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갤 눈팅족입니다. 한때는 이것저것 글을 올려본 적도 있습니다만, 먹고사는 문제가 바빠지면서 끊게 되었다가,
문득 어린시절 산에서 길을 잃었던 일이 떠올라 여러분들께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때는 92년 겨울로, 국민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때는 겨울방학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대형수퍼마켓을 하시게 되면서 저희집에는 큰이모네가 살게 되었고 부모님과 저는 수퍼 한켠에
자그마한 거주공간을 마련해서 지내게 되었죠.
딱히 불편하다고 느낀적은 없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시기에 그때 제가 많이 겉도는 느낌이었나 봅니다.
보통때라면 학원이라도 보내시겠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었던 모양인지, 근처에 살고 계시던 유치원 시절의
선생님 댁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됐지요. 공부방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대충 3주인가를 보낸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던지라 선생님 댁으로 가던 중
옆길로 빠져 동네 뒷산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은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여기서부터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왜냐하면, 결석은 물론 지각만 해도 대단한 큰일인줄 알았던 저는 학교는 물론 이전에 다니던 학원들도 결석이나
지각같은 것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귀찮고 공부도 싫은데 꾸역꾸역 학원에 열심히 나갔던 것은
손과 매가 매서우신 부모님께 혼나는 것이 두려운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날 만큼은 그러한 것이
전혀 걱정이 되지 앉는 것이었습니다.
산 입구에서 반 친구와 만나 간단히 인사를 나눈 저는 이유도 없이 신이 나서 산을 올랐습니다. 사실 산이라기엔 좀
민망스러울 정도의 높이여서 체력이 좋지 않은 저도 어렵잖게 산행이 가능했지요. 날이 아주 맑은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큼지막한 돌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을 지나 산 꼭대기에 도달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예전에 살던
동네가 보이더군요. 집으로 돌아가서 혼날 걱정은 진즉에 까맣게 잊은 상태였던 저는 내친김에 옛 동네로 내려가 친구의 집에
놀러가서 한참을 놀았고,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나왔습니다. 그때 티비에서 sbs의 저녁 쇼프로였던 <좋은 친구들>이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때 자주 들락거렸던 오락실에도 가본 저는, 거의 어둠이 다 깔린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굳이 산을 타지 않아도 아버지의 수퍼까지 가는 평범한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차리신 수퍼 부근에 제가 다닌
국민학교가 있었는데, 옛 동네에 살던 시절 늘 걸어서 등교를 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때 저는 '반드시 왔던 길로 돌아서 가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짐작으로 산에 들어간 시간은 7시 30분 쯤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올때 간단했으니 돌아갈때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밤의 산은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길눈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저지만 그때의 산은 어둠과 돌과 흙외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혀 없어서, 산 아래 동네의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보이는 광경에만 의지해서 길을 찾았습니다. 더욱 괴이한 점은, 그때 저의 심리상태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기괴한 광경이었을 겁니다. 동네 야산이라고는 하지만
한겨울 8시를 넘긴 밤에 자그마한 꼬맹이가 산속을 해매고 있는 모습이 과연 어떻게 비쳤을까요?
한동안 칠흑같은 산속을 해매던 저는 낮에 지나쳤던, '돌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 을 다시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낮에 그곳을 이정표로 삼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저는, 이제 길을 제대로 들고 있구나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만,
한참을 걸어도 동네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문제의 그곳을 네번이나 지나치게 되면서 같은곳을
빙빙 돌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고, 이때부터 비로소 당혹감과 무서움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네번째로 돌무더기를 지나친 뒤, 드디어 동네로 가는 길이 나왔습니다. 겨우 아버지의 수퍼에 도착해보니 난리가 나 있었지요.
아버지와 안면이 있는 동네 상인들은 물론 경찰까지 와 있었는데, 사실 당시는 개구리 소년 사건의 여파가 여전했던 시기였습니다.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온 아버지는 저를 얼싸안고 가게 한켠의 구석방으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삼겹살을 구워 김치를 찢어 얹어주시면서
어디 갔다왔는지를 물어보셨지요. 혼을 내시진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야말로 도깨비에게 홀렸다는 것이 저런걸 두고 하는 말인듯 합니다.
희한하고 기묘한 경험이네요.. 잘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정말이지 기묘한 경험이네요. 저도 밤에 운동하러 자주가던 동네 산에 휴대폰 하나만 들고갔다가 중턱쯤에서 갑자기 길에 햇갈리기 시작했어요.. 결국엔 잘 찾아서 내려오긴 했지만, 그때 익숙하던 산 풍경이 되게 무섭고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의외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다들 공통되는 사항이 있다는 것도요. 익숙한 길이 갑자기 위화감이 든다는게 그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기묘하다는 말이 딱 맞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표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전혀 이정표의 역할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도시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눈으로 산길을 찾았으니........
희한하고 기묘한 경험이네요.. 잘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기묘하다는 말이 딱 맞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기묘한 경험이네요. 저도 밤에 운동하러 자주가던 동네 산에 휴대폰 하나만 들고갔다가 중턱쯤에서 갑자기 길에 햇갈리기 시작했어요.. 결국엔 잘 찾아서 내려오긴 했지만, 그때 익숙하던 산 풍경이 되게 무섭고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의외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다들 공통되는 사항이 있다는 것도요. 익숙한 길이 갑자기 위화감이 든다는게 그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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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차
이정표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전혀 이정표의 역할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도시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눈으로 산길을 찾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