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여인숙
여인숙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입구에 서면 나는
빈 의자들하고 흥정을 하고 싶어진다 나를 다시 낳아줄
래요?
맨 처음 나를 낳은 것은 어머니였지만 아랫도리를 내
리고 나를 두번째 낳은 것은 여인숙이다, 그날밤의 나를
어머니, 다시 깨끗하게 낳아줘요, 매달리고 싶게 만든 것
도 여인숙이다
가끔 나는 숙박계에 이 세상에 없는 자의 주민등록번
호를 쓰고 벽에 구름의 바지를 걸어놓고 잠든 적 있다 그
런 어느날 번갯불이 유리창에 금을 그으며 지나가고 백
열전구는 밤새 깜박거리며 어둠의 알을 낳았다
골목은 훌쩍 커버렸다 골목이 밖에 나가 놀다 오면 지
금도 젖을 꺼내 물린다는 늙은 여인숙, 그녀가 골목의 어
머니였다
세상의 모든 여인숙 간판의 불을 끄지 말자 비어 있는
방이 있다는 거다 몇겹 페인트칠이 벗겨진 것은 누군가
허벅지 비비는 밤을 보내고 있다는 거다 나이 든 어머니
에게 애인을 붙여주자
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시선 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