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24
맑은 날
할머님은 아흔네 해 동안 짊어진 짐을 부리고 허리를
펴 이 마을에 풀어놨던 숨결을 구석구석 다 거둬들였다가
다시 길게 이 작은 강변 마을에 골고루 풀었읍니다.
할머님이 살아생전 밤낮으로 보시던 할머니 나이보다
더 늙고 할머니 일생보다도 더 만고풍상을 겪어낸 뒷산
귀목나무,
“올해는 바람이 없을랑갑다
까치집을 높은 데 진 걸 봉게로.“
“올해는 농사일이 바쁘겄구나
나뭇잎이 한꺼번에 핑 걸 봉게로.“
할머님이 숨을 모두 거두어들여 맺었다가 마지막으로
길게 풀었을 때 가장 낮아진 새벽 물소리와 그 귀목나무
죽은 삭정이 가지 몇 개가 바람 없이 부러져 떨어지는 소
리를 나는 식구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들었읍니다.
할머님이,
강 건너에서
강 이쪽으로
도롱곶 논밭에서
텃논 텃밭으로
텃논에서 마을회관으로
회관에서 이웃집으로
이웃집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방으로
점점 그 모습이 사라지신 후에도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이웃 강 건너 마을로 시집 간
딸이 해마다 하얀해지느 머리로 강길을 따라 왔다가
찔레꽃 피고
깨꽃이 피고
쑥국새가 울어쌌고
혹은 눈 나리던
저문 강길 풀숲을 헤치며 왔다가
돌아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님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알고는
“참 오래 살기도 허신다인……”
“인자 죽을 때도 되얐재” 하다가
금방 또 할머님을 잊어버리고 허던 일들을 했읍니다. 그
러시기를 여러 해, 온몸에 죽음꽃이 번져가고 움푹 패여
가는 볼로 할머님은 “내가 왜 죽어, 이렇게 멀쩡헌디. 나
는 더 살고 따땃헌 춘삼월에 날 좋은 날 죽을란다.“
또 그렇게 보낸 몇 해 봄을 언제 죽을려고 했었냐는 듯
참으로 말짱하게 살아나시곤 하셨지만 할머님은 죽을 때
를 향해 자연스럽게 삶의 어느 끝에서붙터 차근차근 죽음
으로 자기를 이끌어가셨읍니다. 뒷산 귀목나무처럼.
할머님은 이따금 방문을 열고 마루에 앉은 나더러 여러
가지 이야기 끝에마다
“내가 죽으면 내 간을 꺼내 보거라
내 간이 있는가 다 녹아부렀는가.“
할머님이 살아나오신 저 배고픔과 한숨과 시달림과 빼
앗김, 저 눈물 많은 세상 세월도 이제 밥 먹을 일 외엔 일
을 다 빼앗겨버리고 죽음의 근처에 다다라가시며 할머님
은 죽음의 한 고비를 넘어설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시곤 하
셨읍니다.
할머님의 때절은 저고리가 지붕 위로 던져지고 새벽 어
둠이 서서히 문짝 없는 대문을 빠져나가 아침 강물로 가
서 젖어 흘러가고, 딸네들이 허연 파뿌리 같은 머리채를
풀어헤치고 신발을 벗어 들고 마을 앞 느티나무에서부터
곡성을 터뜰며 새벽빛을 따라 초상마당에 들어서며 어
매 어매 불쌍한 우리 어매를 불렀읍닌다.
저 깊고 끝 모를 우리들 한의 세월
황토땅 깊이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할머님은 빤듯이 누워
돌덩이처럼 차고 캄캄하게 식어갔읍니다.
느닷없는 곡성과 울음소리들을 따라 동네 사람들이 하
나둘 모여들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아침 연기를 곧게 하
늘로 올리며 마을을 깨우고 헛간 구석에 남은 어둠까지 모
두 태우며 할머님의 죽음을 숨김없이 드러내주는 맑디맑
은 봄볕이 우리들 가난한 마당에 쏟아져 깔렸읍니다.
살구꽃 그늘이 마당에 떨엊고
앵두꽃 그늘이 뒤안 우물에 드리워지고
아이들은 돌멩이를
강물에 던져
물결을 일으키며
강가에서 놀고 있었읍니다.
차일이 쳐지고
그 동안 몇번 키웠다 잡아먹고
다시 키워논
할머님 초상용 돼지를 잡아
내장을 삶아 먹고
술들이 거나해지자
초상마당은 할머니 죽음과 상관없이
활기를 찾아갔읍니다.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모여들어 무슨 일이든지
척척 손과 발이 안암팎으로 맞아떨어져
익숙하게 일들을 추렸읍니다.
객지에서 하나둘 손주들이 돌아올 때마다 잠깐씩 울음
소리들이 뒷산을 가만가마히 울렸읍니다. 마을은 오랜만
에 사람 사는 동네처럼 시끄러워지고 큰아버지 큰어머니
할머니만 사시던 큰집에도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처럼 굴
뚝마다 연기가 나고 방들이 따뜻해졌읍니다. 그런 풍경들
은 할머님의 죽음과 별 상관 없이 펄펄했고 또 평화스럽
고 때로 아늑하게 보이기까지 했읍니다.
나는 이따금씩 병풍 뒤에 가서
하얀 이불 홑청을 떠들고
밭고랑같이 주름진
할머님의 얼굴을 보곤 했읍니다.
밖의 소란과 죽음의 조용함으로 서로 하루 해가 맘껏
길게 지고 산그늘이 뒷산을 내려오자 느티나무 까치집 그
림자가 마당에 떨어졌다가 조용히 마당을 떠나 앞산을 넘
어갔읍니다. 마당엔 생솔나무 모닥불을 피워 뒷산 까치집
높이에서 연기를 풀었읍니다. 산그늘이 마을을 빠져 나가
고 어둠이 뒷산길을 따라 내려와 마을을 덮자 타오르는 불
빛이 뒷산을 훤하게 비췄읍니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뒷산
에서 너울너울거리고 불길에 빨갛게 치솟아올라간 불티는
어디까지 갔다가 오는지 하얀 재로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에 내려앉아 삭아 없어지곤 했읍니다. 아이들은 불 가에
쭈그려 앉아 연기를 피해가며 자기 어머니들이 얻어다 준
떡이나 고기를 먹으며 쓸 데 없이 불을 뒤적거려 자꾸자꾸
불티를 하늘로 높이 올리며 불티가 올라가는 하늘을 쳐다
보곤 했읍니다. 사람들 얼굴에 불빛이 비칠 때마다 얼굴
은 각양각색의 탈을 쓴 것처럼 보였습니다. 탈들은 여러
가지 표정으로 죽음을 들여다보고 있었읍니다.
죽음이 뭔지 잘 모르는
어린 손녀딸 하나가
하얀 상복을 입고 불 가에 서서
불티가 올라가는
캄캄한 하늘을
오래오래 쳐다보다가
어둠에 젖은 별들을 보다가
하얀 상복 치마에
불티를 받고 서 있었읍니다.
마지막으로 막둥이 아들이 오자 입관을 서둘렀읍니다. 아
들딸과 손자 고손자들로 방은 오랜만에 발 디딜 곳 없이
꽉 찼읍니다. (아, 몇해 전까지만 해도 할머님 생신이나
할아버지 제사 때만 되어도 형제들로 인하여 방마다, 마
루까지 꽉 차 밥과 떡을 나눠 먹던 그 시끄럽던 날들이 떠
올랐읍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떡 한 조각씩 먹으며
우리들은 학교를 가곤 했었읍니다.) 관 속에 할머님은 편
안히 눕혀지고 헌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관 속에 넣을 때
헌 옷가지들 속에서
마른 거름가루
마른 흙가루
마른 솔잎 부스러기들이
벼알이나 보리씨들이
할머님의 메마른 눈물같이 떨어지고
반짝이며 딸랑 무엇이 관 속에 떨어졌읍니다.
현금 육십 원,
아, 두꺼운 얼음장이 쩌렁쩌렁 금가는 총성이 들리고
산이 울렸읍니다.
동학과 일제와 난리,
앞산 보릿잎들이 부르르 온몸을 떨고
뒷산 귀목나무 삭정이 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강물이 출렁거렸읍니다.
아우성 소리가,
총 맞은 할아버지를 뻔히 보면서도
달려가지 못하던
할머님의 울부짖음이
내 귀를 때렸읍니다.
꽁꽁 언 강 위에 피 흘리는
할아버지의 시체.
관 뚜껑을 닫고 할머님의 모습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마
을이 터질 듯 울었읍니다. 그 울음소리 속에 할머님의 관
에 못 치는 소리가 지나갔읍니다.
못 치는 소리가 지나가자 머리가 허연 할머님은 울음소
리 속을 빠져나가 한 손은 굽은 등에 얹고 한 손으론 지
팽이를 짚고 오랜만에 홀가분한 빈 몸으로 바람만 바람만
따라 보리밭 매던 할머니 등 같은 산기슭으로 산기슭으로
오르다, 까치집이랑 동네랑 강물이랑 우리들 집이랑 바라
보기도 했읍니다. 저 깊고 깊은 산허리 양지쪽 맑은 햇빛
속에 노란 잔디로 덮인 선산의 무덤들, 육이오 때 총맞아
죽은 할머님의 남편과 큰아버지, 저지난 해에 돌아가신 우
리 아버지, 젊어서 죽은 내 아내와 사촌 동생 용식이, 어
려서 죽은 어린 조카들이 선산머리 낙락장송 아래 나와 할
머님을 고이 맞아 잔디밭에 나란히들 앉아 맑은 햇빛을 쐬
며 저 굽이 돌아가며 부서지는 푸른 봄 강물을 눈이 부시
게 보고 있었읍니다. 할머님은 눈이 부시는지 죽음꽃 핀
앙상한 손으로 해를 가리고 있었읍니다. 손사래 사이로 빛
이, 고운 봄빛이, 새어들었읍니다.
그렇게 저렇게
하루가 가고
하룻밤이 지났읍니다.
그렇게 또 돌아온
그 이튿날 밤, 밤이 깊어지자 빈 상여가 마당에 놓여지
고 상여꾼들이 달라들어 빈 상여를 어깨에 올렸읍니다.
불쌍허네 불쌍허네
수리재떡이 불쌍허네
어어노 어어노 어어노……
상여가 서서히 앞뒤로 흔들거리며 상여소리가 구슬프게
울리며 놀이를 시작하자 마당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마당
가로 뚤방으로 나가 서고 상주들이 하나씩 허던 일들을 멈
추고 상여 뒤를 따라 술 취한 소리로 아이고 할매, 아이고
할매, 불쌍한 우리 할매 하며 우는 시늉들을 내기 시작했
읍니다. 모닥불은 사람들의 얼굴에 이글이글 붉은 탈들을
각각 씌웠읍니다.
여기저기 떠들고 싸우고 고함치며 고달픈 삶과 허허로
운 인생과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노름꾼들도
조이던 패를 놓고 마당 가에 빙 둘러섰읍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어린 고손주들은 오랜만에 즐거운 장소를 만난 듯
상여 밑으로 들라거리며, 어머니 상복을 뒤집어쓰며 지팽
이를 빼앗아 도망다니고 쫓는 장난을 치고, 마당 가에 둘
러섰던 사람들 중에서도 울고 싶은 사람은 붉은 탈을 쓰
고 상여 뒤를 따라다니며 맘 놓고 아이고오 아이고오 소
리를 찾았읍니다. 빈 상여놀이가 벌어질 때마다 술 취해
턱없이 울어대던 정규 아재는 오늘도 술이 고주망태가 되
어 지팽이로 땅을 치며 생소리로 아이고 아이고를 뚝뚝 끊
어가며 울었읍니다. 정규 아재가 상여놀이 마당에 뛰어들
어 오만 몸짓으로 바락바락 악을 쓰며 울기 시작하자 판
은 무르익어, 발을 동동 구르며 허리를 꺾으며 사람들은
눈물을 찔금거리며 웃기 시작했읍니다. 술만 취하면 아무
자리에서나 어깨춤을 추시는 아랫집 큰아버님은 상복과 건
을 쓴 채 오늘도 상여를 껑중껑중 둥개둥개 맴돌며 허이!
허이! 소리를 질렀읍니다. 커다란 상여 그림자와 사람들
의 그림자가 지붕을 덮고 여기저기 흔들흔들 너울너울거
리며 슬픔에 젖어들어가기 시작했읍니다. 마루, 부엌, 헛
간, 담 너머 사람들이 슬픔을 찾아 젖어들어가자 캄캄한 앞
산 뒷산이며 마을의 집들이며 나무들이 사람을 따라 너울
너울 어노 어노 흔들리며 슬픔의 배를 타기 시작했읍니다.
세상을 싣고 배는 바다로 떠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자기
의 슬픔으로 빠져들어 잠겼다가 모두의 서러움으로 합쳐
져 슬픔은 모닥불로 훨훨 붉게 타올랐읍니다.
어매 어매 불쌍헌 우리 어매
불쌍허요 불쌍허요
우리 어매가 불쌍허요
인생살이가 불쌍허요
어매 어매 우리 어매
우리 어매가 떠나가네.
목을 놓아 울며 어머님이 상여를 붙잡고 구슬프게 노를
잡아 저어가기 시작했읍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담 너
머 아낙네들은 코를 팽팽 풀어 치맛자락이나 담벼락에 닦
으며 붉은 탈의 얼굴들이 눈물에 젖어 반들거리기 시작했
읍니다. 어머님의 슬픈 배는 출렁출렁 밤바다로 노를 저
어 가며 거칠고 험한 파도를 넘어가다가 다시 잔잔한 바
다를 순조롭게 나아가다가, 멀리멀리 저승까지라도 가겠
다는 듯이 점점 더 구슬프게 노를 저어 아득히 떠가며 상
여 소리만 울렸읍니다. 배는 점점 이승과 멀어지며 너울
너울 하늘로 떠올랐읍니다. 할머님이 저 멀리 하늘에서 하
얀 옷을 입고 평소에 굿을 하시던 것처럼 덩실덩실 어머
님을 이끌어갔읍니다.
배가, 상여놀이 마당을 실은 배가 불티처럼 이승에서 깜
박깜박 사라지려 하자,
“아이고 숨 넘어가겄네
나도 인자 고만 울랑만
나만 머누리간디
나 혼자만 울고 있었당게……“ 하시며 어머님이 느닷없
이 곡을 뚝 그치고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상
여와 모든 사람들은 우뚝 딱딱한 땅으로 뚝 떨어져버렸읍
니다. 사방의 탈들은 슬픔이 딱 그쳐 표정들이 딱 멈춰지
더니 한참을 멍해 하다가 와르르 폭소를 터뜨리는 바람에
탈바가지들이 붉은 사금파리처럼 부서져 흩어지며 불길로
치솟아올라가 버렸읍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부서진 탈
들을 날려버리고 사람들은 초상마당의 본얼굴을 찾느라
부산해졌읍니다.
다시 마당 가의 사람들은 여기저기 제자리로 흩어져,
노름꾸들은, “패 돌려 패, 누구 잡을 차례지” 하며 자리
를 잡고, 윷이야! 모야! 윷판이 벌어지고 부엌은 부산
해지며 상주들과 사람들은 열을 올리며 끊어진 이야기들
을 주섬주섬 이어갔읍니다.
“참 내, 난 통안이떡이 참말로 우는 줄 알았당게. 자,
한잔씩 들어, 서울 산다는 것이 꼭 도깨비 바닥이여“ 어
쩌고저쩌고 술잔들을 돌렸읍니다.
팥죽이 끓여져 여기저기 서고 앉아 후루룩후루룩 팥죽
들을 마신 후 여기저기 쓰러지고 더러 자기 집으로 돌아
가고 초상마당은 한산해지기 시작했읍니다. 헛간과 골방
노름꾼들이 이마를 맞대고 앉아 정신없이 패들을 돌려 조
이고 오랜만에 뜨겁게 불들이 피워진 이 방 저 방 방마다
오랜만에 함께 모인 사촌들은 “죽어도 고다 고”를 찾고
방마다 온갖 친척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상복을 입은 채,
건을 쓴 채 쓰러져 잠들어갔읍니다. 작은 상주인 아랫집
큰아버지는 술이 취해 할머님 영호 앞에 잠이 들고 늙으
신 큰아버지 홀로 멍석 위에 앉아 할머님을 지키고 계셨
읍니다. 이따금 노름패들의 술과 국을 떠다 주느라고 어
머님의 잠먹은 소리가 조용조용 들리고 모닥불은 나무가
거의 다 타 잉그락만 남아 이글거렸읍니다. 이따금씩 노
름꾼들이 내게로 와서 돈을 빌어 갔읍니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패들 밖에 아무렇게 쓰러져 잠들고 꾼들은 패를 조
용조용 거두고 조용조용 깔아 조였읍니다. 패를 깔고 조
이는 노름꾼들 밖에서 밤은 깊어지고 새벽이 다가오고 있
었읍니다.
어둠의 끝에서 날이 새기 시작하자 이 방 저 방에서 두
세두세 뿌시뿌시한 얼굴로 잠을 쫓아내며 사람들이 일어
나고 아침밥들을 서둘러 먹고 상여가 꾸며지기 시작했읍
니다.
상여는 회관을 나가 정자나무 밑에서 거리제를 끝내고
강길을 따라 어노어노 핑경소리를 울리며 갔읍니다. 산천
은 푸르러지고, 어머님은 이틀이나 울어서 쉰 목소리로 상
여채를 붙잡고
어매는 좋겄네
어매는 좋겄네
다 살고 죽었응게
어매는 좋겄네
어매 자식 만나로 강게
어매 남편 만나로 강게로
어매는 좋겄네
구슬프게 강물을 출렁이게 하고, 머리가 허연 큰고모는
어매어매 하며 눈물 없는 메마른 울음을 울며 새끼줄에 노
잣돈을 걸었읍니다. 동네 사람들은 오게오게 모여 서서 눈
물들을 흘렸읍니다.
살아생전 고인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후회에 울고 잘
했으면 정으로 더 서러운 것이 죽음이어서 맑은 햇살 속
사람들의 눈물은 이 산천의 눈물처럼 초라하고 강물처럼
가난했읍니다.
상여는 강길을 벗어나 논두렁 밭두렁을 넘고 넘어 산으
로 산으로 험헌 산으로 올라챘읍니다. 논밭두렁을 넘고 가
시덤불을 헤쳐 넘을 때마다 상여꾼들이 떼를 쓰면 상주들
은 새끼줄에 돈을 걸었읍니다.
올라가세 올라가세
태산준령을 올라가세
북망산천을 올라가세
오늘 해는 여기서 놀고
내일 날은 어디 가나
어노 어노 어어노오
인저 가면 언제 오나
명년 삼월 돌아오지
올라가세 올라를 가세
어노 어노 어어노오
북망산이 머다더니
건넛산이 북망일세
어어노 어어노 어어노오
저승길이 먼 줄 알았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상여는 봄볕 따사로운 산으로 길을 내며 올라갔읍니다.
상여가 지나간 자리마다 어린 보리들이 새파랗게 쓰러지
고 묵정밭을 지나 가시덤불 밭두렁을 넘을 때마다 상여소
리는 더 구슬퍼지며 종이꽃이 찢어져 산딸기꽃 맺힌 가시
마다, 찔레순 돋은 찔레 가시마다 걸렸읍니다. 햇빛 좋은
산허리를 지나는 상여소리가 동네와 아주 멀어지고 아득
해지자 동구 밖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한꺼번에 흩어졌읍
니다.
상여 뒤에 처져 누이들은 쭈그려 앉아 돋아나는 쑥이나
나물들을 뜯기도 하고 하얀 싸리꽃을 꺾어 들기도 하며 서
울에서 온 손녀딸들은 돈 주고야 사 먹는 나물을 뜯어 “천
원어치는 되겄다야“ 하며 천 원어치의 나물과 맑고 깨끗한
햇볕이랑 하얀 상복 치마에 싸 담았읍니다.
땅이 파 헤쳐져 붉고
사람들은 쓰러지며
다사로운 봄볕에 취했읍니다.
관 위에 흙을 던질 때마다
무덤 속을 따라들어갔던
햇살들이 쫓겨났읍니다.
할머님은,
그 좋은 햇살 한줌 쥐지 못한 채 묻히고
큰아버님은 관을 다 덮고
따독따독 흙을 밟았읍니다.
동네 사람들은,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절대 못 판
다는, 이제는 묵어 쑥대만 우북한 선산 삼밭머리 생땅을
붉게 파 산을 눈 띄워 할머님의 눈에 흙을 넣고 할머님 눈
과 산의 눈을 고스란히 감겨가며 뗏장을 둥그렇게 얹었읍
니다. 여기저기 무덤들 속에 할머님의 무덤은 새로 둥그
렇고 평화스럽게 드러나고 상주들은 상여가 왔던 길을 되
짚어 발자욱을 찾아 디디며 뒤돌아보지 않고 내려갔읍니
다. 가시덤불 묵정밭들의 길과 논밭두렁을 걸으시는 일흔
이 넘으신 큰아버지의 샛노란 삼베 상복은 푸른 보리밭들
속에 유난히 호젓했읍니다.
사람들은 죽어
산으로 가고
마을은 텅텅
비어가고.
큰누이와 작은누이와 뒤떨어져서 나는 돌아왔읍니다.
할머님이 강 굽이굽이 논밭 구석구석 숨을 거두어 모아
풀어버린 숨결 같은 진달래가, 핏빛 진달래가 숨결이 돌
아오듯 피어나고 있었읍니다.
진달래꽃 피는 산길로
사람들이 흙을 털고
길게길게 취해 하산하고
할머니 굽은 등 같은 산굽이를 돌며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읍니다.
장지로부터 마지막 사람이 떠나자
산이 우뚝우뚝 솟고
우두둑우두둑
산의 뼈마디 소리가 들리며
잠깐 사이 부산해지는 소리를
나는 들었읍니다.
할머님의 손과 발, 온몸이
다 닿은 이 산천에
봄이 오고 있었읍니다.
할머님의 주검마저 없는 집엔 하나씩 하나씩 사람들이
객지로 뿔뿔이 흩어져 나가고 동네는 며칠 전으로 한산하
게 돌아가고 있었읍니다. 나머지 늙은 어른들 두엇이 영
호를 새로 짓고 서럽도록 맑고 가난한 햇빛 좋은 황토흙
마당에 흩어진 물건들을 제자리로 치웠읍니다. 시꺼멓게
그을린 집과 금간 흙벽 여기저기 헛간 구석마다 나딩구는
녹슨 연장들과 등태 없는 지게들, 밑동 썩은 절구통과 비
맞아 삭은 덕석과 맷방석들, 녹슬고 부서진 경운기 부속
들, 무엇보다도 우리 어렸을 적 할머니와 화로 곁에 모여
앉아 놀았던 벽 무너진 쇠죽방을 쳐다보며 나는 쓸쓸해 견
딜 수가 없었읍니다. 어린 손주 하나가 소줏병에 덜 핀 진
달래 몇 송이를 꽂아 할머님 사진 앞에 놓고 있었읍니다.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과 움푹 패인 볼에 진달래빛이 물들
었다가 사라졌읍니다. 뒷산 귀목나무 까치들이 울며 푸드
득 날아가며 까치 그림자가 마당을 훨훨 지나갔읍니다.
마을은,
봄날의 부산했던
강변 작은 마을은
조용하고 맑기만 했읍니다.
꽃밭등의 저녁 햇살이
눈부시게 사라지고
비질해 논
비질 자국마다
산그늘이 내리며
서럽게 해가 뚝 떨어졌읍니다.
나는 할머님의 헌 옷이며, 베로 기워 다시 회푸대로 더
덕더덕 바른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모집짝이며 바느질 그
릇, 헌 신이며 때 지난 옷가지며, 헌 담뱃대를 뒤적뒤적
뒤적거려 태우며 태울 것밖에 없는 할머님의 일생을 더듬
어 다시 뒤적거리며 이 작은 산천을 둘러보았읍니다.
해 저문
뒷산이 내 등을
내려다보고
나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흘러가는 강물에
울었읍니다.
마지막으로 머리가 허연 고모님이 징검다리를 건너 희
끗희끗 어둑어둑 풀 우북한 산 아래 강길을 따라 가고 있
었읍니다.
불빛이 앞산을 비추며
강 깊이 가만가만 환하게
타고 있었읍니다.
‘얘야, 내가 죽으면
내 간을 꺼내 보거라
내 간이 있는가 녹아부렀는가.“
김용택
맑은 날, 창비시선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