했습니다. 이것이 자체금제… 굉장하군…
그리고 로그도… 쓰면서 좀 많이 막혔습니다…
분명 갤럭시도 세긴 진짜 센 덱인데, 뭔 파워카드마다 죄다 디메리트 하나씩 달고 있어서 이거 쓰면 뭘 못 잇고 저거 쓰면 이거를 못 하고 하다보니 막힐 때는 안되서 너무 막히덥니다. 근데 또 반대로 못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생각도 못한 돌파카드가 주렁주렁 달려있어서 또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다음화 미아 로그가 16강의 마지막이 되겠네요. 16강 끝나면 대진표도 만들어야겠고... 으아, 지친다.
그정도 광기 없이 혼란스러운 듀얼판에서 우승자 딱지를 가질 수 없다... 앞으로 남은 남해의 8강 로그는 이것만큼, 아니! 이것보다도 훈훈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카오스라서 카오스 버스트를 넣는 광기ㄷㄷㄷㄷㄷ 나매 듀얼도 이만큼 훈훈했으면 좋겠군용
그정도 광기 없이 혼란스러운 듀얼판에서 우승자 딱지를 가질 수 없다... 앞으로 남은 남해의 8강 로그는 이것만큼, 아니! 이것보다도 훈훈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적제, 황제 등의 단어를 보니 그 오방 장군인가 하는 것이 생각나네요. 실제로 거기서 따오신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김윤열... 이름을 보니 우리나라 민속놀이인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윤열 선수가 생각나는데... 혹시 김윤열 이름이 그 분 이름에서 따온 것이 맞나요?? 남해는 과연 언제쯤 얼굴 예쁘고 성격 착한 여자친구를 만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이럴 때 림이의 여복을 남해한테 조금 나누어 주고 싶은데...ㅠㅠ
사실 그... 초한지나 상검을 염두에 두고 지었던 별명인데... 여러 사정으로 뭔가 썩 어울리진 않게 됐네요. 그리고 그 이윤열 맞습니다. 성균도 팀 후배인 김성균 선수에게서 따왔고요. 지금 보면 둘 다 좀 더 성의있고 멋진 이름을 써야했나 싶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해에게도 부디 예쁘고 착한 여자친구가 생기기를 기원합니다ㅠㅠ
프로씬 묘사 좋네요 그러고보면 AI가 우승컵에 이어 강사 자리까지 석권한 추상전략게임 분야를 빼면 장르불문 게임은 몇 달 단위로 판이 바뀌는데 프로게이머 강사는 어떻게 하는 걸까 싶고 그렇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듣고나니 궁금해지는군요. 글 쓰다보니 저도 애니 묘사 보면서 듀얼 아카데미라던가 유파라던가에 대해 비슷한 생각 많이 들었었고요. 제 글에서의 이건 듀얼적 허용으로 넘어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