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하다보니 이집트 역사도 궁금해져 조금씩 보는 중입니다.
시와 바예크... 바예크의 고향인 시와는
기원전 6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아문 신전이 있었고
고대 이집트는 물론 그리스에까지 그 명성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https://namu.wiki/w/%EC%95%84%EB%AC%B8
시와 오아시스는 고대부터 이집트 서쪽의 리비아 지방과 통하는 중요거점 중 하나로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기원전 525년~522년 재위) 가 이집트를 점령하며 시와를 원정하기도 했지만 실패하고
그의 후계자인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1~486년)가 이집트 점령지에 좀 더 타협적인 정책을 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리우스의 통치는 성공적이었지만 페르시아가 그리스와의 마라톤전쟁(기원전 490년)에서 패배하면서
쇠퇴기를 맞이합니다. 이집트 반란 세력은 그리스에 곡물을 팔고 군사원정을 댓가로 받으며
나일강 하류 삼각주 서부지역에서 반란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간 패권 다툼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404)이 벌어집니다.
ps) 펠로폰네소스 전쟁중인 이 때가 오리진 후속작 오디세이의 시대입니다.
시와의 유명한 아문 신전(초반에 바예크가 끌려간 신전)의 아문 신은 테베(현재의 룩소르)의 지방신이었지만
점차 이집트 전역에서 인기를 끌며 훗날 파라오의 수호신이 되었고 이 신은 그리스 제우스 신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이곳은 알렉산드로스가 방문한 후부터 ‘알렉산드로스 신탁의 신전’이라고 불립니다.
기원전 332년 그리스를 통일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알렉산더)은 페르시아를 정벌하면서 페르시아의 곡창 지대인
이집트를 정복합니다. 짧은 이집트 체류기간 그는 알렉산드리아 건설을 구상, 지시하고
이집트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시와 오아시스로 가서 아문신의 신탁을 받습니다.
아문은 당시 그리스에서 제우스와 동일시 되었고 자신을 제우스의 아들로 믿던 알렉산더왕은
아문 신전에서 그것을 확인받고 싶어 했던 듯한데.. 신탁의 내용을 묻는 부하들에게 미소만 지었다고 합니다.
이후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전역을 넘어 인도까지 쳐들어갔다 원정을 그만두고 돌아오는 길에
페르시아 바빌론 근교에서 숨을 거두며 시와 오아시스에 매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시신을 모심으로써 정치적 후계자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했던 부하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 점령 사령관)가 장례 행렬을 자신이 지배중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돌렸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몇 년 전에 이집트 고고학자가 시와 오아시스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시신을 발견했다했으나, 신뢰성에 의심을 받아 주목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더의 이집트 점령후 사실상 그리스인 혈통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피지배층인 이집트인과
동떨어진 인식(이집트어를 할 줄 왕이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 7세 하나.. )과 내부권력다툼, 반란으로 점점 쇠퇴하다
신흥세력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며 리비아 지방과 지중해, 서부 유럽을 제패하고 이집트도 로마의 영향력 아래 들어갑니다.
이집트 부조와 벽화에 프톨레마이오스 왕들과 로마 제국 황제들이 파라오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그들의 공적을 쓴 석비들은 이집트 상형문자와 사제문자, 그리스어 세가지 언어로
기록되는데 그중 유명한 것이 상형문자 해독에 시금석이 된 로제타(알렉산드리아 오른쪽 지방) 석비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기 그리스 로마의 헬레니즘 문명과의 접촉으로 그리스식 복장과 교육이 도입되고 밀 재배,
수차 개발로 관개 지역 발달, 낙타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무역이 본격화 되었다고 합니다.
새 경작지 여러 곳에 그리스인 공동체가 번창하고 새로운 관개 방식이 도입된 파이윰 지역은 2모작이 가능해지고
서서히 이집트에도 화폐 경제가 도입됩니다. 그래서 게임내 백인인 로마인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시간은 흘러흘러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마지막 파라오인 그의 누나 클레오파트라 7세의 시대가 오고
동생과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클레오파트라와 그녀를 돕는 아야, 아들의 복수를 쫓다 뭣도 모르고 클레오파트라를
돕게 되는 바예크가 등장합니다.
그시기 로마에서는 카이사르(시저)와의 권력투쟁에서 쫓겨난 폼페이우스가 이집트로 피난 오지만 카이사르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그의 옛부하 셉티미우스에게 암살당하게 됩니다.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로 온 카이사르는 정적이었지만 로마 최고의 공동 집정관이었던 폼페이우스를 죽인 책임을 묻게 되고
이를 기회로 여긴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자기편으로 하기위해,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감시를 피해서 융단에 말려 카이사르 앞에 잠입해 들어갑니다.
이후는 여러분이 아는대로...
세계사 보면 참 재미있는게 많습니다. 이때가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 성립시기이고 중국은 한나라 때입니다.
요즘 오디세이 엔딩보고 오리진 다시한번 해보려고 배경지식 쌓는 중인데 글 잘 봤습니다!
세계사 보면 참 재미있는게 많습니다. 이때가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 성립시기이고 중국은 한나라 때입니다.
오 신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