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원주택에는 코스X코에서 구입한 웨버 57 BBQ 그릴이 있습니다만,
지금까지는 그냥 별 요령도 없이 그냥 숯 부어넣고 불피우고 직화로 굽는 것 밖에 못했습니다.
뭐 그것도 물론 맛있지만, 계속 그릴 곁에 서서 연기 마셔가며 쉴틈없이 고기 뒤집고 소금 뿌려야 하는 등 조리 과정이 괴로웠습니다.
고기가 회색이 되어 비주얼적으로도 좀 그랬구요.
그러다가 너튜브를 통해 바베큐에 대해 조금 공부하게 되었고, 제가 해먹고 싶은 마음 + 부모님께 맛난 거 해드리고 싶은 마음(사실 전자가 더 큽니다...)에
이번 추석에 큰 맘 먹고 각종 장비를 사 훈제 통삼겹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친척 어르신들이 모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모이지 못했는데, 이대로 가다간 영영 다시는 함께 모일 수 없을 듯 하여
전원 주택이 있는 저희 부모님 집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코로나 방역수칙은 지켜야 하기에 최소한의 인원만 모이기로 했습니다.
...졸지에 제가 메인 디시 담당이 되어버렸구요.
재난지원금을 털어 산 삼겹살입니다. 삽겹살 한 판을 통째로 구매해 8등분 냈습니다.
이 중 2조각은 다음에 김치찜 해먹으려고 빼놓았고, 6조각만 사용하기로 합니다.
바베큐 훈제 메뉴 중 비교적 쉽다고 하기에 통삼겹을 선택했는데,
보시다시피 껍질이 있는 오겹살입니다.
껍질을 잘 조리하면 바삭바삭 맛있게 되지만 전 요리 초보인데다 귀찮기도 하니 그냥 구워낸 후 때어내기로 합니다.
요리하기 24시간 전 미리 마리네이드 해 줍니다.
너튜브에서 배운 대로 그냥 프렌치 머스타드를 발라주고 국민 시즈닝인 바베큐X운 시즈닝을 뿌려줍니다.
허니머스타드를 쓰면 탄다고 하네요...
밀봉해 줍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고기는 저녁에 먹을 것이니 오후에 요리를 시작하면 됩니다만,
친척 어르신들께 대접할 요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긴장되어 아침부터 장비들을 체크했습니다.
평상시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께 해 드리는 요리는 제가 자취하는 곳에서 미리 연습을 해 보고 시행착오를 겪어보지만,
이번 요리의 경우 바베큐 그릴을 쓰다 보니 미리 연습할 수 도 없어 더욱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바베큐 그릴이 곰팡이에 뒤덮혀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이웃 지인이 그릴을 빌려가 쓰셨는데, 내부 청소를 하지 않고 그냥 창고에 넣어둔 것입니다.
내부에 눌러붙은 기름을 따라 허연 곰팡이가 엄청나게 번식하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그릴을 청소하고 일광건조시켰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드디어 조리를 시작합니다.
이번에 새로 산 침니스타터와 바스켓이 번쩍거리네요.
너튜브에서 배운 대로 브리켓 40알에 불을 붙이고 바스켓에 20개씩 따로 담았습니다.
저 같은 요리 초보는 괜히 요령 부리기 보다 배운 대로 해야 실패확률이 낮아집니다.
브리켓 위에 30분간 물에 불려둔 히코리 우드칩을 조금 오려두고, 식용유를 바른 1회용 그릴망 위에 고기를 올리고 훈연을 시작합니다.
음? 신원 미상의 훈남이 댐퍼에 비쳐 보이는군요.
왠지 30대 중반에 아냇감을 찾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 같은 초보에게 있어 구세주와 같은 아이템, 심부 온도계입니다.
한쪽 탐침봉은 고기 중앙에 찔러 고기 온도를, 한쪽 탐침봉은 공중에 띄워 그릴 내부 온도를 측정합니다.
그릴 내부 온도를 180도로 유지하면서 고기 내부 온도가 75도에 도달할 때 까지 지켜봅니다.
향긋한 냄새가 정원에 퍼집니다... 만 사실 저는 대학생 시절 모종의 이유로 후각을 상실해 무슨 냄새인지 모릅니다...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가 열심히 가꾸신 꽃밭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이건 어머니 지인이 선물해 주신 달리아인데 꽃이 정말 예쁘게 피었습니다.
칸나입니다. 덩치가 어마어마합니다.
꽃범의꼬리입니다. 흔히 벌새로 오해받는 박각시가 식사중이네요.
약 2시간 정도 지나...
우효☆~
말이 필요없습니다.
당장 한 입 먹어보고 싶지만, 더 맛있게 먹기 위해 호일에 싸 레스팅을 거칩니다.
이러면 고기 가운데 뭉쳐있는 육즙이 고기 전체로 퍼져나간다...고 하네요.
한 시간 후 호일을 벗기고 고기를 썰어 보았습니다.
예상대로 껍질은 질기고 단단하게 되어 아깝지만 자를 때 떼어냈습니다.
잘라둔 껍질을 보고 작은아버지는 이것도 먹는 거 아니냐며 한입 드셔보셨다가 표정이 굳으셨습니다.
다음 번에는 껍질을 바삭하게 만드는 방법도 연구해 봐야 겠네요.
훈제 입문자가 처음부터 훈연을 많이 하면 독해서 먹기 어렵다길래 우드칩을 좀 적게 썼습니다만,
예상보다 핑크색 스모크 링이 잘 발색되었습니다.
다행히 훈연향은 그렇게 진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고기를 자를 때 부터 느낀 것은, 육질이 매우 부드러웠습니다.
저는 삼겹살 매니아라 에어프라이어로 통삼겹 구이를 만들기도 했고 맥주로 수육을 삶아보는 등 다양한 삼겹살 요리를 시도해 보았습니다만,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보통 삼겹살 요리가 부드러운 비계층과 조금 더 질긴 살코기층으로 식감이 나눠지지만, 이건 전체가 비계층과 같은 부드러움이 유지됩니다.
시즈닝은 더 뿌려도 좋았을 듯 합니다.
생각보다 양념맛이 약해 다른 소스와 곁들어 먹으면 딱 좋을 수준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의 평가는 대만족!
정작 저는 지쳐서 이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제대로 맛을 못 보았지만,
그 다음날 남은 걸 먹어보고는 여기에 퍼부은 돈과 노력이 아깝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추석 당일 밤에 찍은 보름달입니다.
언제 다시 친척들끼리 모일 수 있을 지 이젠 알 수 없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모임일 수 있다는 말에 조금 서운하긴 합니다.
그래도 이번에 부모님을 도와 어르신들을 대접해 드릴 수 있었다는 점,
인생 최초로 훈제 바베큐에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결과물이 나왔다는 점에서 뿌듯함이 남습니다.
모두들 맛있는 하루가 되시길!
으아니 오른쪽 베스트라니!!
전원주택이 있는 삶, 너무 부럽네요 :D
좋을일엔 추천! 와 뿌듯하실듯
좋을일엔 추천! 와 뿌듯하실듯
ㅎㅎ 정말 뿌듯했습니다. 남은 고기는 며칠간 두고두고 먹었는데도 안질리더군요,
사진에서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ㅎㄷㄷ;;
그릴 준비부터 마무리 청소까지 정말 하루종일 걸렸습니다...
전원주택이 있는 삶, 너무 부럽네요 :D
저도 고향 내려갈 때 마다 꼭 들립니다!
맛있게 잘 구우셨네요ㅎ 담엔 히코리말고 피컨써보세요ㅎㅎ
피컨이라...한번 시도해 봐야겠네요.
요즘은 유튜브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것같습니다. 고기가 부드럽고 맛있어보이네요~
유튜브로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장비도 좋아져서 저같은 요리 초짜도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물을 낼 수 있더군요!
솜씨좋네요 ㅎ
감사합니다 ㅎㅎ 사실 제 본실력은 초보고 그냥 유튜브 잘 따라하기 + 장비빨의 결과입니다 ^^;;;
저도 주택살아서 예전에 자주 해먹었는데 먹는거에 비해서 만드는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리더라구요 ㅋㅋㅋㅋㅋ 그래도 맛은 있더라구요 ㅎㅎ
솔직히 저도 들어가는 노동력과 시간을 계산하면 저 혼자 먹으려고 저 난리는 못 피우겠더군요. 적어도 입이 4개는 있어야...
삭제된 댓글입니다.
[æksent]
경북입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4iwfrix4oxM&ab_channel=%EC%9C%A1%EC%8B%9D%EB%A7%A8YOOXICMAN
육식맨님에 올린 요령으로 만들면 껍질도 바삭하게 만들 수 있을거에요.
감사합니다. 저도 사실 이전에 승우아빠 레시피 참고해서 소금 삼투압으로 수분 제거한 후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오겹살 만든 적 있는데, 이 방법을 쓰면 바베큐로 구운 고기도 적용할 수 있겠군요.
전원주택 살지만 정원 저렇게 유지하는거 되게 힘든일인데.. 부모님이 부지런하신분들인가봅니다 ㅎㅎ
어머니가 정말 금손이십니다!
으아 웨버... 사고 싶은데 그냥 숯에 구워 먹는게 익숙해서 계속 고민만 하는 그 비싼물건
제가 쓴 저 웨버 57 그릴도 지금까지는 그냥 직화구이통으로만 썼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제가 열심히 써 주려구요.
주말에 구워 먹을때 저는 남는 항아리를 이용할까 하고 있습니다
오옷 이건 탄두르랑 비슷하군요!
간도 안베이고 훈제후 딱딱해져서 껍데기 못먹는다고 바베큐하실때 항상 껍데기없는 삼겹살 사용하라고 하더라고요.
맞습니다... 저도 삼겹살로 구하려 했는데, 못구해서 그만...
와우 삼겹
언제나 옳은 선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