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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 (부- 파르동, 파르동! 박정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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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란서 고아의 음악

 ―톰 웨이츠의 「Jockey Full of Bourbon」





 톰 웨이츠의 「자키 풀 오브 버번Jockey Full of

Bourbon」을 듣는 밤이다


 짐 자무시의 「다운 바이 로Down by Law」의 첫 장

면처럼 페허 같은 도시의 풍경과 마음의 텅 빈 골목

을 울리며 「자키 풀 오브 버번」이 흐른다


 흑백영화의 밤이다, 어둠과 밝음으로 가득 찬 고

아의 마음이 흑백영화의 밤에 몇 개의 별빛처럼 놓

여 있다


 그것이 음악이다, 깊은 어둠과 광대한 고독의 벌

판을 지나가는 고아의 발자국 소리


 발자국 소리가 끝나는 곳에 숲으로 난 오솔길이

있을 것이다


 어깨에 행낭을 걸치고 세상의 모든 길을 떠돌다

온 고아는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고독을 탐

닉한 낮고 거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거이다


 날씨 참 좋네요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야겠어요


 같이 갈래요?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파리Paris의

지하로 뻗어 있는 수염이 보일 것이다


 톰 웨이츠, 박정대, 짐 자무시, 닐 영, 빅토르 최

등 불란서 고아의 수염이다


 이 수염으로부터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런 장르를 소용돌이 음악이라고 한다


 자, 지금부터 불란서 고아의 음악인 소용돌이 음

악을 들어보자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누군가의 수염은 한 곡의 음악이다


 지금부터 불란서 고아의 지도를 따라가며 듣는

음악과 파리의 지하 수염에 대해 말할 것이다


 파리의 지하 수염과 인류의 음악이 형성된 과정

에 대해 말할 것이다


 어제는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인사이트호는

화성에 안착했고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으며 누군

가 밤새 시를 썼다


 시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무엇인가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시는 음악을 종이에 녹음한 것이며 음악은 세상

의 모든 사물이다


 소리가 굳어져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음악이 되는 것이다


 사운드는 하나의 미세한 소립자이며 물질이기 때

문이다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인간의 모든 시공간은 음악으로 채워져 있으며

인간은 산소처럼 음악을 숨 쉰다


 화성에 도차한 인사이트호에서 보내오는 음악은

무엇인가


 들라크루아박물관 다락방에 앉아 시인이 듣는 음

악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나는 시를 작곡하고 노래한다, 일테면 싱어송포

엣Singer―songPoet인 것이다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그대는 불란서 고아인가, 소용돌이 음악은 무엇

인가


 박정대는 말해보시오


 음악이오?


 그런 거 잘 몰라요


 그는 질문에 주저하며 말을 시작한다


 그리고 몇 차례 운을 떼지만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다가, 서서히 한두 마디를 던지고, 이어 본격적

으로 유창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자신의 논지를 반복한 뒤 말을 멈춘다


 조용한, 왠지 적절하게 느껴지는 침묵이 내려앉

는다


 그는 다음 질문을 기다린다


 그는 평온한 모습으로 한동안 그렇게 기다릴 수

있어 보인다, 라고 제인 샤피로는 썼다


 스톡홀흠 국제 시 축제에 갔을 때 스칼라극장에

서 했던 공연이 기억에 남아요


 공연은 저녁 여덟 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

는데 스톡홀름의 11월 말은 낮 두 시부터 이미 어

두워졌으므로 공연이 시작될 무렵의 어둠은 유난히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었어요


 어둠 속의 어둠 속에 있다고나 해야 할까요


 이미 어두워진 대낮 위로 또다시 밀려온 저녁의

어둠이 캄캄하게 저를 에워쌌죠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 숙소를 빠져나와 거리를

걸을 때면 두껍고 검게 쳐진 무대 커튼을 한 겹씩

열어젖히며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었어요


 그것은 그때까지 어디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두

겹의 어둠, 단단하고 차가운 두 겹의 음악이었어요


 밤마다 몇 겹의 어둠으로 덮여 있는 거리를 걸어

쿵스가탄가를 통과해 스톡홀름 시청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산책을 할 때면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

곤 했어요


 시인이란 자신이 만든 무한의 어둠 속에서 인류

를 위해 한 점의 불씨를 탐구하는 자가 아닐까


 시는 무한의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피어나는 한

줄기 불꽃이 아닐까

 

 음악이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 불꽃이 내

는 소리, 소리가 사라진 완전한 침묵의 공간에서도

무수한 공기의 행성으로 다시 돋아나는 것이 아닐까


 무대에 입장할 때 엔지니어에게 미리 부탁해서

톰 웨이츠의 「리틀 드롭 오브 포이즌Little Drop of

Poison」을 틀었어요


 저는 「톰 웨이츠를 듣는 좌파적 저녁」을 읽었구요


 톰 웨이츠는 신나게 노래를 불렀지요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를 사회

자는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래디컬 바바리언 밴드’

라고 소개했어요


 저는 바바리언 밴드가 아니라 오랑캐 밴드라고

정정했구요


 오랑캐가 뭐냐구요?


 오랑캐는 Orangke!


 낭송하는데 거의 10분 정도 걸리는 「파르동, 파

르동 박정대Pardon, Pardon Pak Jeong―de」같은 시를

스톡홀름의 밤에 자신의 모국어로 당당하게 읽는

별종들이죠


 스칼라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모두 기립 박

수를 쳤어요


 탁 소 미케,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요


 스톡홀름의 깊은 어둠과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에게요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불란서 고아의 음악이란 또 무엇인가


 불란서 고아의 음악이오?


 그런 거 잘 몰라요


 박정대는 잠시 주저하며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

내 조심스럽게 피워 문다


 마치 하나의 분명한 대답처럼 담배 불꽃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타오른다


 시, 박정대는 말한다


 두려움 없이 전진하라, 교황 프란체스코는 말한다


 시, 두려움 없이 전진하라고?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두려움 없이 전진하는 시란 무엇인가


 두려움 없이 전진하는 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

지만 장 드 파Jean de Par에 읳면 불란서 고아는

예술의 고아지요


 아직 인간으로 태어난 적도 업슨, 그래서 인간의

그 어떤 맥락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이 지상의 밤

을 헤매는 고아, 그저 허공을 떠도는 영혼의 고아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박정대와 짐 자무시는 파리의 지하 수염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파리의 지하 수염이 될 수 있는 전제 조

건이 불란서 고아인가


 그렇지요, 불란서 고아가 파리의 지하 수염이 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인 셈이죠

 제가 알기로는 톰 웨이츠와 닐 영도 파리의 지하

수염이에요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어요


 지금은 침묵하고 기도해야 할 때라고 교황 프란

체스코는 말한다


 지금은 고독하게 내면으로 침잠해야 할 때라고

박정대는 중얼거린다


 이어지는 말들은 대부분 파리의 지하 수염과 박

정대와 짐 자뮈의 것이 의도적으로 변형되어 섞

여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현실에 근거한 그 어떤 개연성도 없고(있을 수도

있고) 사건이나 서사 구조도, 일말의 필연성도 없

다(있을 수도 있고)


 오로지 반복만이 있을 뿐이다


 ‘없음’을 반복하느 반복의 ‘있음’이 세상에서 가

장 아름다운 시를 탄생시킬지 누가 아는가?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그대들이 살고 있는 이 행성은 몇 개의 음향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시다


 그러니까 이것은 종이에 녹음된 한 곡의 음악, 그

대들도 중얼거리며 이 행성의 음악을 들어보길 바

란다


 영상은 소리의 소립자들을 빛의 소립자로 전환시

킨 것이다


 빛과 그림자가 이루는 음영의 계단을 밟고 내려가

사물의 본질에 닿으면 거기에 태초의 음악이 있다

 음악은 보인다


 소리는 강력한 하나의 물질이다


 보이고 움직이는 것들, 보이지도 않고 움직이지

도 않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인류의 내면으로 스

며들어 감정의 원천이 된다



 그대가 감정을 지닌 인류라면 그대는 지금 음악

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그대는 지금 한 편의 영화를 본다 그걸 달리 말하

자면 그대는 지금 한 곡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

이다


 짐 자무시는 말해보시오


 사람들은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대에

매혹을 느껴요

 그 시대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영향

을 받게 되구요


 최근에 도시를 벗어나 어느 시골 지역에서 주말

을 보낸 일이 있는데 그곳의 침묵이 제 신경을 곤두

서게 하더라구요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떠한 소음도 없었기 때문이죠


 저는 많은 것에 영향을 받아요


 움직이는 건 무엇이든 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죠


 여자들에게서 받는 영향은 책에서 받는 영향과느

다른 것이죠


 여자들에게서 받는 영향은 급격하고 근본적이며

총체적인 것이에요


 「불란서 고아의 지도」라는 영화는 암전으로 분리

된 44개의 숏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사실 대학에서 공부를 할 무렵엔 작가가 되고 싶

었어요


 그래서 문학을 공부한 거죠


 그런데 파리에 있는 동안 그리고 이곳에 다시 돌

아와서 쓴 글들을 보니까, 너무 많은 영화들을 봐서

인지 제 글이 점점 영화적으로, 점점 시각적으로 되

어가는 거예요


 뭐 누구나 그렇지요


 시를 쓰고 싶어 하지만 시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

이 결국은 다방면의 예술가가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예술가의 총감독이에요


 대단한 실력을 갖춘 뮤지션만이 록 밴드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죠


 악기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기술적 측면보

다 음악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의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개념의 음악을 시작하는 거죠


 모든 록 밴드의 사명이죠


 「불란서 고아의 지도」라는 영화의 전체적인 포인

트는 어떤 특정한 클리셰들은 피하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클리셰들을 포함시키는 거였어요


 가끔은 말을 하면서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모를 때가 있어요


 제 작품에서 암전을 사용한 이유는 어떻게 시간

의 경과를 나타내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죠


 암전, 암전이라는 말 참 좋지 않나요?


 시간의 표시는 예술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메타포예요


 종종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방에서 무슨 말을 하

고 싶은지 깨닫지 못해요


 결국 너무 늦은 후에야 그걸 깨닫지만 더 이상 말

할 기회는 남아 있지 않죠


 결국은 모든 게 시간의 문제예요


 메타포를 사용하는 사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

람의 감각과 인식이 서로 다른 까닭이에요


 파리가 유럽의 수도라고 흔히 말하지만 저는 파

리가 유럽의 일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일종의 감정의 자유무역항 같죠


 파리는 유럽과 그다지 관련이 없는 곳이에요


 정선도 마찬가지예요


 태평양과 한반도 사이에 있는 섬이면서 이 세계

의 내면이죠


 예, 그렇죠


 뭐라구요?


 휴지pause라는 건…… 저에겐 정말 때때로 말보

다 더욱 중요해요


 대로 캐릭터들이 아무 말도 없는 순간, 바로 그

고요한 순간이 대사보다 훨씬 더 중요하죠


 왜냐하면 그러면서 캐릭터가 자신을 발견하는 경

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에요


 실생활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죠


 연인들이 입맞춤을 할 때 그것은 하나의 휴지이

면서도 격렬한 대화이기도 한 것처럼요


 각각의 음이 하나하나 이어지면 음악이 되는 것

이다, 라고 저는 배웠어요


 시도 마찬가지죠


 각각의 음소들이 이어지면 한 편의 시가 되는 것

이죠

 

 인생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오늘은 하늘이 드노포 하늘엔 구름 같은 것들이

떠다녀요


 너무 생생해서 구름 같은 거라고 표현해봤어요


 인생이란 언제나 떠다니는 구름 속에 다 포함되

어 있어요


 전 낯선 장소에 툭 던져지는 걸 좋아해요


 어디서든 잠을 잘 자죠


 특히 좋아하는 건 이른 밤 시간에 바닥에 드러눕

는 거예요


 장소가 어디든 딱 30분 정도 그렇게 누워서 제가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음악을 듣는 것처럼요


 아주 멀리서, 그리고 아주 가까이서 여러 소리가

들려오죠


 때로는 알아듣기 어려운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

기도 하구요


 그건 정말 아름답죠, 아주 좋아해요


 글쎄요, 전 정말 여자들을 좋아해요


 사랑했던 이들이나 아주 가깝게 지낸 여자들로부

터 참 많은 걸 배워온 것 같아요


 정서적인 측면이나, 상상력 같은…… 아무튼, 남

자들과 어울려 있을 때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죠


 그러나 더 구체적으론 설명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정말…… 여자를 잘 모르겠어요


 여자들 곁에 있는 건 저에게 중요해요


 전…… 남자들하고 있으면 무척, 뭐랄까…… 한

쪽으로 치우치는 느낌이 들어요


 마치…… 모르겠어요, 그냥…… (절망적으로)

말을 못하겠어요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하루의 고된 노동을 끝낸 사람이 퇴근길 사람들

로 붐비는 만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

만의 다락방에 당도했을 때 느끼는 감정의 무한


 그 어디로도 투항할 수 없는 마음을 어느 순간 자

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망명하게 하는 것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마음


 눈을 감았다 뜨기만 하는 불란서혁명의 기술 말

고 그 어떤 현실적 무게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치환

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뜨거운 마음의 무한


 그것을 불란서 고아의 마음이라고 하자


 머리를 길게 기른 젊은 닐 영이 통기타를 치며

「하트 오브 골드Heart of Gold」를 부른다


 원숙한 젊음의 어떤 모습은 진부도서관의 마음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진부도서관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아무나 말해보시오


 어떻게 보면 가장 평범한 것들이 가장 낯설죠


 저는 단순한 것들에 끌려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은 존 카사베츠John Cassavetes

예요


 카사베츠의 영화를 보면서는 내내 잤어요


 꿈속에서 아주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죠


 꿈속에서 카사베츠와 나는 담배를 피우며 우리의

인생에 대해 슬프도록 진지한 이야기를 했죠


 존 카사베츠를 생각하면 왜 하늘에 떠가는 구름

들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어요


 하늘엔 구름들이 떠가요


 구름의 단순성과 비정형성 속에 세상의 모든 것

들이 있어요


 상상력의 망명정부, 구름 속에는 이 지상을 살아

가는 각자의 망명정부가 있을 거예요


 시나 영화나 노래,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이든 아주

단순한 구조를 지닌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

이곤 해요


 어떻게 톰 웨이츠에게 다른 목소리를 입힐 수 있

겠어요?

 톰 웨이츠를 더빙한다는 것은 박정대의 「톰 웨이

츠를 듣는 좌파적 저녁」을 다른 언어로 번역해 읽

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로베르토는 언어를 마치 무기처럼 사용해요


 그런데 그 무기는 강력하면서도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어리둥절해하는 상태를 좋아해요


 무언가 너무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저에게 상상

력을 불러일으키지 않아요


 어리둥절해하는 상태의 상상력이 예술을 촉발시

켜요


 어떻게 보면 이 행성은 이미 모든 게 너무 늦었다

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가장 단순한 것들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

지죠


 예를 들어 대화라든가, 누군가와의 산책, 또는 구

름 한 점이 지나가는 방식, 나무 이파리들에 떨어지

는 빛, 또는 누군가와 함께 담배를 피우는 일


 이러한 일들이 온갖 유식한 잡동사니 헛소리들보

다 훨씬 더 가치가 있어요


 이상적으로 영화는 3년에 한 편씩을 만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시집은 2년에 한 권씩 써내는 게 맞는 것 같구요


 음악은 세계의 변방을 떠도는 오랑캐들의 발자국

소리니까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들으세요


 물론 일상의 노동을 벗어나, 모든 조건이 갖추어

진 상태에서 그렇다는 거예요


 저는 저 자신을 그저 소소한 시를 쓰는 마이너 시

인쯤으로 생각해요


 거창한 서사시 같은 걸 쓰고 싶은 생각은 없죠


 저는 중국 황제에 대한 시보다 자신의 개를 산책

시키는 한 사내에 대한 시를 쓰고 싶어하죠


 음악이 저를 장소로 이끌어요


 장소는 저를 추억으로 이끌구요


 저 아주 강한 정치적 견해들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제 작품이 공공연한 정치적 표현의 장이

라고 여기진 않아요


 저는 자리를 빼앗기고 주변부를 맴도는 캐릭터들

에 대한 시, 그리고 그들이 일견 중요해 보이지 않

는 사소한 것들을 행하는 시를 통해 탐욕적인 현실

에 반기를 드는 거예요


 그리고 저를 매료시키는 건, 각각의 모든 사람들

이 지닌 삶에 대한 시각이 독자적이고, 다른 누구의

것과도 다르다는 점이에요


 제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인식과 상황의 그러한

작은 차이점들이죠


 그게 제가 발자크Balzaac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발자크가 인생을 살면서 어느 순간 발작을 일으

킨 이유이기도 하구요


 그러한 차이점들이, 그리고 그 모호한 경계점들

이,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저를 가장 유쾌

하게 자극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슬프게도, 역설적으로, 그러한 차이점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정의하면서도, 세상이 지속

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막을지도 모르죠


 당신은 ‘리 마빈의 아들들 인터내셔널’이라고 불

리는 비밀결사의 멤버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에겐 조직에 대한 정보를

누설할 권한이 없어요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을 뿐이죠


 조직의 다른 인물들 세 명은 확인해드릴 수 있어요


 톰 웨이츠, 존 루리 그리고 리처드 보스예요


 다들 긴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군요


 그건 회원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에요


 리 마빈과 관련지을 수 있을 법한, 다시 말해 아

들이 될 수 있을 만한 그런 얼굴 구조를 가져야 해요


 우린 공식 성명서도 발표했고, 비밀 회동도 갖고

있죠


 더는 말할 수 없어요


 무가당 담배 클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의 멤버들

은 확인해드릴 수 있어요


 리산, 강정, 신동옥이에요


 그들은 모두 시인이고 전직 천사들이죠


 보통 저는 특정한 인물이나 장소를 염두에 두고

시를 써요


 그렇게 시의 캐릭터를 구상하고 나서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상상과 함께 시를 써나가죠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시의 캐릭터에 의해 만

들어질 테니까요


 박정대가 시가6밀리를 피우며 운을 뗀다


 짐 자무시가 카멜 라이트를 피우며 히죽댄다


 파리의 지하 수염은 ‘집시 여인’이라는 뜻의 지탄

Gitane을 피워 문 채 잠시 말이 없다


 세 사람이 피워 올리는 담배 연기는 허공으로 흩

어질 듯 흐르다 어디에선가 만난다


 허공은 하나의 시점이고 지점이다


 저는 소위 드라마틱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강조

하고 싶지 않아요


 시의 캐릭터가 정적인 상태에서 시인이 그를 탐

구하고, 거기에 음악이 더해지면, 시인이 시선 자체

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죠


 저는 시를 쓰는 시인이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아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강력한 캐릭터의 소유자이

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파리의 지하 수염이 좋아하

는 가수 가운데 한 명이에요


 이자벨 아자니는 박정대가 좋아하는 배우 가운데

한 명이구요


 짐 자무시가 가장 좋아하느 배우 가운데 한 명은

위노라 라이더예요


 저에게, 시의 정수는 그 시에서 어떤 궁극의 이미

지를 보여주는가 하는 점이지, 자신의 생각을 생각

한 것과 똑같이 표현하는 것은 아니에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파

트는 촬영이에요


 시를 쓸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파트는 썼다가 지

워가는 과정이구요


 영화의 기본 구조는 지구의 자전이죠


 시의 기본 구조는 지구의 공전이구요


 암전, 암전이라는 말 참 좋지 않나요?


 가령, 영화를 찍는 방법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한다, 몇 개의 숏들로 이루

어진 영화를 찍을 것


 가령, 시를 쓰는 방법


 먼저 쓰라 그리고 사고하라


 이 글의 서술자가 혼동된다구요?


 당연하죠, 의도된 중구난방, 속수무책이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죠


 눈 내리는 밤과 서리 내리는 새벽을 고독의 문자

로 기록한 설상가상의 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

운 시죠


 제가 다닌 대하교는 학생들의 작품으로 영화제를

열었어요


 저도 출품을 했구요


 그런데 학교는 제 작품에 퇴짜를 놓았을 뿐만 아

니라 정말 지독한 내용이 담긴 편지까지 보냈어요


 대략 ‘대체 이 쓰레기는 뭐냐?’ 하는 내용이었죠


 저는 그저 난감할 따름이었어요


 당시 록 밴드에서 연주를 하면서 전 이렇게 생각

했어요


 좋아, 아무튼, 영화는 한 편 만들었으니까 앞으로

는 더 이상 안 만들거야


 아무도 내 영화를 원치 않으니까


 그래도 최소한 영화 한 편은 만들었으니까 됐지 뭐


 매 순간의 암전, 저는 아무튼 암전이 좋아요


 캐릭터들 앞에 그저 카메라를 놓아둔다는 아이디

어는 오즈 야스지로와 닮았어요


 아무래도 제 미학적 취향은 더욱 단순한 형식 쪽

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어요


 배우들에게는 롱테이크가 그 무엇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요


 캐릭터를 좀 더 길게 유지할 수 있는 연극과 더

가까워지니까요


 영화 연기에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들과 작업할

경우, 그리고 감독으로서 경험이 많지 않은 상황일

때도 롱테이크는 도움이 돼요


 시에서 장시가 가끔 시인들에게 도움이 되듯이

말이에요


 흥미로운 배우가 있다고 치면 그의 연기에서 50퍼

센트 정도는 목소리에서 나오는 거예요


 흥미로운 시인이 있다고 치면 그의 시에서 50퍼

센트 정도는 역시 목소링에서 나오는 것이구요


 발성법, 문장의 구성 방식, 그것이 예술을 구성하

는 기본 소립자들이에요


 저는 로베르토 베니니가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이

참 좋아요


 좀 긴가민가할 때면 그는 모든 걸 다 한꺼번에 쏟

아내요


 대충 이렇게요


 그래, 이것을 우리는 이것을 꼭 해야만 반드시 해서 위해

서 하도록 해야 해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저는 시인들이 쓰는 시의 의미 파악을 뒤로 미룬

채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해요


 나름대로 시에 빠져들게 되죠


 언어라는 건 우리가 소통을 하기 위해 쓰는 하나

의 부호예요


 하지만 그 부호 체계 안에서조차 우리는 그 사람

이 하는 말의 고저나 억양을 통해 그의 정서적 상태

를 말할 수 있죠


 저는 수많은 메모들을 해놓은 뒤 거기서 일부를

골라 본격적으로 시를 써나가요


 존 케이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죠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얘기할 테고, 오늘

내 강연의 주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내 얘기를 들어도 우리는 아무 데도 이르

지 못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얘기를

할 뿐이죠


 잠을 자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눈치 볼 것 없어요


 왜냐하면 난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얘

기를 하고 있을 테니까요

 자리를 뜨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우리는 여전히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 채, 아무것

도 아닌 거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테니까요


 시를 쓴다는 건 마치 화강암을 큼지막하게 잘라

내는 것과 같죠


 원하는 적당한 모양으로요


 그리고 이제 그 모양이 머릿속에 있던 것과 정확

히 일치하지 않는다 싶으면 조각을 하듯 조금 더 다

듬는 거죠


 저는, 이런 광경을 좋아해요


 모딜리아니가 한밤중에 파리의 채석장에서 돌을

훔치고 있을 때, 이미 그 돌 속에서는「카리아티드」

가 태언고 있었던 거죠

 그것은 카리아의 여인을 형상화한 조각이지만 이

미 슬프고도 아름다운 한 곡의 음악이었구요


 시 속에는 모든 게 있어요


 음악, 회화, 심지어는 화학까지도 있어요


 하프를 켜던 여인이 그림 그리는 여인을 오른쪽

팔로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 있어요


 1782년 앙겔리카 카우프만이 그린 거죠


 그림의 제목은 ‘회화를 안은 시’예요


 시는 모든 걸 껴안죠


 저는 담배에 대해 하나의 물질로서 무척 존중하

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담배에 대한 서구의 태로를 보면 꽤 묘한 느낌이

들어요


 와우, 사람들이 그것에 중독되어 있어, 그것 때문

에 얼마나 많은 돈을 낭비하는지 생각해보라, 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이곳의 토착민들에게 담배는 여전히 신성한 것

이죠


 담배는 남의 집을 방문할 때 선물로 들고 가는 것

이고, 기도를 할 때 피우는 것이죠


 육체적인 삶이란 우리가 매일 행하는 바로 이 여

행인 거죠


 「이오 오브 더 호스Year of the Horse」는 닐 영과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의 음악을 다룬 자무시의

영화죠

 「파르동, 파르동 박정대Pardon, Pardon Pak Jeong―

de」는 박정대와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의 음악을 다룬 영화구요


 박정대의 시에서 음악은 늘 중요한 요소였어요


 존 루리, 톰 웨이츠,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 그리

고 이기 팝가 같은 뮤지션들이 그의 시에 가공의 캐

릭터로 빈번히 등장했고, 시집의 사운드트래에도

참여해왔어요


 닐 영 역시 자신의 음악적 성과물들을 필름에 담

아 세상에 선보여온 역사가 결코 짧지 않았구요


 「이어 오브 더 호스」의 독창서은 새롭다거나 혁

신적인 록 콘서트 다큐멘터리 제작 기법과는 그다

지 관련이 없어요


 이 영화가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음악’을 제대로

담아냈기 때문이죠


 여기서 음악과 영화 사이의 상호 보완성은 한 치

의 모자람도 없어요


 「이어 오브 더 호스」는 철저하게 올고든 로큰골

영화예요


 「파르동, 파르동 박정대는」는 철저하게 시적인 영

화구요


 누가 말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뭐랄까, 닐 영 스타일의 작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일단 시작해라,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

번 보자


 닐에겐 좌우명이 있어요


 한 번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계속 반복할 만

한 가치가 있다


 닐 영은 과거가 자신을 따라잡을까봐 두려워해요


 그래서 물어봤죠


 왜 다른 밴드로부터 이 사내들을 훔쳐 왔습니까?


 닐, 고백하시오


 웃음은 정신 건강에 좋죠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여요


 삶이란 심각하게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다


 한 늙은 무사가 쓴 『하가쿠레[葉隱]』라는 일본 책

에는 이런 말도 나와요


 큰일은 힘을 빼고 대처하고, 작은 일은 진지하게

대처하라


 야구는 무척 아름다워요, 다이아몬드 위에서 경

기를 하죠


 한국이나 미국으 어느 지녁이든 바 한 군데를 찾

아 들어가 그저 ‘시’라는 단어를 한번 말해보세요


 아마 뭇매를 맞을 거예요(웃음)


 하지만 저에게 시는 무척 힘 있고 아름다운 형식

이에요


 또한 많은 언어상의 혁신은 시에서 오죠


 시인들은 늘 앞서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의 언어에 대한 감각, 그들의 비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죠


 언어는 추상화되고, 시의 형식 속에서 무척 아름

다운 부호로 사용될 수 있어요


 여러 뉘앙스로, 다양한 의미로 변주될 수 있죠


 그 안에 음악이 담겨 있기도 하구요


 또한 산문에서 축소된 것이기 때문에 수학적이면

서도 아주 추상적이에요


 많은 시인들이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의 가장자리

에서 살았어요


 결코 돈을 벌기 위해 시를 쓰지 않았죠

 윌리엄 블레이크의 경우 오직 그의 첫 시집만이

정식으로 출간되었어요


 그 이후에는 평생 자비로 출간을 했구요


 살아생전에는 누구도 그의 시에 제대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많은 시인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죠


 저는 시인들을, 뭐랄까,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선각자들이라고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저는 시가 좋아요, 누가 뭐래도 시가

좋아요


 그렇다고 해서 저에게 뭐 시비 걸 분 계신가요?

(웃음)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파리의 지하

로 뻗어 있는 수염이 보일 것이다


 불란서 고아들의 수염이다


 이 수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을 소용돌이 음

악이라고 한다


 불란서 고아들이 마시는 술, 그들이 나눠 피우는

담배, 그들이 부르는 노래, 밤새도록 이어지는 대

화, 한밤중 술을 마시다 문득 창밖을 바라볼 때 펑

펑펑 쏟아지는 눈발


 푸른 담배 연기


 눈이 내리는 영화, 눈 속에 파묻힌 시


 이 모든 게 불란서 고아의 음악이다


 파리의 지하 수염은 말한다


 그런데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는

불란서 고아인가


 아무렴, 어디로든 투항할 수 없는 마음이 허공에

걸려 눈부시게 펄럭이고 있다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어깨에 행낭을 걸친 톰

웨이츠가 걸어갔다


 그때 톰 웨이츠의 행낭이 들어 있던 불란서 고아

의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잠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덧문을 젖히고 하

늘을 향해 얼굴을 들면 전개될 하루가 하늘 위에 그

려져 있듯, 영혼의 모든 인상은 얼굴 위에 그려진다


 파스칼 키냐르의 말이다

 날씨 참 좋네요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야겠어요


 같이 갈래요?


 * 이 글의 일부는 짐 자무시의 말에서 발췌하고 우아하게 훼손하여 인

 용하였다, 짐 자무시보다 더 짐 자무시 같은 말은 박정대의 것이고

 박정대보다 더 박정대 같은 말은 짐 자무시의 것이다







 박정대

 불란서 고아의 지도, PIN 20,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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