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의 음식을 탐험하는 수업이 끝나고, 이제 지중해로 넘어옵니다.
지중해와 접한 중동지방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요리를 배우게 됩니다.
한 블럭(CIA 학기 단위로 약 3주) 동안 이 많은 나라의 요리를 제대로 배운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핵심적인 재료를 사용해서 대표적인 메뉴를 만들며 겉핥기식으로 체험만 합니다.
겉핥기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게, 요리학교를 다니며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다'는 정도만 알아둬도 나중에 자신만의 길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만들게 된 음식은 터키식 만두인 "만티".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위치한 터키답게 만티 역시 중국식 만두와 이탈리아식 라비올리의 중간쯤 되는 느낌입니다.
파스타 반죽을 만들어서 납작하게 미는 것은 라비올리 느낌이지만 양고기 반죽을 넣고 삶은 다음 튀겨 먹는 건 아시아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하지만 요거트 소스를 얹고 민트를 뿌린 데다 수막(Sumac)이라는 특유의 향신료가 더해지면서 소아시아, 중동 특유의 음식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듯 합니다.
의외로 굉장히 맛있어서 제가 만들고도 놀랐네요. 보통 내가 만든 음식은 나중에 잘 안 먹게 되는데 이건 입맛에 맞아서 한 그릇 가득 떠먹곤 했습니다.
만든 음식들은 이렇게 큰 접시에 담아서 패밀리 (Family: 원래는 직원 식사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학급 식사)로 먹거나 다른 학생들에게 포인트를 받고 판매하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메뉴를 처음 만드는 날은 클래스에서 자체적으로 다 먹고, 둘째날부터는 좀 익숙해지니 만드는 양을 두 배로 늘려서 절반은 자체 소모하고 나머지 절반은 포인트 받고 판매하지요.
요리를 중점적으로 하지만 맡게 되는 스테이션에 따라서는 베이킹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 때를 위한 제과제빵 수업(https://blog.naver.com/40075km/221571726542)이었달까요.
중동 지방 분위기 물씬 풍기는 디저트, 대추야자 케이크를 만듭니다.
말린 대추야자 씨를 빼고 잘라서 물에 불린 다음, 케이크 재료와 함께 섞어서 구워줍니다.
구워진 케이크에 포크를 쿡쿡 찍어서 구멍을 낸 다음 버터와 크림, 흑설탕으로 만든 시럽을 끼얹어주면 완성.
이렇게 놓고 보면 쉬운데, 문제는 메인 요리도 만들면서 함께 만드는 추가 작업이라는 점입니다.
메인 요리 준비를 하면서 중간중간 짬을 내어 만들어야 하다보니 정신이 없습니다.
원래 계획에도 없던 바르바리빵(Barbari bread)도 굽고, 대추야자 케이크는 일인분씩 나눠 담습니다.
대추야자도 원래 달달한 판에 시럽을 만들어 들이부었으니 입이 오그라들정도로 달콤합니다.
그런데 처음 먹을 때는 너무 달아서 입맛에 안 맞다가 식사 하고 후식으로 먹다보면 자꾸 손이 가는게 미스테리.
나중에 남는 거 있으면 지퍼백에 한두개씩 싸들고 집에 가서 먹기도 했지요.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첫 날에는 정신이 없어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더니 둘째날쯤 되면 슬슬 적응하면서 여유가 생깁니다.
향신료를 넣어 만든 밥을 포도잎으로 싸서 만든 돌마, 피타 빵, 갈리헤 메이구(페르시안 스타일의 타마린드 새우), 오리고기 타진 등 이란, 터키, 이스라엘 등 중동 지역의 요리가 한 상 가득합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떠 먹으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편식 없이 최대한 다양하게 먹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요리를 직접 만들어보지는 못하다보니, 하다못해 다른 학생들이 만든 음식을 맛보며 어떤 느낌인지는 몸에 익혀놔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새 CIA 커리큘럼도 중반을 넘어서 후반으로 가고 있으니, 레시피도 손에 넣었겠다 먹어보고 맘에 들면 직접 만들 정도의 실력은 되니까요.
배울수록 느끼는 거지만 요리에 필요한 스킬을 익히는 것은 의외로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자르고 굽고 끓이는 것은 조금만 배우면 누구라도 할 수 있지요.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나 요리를 만들 수 있고, 또 주방을 총괄하는 셰프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합니다. 경력 수십년의 요리사들만 모아서 주방을 꾸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 대신, 수많은 재료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이를 조합해서 좋은 맛을 만들고, 트렌드를 파악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성공하는 셰프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래서인지 퀴즈도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문제를 내고 답하는 식이 아니라 주어진 샘플을 맛보고 그 이름과 특징 등을 써내는 거지요.
불현듯 고기 기초 클래스에서 냉동 진공포장된 고기들을 보고 어느 동물의 어떤 부위인지 맞추던 악몽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렇게 헷갈리는 재료는 없다는 점입니다. 비슷하게 생긴 양념이라도 냄새만 맡아보면 차이가 확 느껴지지요.
여기에 더해서 중동 지방의 역사와 문화, 아프리카와 그리스 음식으로의 연계, 실크로드와 향신료 무역 등을 이론 수업으로 배우고 주방 실습까지 끝내면 어느덧 지중해 클래스의 다음 단계인 스페인 요리로 넘어가게 됩니다.
귀에 저절로 오프닝이 멜로디가 들립니다 ㅎㅎㅎ
근데 여행갔던 곳의 음식이랑 그렇지 않은 곳의 음식이랑 차이가 진짜 많이 납니다. 프랑스랑 이탈리아 가보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었더랬죠 ㅠㅠ
귀에 저절로 오프닝이 멜로디가 들립니다 ㅎㅎㅎ
근데 여행갔던 곳의 음식이랑 그렇지 않은 곳의 음식이랑 차이가 진짜 많이 납니다. 프랑스랑 이탈리아 가보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었더랬죠 ㅠㅠ
졸업하시면 백악관에서 일하시는 건가요? 저도 위에 재료 퀴즈란 말 보자 마자.. 고기 맞추던 포스팅이 바로 떠올랐다는...
고기 퀴즈는 진짜... 사람 얼굴에 스타킹 씌워놓고 맞추는 기분이었죠 ㅠㅠ
개경만두랑 생긴게 비슷하네여. 문화적 교류가 있는 것도 아닐텐데 신기.
만두류는 뭐 전세계에 이름만 바꿔서 전부 있는 음식이나 마찬가지죠
와 중동요리를 요리하다니 부럽습니다
의외로 향신료만 좀 구하면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참 이렇게 제대로 배워오시는 분들이 한국와서 그렇게 푸대접받으며 알바생들이나 마찬가지인 대우받으며 일해야하는 우리나라 외식업계의 현실이 참 싫습니다..ㅠㅠ
르꼬르동블루 출신이 분식집에서 라면 끓인다는 말은 들었습죠 ㅎㅎ
오 저만 그런게 아니였군요..
ㅋㅋ 중동음식도 입맛에 맞으면 진짜 개꿀딱이죠! NYU쪽 마문도 참 좋아라했었는데
학교에서 여러 지역의 음식을 배우시는 군요. 저한테는 중국 음식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중동 음식입니다. 향신료와 육류의 조합으로 향만 맞아도 식욕을 엄청나게 돋구고 끝장나게 단 페스트리까지 정말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사진 속의 플레이트들도 정말 먹음직 스럽고 저걸 드실 수 있는 40075km님이 부럽습니다 ㅎㅎ
멋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