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린 저녁 일요일
이십 년 넘게 다니는 지하 목욕탕에 괄호를 씻으로 갔다
괄호를 닦는 동안 하나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달랑 혼자 남은 목욕탕엔 어느새 한기가 들어와 사방을
둘러본다
시계를 보다 미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나오는데
때밀이 아저씨가 손을 잡아끌며 소주 한잔 하고 가라
한다
옷이라도 주워입고 앉겠다 했더니
다 안 입고 있노라고 옷 입으면 반칙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옷장 뒤 연기 속에서 고기를 굽는 벌거숭이 사내들
순식간에 물비린내와 비누냄새와
괄호를 잡아먹는 저 현란한 고기 냄새들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다가
재차 민망한 기분이 되어 옷이라도 입자 했더니
냄새 밴다고 다 먹고 욕탕에 들어가 씻으면 그만이라는
이발사
담뱃불을 붙이며 방귀를 뀌는 이도 있었고
아랫도리가 늘어질 대로 늘어져 바닥에 끌리는 이도 있
었다
밖에 여전히 비가 내리는지 모르도록 술판이 눈부셔갈
무렵
유민들이 제 살들을 찾아내 소금기름에 담그고 있다
어찌어찌 다섯 병의 소주병이 비워지고
탕 안에 붉게 구워진 몸통을 담그며
아프게 눈을 감는 사내들
수면에 가라앉는 저 고요한 취기를 태우고 떠다니는 물
방울들
나는 술이 닿아도 젖지 않는 괄호를 걸어두고
사내들이 내려놓은 몸에 비누칠을 해주었다
이병률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