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
내가 아는 한 선배는 술에 취하면,
야, 내가 전방에서 밥풀때기 두 개 붙이고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적에 말이야, 우리 소대에 애새끼를 둘이
나 둔 나이 든 사병이 하나 있었거든 전라도 해남이 고향
인 놈이었는디 ↗도, 불알 두 쪽밖에 없는 놈이 어쩌자고
지 식구들을 강원도까지 끌고 와서 부대 바로 앞에 셋방
을 얻어 살게 했어야 짬밥 퍼먹으면서 저도 얼마나 식구
들이 보고 싶었겄냐, 내 참, 물어보나마나지 아닌게아니
라 사내자식이 눈물은 많아가지고 외출 나갔다가 사나흘
쯤 지나면 새끼들이 보고 싶다고 내 앞에서 소대장님, 소
대장님, 하면서 찔찔 짜는 게 하루이틀이 아녔지 내가 어
쩌겄냐, 이 눈치 저 눈치 봐가면서 바깥출입 할 수 있도
록 자주 편의를 봐줬다는 거 아냐 쓰발, 지놈이야 한번
나갔다가 지 각시 배를 몇번이나 타고 오는지 모르지만
나는 뭐냐, 그때가 스물여덟 새파란 나이 아녔냐, 나는
어쨌겠냐고 말이야, 여하튼 그놈이 하루는 지네 집에 하
번만 다녀가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거야, 그래 할 수 없이
저녁때가 다 되어서 그놈하고 같이 그놈 식구들 사는 단
칸방엘 갔는데 야, 말도 마라 말이 집이지 시멘트 벽돌
몇장 쌓고 슬레트 몇장 얹어놓은 그 시답잖은 집에 컴컴
한 굴 같은 방에 그놈 식구들이 오소리같이 살더라니깐,
백 촉도 아니고 육십 촉도 아니고 전기세 아낀다고 삼십
촉 알전구 달랑 하나 켜놓은 방구석에 들어섰더니 웬걸
근사하게 밥상이 차려져 있더라 집에서 닭 두 마리를 키
우는디 날 위해서 그중 한 마리 모가지를 콱 비틀었다는
거야 야, 그 새끼 궁상떨던 것 머릿속에서 다 사그라지고
그때는 감동이 혀끝으로 쓰윽 밀려오데, 앉자마자 소주
몇잔 주고받았지 목구멍에서 똥구멍까지 단번에 찌리릿
기분이 끝내주더구먼, 그런디 그놈하고 머리통 굵은 그
놈 새끼 둘하고 그놈 각시하고 다섯이서 닭 한 마릴 앞에
놓았으니 숟가락이 냄비 바닥 긁는 소리 나는 건 시간 문
제지 안 그랬겠냐, 애새끼들은 고기, 고기 더 달라고 자
꾸 보채는디 그놈 각시가 건더기 하나를 내 앞에다 터억
떠맡기듯 집어주는 거야 그게 뭐였는지 알아, 썰지도 않
은 닭똥집이었다는 거 아냐, 사양해도 안 통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억지로 그걸 입에 우겨넣었지 뭐냐 야,
그런데 그 닭똥집 환장하겠더라, 칼로 갈라서 모래를 털
어내야 한다는 걸 몰랐나봐, 씹을수록 좁쌀인지 모래인
지 버석거리고 입안에 닭똥내가 고이는디 나 정말 미
치겠더라 그렇다고 대접받는 처지에 뱉을 수도 없고 먹
자니 속이 메슥거리고 나 원 참, 그래도 어쩌겠냐 그걸
우물우물 씹다가는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겉으로는 겁
나게 느긋한 표정을 지으면서, 꿀꺽 삼켜버렸지 뭐냐, 나
그날 대접 한번 징그럽게 받았지야, 그게 70년대 중반이
었다야,
하면서 오래된 소대장 시절 이야기를 몇차례나 늘어놓
곤 한다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시선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