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을 날아서(상)
1
날 수도 없을 만큼 뚱보가 되어버린 새가 있을까……
있다면,
그 새의 이름은 아름다운 로제.
나는 비밀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세
상엔 말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저희들끼리 귓속말을 나누고
입을 다문다
난쟁이는 작은 녀석을 뜻하지만 그것은 몇 개의 숨
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다락방, 낚시, 목이 긴 장화, 배지badge, 맞잡은
손, 외투, 구름, 가루 란 말들 역시
몇 개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세상 사람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다락 속의 가루 가룩 속의 난쟁이 난쟁이의 외투
외투 속의 구름 구름 속의 배지 배지와 낚시 낚시와
목이 긴 장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비밀을 한두 개쯤 간직하
고 있지만
그것이 음악이 되기 전엔 차가운 동전이거나 혹은
주머니 속의 밀떡
아름다운 로제 언니는 이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개
미굴 같은 형태를 하고 있고
온갖 소리들로 들끓고 있다고 말했다 수천 년 전의
나뭇잎을 흔들던 바람 소리부터 지금 이곳 샌디에이고
퍼시픽 비치의 갱들이 지하실에서 속삭이는 소리까지
그러나 음악이 되기 전엔 그저 만지고 싶지 않은
동전이거나 혹은 주머니 속의 끈적거리는 밀떡
냐라키, 오스본, 메기와 부기주이너 우리는, 우리
들이 찾는 것은, 우리들이 도망치듯 찾아 헤매는 것은
굴 속의 사람들
굴 속의 노래
음악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름다운 센텐스sentence
추억의 푸른 종이 달린 지붕 아래서
눈썹 없는 여자는 울어버렸네
우리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가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 때문도 아니고
“이 살인마 왜 그랬어 바보 새끼 뛰어내려!”
창문이 부서졌거나 깨졌거나
이마가 뜨겁거나 식었거나
추억의 푸른색 커튼이 흔들리는 창가에서
눈썹 없는 여자는 그만 울어버렸네
“욕조가 밉다, 이런 욕조가 싫다, 이런 식의 욕조
가 나를 못 견디게 하지!“
슬픔 속에 있으면서 동정받지 못하는 여자
다락 속의 가루 가루 속의 난쟁이 난쟁이의 외투
외투 속의 구름 구름 속의 배지 배지와 낚시 낚시와
목이 긴 장화
2
냐라키는 처음 만난 아랍 남자들과 소파 위에서 뒹
굴고 있었다 파티 내내 오스본이 곁에서 지켜보는 줄
도 모르고
그녀는 아랍 난쟁이의 난쟁이를 물고 빨고 다른 두
아랍 난쟁이는 그녀의 털 달린 외투와 구름 속에 힘차
게 자신들의 난쟁이를 박아대며, “이게 좋니, 이게 좋
아, 죽일 년, 암캐, 부모도 고향도 없는 멍청한 년아,
그렇지, 이게 좋지, 말해봐, 아하? 아하? 지옥이 보
여? 지옥이 보이니?“ 줄 줄 줄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
냐라키는 입 안 가득 난쟁이를 문 채 우물거리며,
“죄송해요, 죄송해요, 어떻게 해드려야 좋아요, 저
는 암캐이고, 부모도 고향도 없는데, 제 어린 딸을
데려올까요, 교육을 시킬까요, 당신을 볼게요, 당신
이 좋다면 당신의 얼굴을 바라볼게요“
울고 있었다
굴 속의 사람들
부끄럽지도 않니, 뒤죽박죽이 끝난 뒤 오스본이 힐
책하듯 묻자, 냐라키는 고개를 떨군 채 오스본이 알
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고멘나사이ごめんなさい(미안해) ……시카
시しかし(하지만), 시카시……“
굴 속의 노래
슬픔은 언제나 재빠르게 냐라키를 사로잡고
감출 수 없는 것이어서 냐라키를 지저분하고 추
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로제 언니, 저는 이런 일들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했
고, 적었습니다
‘의지’라는 말이 두렵고 ‘지금’ ‘이순간’이라는 말
은 더없이 두려운 것이지만
보여주기 위해, 나의 의지를, 나에게도 의지가 있
고, 동생 나오코에게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언니,
의지란 게 무엇일까요
―냐라키
오스본, 메기와 부기주니어 우리는, 우리들이 찾는
것은, 우리들이 도망치듯 찾아 헤매는 것은
음악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름다운 센텐스
냐라키에게
냐라키야,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는 어린애, 냐라키야
불같은 터키 남자는
불이 될 시간에
타오르지 못해서
날마다 신경질을 냈단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네발로 기어서라도
단짝을 찾아가야지
―로제 언니가
그날 밤 냐라키느 무작정 뉴욕으로 떠났다 미드나
잇 익스프레스를 타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 snowstorm: 코카인 파티, 마1약에 취해 황홀한 상태를 뜻하는
속어.
황병승
트랙과 들판의 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