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 공식포스터,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편파적인 한줄평 : 좋은 글을 담은, 좋은 그릇
고맙고, 또 고맙다. 1443년 한글 창제에 모든 걸 걸었던 세종대왕과 여러 조력자의 신념에 고맙고, 600여년 뒤에도 이들의 노고에 감사할 수 있게 좋은 그릇에 담아준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에 또 고맙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도 뭉클한 마음과 여운을 떨칠 수 없어, 쉽게 일어서질 못할 정도다.
<나랏말싸미>는 문자와 지식을 유학자들이 권력으로 독점하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언문(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마지막 8년을 다룬 작품이다. 집현전에서 탄생된 줄로만 알고 있었던 한글 창제의 뒷이야기를, 현실적이고 인간적으로 재해석해 영화적 의미와 재미를 모두 잡는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훌륭한 시나리오와 과욕 버린 연출력이 만나면 얼마나 놀라운 완성도를 갖추게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차분하고도 담백하게 연출해, 오히려 보는 맛을 한층 살린다.
무엇보다도 작품 전체를 지휘한 조철현 감독의 공이 크다. 제작과 기획, 각본 등 30년간 영화 만들기의 여러 영역을 거친 덕분에 각자 영역에서 언제 힘을 빼고 더하는지 그 배합을 적절히 해낸다. 특히나 각 인물의 대사가 감칠맛 난다. 초반 “딱 한 잔 만”이라며 아내 소헌왕후(전미선)의 눈치를 보는 세종(송강호)에게 인간적인 정감을 더하는가 하면, 종교적으로 하대받던 스님 신미(박해일)에게 “너나 나나 백성들이 지어준 밥을 빌어먹고 살지 않느냐”라며 어진 군주의 모습을 부여한다. 이뿐만 아니라 “복숭아 속 씨앗이 하나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 씨앗 속 복숭아가 몇 개나 들어있을진 아무도 모른다”는 울림 강한 대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우리네 말글에 자부심을 갖게 한다. (스포일러임에도 대사를 실은 건,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다.)
연출·대본이 좋은 그릇을 선물했다면, 멋과 맛을 갖춘 요리로 채우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송강호는 ‘세종’ 그 자체다. 그의 여러 작품 중 단연 위대한 연기를 펼친다. 그가 힘을 빼면 뺄수록 화면 관객은 안으로 더욱 깊이 빨려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박해일과 고 전미선도 오롯이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탠다.
새로운 얼굴들을 여럿 기용한 것도 박수쳐줄 만 하다. 차래형, 윤정일, 임성재, 금새록 등 안정된 연기력을 기반한 배우들이 제 몫을 충분히 해내며 묘한 긴장감과 풍성한 볼거리를 완성한다. 특히 학조 역의 탕준상은 튀지 않으면서도 깊은 존재감을 남긴다. 이 작품의 의미 있는 수확이다.
‘훌륭한 영화’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나랏말싸미>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최근 사극물이 흥행에 부진했고, 관객들 역시 장르적 진입 장벽이 높다고 편견을 갖는 점이 유일한 장애 요소다. 그럼에도 진정성까지 갖춘 이 작품이 연꽃향처럼 그윽하고 길게 대중의 마음을 두드리길 바란다. 전체관람가, 오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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