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을 펴낸 과학 저자와 담당 편집자가 함께 좌담하며
그 책이 처음 기획되었을 때부터 출간될 때까지의 내밀한 속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주)사이언스북스의 「과학+책+수다」.
이번에는 장대익 서울 대학교 자유 전공학부 교수와 함께
『종의 기원』이 16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시대에 전해 주는 메시지 등을 다양하게 이야기 나눴습니다.
누구나 그 이름을 알지만, 다 읽은 사람은 드문 것으로 이름(?) 높은 『종의 기원』
왜 이 책이 아직도 '궁극의 책' 으로 불리우는지
『종의 기원』을 원전 초판 출간 160주년을 기념해 우리말로 번역, 출간한 역자에게 직접 들어 볼 좋은 기회입니다.
https://sciencebooks.tistory.com/1406?category=635870
https://sciencebooks.tistory.com/1410?category=635870
https://sciencebooks.tistory.com/1418?category=635870
왜 『종의 기원』 초판인가!?
SB : 다음 질문 들어가겠습니다. 이건 언론 인터뷰하시면서 많이 답을 하셨을 건데요. 왜 『종의 기원』 초판을 번역했는가? 다윈 생전에 다섯 번 수정판을 냈고, 마지막으로 낸 6판을 그의 사상의 완결편으로 보는데, 왜 초판을 번역하셨는지 독자들이 궁금해들 하실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이 초판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셨는지, 다른 한국어판 번역본들하고 어떤 차이가 차별성을 두시려고 노력을 하셨는지 그런 점을 좀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장대익 : 다윈 포럼에서 다윈의 진화 3부작, 즉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번역하기 위해서 어떤 논의들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얘기하다 보면 이 질문에 대해서 답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종의 기원』을 초판을 번역하기로 한 결정이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아시듯이 『종의 기원』은 다윈 생전에 6판까지 나왔죠. 다윈이 손수 다섯 번 개정 작업을 한 거죠.
그런데 『종의 기원』의 판본별 변화를 평생 연구했던 모스 페컴(Morse Peckham)이라는 학자가 있어요. 그가 『종의 기원』 출간 100년이 되던 1959년에 『종의 기원』의 합주판(variorum)을 냅니다. (아마존 바로가기) 『종의 기원』 개정판이 출간될 때마다 단락 별로 어떤 문장이 어떻게 바뀌고, 어떤 단어나 문구가 추가되는지 치밀하게 추적한 거죠. 이 책을 읽어 보니까 다윈이 6판으로 가면서 점점 더 자기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을 후퇴시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합주판 이후 다윈을 연구해 온 역사학자들, 과학사 학자들, 과학 철학자들 모두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굉장히 소심한 성격이었던 다윈은 『종의 기원』 출간 후 사람들이 하는 비판에 대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일일이 대답하려고 노력을 했죠. 누가 공개 비판을 하거나 개인 서한으로 비판적인 논평을 보내오면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 반박을 했고, 나아가 『종의 기원』 개정판을 낼 때에도 그런 내용을 모두 반영해 자신의 책을 수정해 나갔죠. 그러니까 한편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성실한 저자죠. 요즘 같으면 게시판에 자기가 쓴 글 밑에 달린 댓글들을 열심히 살펴보고 댓글들에 일일이 답글 다는 사람 생각해 보시면 되죠.
다윈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댓글에 답글 달다 보면 자기 논리 꼬일 때 많죠. 다윈 역시 댓글 달기 시작하고 뭔가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니까, 뭐랄까, 『종의 기원』이 약간 누더기 같아지기 시작했죠. 물론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 초판이 가장 독창적이고 용감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종의 기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마지막 문장을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볼까요.
There is grandeur in this view of life, with its several powers, having. been originally breathed by the Creator into a few forms or into one; and that, whilst this planet has gone cycling on according to the fixed law of gravity, from so simple a beginning endless forms most beautiful and most wonderful have been, and are being, evolved.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조물주에 의해서 숨결이 불어넣어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이 문장을 보면 중간에 “by creator”, 즉 “조물주에 의해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구는 1판에는 없죠. 이것은 오탈자만 손봐서 그냥 펴냈다고 알려진 2판을 펴낼 때 슬그머니 다윈이 집어넣은 거죠. 사실 다윈이 기독교적 신을 얼마나 믿었는지 말이 많지만, 『종의 기원』 초판만 보면, 창조설을 굉장히 강력하게 배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신을 개입시키지 않아도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만으로 종의 기원과 변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주된 논지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갑자기 ‘조물주’라니, 이것만 봐도 다윈이 당시 『종의 기원』 초판이 일으켰던 파문에 아주 많이 신경 썼음을 알 수 있죠. 이것 말고도 수많은 크고 작은 변화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래서 1판을 번역하기로 한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결정은 주석을 어떻게 달 것인가 하는 거였습니다. 주석을 달까, 말까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달까 하는 게 문제가 됐죠. 그런데 처음에 제 아이디어는 주석을 잘 달자. 페컴의 합주판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간 진행되어 온 다윈 연구의 성과를 주석 형태로 달아 보자 생각했죠. 그러다가 번역을 해 가면서 좀 생각이 바뀌었어요. 일단 해설을 달기 시작하면 책이 본문 반, 주석 반 될 것 같았죠. 좀 복잡하잖아요. 혼란스럽잖아요. 다윈이 원래 뭘 얘기하려고 했는지를 독자 나름대로 독립적으로 혼자 생각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일단 텍스트를 훌륭하게 잘 번역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되는 우리말로 번역하자. 비문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문장이 되어서 문장 자체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이 되지 않게 하자. 그런데 그동안 우리말로 번역된 많은 판본들이 그래 왔거든요. 그래서 1판을 번역함과 동시에 깊이 있는 해설은 별도의 책으로 내는 것으로 하고 일단 원문을 제대로 번역하자. 그리고 옮긴이 주 같은 것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범위 안에서 최소한으로 달도록 하자. 이렇게 결정했죠.
(중략)
나도 원서로 쓱 읽을수 있으면 좋겠다..
초판 원문엔 저 부분이 뭐라고 쓰여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