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할머니
세상이 뒤숭숭할 때마다
이럴 땐 이런 소리
저럴 땐 저런 소리
쉬파리 똥 속으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코에 걸고 귀에 걸고
아무데나 꿰어 걸고
이 소리 저 소리
옳은 뭔 소리에데 또 그 소리
뻔한 세상 어렵게 만들며
신문지에 대문짝만한 얼굴 내밀고
텔레비에 몸 제끼고 버티고 앉아
자기 자식들은 외국에
들어가 있다면서
(들어갔다가 아니라 나갔다가 맞는데도)
그들은 하나같이
경제안정에다 통일 어쩌고 저쩌고
꺼떡하면 전후세대는, 젊은이들은
전쟁을 겪지 않아 뭘 모른다느니
도덕이 마비되었다느니
윤리가, 그놈의 알량한 그들의 윤리가
어찌저찌 됐다느니
게거품을 물면서도
누가 분단의 책임을 져야 하고
누구들 땜에 나라가 요모양 요꼴인지는
말하지 않으면서
누가, 어느 누가 그 향기로운
도덕을 마비시켰는지는
숫제 뻥긋도 안하면서
꺼떡하면 맨맞한 백성들만 나무라며 헌다는 소리들이
우리도 이제 이만큼 살면
조금만 더 참으면
(저그들은 한번도 안 참은진 모르고)
중진 선진 어쩌고 저쩌고
말끝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은 하면서
끝에 가서는
그 속 들여다보이는 애국이요 반공이요 희생정신
똥싼 주제에 매화타령 하면서
요새는 건강을 위해 골프를 친다면서
윗물을 꾸정꾸정거리고 있는
뭔 박사 뭔 박사 미국 박사 어디 박사
무슨 고문, 무슨 위원, 전문가라는 역사적인 거창한 인사
들보다
평생을 농사꾼으로 늙으신
우리 할머니가 더 좋다.
세상이 골백번 변한 것 같아도
실은 변한 것은 언제나 그 속이 그 속으로
저그들 끼리끼리 옥작옥작 들쳐먹는지 어쩐지도 모르시
며
자기 땅에서 자기 일을 다 하시며
그저 농사일 아니면
이 논밭뙈기 아니면
죽는 줄만 알고
죽을둥 살둥 뼈가 부서지드락 일을 하시며
하늘의 일곱 칠성님네
산에 산신령님
물에 용왕님네, 길에 길대장
당산나무 당산님네랑
함께 늙으신 할머니,
동학혁명 이듬해에 나셔서
온갖 세사풍파에 시달리고 부대끼시면서도
그저 조상님네 섬기며 사신 할머니,
전깃불도 쓸 줄 모르시고
그 좋다는 선진조국도
그 좋다는 팔륙 팔팔도 모르시지만
지금도 봄이 오면
텃노노 논두렁에서
삼짇날 숙떡 달떡 해먹을 쑥도 캐시고
가을철엔 지팡이 휘두르며
우여우여 닭을 쫓고
훠이훠이 새를 쫓고
고추 담고 콩 가리고
작은집 큰집 다니시며
홀로되신 우리 어머님더러
혼자 어떻게 험헌 농사 지면서 살끄나
그저 독헌 맘 묵고 살아라고
염려도 해주시는
우리 할머님이 좋다.
구, 구시대에도 그래놓고
맨날 구시대를 나무라며
입이 열 개라도 할말 없는 사람들 위에 두고
똥 묻은 줄 모르고
겨 묻었다고
입만 뻥긋하면
덴마크요 이스라엘
입만 뻥긋하면
미국에서는, 일본은, 또 어디는
꼬치꼬치 따져서
밥먹고 똥싸고 걷는 것까지
그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허겄냐고
뭣이든지 거기다 꿰어맞추며 나무라는
알량하고
뻔뻔하고
낯짝에다 철판 깔고
똥 뭉개고 앉아
제 똥 구리내 나는지 모르고
한술 더 뜨는
줏대 없고 넋 빠지고
창사 없는 인사들보다
나는 할머님이 더 좋다.
내가 어디 가려고 인사드리러 가면
국민학교 선생인 나더러
면에서 나왔소,
조합에서 나왔소,
산림계에서 나왔소 하시다가
너도 인자 서울로 갈래, 하시는
할머님이 나는 눈물겹도록 좋다.
일제 이제 그제 또 그 공화국
보리밭에 길내놓고 다니며
밟고 뭉개고 쥐어뜯고 빼앗은 것 같아도
실은 하나도 안 빼앗기신 할머니.
일제 때 삼일만세 때
육이오 난리통에
다짜고짜 어느 편이냐고
바른 대로 불라고
몽둥이 들이대고 주리틀고
총칼 들이대며
손목만한 대나무가 박살이 나드락
할아버지 등짝을 두들겨팰 땐
오장육부가 뒤집히고
숙에서 천불이 나고
끝내는 육이오 난리통에
총맞아 돌아가신
남편 시체 부둥켜안고
언 강을 치며 하늘 원망하며
울었다는 할머님.
손자손녀가 고손자까지 쉰 명이 넘어도
이 잡아주고 머리 감겨줄 손녀 하나 없고
화롯불 하나 담아다 줄 손자 하나 없이
산중에서만 사시는 할머님의
죽음꽃 핀 갈퀴 같은 손을 보면
나는 서럽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지만
곧 일곱 칠성님네가 나를 데려간다며
나, 죄진 일 하나 없다며
얘야, 장구 좀 가져오너라
정월에 굿소리를 안 냈더니
텅텅 빈 소막 돼지막 헛처 여기저기
귀신들이, 오만 잡귀들이 득실거린다며
손자라고는 너 하나밖에 없고
니가 제일 좋다며
너는 서울 가지 말라시며
어쩌다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만 해도
오늘은 누가 또 서울로 간다냐,
뭣이던지 서울로 다 가져가는구나 하시는 할머니.
같이 밥이라도 먹을 때는
아나, 더 묵어라
뭐니뭐니 해도 배가 든든해야 한다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퍼서 준 밥이 나는 목에 걸려
밥과 눈물을 꿀꺽꿀꺽 삼키면
얘야, 천천히 묵어라,
빨리 묵는 밥이 얹히느니라 하시는 할머니,
우리 할머니가 좋다.
김용택
섬진강, 창비시선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