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클래스답게 본격적으로 지중해 연안의 유렵 요리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중동지역 음식은 좀 생소했는데 앞으로 배우게 될 지중해 국가들 -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요리는 본격적으로 '이게 서양요리다' 싶은 느낌입니다.
그 중에서 스페인은 뭔가 좀 복잡미묘한게, 이탈리아나 프랑스 요리에 비하면 인지도가 떨어져서 "이 녀석은 유럽요리 사천왕 중 최약체지!"라는 느낌이면서도 막상 접해보면 어지간히 유명한 서양 요리의 스페인 버전은 다 있습니다. 게다가 중남미에 식민지를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까닭에 스페인 느낌의 중남미 요리를 접목시킨 미국요리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마냥 가볍게 볼수만은 없는 음식들이지요.
아직 스페인은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데도 왠지 모르게 먹다보면 눈부시게 빛나는 스페인 해변이 떠오르는 그런 느낌입니다.
예전에 해운대 갔을 때 먹은 스페인 음식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서일까요...
스페인의 특징적인 음식문화라면 '타파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손으로 집어먹거나 포크로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조그만 요리들입니다.
단순히 전채나 간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와인 마실 때 먼지나 날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그 위에 접시나 빵 조각을 덮어두었고 이왕 덮어두는 거 간단한 요리를 함께 올려 먹으며 와인 안주로 삼는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로 맛있는 일품요리의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요리들만 모아서 술과 함께 제공하는 '타파스 바'도 있을 정도지요.
모든 스테이션이 주요리 하나, 타파스 하나씩을 만들어야 했는데 제 담당은 "뿌에로스 콘 비나그레타", 식초로 요리한 대파입니다.
식초와 화이트와인으로 대파를 요리하고, 토스트 위에 대파와 삶은 달걀, 피멘토스 델 피퀴요(스페인 피망)을 얹어 냅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파를 태워서 그 속을 빼먹는 칼솟타다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셰프! 칼솟타다! 칼솟타다를 만들면 안됩니까?"를 외쳤지만 "그러면 메뉴를 다시 뽑아야 하잖어"라며 기각 ㅠ_ㅠ
언젠가는 손과 입에 까맣게 검댕을 묻혀가며 먹어야지 다짐만 합니다.
메인 요리, 트루차 알 라 나바라(trucha a la navarra). 스페인 나바라 지역의 송어 요리라는 뜻입니다.
세라노 햄을 생선과 함께 마늘 듬뿍 넣어 굽고 필라프와 감자, 시금치를 함께 냅니다.
스페인 요리는 유럽인 기준으로 봤을 때 마늘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의외로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도 맞는 요리가 많습니다.
감바스 알 아히요를 먹어보면 알 수 있듯이 느끼함을 마늘이 잘 잡아주거든요.
스테이션이 여러 개 있는만큼 다양한 타파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중남미에서는 얇게 구운 밀가루 반죽이지만 스페인에서는 감자 팬케이크를 의미하는 또르띠아(Tortillas), 문어요리 폴포(Pulpo), 대구 튀김 바칼라우(Peritas de Bacalao), 햄과 빵가루와 달걀을 반죽해서 튀긴 크로퀘다스 데 하몽(Croquetas de Jamon)에 이르기까지.
키친 오픈만 아니면 그냥 스페인 와인이나 하다못해 맥주라도 한 병 까서 안주삼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요리들입니다.
물론 메인 요리도 빼놓을 수 없지요.
열심히 만든 송어요리. 하지만 의외로 만들 때 이가 갈리는 건 저놈의 감자입니다. 감자 토르네가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저 모양을 고안한 사람은 악마가 분명합니다. 육각형도 아니고 팔각형도 아니고 칠각형으로 깎아야 한다니...
그 외에도 만드는 과정은 빠에야와 비슷하지만 쌀 대신 파스타를 사용해서 홍합 듬뿍 넣고 요리한 피데우스(Fideus), 병아리콩을 곁들인 소꼬리찜인 라보 데 토로(Rabo de toro)도 있습니다.
네, 스페인에서는 소꼬리도 먹습니다. 만드는 법은 이탈리아식 오소부코와 거의 비슷합니다. 양념이 조금 다르고, 송아지 다리 대신 소꼬리를 사용하는 것이 차이지요.
그러고 보면 뼈 있는 송아지 사태살 구하기 힘든 우리나라에서는 소꼬리로 오소부코를 많이들 만드는데, 따지고 보면 오소부코가 아니라 라보 데 토로에 가깝네요.
소꼬리를 굽고, 소뼈 육수로 디글레이즈하고, 소프리토(향기를 내기 위한 채소 볶음), 와인, 브랜디를 부어서 찜을 만듭니다.
소고기 와인찜이라는 점에서는 프랑스의 뵈프 부르기뇽과도 비슷한 요리지요.
사심 가득 담아 퍼 온 한 접시. 면요리도 좋아하고 소꼬리도 좋아하고 튀김도 좋아하고 피자도 좋아하다보니 거를 메뉴가 없네요.
빠에야는 의외로 손이 안 가는게, 스페인 클래스에서 만드는 빠에야는 일인분씩 요리하기 때문에 고유의 그 맛이 안납니다.
예전에 카페테리아 클래스에서 진짜배기 빠에야(https://blog.naver.com/40075km/221458337265)를 먹어도 보고 만들어도 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그 차이가 느껴진달까요.
피자처럼 보이는 음식은 스페인식 피자, 코카(Coca)입니다.
짝퉁 피자처럼 보이지만 그 맛은 이탈리아 음식과는 또 다른, 스페인 고유의 특색을 보여줍니다.
토마토나 치즈는 찾아볼 수 없고, 오랫동안 잘 볶아서 캐러멜라이징 시킨 양파와 피망을 쉐리 식초와 설탕으로 졸여 만든 토핑을 얹어 굽습니다.
도우 만드는 거야 여러 번 해봤으니 별 일 아닌데, 진짜배기 피자 오븐의 화력이 무시무시합니다.
이 때가 8월, 늦여름 더위가 한창이었는데 섭씨 300~400도짜리 오븐 앞에 서 있자니 땀이 비오듯 흐르다 못해 증발하는 느낌입니다.
진짜 나폴리 피자를 굽는 화덕 온도는 485도 (화씨로는 905도!)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하니 익숙해질 수밖에 없네요.
그나마 코카는 메인 아이템이 아니라 그렇게 많이 굽지는 않는데,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이탈리아 요리에서는 쉴새없이 피자를 구워내야 하니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그렇다고 항상 실습만 하는 건 아닙니다. 교실에서 이론 수업을 들을 때는 "이것이 낮에는 밭갈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주경야독 뭐시기인가!"를 외치게 되지요.
스페인 식재료를 맛보는데, 시계방향으로 차례대로 만체고 치즈, 이디아자벨 치즈, 퀸스(자몽) 페이스트, 발데온 치즈, 구아바 페이스트, 하몽 세라노 순입니다.
다른 건 그렇다치고 하몽은 참 이래저래 이야깃거리가 많은 재료지요. 다들 최고만 찾는 통에 하몽 세라노가 찬밥 취급 받는동안 하몽 이베리코는 세계 4대 진미니 뭐니 하며 띄워주는 경향이 있는데 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누구 마음대로?'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오니까요.
사실 푸아그라, 캐비어, 트러플의 3대 진미까지는 워낙 널리 퍼진 개념인지라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는데 4대 진미로 확장시키면 이베리코를 끼우는 사람도 있고,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샥스핀이나 제비집을 끼우는 사람도 있고, 드 예거(달팽이알)을 넣는 사람까지 있는 판국.
논란이 많다는 것 자체가 세계 4대 진미는 아니라는 반증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심지어는 수입업자 파워에 따라 목록이 달라진다는 음모론도 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3대 진미 자체도 사람마다 입맛과 취향이 다른 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이 맛을 좋아하지만 희소성 때문에 비싸다"는 정도지 "절대적으로 맛있다"는 의미는 아니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와인 곁들여서 멜론하고 함께 즐기기엔 세라노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괜찮은데 수십 배 더 비싼 이베리코를 굳이?'라는 생각도 종종 하곤 합니다.
물론 이베리코가 반드시 필요한 곳도 있겠지만, 투뿔 한우를 구워야만 진짜 스테이크가 되고 제주도 흑돼지로 만들어야만 진짜 돈까스가 되는 건 아니듯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몽 세라노도 충분히 먹히니까요.
결국 맛을 결정하는 건 재료의 명성보다는 요리사의 실력과 판단력이 중요한 덕목이지요.
글을 잘 쓰시네요. 항상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글을 잘 쓰시네요. 항상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와..
스페인 요리들 구경 잘 했습니다. 사실 하몽까지 갈 것도 없고 프로슈토 정도면 충분할 때도 많지 않나 싶습니다. 간단한 핑거 푸드나 피자 토핑 정도라면 말이죠..
와! 엄청 맛있을거 같습니다. 외람되지만 두 가지 지적을 한다면, 스페인식 또르띠야는 팬케이크라기보단 감자 오믈렛입니다. 그리고 중남미식은 밀기루 반죽이 아니라 옥수수가루로 만드는겁니다. 멕시코 주식이라고 할 만한게 콩하고 옥수수다보니까요.
전문가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라라랜드에서 남주가 분노하죠 ㅋㅋ 재즈클럽이 쌈바 타파스 바가 되어버렸다고 ㅋㅋ
얼마전 안 사실! 하몽의 정확한 발음은 하몬이라는것
유럽은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이렇게 보니 정말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도 잘 맞을 것 같은 요리들이 많네요~
와 최고입니다
요리 너무 맛있겠다
스페인 요리 와드
스페인 여행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이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