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밥나무가 밤나무가 되었다니
예전에 밤나무는 밥이 열리던 나무이다
밥은 곡식의 씨앗으로 짓는다
씨앗 속 숨은 힘이 정자가 된다고 한다
밤꽃이 짙게 정액 냄새 풍기는 것은
밤나무의 성생활이 왕성해서이다
밤이 자손을 번창하게 한다고 믿어왔기에
제사상에 생밤을 깎아 올린다
대대로 집터에 밤나무 심어온 내력이 있어
음복할 때 먼저 생밤에 손이 간다
맨 처음 움집에 밤나무 심은 이는 아무래도
까마득한 내 윗대 조상일 것 같다
밤나무에는 밤이 열리지만
너도밤나무나 나도밤나무에는 밤이 열리지 않는다
최두석
숨살이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