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가 꼬리뼈로부터 촉수를 자라나게 했다.
촉수의 끝은 창처럼 뾰족해 적의 몸을 순식간에 꿰뚫었고 사방이 피투성이다.
나는 이 장면을 코드 베인 트레일러에서 봤었고 단번에 흥미가 생겼다.
소녀의 얼굴은 절반쯤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는데 이 또한 내 흥미를 자극했다. 결국 나오자마자 해봤다.
다 무너져가는 세계지만, 힘을 합쳐 다시 원래로, 밝은 세상을 되찾자! 이 게임 속 이야기의 큰 줄기는 이렇다.
이런 아포칼립스 세계관에 피가 크나큰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생소하면서 흥미로웠다.
전에 헌혈하면서 봤던 내 피는 검붉은 액체에 불과했고 이것이 내 몸속을 구석구석 돌고 있다니 나는 지금도 익숙하지 않다.
일상에서 피를 보기는 정말 드물다.
생각해보면 내 몸속에 피가 돌지 않으면 곧바로 죽는데도 피라는 단어는 그 중요성에 비해 내게 정말 생소했다.
피는 다양한 데서 나온다. 수술에 쓰이는 피, 살인마가 신체를 토막 내면서 나는 피, 심장에 총알이 박힌 동료 입가에 흐르는 피.
각각 상황에 따라 그 피가 의미하는 바는 다르다. 이 게임에서 의미하는 피는 생명수다.
흡혈귀인 주인공과 동료들은 피가 없으면 살지를 못한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 게임에서 혈루라는 피와 비슷하지만 다른 액체가 흡혈귀의 주 식량이 된다.
주인공 일행은 피가 아니라 혈루를 더 많은 흡혈귀에게 주기 위해 싸운다.
피는 중독이라는 부작용이 있어 흡혈귀들에게 권장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 게임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피라는 존재를 옅게 했다. 일반인에게 피는 꺼림칙하다.
어떤 식으로든 죽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일본만화 식으로 만들어진 인물 생김새와 스토리를 가졌다.
게임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요소는 배척해야 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이 게임의 타깃층이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는 이 게임에서 잔뜩 보이지만 무섭지는 않다.
이 게임을 하면서 나는 적의 피를 바닥과 벽에 많이 칠했는데 빛에 반사된 그 액체는 윤기가 흘러서 기름 같았다.
다 썰고 죽이는 액션 게임에서 피를 무섭게 만든다면 큰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흡혈귀로 피가 잔뜩 빨려서 죽은 사람들이 흡혈귀 천지인 이 게임에서 있을 법한데
보여주지도 않고 언급되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제작진은 혈루라는 피의 대체재까지 만들어놨다.
어디까지나 게임은 밝다. 선을 넘지 않는다. 무서운 괴물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흡혈귀는 유일한 구세주가 된다.
인간은 거의 사라진 듯 보인다.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엑스트라였다.
흡혈귀들의 이야기고 세상이고 하니 이 게임에서 흡혈귀는 이제 흡혈귀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인류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는 상당히 아쉽다. 인간 대 (인간이었던) 괴물과 싸운다.
흡혈귀의 특색을 살린 부분도 간혹가다 있지만 잘 살리지 못했다. 후속작은 피에 대해서 더 중히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족으로 루이가 진 주인공이다. 후속편에서는 루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싶다. 이오가 특히나 맘에 들었다.
일본 망가 체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이런 캐릭터가 있는 줄도 평생 모르고 지냈겠지만 익숙해서 다행이었다.
새로운 걸 접하는 건 언제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