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에 등장한 PDA라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80년대부터 존재했던 '전자수첩'을 조금 더 발전시킨 물건으로, 전자수첩의 기본적인 기능인 '일정관리', '메모' 이외에도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추가해서 다양한 기능을 휴대하면서 쓸 수 있게 하는 목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애플의 메시지패드(일명 '뉴튼')을 시작으로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했고, 이 PDA 플랫폼은 결국 선구자였던 애플 뉴튼 플랫폼이 망하고, '윈도우 모바일'과 '팜OS'가 양분되게 됩니다.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조해 윈도우를 주머니 속에 넣는 컨셉으로 만들어졌던 윈도우모바일은 상대적으로 무겁고 배터리 유지 시간도 짧아서 한계가 있었던 반면에 비록 화면 디자인이나 성능은 떨어졌지만 PDA의 목적에 충실하고 가볍고 저렴했던 팜OS가 99~2000년경에는 시장을 장악하게 됩니다.
US로보틱스가 설계하고 3COM에서 만든 팜파일럿 시리즈, 핸드스프링의 바이저 시리즈, 팜파일럿의 OEM이었지만 IBM에서 나와서 대박을 친 워크패드 C3 등, 수많은 제품들이 나와서 400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팔리면서 북미 지역에서는 돌풍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바다건너 일본에서는 당시 전자수첩의 최강자는 샤프였고, 이러한 수첩형 모바일 디바이스는 샤프의 반독점 상태나 다름없는 시장이었습니다.
2인자인 카시오도 샤프의 아성을 넘지는 못하고 있었죠. 샤프는 당시 뉴튼OS의 개량판을 사용하고 있었고, NEC, 도시바, 카시오 등은 이미 윈도우CE 기반의 PDA들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수첩형 PDA는 샤프가, 팜탑형 PDA는 NEC와 카시오가, 윈도우CE 기반의 오거나이저는 도시바가 시장을 이미 다 먹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니의 선택은 팜OS였고, 2000년대 초반의 잘나가던 시절의 소니였던지라 팜OS를 마개조해서 해상도를 2배로 뻥튀기하고, 스펙도 뻥튀기해서 기존 팜에서는 안 되던 멀티미디어가 지원되는 물건을 만들어버립니다.(물론 이건 N700C 부터의 이야기지만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클리에(CLIE)라는 물건이었고, N700C 발매 이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어서 한국에도 많은 매니아층이 생겨납니다.
한국의 매니아들은 이내 모여서 커뮤니티를 만들게 되었으니, 그것이 아직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대형 커뮤니티 '클리앙'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무튼 가지고 있는 실기들만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왼쪽부터 NX70, T650, TG50, SJ33, TH55, 그리고 주변기기들
클리에 본체보다도 주변기기가 더 구하기 힘듭니다. 특히 최고의 구하기 가장 힘든 물건이 하얀 기억자 모양으로 생긴 무선랜카드입니다.
아래부터는 보유중인 기기들 하나씩 간단히 소개해보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오늘 아침에 찍은건데, 아래부터는 사진 찍은 시기가 제각각이라서 배경도 사진 크기도 다 엉망진창이니 이해해주십시요.
S300
클리에의 첫 모델로, 당시 바이오 노트북을 구매하면 옵션으로 함께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단독 판매도 하긴 했는데, 너무 비싸서(98000엔) 단독으로 구매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는 아직 흑백 액정에 해상도 160x160으로 팜과 크게 다를게 없었습니다.
다만 메모리스틱을 사용할 수 있고, 동시기의 팜3에 비해서 디자인도 좋고 작고 가벼웠다는 것이 강점입니다.
이후 S500이라는 후속모델이 나와서 컬러 액정으로 바뀌긴 했는데, 그때까지도 특별한 개성은 없었습니다.
N700C
팜OS3.5를 마개조해서 해상도를 320x320으로 올리고, ATRAC 포맷의 음악 재생이 되는 물건입니다.
이 물건이 나오면서 클리에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일본 이외의 해외 판매도 N700C의 마이너 체인지 모델인 N750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N700C는 ATRAC만 재생되고, N750부터 MP3가 지원됩니다.
리모콘과 함께 주는 귀걸이형 이어폰이 독특했는데, 안타깝게도 이어폰은 분실했습니다.
이 모델은 제가 실제로 4년 정도 사용했던 PDA이기도 합니다.
T650
T600의 마이너 체인지 모델로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지원하고, CPU도 드래곤볼 VZ66MHz로 매우 빨랐는데요. 그런데도 배터리가 진짜 오래 가는 물건이었습니다.
상태가 너무 안 좋네요.ㅜㅜ
SJ33
T계열의 마이너체인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로, 크기를 줄이고 제품 하단에 다양한 옵션 기기를 연결할 수 있게 한 캐쥬얼 모델입니다.
이 모델은 덮개가 있는데 간단히 떼어낼 수 있고, 다른 덮개로 바꿀 수도 있었습니다.(비싼 한정판 덮개들을 팔기도 했습니다)
하단에 붙이는 옵션 중에는 키보드와 조이패드가 가장 인기가 있었는데, 키보드는 구했지만 조이패드는 아직 못 구했습니다.
NR70 / NX80
QWERTY 키보드가 달린 모델로 크기는 커졌지만 물리 키보드가 있어서 매우 편리한 모델입니다.
팜OS는 그래피티 입력 방식이었기 때문에 따로 사용법을 숙지하지 않으면 문자 입력이 매우 어려웠고, 그래서 초기 장벽도 높았습니다.
그 때문에 팜 계열에서 가장 많이 나온 주변기기가 바로 키보드입니다.
그런데 NX70은 아예 물리 키보드가 달려 나오면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고, 굉장히 인기도 많았습니다.
다만, 폴더형이라서 덮개를 닫으면 버튼을 아예 누를 수 없는데요.
그래서 간단한 메모나 메시지 확인도 무조건 덮개를 열어야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이 당시 PDA 사용자들에게는 굉장히 혐오감을 주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이 뚜껑이 N700이나 N600처럼 아예 뒤로 접히는 것도 아니고, 약 150도 정도로 열려서 노트북처럼 계속 기계 위에 달려 있습니다.(액정이니까요)
그래서 비판이 많았고, 이 NX시리즈를 마이너체인지하여 비즈니스맨 대상으로 개발된 TG50에서는 액정과 키보드를 모두 바 형태로 일체화하고 그냥 플라스틱 덮개만 씌운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TG50
비지니스맨을 타겟으로 개발된 클리에 후기 모델입니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키보드와 액정이 바형태로 모두 동체에 있고, 덮개는 그냥 플라스틱으로 본체를 보호하는 역할만 합니다.
그래서 덮개만 떼어내면 그냥 바형태의 PDA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TH55
사실상 클리에의 마지막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 VZ90이라는 폴더형 멀티미디어 기기가 나오긴 했지만, 일본에서만 소량 판매되었고요.
글로벌 판매가 이루어진 클리에의 마지막 모델은 이 TH55입니다.
물리키보드가 없는게 아쉽기는 하지만 무선랜과 블루투스가 내장되어 있는 유일한 모델이고, 핫싱크로 무선으로 되는 방식으로 발매되었던 시기인 2004년초를 생각하면 굉장히 선진적인 모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델을 끝으로 클리에 사업을 접는 것으로 결정이 되면서, 소니는 불과 4년만에 PDA 시장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팜OS 진영이 스마트폰에 서서히 밀려나고 있던 시장 분위기 때문이고, 특히 일본 국내에서 샤프한테 너무 밀리게 되면서 사업을 접게 되었는데요.
2007년에 아이폰이 등장한 걸 생각하면, 여러모로 안타까운 결정입니다.
그래서 이모양 이꼴이 된 거겠지만요.
이건 클리에가 사라진 뒤 바이오 사업부 내부의 클리에 개발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mylo라는 멀티미디어 기기입니다.
PDA도 아니고, 스마트폰도 아니고, 게임기도 아닌 애매한 물건이긴 하지만, 상당히 선진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던 제품입니다.
Qtopia 리눅스가 탑재된 모델로 GP32와 샤프 자우루스의 형제기라고도 할 수 있는 모델이죠.
원래 계획은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한 위젯 개발 및 판매 플랫폼을 개방하여,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는데요.
대기업의 변방 프로젝트라서 계획대로는 잘 안 되어서 아쉽네요.
덕분에 하드웨어는 굉장히 구하기 힘듭니다.
이 모델은 2세대인 mylo-com2인데, 1세대인 mylo-com1은 너무 구하기 힘들어서 포기했습니다.
소니가 PDA 시장에서 철수한 뒤 일본 휴대용 단말기 시장은 샤프의 스마트폰이 접수하게 됩니다.
2005년에 나온 W-ZERO3(아래 사진들)라는 윈도우모바일 기반의 스마트폰이 일본 내수 시장을 장악하여서, 연간 30~40만대씩 판매됩니다.
2006년 이후에는 샤프의 일본 국내 모바일 단말(PDA/스마트폰 합쳐서) 점유율이 65%가 넘었으니까, 사실상 반독점 상태가 되고요.
그런 분위기가 일본에 아이폰이 상륙하는 2008년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상륙한 이후로는....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참고로, 카시오는 휴대단말기 부문을 NEC에 매각했고, NEC의 노트북 및 모바일 사업은 레노보가 인수합니다.(레노보는 후지츠의 컴퓨터 사업도 인수했습니다)
도시바는 노트북과 모바일 기기 사업을 분사시켜서 샤프에 매각했고, 샤프는 폭스콘에 인수되었습니다.
소니도 현재 엑스페리아를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노트북과 PDA를 만들던 바이오 사업부는 사모펀드에 매각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노트북, PDA, 스마트폰 등을 만드는 일본 기업 중에 아직까지 일본기업으로 살아있는 곳은 파나소닉 뿐입니다.
이것도 참 좋은 기계이기는 한데, 기계를 파는게 목적이었던지라...
정작 현재의 클리앙은 일본불매의 산실
그 당시에 얼마였나요??
N700C 200년쯤에 아키하바라에서 중고로 2만엔 정도에 샀던 걸로 기억합니다. 팜이나 클리에나 이 계열 물건들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어요. 팜 계열 최후의 플래그십 모델인 텅스텐 T5가 2004년말에 499달러에 나왔을 정도니까요.(이게 팜에서는 역대 최고로 비싼 모델이었습니다)
200년 -> 2001년
전 NZ90 썼죠 ㅋ 아 추억돋네여
전 N700 쓰다가 마지막에는 T650으로 넘어갔었네요.
옆동네의 어머니군요.
정작 현재의 클리앙은 일본불매의 산실
sj33 사용했었습니다. 추억 돋네요
그시절은 나름 또 그 맛이 있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