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절***
나는 오직 운이 좋았던 덕분에
그 많은 친구들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나 한때 서사극 언저리를 기웃거렸고
몇 권의 시집을 펴냈지만
파시즘에 의해 불태워지지 않았다.
외국으로 망명하지도 않았다.
작품에 몰입하는 독자들을 일꺠우지도 않았다.
서정시를 읽기 힘든 시절
친구를 묻고 돌아올 때마다
망자들이 남긴 유언이 이명처럼 들려왔다.
“너는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너는 강해져야 한다.“
그러자 나는 내가 두려워졌다.
서정시를 기억하기 힘든 시절
강해지려면 내가 더욱 민감해지고
더욱 민첩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39년에 발표한 시「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마지막 구절이다.
** 브레히트가 1944년에 발표한 시「살아남은 자의 슬픔」전문.
*** 브레히트가 1939년에 발표한 시의 제목(이상 김광규 역).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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