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슈톨렌을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원래 슈톨렌은 과일 절임 만드는 데서부터 몇 달에서 일 년까지 걸리는 빵입니다.
하지만 CIA 레시피북에 초단기속성으로 사흘만에 만드는 방법이 나와있으니 그걸 참고해서 도전합니다.
일단 과일 절임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건포도와 레몬필, 오렌지필에 술을 부어주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레몬필과 오렌지필은 과일 껍질을 설탕에 재워서 절이는 건데 그냥 시판용을 사용합니다.
오래 숙성시켜야 깊은 맛이 나지만 레시피북에는 24시간 숙성시킨다고 나옵니다.
이건 다시 말해서 상업적으로 팔아먹기 위해 대량생산하는 슈톨렌도 최소한 하루는 절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독일의 가정집에서는 슈톨렌을 만들고 나면 바로 다음 크리스마스때 사용할 과일 절임을 만들어서 보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까지 얼마 남지 않은 이상, 돈으로 시간을 삽니다. 일반적인 베이킹용 럼 대신 비싼 술을 사용하는 거지요.
지난번에 까눌레 만들 때(https://blog.naver.com/40075km/222476188129)도 등장한 하바나클럽 7년 짜리에 건포도를 담그고
과일껍질은 그랑마니에르에 담가서 하루동안 기다립니다.
이렇게 첫째날은 종료.
둘째날은 할 일이 가장 많습니다.
우선 밀가루와 이스트, 뜨뜻 미지근한 우유를 섞어서 스펀지(발효용 반죽)를 만들고 충분히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여기에 밀가루, 버터, 설탕, 소금, 레몬 제스트, 향신료, 아몬드 페이스트를 넣어서 섞습니다.
향신료는 서양에서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조합이 있습니다.
넛멕, 시나몬, 클로브, 올스파이스, 카다멈 등이 들어갑니다.
이걸 다 일일히 구해놓기는 힘드니 '펌킨 파이 스파이스'라고 불리는 물건을 하나 구해놓으면 크리스마스 빵이나 쿠키 구울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아몬드 페이스트는 책에 나와있길래 구해서 넣었는데, 땅콩버터와 누텔라 섞어놓은 듯한 향이 펌킨 파이 스파이스와 합쳐지면서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향기가 납니다.
반죽이 두 배로 부풀어 오를때까지 대략 30분쯤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아몬드를 끓는 물에 데쳐서 껍질을 벗겨줍니다.
아몬드와 과일절임을 넣고 잘 섞은 다음, 다시 15분을 기다립니다.
그 다음 모양을 잡아주는데, 사람마다 모양 잡는 법이 다 다릅니다. 그냥 둥글게 말아서 쿠프(칼집) 내는 사람도 있고, 반 접은 다음 꾹꾹 누르기도 하고, 마지판을 넣고 이불 덮듯 덮는 경우도 있지요.
저는 마지판 안들어가는 슈톨렌인지라 반죽을 밀대로 밀어서 반으로 접고, 한쪽을 얇게 민 다음, 두툼한 쪽을 꾹 눌러서 움푹 들어가게 하고, 얇은쪽 끝을 살짝 말아서 움푹 들어간 골짜기에 집어넣는 식으로 성형했습니다.
(말로 설명하니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든데, 나중에 동영상도 한 번 올려보겠습니다.)
이렇게 모양잡기가 끝나면 다시 30분간 쉬도록 내버려 둡니다.
원래 슈톨렌은 독일의 제과제빵 길드가 영업 허가를 내준 주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빵을 구워 바친 것이 시초라고 하는데,
1700년대에 왕이 '손님들에게 대접할 크고 멋진 빵을 대령하라'고 하는 바람에 대형 슈톨렌 굽는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드레스덴의 제빵사들은 아직도 매년 슈톨렌 축제에서 더 큰 슈톨렌을 굽기 위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기록이 4톤짜리 빵이었다고 하네요.
그에 비하면 제가 만드는 건 아주 소박한 빵입니다. 450그램 정도 될까요.
180도 오븐에 30~35분간 굽고 살짝 식힌 다음, 아직 따뜻할 때 녹인 버터를 바르고 설탕에 굴려줍니다.
그러면 달달한 향신료 냄새가 섞인 슈톨렌 특유의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설탕이 빵을 하얗게 뒤덮으면서 왠지 눈 내리는듯한 분위기가 되는 것이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온 것을 실감나게 합니다.
큰 횃불이나 조그만 양초나 빛을 밝혀주는 건 마찬가지이듯이, 이 조그만 빵 한조각으로도 성탄절 기분은 흠뻑 낼 수 있네요.
이렇게 설탕에 뒤덮고 나면 다시 하루를 기다려 줍니다.
드디어 마지막 날.
하루동안 설탕이 빵에서 나오는 습기를 흡수하며 코팅이 됩니다.
이걸 못 기다리고 그냥 바로 슈가파우더를 발랐다가 습기에 녹아서 떡이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지요...
그래서 과일 절임에 하루, 굽고 나서 하루, 마지막 슈가파우더 바르기까지 최소 사흘은 걸리는 게 슈톨렌입니다.
이보다 더 시간을 줄이면 슈톨렌이지만 슈톨렌이 아닌 뭔가가 되어버리는 느낌.
슈가파우더 곱게 바른 슈톨렌은 비닐랩으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잘 싸서 보관합니다.
설탕을 두겹으로 바른데다가 향신료가 약간의 방부제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이 상태로 몇 주간 숙성시켰다가 먹기도 합니다.
원래 책에는 상업적 베이커리용 레시피를 쓰다보니 슈톨렌 9~10개 만들 분량이 적혀 있었는데, 저는 이걸 테스트용으로 1/10 레시피로 한 번 만들고 괜찮다 싶어서 세 번에 걸쳐 구워냈지요.
한두개 만들 때는 손반죽이 편하고, 그 이상 만들 때는 반죽기를 쓰는 게 낫네요.
집에서 가족들과 먹을 것 한 개, 직장에 가져가서 나눠먹을 것 한 개, 여기저기 주변에 선물할 것들 여섯 개.
이렇게 놓고 보니 수상쩍은 하얀 가루 밀매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꽤 오랫동안 성탄절 크림 케이크에만 익숙했던 탓에 정작 서양, 특히 유럽 사람들이 먹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봤을 때는 충격이었지요.
"저건 케이크가 아니라 빵이잖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의 인식과는 다르게 서양에서는 밀가루와 이스트와 물과 소금의 네가지 재료만 써야 빵이라고 인식하는 듯 합니다.
관대하게 식빵 정도까지는 봐주기도 하지만요.
그 외의 버터나 설탕이나 달걀이 듬뿍 들어가는 빵류는 '페이스트리'라는 분류로 취급하고, 케이크 역시 이 범주에 속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계속 보다보니까 '그렇게 엄청나게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하면서도 달콤한 것이 조용히 성탄절을 축복하기에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테스트용 슈톨렌을 썰어서 시식해봅니다.
겉은 설탕이 사각사각 씹히면서 안쪽은 부드럽습니다.
고소하고 달콤하면서도 술의 향미를 품고 있는 건포도와 과일껍질절임, 아몬드가 군데군데 씹히는 것이 마치 보물찾기 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직 숙성이 덜 되어서 그런가 학교 베이커리에서 사먹던 그 맛에는 좀 못미치는 것 같은데,
이대로 잘 보관해뒀다가 크리스마스 때 뜯어 먹으면 딱 좋을 듯 하네요.
그리고 올해에는 잊지 말고 내년 성탄절을 위한 과일 절임도 준비했으니 뿌듯함이 두 배입니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p.s. 요리전문사서의 추천도서, "제국을 정복한 식민지의 맛"편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https://www.nslib.or.kr/info/dataroom2.asp?mode=view&number=108&gubun=
철이긴 하나봐요, 맛나보여요
빵속에박힌 견과류하며 달달하고 맛있겠군요..ㅋ
큼직한 슈톨렌 먹음직스럽네요. 저도 이번에 슈톨렌 오랜만에 만들어봤는데, 생각해보니 며칠에 걸쳐서 완성되긴했네요 ㅎㅎ 저는 소심하게 과일 믹스들을 럼주 몇 숟가락정도로만 절였지만요 ;; 마지판도 만들어보니 만들만해서 내년에도 다시 제대로 만들어볼까 생각중입니다.
매 해 크리스마스때마다 먹는 슈톨렌..와인이랑 먹으면 좋슴다
재밋게 읽었습니다.
요새 슈톨렌 만드시는 분들이 많네요. 잘봤습니다.
요즘 크리스마스 케이크 시장을 슈톨렌이 슬금슬금 지배해가는 것 같네요 ㅎㅎ
저거 확실히 비싼 이유가 있긴 있어요ㅋㅋㅋㅋ
이브때 동네 제과점에 갔더니 슈톨렌이라고 팔아서 신기한 마음에 사다 먹었습니다. 설탕 코팅 때문인지 겉은 딱딱해서 비스킷 같았는데 속은 부드러운 빵이더군요. 생각보다 많이 달지 않고 고소해서 괜찮더라구요.
그게 정통인것도 알고, 원래 그렇게 만드는 빵인것도 알긴하는데... 누가 건포도 뺀 슈톨렌좀 팔아줬으면....ㅠㅠ
222....하다못해 크랜베리까지는 봐줌...다른데서 먹고 맛있어서 옵스꺼 사먹었는데 건포도 향이 너무 강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