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악마를 잡았다.
악마를 잡고 풀어주는 방법은 오직 그만이 알고 있었고, 악마는 처량하게 쓰러진채 그저 자비만을 구할 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풀어주면 원하는 어떤것이든 들어주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악마에게 정말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냐고 되물었다.
악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맹세했고, 그는 오랜 세월동안 바라고 바랐던 자신의 소망을 이야기했다.
영생을 누리는것.
악마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 정말로 그것을 원하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그는 영생을 살기로 결심한 것을 되돌리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것을 강요하였다.
악마는 힘겹게 일어선 다음 잠시 눈을 감은 뒤 그가 바라는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늙어갔다.
그는 몸의 주름과 시린곳이 늘어날 때마다 악마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고 다시 걸리면 손봐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시간이 더 흘러 다른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나이가 들어 죽어가는동안 그 역시 큰 병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을 평생 사랑했던 가족들과 함께 하며 유언을 남긴 그는 모든 미련을 버리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깨어나면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저승이 아닌 차가운 관 안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뚜껑을 두드리고 싶어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거기다 병에 걸렸을 당시 느껴졌던 고통과 얼어붙는 추위, 배고픔, 갈증 등의 모든 감각이 그를 매섭게 덮쳐왔다.
그는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알 수 없을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자 얼음처럼 차갑던 관 속이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구더기, 개미 등 여러 벌레들이 그의 몸 안과 밖을 파먹는 감각에 또 다른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분명히 관 속이면 그런 벌레들이 들어올리가 없을텐데 그의 몸은 벌레들에게 파먹히고 있었다.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악취였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그렇게 끔찍한 냄새가 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 그의 몸은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구역질을 하고 싶었지만 그의 몸은 구역질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 뱃속의 내장이 부풀어올라 터져나가는 감각, 살과 살이 흐느러지고 갉아먹히는 감각 등 이전보다 더 끔찍한 고통에 빠져 신음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그는 이전에 망각했던 오감을 포함한 모든 고통스런 감각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신 다른 형태의 감각들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무언가를 만지는듯한 느낌, 뭔가를 맛보는 느낌, 향기와 악취를 맡고 상쾌함과 구역질을 느끼는 느낌, 뭔가를 파고 올라가는 느낌.
이 수많은 느낌들이 그의 정신을 동시에 헤집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땅속을 기어다니는 시점, 따뜻한 고치 안을 바라보는 시점, 하늘을 날아다니며 온갖 생명체들을 농락하는 시점.
그 수많은 장면들이 동시에 그의 정신속으로 흘러들어오자 더욱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의 몸은 수많은 파리와 개미의 일부가 되어 그것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시간이 더 흘렀다.
파리와 개미들은 수명이 다하여 죽거나 뭔가에 잡아 먹혀버렸거나 하면서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그것들의 일부로 남아있었다.
파리와 개미들을 잡아먹은 벌레와 동물들, 그리고 그것들의 시체와 배설물을 양분으로 하는 식물들의 일부가 되어서 말이다.
물론 그것들이 하나 하나 죽어나갈 때 느껴지는 감각 또한 느껴졌고, 그것들이 다양한 형태로 분해되고 흡수되는 과정 또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이 모든 고통들이 얼른 끝나버리기만을 바랬다.
그를 알던 모든 이들이 그를 잊어버릴 정도로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예전처럼 고통스럽지 않았다.
이제 그의 몸은 세상 이곳 저곳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수없이 많은 식물, 곤충, 동물, 사람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채로 말이다.
악마는 오래전부터 훼손되어있던 그의 무덤 위에 편하게 앉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자신은 약속대로 거짓말 하지 않고 분명히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영생이란 것은 바로 이런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