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BEST 펼치기

오늘 시 (부- 빈집들(2))



글꼴

 빈집


 

 


 안양천 건너 소하동 입구에는 망

 자의 혀로 적힌 글들 있었는데,누

 가 철거했나, 나는 장님처럼 더듬

 거리며 서 있다, 나는 잠글 문도

 없고, 집이, 집이 있으면 좋겠다,

 내 아이를 눕혀야지, 아이 엄마를

 눕혀야지, 나는 길 위에서 중얼거

 리며 서 있다, 다락방이 딸린 집이

 있으면 좋겠다, 내 병든 질문 따위

 잊고선, 일 년 내내 가방 속에 갇

 혀 있던 한 죽은 시인의 전집을 찢

 어 벽지로 바르고 그 속에 있던 병

 든 귀신들도 눕혀야지, 집이 있으

 면 좋겠다, 봄날이 가고 다시 오지

 않더라도 대물림되는 불행화 무

 능의 서정 따위 빈병처럼 팔아먹

 게, 집이 있으면 아이와 아이 엄마

 와 함께 누워 입을 다문 가수의 옛

 노래를 이어 부르다 쓸쓸한 풀잎

 의 자손들처럼 잠들겠지, 이 위험

 한 家系에 집이 허락될까, 술에 취

 해 낡은 악기들이 기어이 손을 맞 

 잡을 때까지 온종일 노래만 부르

 던 조부처럼 결국 나는 네발로 기

 어 다니게 될까, 더 늦기 전에 집

 이 있으면 좋겠다고, 버려진 골목

 길 공장 담벼락을 따라 노인들처

 럼 중얼거리며 더듬더듬 걷다 보

 면, 살아온 날들이 신기하구나, 헛

 것처럼 누이가 나를 지나 안개의

 강 건너 빈집으로 돌아가는데, 돌

 아가 영영 갇힐 텐데,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이 엄마는 누구

 와 누워 있을까, 집이 있었으면 좋

 겠는데, 나는 못생긴 입술을 가졌

 고, 입 속에는 검은 잎만 가득하니

 나는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서 있

 다, 내가 기억하던 집은 어디로 갔

 을까, 그 집에서 썼던 글들은. 멀

 리서 神이 반짝였다.*


 * 어린 시절 소하동에 갈 때면, 붉은 글씨의

 플래카드가 나보다 먼저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와 공사자. 또 내가 사는 동네와 똑같은

 허름하고 덜 따뜻한 집들. 친구의 아버지들 중 몇은

 한쪽 다리나 팔, 하다못해 손가락이 없거나, 어떤

 이는 온종일 방에 앉아 뭔지 모를 흰 약가루를

 포장하고 있거나, 대개 취해 있었다. 시흥동과,

 독산동, 소하동과, 가리봉동, 안양을 오가며 자라다,

 사십이 넘어서까지 이곳에 그대로 상게 될지는

 몰랐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기형도 시의 도움을

 받았다.








 어느 푸른 저녁

 젊은 시인 88 트리뷰트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발간 30주년 기념,

 문학과지성사







댓글 0 | 쓰기

댓글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목록보기


위로가기
네이브 | 추천 0 | 조회 4175 | 날짜 2017.12.03
smile | 추천 2 | 조회 13448 | 날짜 2013.12.23
세레노아 | 추천 3 | 조회 12309 | 날짜 2012.03.23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6 | 날짜 09:22
네이브 | 추천 0 | 조회 8 | 날짜 03:06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8 | 날짜 2020.01.28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10 | 날짜 2020.01.27
네이브 | 추천 2 | 조회 12 | 날짜 2020.01.27
장뤽고다르 | 추천 0 | 조회 35 | 날짜 2020.01.24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36 | 날짜 2020.01.24
먀O먀 | 추천 0 | 조회 22 | 날짜 2020.01.24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29 | 날짜 2020.01.23
네이브 | 추천 0 | 조회 41 | 날짜 2020.01.22
장뤽고다르 | 추천 0 | 조회 30 | 날짜 2020.01.22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35 | 날짜 2020.01.22
먀O먀 | 추천 0 | 조회 33 | 날짜 2020.01.22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35 | 날짜 2020.01.21
먀O먀 | 추천 1 | 조회 56 | 날짜 2020.01.20
팦팦 | 추천 2 | 조회 61 | 날짜 2020.01.20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28 | 날짜 2020.01.20
먀O먀 | 추천 1 | 조회 56 | 날짜 2020.01.17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42 | 날짜 2020.01.17
팦팦 | 추천 0 | 조회 60 | 날짜 2020.01.17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35 | 날짜 2020.01.16
네이브 | 추천 0 | 조회 48 | 날짜 2020.01.15
장뤽고다르 | 추천 0 | 조회 50 | 날짜 2020.01.15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42 | 날짜 2020.01.15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61 | 날짜 2020.01.14
샤아 아즈나블 | 추천 0 | 조회 57 | 날짜 2020.01.13
장뤽고다르 | 추천 0 | 조회 63 | 날짜 2020.01.11
꼭지 | 추천 0 | 조회 45 | 날짜 2020.01.10

1 2 3 4 5




글쓰기
힛갤
오른쪽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