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ㄱ씨는 지난해 사무실 근처에서 마음에 꼭 드는 오피스텔을 발견했다. 월세 계약을 할 때 집주인이 ‘전입신고를 할 수 없다’는 특약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하려고 해 마음을 접었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연말정산 때 월세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고, 보증금 반환 등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때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을 수도 있다. ㄱ씨처럼 주거용 오피스텔 계약 과정에서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임대인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인화 의원(민주평화당)을 통해 확보한 행정안전부의 올해 1분기(1월15일~3월31일) 주민등록 사실조사에 따르면,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서울의 오피스텔 8만8270가구 중 1만915가구가 특약조항 등을 이유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비주거용(상업용) 오피스텔(2만2225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다. 공실(1만4429가구), 부재 중(1만4268가구), 미조사(1만2451가구) 내역을 제외하면, 외국인 거주(3565가구)나 임시거주(3888가구), 사실조사 중 전입신고를 완료(6529가구)한 경우보다 많았다.
서울을 포함한 17개 시·도 오피스텔 68만8456호 중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건 28만8744가구로 나타났고, 이 중 특약 조항을 이유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건 1만8038가구로 파악됐다. 공실(8만1842가구)·부재 중(5만6501가구)·사업용(5만925가구)·미조사(2만7383가구)·사실조사 중 전입완료(2만8118가구) 가구의 뒤를 이었다. 정부가 오피스텔의 전입신고 내역을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무용에서 주거용 전환 때
환급 부가세 반납 피하려
임대인들 ‘특약 조항’ 요구
오피스텔 소유주들이 전입신고를 못하도록 하는 건 세금 혜택을 보려는 ‘꼼수’다. 사무용과 주거용으로 쓸 수 있는 오피스텔은 전입신고를 하면 주택으로 간주된다. 소유주가 사무용으로 오피스텔을 분양받으면 부가세를 환급받을 수 있는데, 전입신고를 해 주택용으로 용도가 바뀌면 환급받은 부가세를 반납해야 한다. 기존에 다른 집도 보유했다면 전입신고와 함께 다주택자가 돼 세제 혜택 등을 받지 못한다.
서울에서만 1만여가구 달해
효력 없지만 제재 법도 없어
세입자 보증금 떼일까 불안
여러 판례에 따르면 전입신고 금지 특약 조항은 법적 효력이 없다. 2013년 5월 대법원은 오피스텔 소유주인 이모씨가 서울 서초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양도소득세부과처분취소 소송에서 상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씨가 오피스텔 임차인에게 전입신고를 할 수 없다는 특약사항이 담긴 계약서를 체결했지만, 사실상 주거용으로 임대했다면 주택에 해당된다는 판단이었다. 임차인의 특약 파기(전입신고)로 부가세 환급금을 반환해 손해가 발생했다며 임대인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도 자주 이뤄진다. 법원은 이를 두고도 전입신고 금지 특약이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고, 사실상 주택용도로 계약이 이뤄졌기에 무효로 보는 판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집주인이 특약 조항을 주장한다면, ㄱ씨와 같은 ‘을’은 조항을 받아들이는 척 계약을 한 뒤 전입신고를 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전입신고 방해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있어 오피스텔 소유주들의 이런 행위도 제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전입신고를 할 수 없게 하는 특약 조항은 기본적으로 임차인의 합의나 묵시적인 동의가 있기 때문에 임대인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당사자가 신고하지 않는 한 이런 종류의 계약을 정부가 모두 확인할 수 없고 이를 입증해 처벌하는 것은 실효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따져 봐야 한다”고 했다.
정 의원은 “계약서에 전입신고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으면 약자인 임차인들은 효력이 없는 조항에 겁을 먹고 전입신고를 못하는 실정”이라며 “이런 방해행위를 막으려면 전입신고 내용을 사적인 계약 영역이 아닌 공적인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