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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 (부- 시가 나를 알고 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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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표현되지 않은 불행




 1


 아무에게도 헌정하지 않는 노래가 좋았다

 누구를 위해 그리지 않는 그림이 좋았다

 나는 네 사진을 세워두고 미완성의 자저적 장시

를 쓰지 않는다

 서로를 돌보지만 바치지는 않는 삶에 관하여 생

각한다


 너는 새알을 가지고 왔다

 아무도 가지 않는 음침한 해변에서 주운 거라고

했다

 가슴이 품은 한없는 슬픔처럼 작은 알이었다


 나는 그 알에서 태어날 바다의 언어를 해독하고

싶다

 실잠자리가 건드린 물결처럼 커다랗게 일렁이는

마음으로

 

 달이 움직이는 동안

 둥글고 환하던 빛이 사라지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의심했다

 혀끝으로 대보는 봉합한 잇몸처럼

 우리 사이에 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아무에게도 헌정하지 않는 노래가 좋았다

 서로를 돌보지만 바치지는 않는 삶에 관하여 생

각한다

 하지만

 너는 환기구를 찾고 나는 창문이 필요해

 툭 치면 빛나는 색유리 조각이 흔들리는 유리구

슬처럼

 우리가 투명한 심장을 가졌다면

 환희의 노래를 지었을까?


 알 수 없는 사랑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유리창에 부딪쳐 죽은 새의 얼굴로


 2


 식성이 비슷한 사람이 물었다

 그런 적 있어?

 애쓰지 않은 적

 밥으로 도피했던 적

 막 구워낸 빵을 푹신푹신한 의자에 앉아 뜯어 먹

은 적


 적도 없고 친구도 없고

 끄덕거리는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흔들거리는 양팔을 흔들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일 년에 한 번 오는 첫눈보다 수시로 내리는 비

가 좋다

 일 년에 한 번 트리가 되는 나무보다 뾰족하지

않은 낙엽이 좋다

 세 가지 소원을 말하기보다 세 가지 비밀을 갖는

쪽을 택했다


 오늘은 아무도 밉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일회용

품처럼 영구적으로 처리가 안 되었다


 살의를 느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아

니라, 살의를 숨길 줄 아는 사람들의 도시에서 텀블

러에 아메리카노를 채우려고 줄을 섰다 사람의 체

온보다 햇살의 크기보다 커피의 농도가 중요했다


 자신의 인생을 8분 50초로 요약한 독립영화 감

독의 작품을 보고 나서 영화에 나오던 맥락 없는 섹

스 장면처럼 간헐적 단식을 결심했다

 둘은 셋보다 배반하기 쉽다는 생각을 했고 주석으

로 만든 부엉이가 지혜를 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해변에서 너의 이름을 쓰고 파도가 지울 때

까지 기다렸다 글자가 지워져도 떠내려가지 않은

돌멩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빈 콜라병에 남은 일회

용 스트로도 주머니에 넣었다 어울리지 않는 둘은

서로를 헤치지 않았다


 모래를 샀다 벌크형으로 주문했다 내 고양이와

보낼 마지막 며칠을 위하여 나는 화분을 버렸고 반

려동물도 다른 사람에게 준다


 작은 범위에서 움직인다 도착한 옷장은 조립하

기 어려웠고 설명서는 완벽했다


 이따금 엄지와 검지를 펴려 관자놀이에 갖다 대

기도 했지만 돌연 폭발하는 기쁨을 기다렸다 다섯

손가락은 공평하게 시려웠고


 4번 출구에서 직진했지만 너는 없었다

 멀리서 보면 너였지만

 더 멀리서 보면 네가 나였다 일회용 앞치마 같은

느슨한 셔츠를 입고 너는 적당한 거리를 좋아했고

나는 극단적인 모서리였다

 누가 더 불행할까 부끄러움과 침울을 경주했다


 환한 분수대가 있었다 환희를 느끼는

 배관공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영도를 기다린다








 김이듬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PIN021,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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