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듯 날씨가 더워집니다.
도서관 문화프로그램 참가자들을 위한 간식으로 시원한 수박 화채 만들기 딱 좋은 날씨네요.
가락시장이 바로 옆에 있다보니 동네 마트에 비하면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과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책정된 다과비로는 간단한 음료와 과자 정도 구입하면 끝인데, 그럴 바엔 직접 다과를 만드는 쪽이 가성비가 훨씬 더 좋습니다.
물론 인력을 갈아넣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요.
근래 비가 많이 와서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막상 반으로 갈라보니 화채 만들기가 아까울 정도로 잘 익었습니다.
처음에는 1~2cm 두께로 썰어서 꽃 모양 틀로 찍어낼까 생각도 해봤는데 화채를 만들면서 사서 업무도 쳐내야 하는 관계로 힘이 덜 드는 둥근 모양으로 파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래는 이것도 멜론 볼러라는 전용 도구가 있는데 그냥 옆에 있는 커피 계량스푼으로 뜨다보니 완전 동그란 모양이 아니라 반구 형태가 되어버리네요. 겉보기엔 크게 별다를 거 없어보이는데도 바닥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있는지, 가장자리에 미세한 톱니 모양이 있는지에 따라 작업 효율에 엄청난 차이를 보이니 전용 도구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수박을 다 떠내면 사이다를 부어서 하룻밤 정도 냉장고에 재워둡니다.
탄산은 거의 다 빠지지만 설탕물+레몬향이 수박에 배어들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수박만 먹어도 맛있기는 한데, 가장자리 부분은 아무래도 단맛이 약한지라 이렇게 사이다물이라도 들여놓으면 좀 더 달콤해집니다.
식당에서 주로 쓰는 대형 컨테이너를 '밧드'라고 하는데 1/2 사이즈와 2/3 사이즈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큰 것은 작은 것을 대신할 수 있어도 작은 것은 큰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제 평소 지론에 따라 2/3 사이즈 통을 구입했습니다.
수박만 파서 담았는데도 거의 절반 가까이 채우는 걸 보니 큰 걸 구입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따르는데, "삼킬 수 있는 양만 씹어라"라는 서양 속담처럼 내가 다룰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작정 큰 후라이팬을 샀다가 인덕션 화구보다 너무 커서 못 쓴다거나, 커다란 저장용기를 샀는데 음식을 다 담아놓고 나니 정작 냉장고에는 안들어가더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도서관에 도착해서 나머지 작업을 합니다.
부족한 탄산을 추가하기 위해 사이다를 한 병 더 붓고,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딸기맛 우유를 네 병 섞어넣습니다.
그리고 수박 하나로는 밋밋한 느낌이 들기 쉬우니 과일 통조림도 하나 까서 넣어줍니다.
커다란 통조림을 꺼내놓으니 예전에 요리 배우면서 토마토 소스 깡통 따던 추억도 떠오르고 좋네요.
그런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 당시에 주방에 설치되어있던 대형 깡통따개가 (당연하게도) 도서관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이소에서 구입한 천원짜리 깡통따개는 조그마한 캔에나 쓸모가 있는건지 자꾸 헛돌기만 하네요.
식은땀 뻘뻘 흘리며 어찌어찌 열긴 했는데 손가락도 베일 뻔 하고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미 냉장고 안에서 시원해진 재료로 만든 화채지만, 여기에 얼음을 다시 왕창 부어줍니다.
얼음이 위쪽으로 둥둥 떠있는 모습만 봐도 벌써부터 시원해지기 때문입니다.
퍼포먼스가 별 거 아닙니다. 더위와 땡볕을 헤치고 들어온 사람들이 차가운 물방울 맺힌 통 안에 얼음 둥둥 떠있는 화채를 보며 감탄하게 만드는 것. 이게 바로 퍼포먼스지요 ㅎㅎ
다만 얼음이 녹으면서 밍밍해질 것을 대비해서 간을 맞춰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과일 통조림의 시럽을 잔뜩 넣어서 따로 손을 댈 필요가 없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설탕이나 소금도 좀 넣어줘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컵 역시 일반 종이컵에 이쑤시개 꽂아놓는것보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손잡이가 있는 나무꼬치를 준비하면 좀 더 그럴듯해집니다.
사실 도서관 사서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경우 그냥 과자나 좀 사서 페트병 음료수와 함께 깔아놓고 사람들이 집어가게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요리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대부분 남들 뭐 만들어 먹여주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고향집 찾아온 손주들 먹여보내려는 할머니마냥 손님 접대 하려는 마음이 가득한 입장에서는 이런 것 역시 하나의 즐거움이지요.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한 여성이 훈남 한의사에게 진맥을 받았는데 침 몇 방 맞고는 트림과 방귀가 터져나오는 바람에 창피해서 어쩔 줄 몰랐다는 경험담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위에 올라와있는 댓글이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의사는 오늘도 한 건 했다며 엄청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을 거임"이라서 고개를 끄덕였지요.
마찬가지로 음식 만드는 입장에서는 15리터짜리 큰 통에 가득 만든 수박 화채가 바닥을 긁을 정도로 완판되면 뿌듯합니다.
단순히 내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들이 잘 먹어주는 걸 보면서 얻는 만족감 뿐 아니라 참여 인원을 고려하고 여기에 추가 리필까지 감안해서 넉넉하게 만든 계산이 딱 맞아떨어지는데서 느껴지는 쾌감도 있거든요.
식당 주방장이 예상 판매량 계산해서 식자재 발주 넣었는데 나중에 결산해보니 매출까지 계획한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면서 남는 식재료가 하나도 없으면 "나 좀 쩌는듯?"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런 느낌이겠지요.
덕분에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도서관 창문 너머 밀려오는 여름을 구경합니다.
필력이 좋으셔서 수필 읽듯 즐겁게 보고 갑니다.
음식솜씨도 좋으시고 필력도 좋으시고. 두번 맛있는 글입니다.
정성이 많이 들어 가네요. 이건 무조건 맛있겠습니다.
폭력적인 맛일듯 하네요
화채 맛있겠다...
폭력적인 맛일듯 하네요
우왕~ 화채 너무 맛있어 보이네요 ^^
설탕으로 수박을 무친 후 기타 재료를 넣으면 수박의 단맛이 배가 됩니다 밍밍한 수박이 싫으면 한번 시도 해보세요
정성이 많이 들어 가네요. 이건 무조건 맛있겠습니다.
다이소 따개 별롭니다. 밀감 통조림 3kg 였나? 따다가 부러졌어요.
이건 무조건 맛있다
필력이 좋으셔서 수필 읽듯 즐겁게 보고 갑니다.
음식솜씨도 좋으시고 필력도 좋으시고. 두번 맛있는 글입니다.
보기만해도 시원합니다 추천!
더울수록 강해지는 음식
크~ 진짜 시원해 보입니다!
글쏨씨가 참 좋으셔서 글을 좋아하시는게 느껴지네요
정석이네요. 저렇게 만들어 먹어본 지도 정말 오래됐네요 그러고 보니. ^^
사서 라는 말에 아이디 다시 보고 왔네요 ㅋㅋ 요즘 웃대에서 활동 열심히 하시던데요?ㅋㅋ
정학먹었음당...ㅠ_ㅠ
캬 맛있겠네요 저도 일주일 전 비슷하게 화채를 만들었습니다. 숟가락으로 동그랗게 파놓고 우유 1리터 한팩 붓고 설탕대신 알룰로오스 넣고 얼음넣고 끝! 생각보다 화채가 간단하고 맛있습니다.
님 좀 쩌는듯? 진짜 맛있고 시원해보이네요. 👍👍
글을 술술 읽히도록 쉽고 재밌게 잘 쓰셨네요 ㅋㅋ 수박 화채가 비쥬얼이 어마어마한데, 저건 시장에 내어도 절찬리에 품절될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는 게 아쉬울 정도의 상상되는 맛...!
쩐다...레몬블러? 딸기우유?? 팁마노이배워가요! 저도 이번에만들어봐야겠네용
겁나 먹음직스럽네.
이런 직장동료가 있다면 ...아침 출근시간이 얼마나 행복할까 그날이 월요일이라도 즐겁겠지!!!?!!!
흐흐흐 맛있겠다.. 흐흐흐..
어머 멋진 남자네
도서관 사서가 요리를 잘하다니!!!!!
그러고보니 아직 화채 안먹었구나...
소주 3병각
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런지 필력이 좋아서 술술 잃히네요 잘 봤습니다~
누구신가 했더니 요리 전문가 그 분이시군요. 다음 화채만들때 딸기우유 꼭 넣어봐야겠네요. 하루 재워두는 스킬도 배워갑니다.
글도 맛있네;
예전 회사에서 만들어 먹던거....생각나서 올려 봅니다.
와 이건 얼음 사이로 국물 샐거같은데 ;;;
얼음 좀 쩌네
뭐야...무서워...
보기만해도 맛있어 보이네요 ㄷㄷ
전 유당불내증 때문에 못먹을듯 히히
저도 3대가 한집에 살다보니 여름엔 수박 한통 통째로 화채만들일이 종종 있는데 하나씩 떠내는것보다 그냥 껍질 칼질해서 벗겨내고 깍둑썰기하는게 더 편하더라구요 ㅎ. 스푼으로 떠내는건 손가락이랑 손목에 무리가 가서 ㅠㅠ
화채 만들때 파인에플 식초로 만들면 맛있어요 파인에플이 진짜 수박과 딱 어올리는 조합임
저도 화채 엄청 좋아합니다 딸기우유 들어간 맛이 궁금하네요
맛있어 보입니다. 트림 방귀 얘기만 없었으면 완벽했겠네요 ㅎㅎ
도서관이라니..ㅋ
수박의 계절이 돌아왔다!!!
화채 시원하겠네요!! ㄷㄷ
더운 여름 밤잠을 못이룰 때마다 와서 보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