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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 (부- 빈집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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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뽕




 안 선생님

 어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저의 꿈에 나타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언제나 생명줄을 놓고 싶지 않아요

 꿈의 조붓한 숲길을 걸으며

 선생님은 말씀하시었어요

 내가 아는 승훈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현실 속에서 웅앵웅

 속병이 나서 종아리가 붓고 썩을 것으로 손목을 얼마나 그었는지

선생님은 잘 아시죠

 아니요 모르실걸요 저는 손목을 그은 적이 없으니까요

 그건 모두 제 마음의 일

 마음은 헛것인가요?

 선생님의 이가 딱딱 부딪치는 계곡물에 발 담그고 도토리묵에

동동주를 마시다가

 지리멸렬로 하산하고 싶어요

 선생님은 나쁘다고 하실까요?

 은백양의 숲을 빠져나오면 상전벽해

 알면서 속고 살았어요

 속이고 살았어요

 인간사 한철 장사라지만

 제아무리 가슴 근육을 단련해도 두터워지지 않았어요

 부항을 그렇게 떴는데도 

 마음에 사시사철 잔설이 남아 있었어요

 저는 이 근육을 다 어디다 쓰려고 모았을까요?

 좋은 집 뺏기기 전에

 지식 노동으로 돈을 벌고

 지하철 좌석에 앉으며

 구린내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면 애가 타지요

 인생을 가련히 여겨 밤낮으로 성실히 임하던

 스승님

 선생님이 기숙 학원에서도

 음주를 일삼지 않고 아침마다 기상나팔을 불 때 저는

알아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심지를

 그 심지에 불붙이면 얼마나 장엄한 불꽃이 필지

 심지가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인생은 녹아 없어지지요

 함호 형을 보면 알죠

 그 새끼가 애들한테 한 짓을 생가가면

 지금의 부귀영호가 

 다 죗값이란 생각이 들어요

 한번은

 함호 형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사과하더라고요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형 세상을 참 만만히 보는구나 다물어

 함호 형은 이제 박사가 되었다지요

 아, 선생님

 꿈에서 하신 말씀을

 오늘은 옛날 대학노트에 적어 두고

 두고 보았습니다

 문학 한다는 놈이 어떻게 그렇게

 한 치 앞을 못 보았을까요?

 영롱한 눈을 하고서

 거슬러 올라 올라가면

 역시 선생님의 중앙이 보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눈발이 잔잔하며

 메로구이에 청주를 마시곤 하겠죠

 그때 그 산골에서

 선생님이 눈이 퀭한 이들의 입속에 넣어주던

 진리의 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양보단 질이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저를

 선생님은 갸륵히 여겨

 뱃살을 주셨습니다

 어려서도 선생님은 모욕을 유발하지 않고

 조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기력을 쓰지 않으셨지요

 그때 선생님을 희

 눈 속에 파묻고 내려와서

 저랑 미주랑 우영이랑 승도랑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선생님이 네발로 눈발을 헤치고 나와

 인간 무리를 피해 다닐 때

 봄의 뜨락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죠

 다들, 뛰쳐나갔잖아요

 데모크라시

 우리 가슴 잃었습니다

 안 선생님 지금도

 그곳 푸른 뽕밭엔 진리가 알알이 맺히나요

 저는 때때로 제 가슴에 왼손을 얹고

 미어터지는 근육의 애욕을

 참지 못해

 엉덩이골에 오른손을 넣었다 빼서

 냄새 맡곤 합니다

 재수하여 광명 찾자는 말은 왜

 지금껏 잊히지 않는 걸까요

 미주는 선우를 키우며 뉴질랜드에 삵

 우영이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

 승도는 하직하였습니다

 이토록 우리는

 인간의 탈을 쓰고

 숨 쉬고 있습니다, 선생님










 어느 푸른 저녁

 젊은 시인 88 트리뷰트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발간 30주년 기념,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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