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못써서 내용이 좀 지리멸렬 합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기에 종종 수정할 것 같습니다.
조정이 지목한 첫째가는 반적(反賊), 유비는 적벽대전 이후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해야 했고, 제갈량이 내놓은 해결책은 4군을 삼키고 입촉(入蜀)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비측은 손권의 지원을 얻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4군을 침공하였고, 한편으론 서천(西川)에 스파이를 보내는 등의 사전공작을 벌였다.
61권 480화에서 제갈량이 살펴보고 있는 입촉(入蜀)루트 지도 역시 그러한 공작의 일환이리라. (비록 그 지도는 가짜로 판명되었지만.) 제갈량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천(西川)을 침공할 요량이었던 것이었다.
<'나쁜 사람'이 서천(西川)으로 침공하려는 지도를 먹칠해 무용지물로 만들어 놓는 유선>
하지만 제갈량이 살펴보고 있던 ‘지도’는 유선(劉禪)이 붓으로 먹칠을 하여 알아 볼 수 없게 망쳐놓는다.
또한 유선은 제갈량의 트레이드 마크나 마찬가지인 ‘학우선’을 들고 제갈량에게 말한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라고.
이를 통해 보자면, 유선이 지도를 먹칠한 행위는 달리 보인다. 멀쩡한 땅에 침공하려는 제갈량의 행위를 어떻게든 무위로 돌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이런 저런 잡음이 있다 한들, 유장(劉璋)은 서천(西川)을 질서정연하게 다스리고 있다. 그런데 유장을 쫓아내고 서천을 차지한다는 게 웬 말인가. 침공하지 않는다면 죽을 일 없을 사람들을 기어코 사지로 내모는 제갈량의 행위를 유선은 ‘나쁜 사람’이란 말로 압축해서 전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뒷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유도의 행위와 대비된다. 영릉군 군장 유도는 끝까지 항전하기보다 항복을 택한다. 영릉군의 백성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그런 유도의 행위는 유비에게는 ‘참으로 큰 용기’라는 말로, 작가에게는 ‘천하의 인인(仁人)들이 이와 같기를’이라는 칭찬으로 옹호 받는다.
어찌 보면 이러한 영릉군 군장 유도의 행위는 훗날 유선(劉禪)이 항복하고 나라를 바치는 미래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필이면 해당 장면에서 유비가 '싸움을 포기함은 곧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는 일'이라는 대사를 읊어서 더욱 그러하다.
제갈량을 ‘나쁜 사람’이라 몰던 유선은, 제 아비의 말을 좇아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기 위해 항복하는 것일까. 설령 그 대가가 후세 사람들에게 혼군(昏君)이란 악명을 뒤집어 쓰는 것이라 하여도.
제갈량의 '나쁜' 모습은 단발로 그치지 않고 61권 483화에서 재등장한다. 여기서는 아예 작가가 직접 나서 언급한다.
鞠躬盡瘁, 死而後已
국궁진췌, 사이후이라 했던가.
製造死亡, 是他每天的工作
죽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가 매일 하는 일이었거늘.
<61권 483화 ‘피로 논한 전쟁’의 도입부>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이 말은 제갈량이라는 인물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문장이다. 어떠한 일을 할 때 온 정성을 바쳐 하겠다는, 맡은 바 소임을 끝까지 해내리라는 그의 다짐인 것.
하지만 진모 작가는 여기에 붓을 들어 두 번째 문장, 製造死亡을 써넣는다. 두 번째 문장, 製造死亡은 첫번째 문장의 표현을 점진적으로 심화시키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엎드려 몸을 바치고 죽을 때서야 그만둔다는 행위가[鞠躬盡瘁, 死而後已] 다름 아닌 죽음을 제조하는 일[製造死亡]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갈량은 하산하고 난 뒤로 매일같이 죽음을 만들어내었으며, 기계적으로 죽음을 제조하는 행위는 그가 죽는 순간에야 끝을 맺었다는 소리다.
진모 작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제갈량의 캐치프레이즈나 마찬가지인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를 전혀 다른 식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오함마 씬’.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나쁜 사람’ 제갈량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학우선을 잡은 손이 본질적으로 오함마를 잡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제갈량은 손에서 한시도 죽음을 떼어 놓지 않았단 의미>
오함마를 잡은 제갈량의 손과 ‘학우선’을 쥔 제갈량의 손이 포즈가 동일한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 제갈량은 말 그대로 촉나라의 대소사를 주관하면서 언제 어느때고 죽음을 만들어 냈다는 소리다.
사소하게는 고문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에서부터(오함마를 쥔 손)
크게는 ‘학우선’을 쥐고 큰 전쟁을 일으키고, 북벌을 하며 승산없는 싸움을 위해 수 만명의 백골을 쌓아올린다는 것.(학우선을 쥔 손)
그리고 학우선을 쥔 제갈량에게 ‘냄새난다’라는 말을 하는 유선.
고문하면서 밴 피 냄새를, 학우선에 향낭을 잔뜩 피우는 식으로 어떻게든 없애보려 하나, 그런 피냄새를 유선이 기가 막히게 캐치하고 콜록 거리며 싫어하는 것. 제갈량과 유선의 대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방금까지 고문을 주관했던 제갈량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선에게 ‘사람은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는 [맹자]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는 필자의 입으로 계속해서 제갈량을 ‘나쁜 사람’이라 했어도,
작중에서는 유선의 입으로 ‘나쁜 사람’이라 직접적으로 비난당했어도,
제갈량 스스로도 본인을 ‘간신’으로 묘사하고 있어도 제갈량은 계속해서 죽음을 만들어 나간다.
어째서? 그 답은 모두가 알고있다.
사람은 현실을 향해 나아가야 하므로. 결국 기골(骨氣)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기에.
유선(劉禪)의 방식은 이상의 법도를 세운 나라에나 통하는 것이지, 지금 같은 불인불의(不仁不義)한 난세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진정한 패주(覇主)인 유비는 알고 있다. 유비 뿐만 아니라 진정한 비바람(고난)을 겪어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제갈량, 황충, 위연 등이 그렇다.
그렇기에 유비는 진흙탕에 몸을 더럽히며 더러움과 영합하려 마음먹은 것이요
그렇기에 제갈량은 하산을 택했을 때부터 두 손을 피로 적시기로 마음먹은 것이요
그렇기에 ‘충신은 두 주군을 섬기지 않는다’란 기골(骨氣)을 품었던, 죽을 때까지 그 가면(체면)을 쓰기로 결의했던 황충조차 체면을 집어던지고 새로운 주군을 모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난은 겪어 본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고.
반면 한현(韓玄)은 고난을 제대로 겪어 본 적 없고, 인의(仁義)를 겉핥기로 배웠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유선(劉禪)의 방식을 지금 당장 실현하고자 한다.
그래서 유비가 더러운 무리들과 영합하며 그 울타리(圈子; 올가미)를 넓히고 있는 동안, 한현은 다른 4군 사람들과 쌈박질이나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비가 4군을 함락하고 서천(西川)을 침략하여 동족형제를 죽일 궤계를 꾸미고 있을 때, 얼치기 애민(愛民)군주였던 한현은 장사군 백성들의 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했을 뿐.
한현은 유비의 발끝에 미치지 못한다. 유비가 자신을 죽이리란 것도 예측하지 못한 사람인데... 그렇기에 그는 그저 삼분천하를 지켜볼 방관자로 남는 것이다.
반면, 현실을 깨달은 유비, 제갈량, 위연 등은 피로 물들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스스로를 희생하여 수만 장병의 백골을 쌓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끝에 이상의 법도를 세운 나라가 있을 테니까.
마지막에 위연이 유비의 손길을 거절하고 유선의 손길을 받는게 뭐랄까 보기좋으면서도 찝찝했으
반골의상을 표현한건가? 싶기도하고
황충이 유비의 마수(魔爪; 爪는 손톱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는 훗날 황제가 되는 유비의 '용의 손톱'을 의미하기도 함)을 겸허이 받아들였지만 유비는 유비의 마수(魔爪)를 가볍게 쳐냅니다. 짐승의 손톱인지, 용의 손톱인지는 몰라도 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위연은 현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비바람(고난)을 겪어본 사람이지요. 그래서 그는 그러한 행위로 삼푼(三分)의 골기만 드러내 보였던 겁니다. 유비를 아예 따르지 않는 건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라도, 아주 조금만이라도(三分)이런 빌어먹을 현실에 반항하겠다..그런 의미겠죠. 결국 위연은 나머지 칠푼(七分)에 따라 현실적으로 유비 휘하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작중에서 현실을 황충에게 알려준게 위연이라니 아이러니하네용
위연이 진정 그 '반골의 상'이었다면, 아예 그 자리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어찌되었건 패주(覇主)의 길을 따라가기로 결심한 사람이지요. 칠푼은 타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비의 '개선식'에 참가했지만 삼푼(三分)의 기골(骨氣)은 아직까지도 남아있기에 더러움과 영합하는 유비를 도저히 용서하지 못했던 겁니다. 뭐, 작가가 말하듯이 세인(世人)들은 삼푼의 기골과 칠푼의 타협이 있음을 분간하지 못해 위연의 행위를 막연히 분기를 들고 일어난 의연한 사람으로 보겠지만, 유비는 그런 모습을 가볍게 읽어내고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는 겁니다. 칠푼의 타협을 칭찬하는 것이죠.
그렇죠,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 현실을 황충에게 알려준게 바로 위연이라는 게... 언제나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할때 님글을 모아서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