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란 보통 현실을 닮은 측면과 재미를 위해 각색하는 측면이 혼재되기 마련이지만, 레이싱의 경우 두 가지 방향성이 각기 확고한 하위 장르를 이루고 있다. 누구나 가볍게 즐기기 좋은 아케이드와 가능한 실제 주행감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심레이싱(Sim-Racing)이 그것. 그리고 심레이싱을 표방하는 여러 게임 가운데 오랫동안 선두를 달리는 작품이 바로 쿠노스 시뮬라지오니의 ‘아세토 코르사(Assetto Corsa)’ 시리즈다.

현존하는 수많은 차종과 트랙의 재현은 물론 날씨와 시간대에 따른 노면 상태, 타이어와 차체에 가해지는 힘과 무게 중심의 이동까지 ‘아세토 코르사’는 실제 레이싱을 둘러싼 온갖 요소를 게임에 담아냈다. 차량이 흔들리며 들리는 덜컹거림이나 미세한 배기음까지 잡아내니 풍부한 음향 효과는 덤이다. 덕분에 현역 레이서 중에서도 이 작품으로 훈련하는 이들이 적잖고, 아예 게임을 즐기다 프로로 데뷔했다는 무용담까지 들려올 정도.

실제 운전에는 형편없는 기자도 ‘아세토 코르사’를 통해서나마 실력을 키우던 차에, TGS 2019가 한창인 마쿠하리 멧세에서 쿠노스 시뮬라지오니 마르코(Marco Massarutto) 대표를 만날 기회가 닿았다. 10년 넘게 심레이싱 한 우물만 파온 그에게 게임 개발 철학을 들어봤다.

● 쿠노스는 창립 이래 심레이싱 장르에 전력해왔다

: 그렇다. 스테파노(Stefano Casillo, ※쿠노스의 공동 대표)와 함께 2004년 회사를 설립할 때만 해도 시장에 심레이싱 장르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2006년 첫 작품인 ‘넷카 프로’를 선보였고, 200년에 ‘페라리 버추얼 아카데미’를 거쳐 2014년 드디어 우리의 대표작 ‘아세토 코르사’에 이르렀다. 그사이 심레이싱 장르가 더욱 고도화되었고 더 많은 플레이어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여러 차량 및 트랙 라이선스를 획득해왔다.

그 결과 올해 출시한 신작 ‘아세토 코르사 콤페티지오네(Assetto Corsa Competizione)는 블랑팡 GT 시리즈 공식 게임으로 제작될 수 있었다. 또한 최신 언리얼 엔진을 채택하여 차량의 외관과 각종 물리 효과도 대폭 강화했다. 오는 10월에는 GT 2019시즌 업데이트는 물론 내년 초 첫 DLC ‘인터컨티넨탈 GT’ 팩으로 스즈카, 라구나 세카, 마운트 파노라마, 키알라미 같은 유명 트랙과 여러 차량을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다.

2004년도 창업 당시 우리는 네 명이 불과했으나 이제 스무 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풍부한 콘텐츠와 높은 퀄리티를 제공할 수 있길 바란다.

● 겨우 스무 명이서 세계적인 게임을 만들고 유지한다니 놀랍다

: 우리는 언제나 모터 스포츠를 사랑하는 플레이어에게 중점을 두고 게임을 개발한다. 팀원 모두가 최고의 심레이싱을 만들자는 공통된 비전을 가지고 있어 특별히 뭘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주도적으로 일한다. 또한 소수 인원인만큼 각자 맡은 업무에 극도로 전문화되어야 하는데, 2004년부터 한 사람 한 사람 단계적으로 늘려가며 스테파노가 직접 맨투맨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 2004년과 비교해 심레이싱 장르의 경쟁자가 상당히 많아졌는데

: 다른 좋은 작품들에 존경(Respect)를 표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리얼리즘과 퀄리티에 매진하고자 한다. 또한 뛰어난 심레이싱 게임이 많아진 만큼 보다 새로운 즐길 거리, 즉 트랙 레이싱 외에 모드를 지원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사실 ‘아세토 코르사 콤페티지오네’를 만들게 된 것도 차별화에 대한 고민이 크게 작용했다. 블랑팡 GT 시리즈는 다른 대회만큼 규모가 크진 않지만 아주 특징적인 차량과 트랙을 지녔기 때문이다.

● 차량과 거기에 작용하는 물리 효과를 어떻게 그렇게 잘 재현할 수 있나

: 게임 내에 차량을 재현할 때 전체를 보지 말고 각 부분별 특성과 움직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여러 차량 제작사와 파트너쉽을 맺어 세부 데이터를 공유하고, 실제 주행과 게임 플레이의 감각을 일치시키기 위해 현역 레이서로부터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스튜디오가 발레룽가(Vallelunga) 서킷 내에 있기 때문에 틈날 때마다 직접 달려보는 중이다.

● 개발 스튜디오가 발레룽가 서킷 내에 있다고!? 마르코 대표가 직접 몰기도 하나

: 그렇다, 자주(웃음).

● 개인적으로도 모터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드림카를 하나만 꼽는다면

: 아, 좋아하는 차가 정말 많아서 하나만 선택하기 어렵다. 그러니 두 개만 꼽는다면(웃음)… 2019 애스턴마틴 밴티지와 2019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로 하겠다. 람보르기니는 2주 전에 직접 타봤는데 정말 끝내줬고 애스턴마틴 역시 엘레강스 그 자체다. 언젠가는 이들 차량의 라이선스도 꼭 따낼 것이다.

● ‘아세토 코르사’는 MOD와 함께 성장해온 게임이기도 한데, 신작에선 지원하지 않고 있다

: 당장은 MOD 지원 계획이 없다. 자체 엔진을 사용한 전작과 달리 ‘아세토 코르사 콤페티지오네’은 언리얼에 기반하고 있고, 블랑팡 GT 시리즈 공식 게임으로서 계약 문제도 걸려있다. 훗날 신작을 만든다면 그때는 MOD 지원에도 신경 쓰고 싶다.

● ‘아세토 코르사 콤페티지오네’는 PC로만 출시되었다. 콘솔 지원 계획이 없진 않을 텐데

: 물론 PS4나 Xbox One 등을 고려하고 있지만 그 시점까지 확답하긴 어렵다. 현재로선 포팅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조율하는 단계다.

● ‘아세토 코르사 콤페티지오네’가 공식 한국어를 지원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봐도 될까

: 재작년 디지털 브로스(Digital Bros, ※퍼블리셔 505 게임즈의 모회사기도 하다)에 인수되며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간 아시아에도 심레이싱을 즐기는 플레이어가 많이 늘어났다는 걸 알고 있기에 진작부터 지원은 하고 싶었다. 아시아 계통 차량과 트랙에 대한 라이선스 확보도 노력하는 중이다.

● 그렇다면 ‘아세토 코르사’에서 곧 한국 차량을 만나볼 수도 있겠다

: 내부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아는데 정확히 어떤 차량인지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도 기아(KIA)였던 듯한데…

● 한국에선 ‘아세토 코르사’를 즐기다 프로 레이서로 데뷔했다는 무용담도 돈다

: 실제로 그런 일이 종종 있더라. 현실과 심레이싱의 격차가 점점 더 좁혀지고 있으므로 실제 주행에 앞서 훌륭한 트레이닝이 된다. 우리가 ‘아세토 코르사 콤페티지오네’로 진행하는 e스포츠에선 우승자에게 최신 람보르기니를 타고 직접 트랙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 한국의 레이싱 게임 커뮤니티는 그리 크진 않지만 매우 열정적이다. 인사를 부탁한다

: 여러분 같이 정열적인 커뮤니티가 관심을 가져주어 매우 기쁘다. ‘아세토 코르사’는 유럽 차량과 트랙이 주를 이루는 유럽적인 게임임에도 아시아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놀랍고도 큰 가능성을 느꼈다. 앞으로 더 많은 아시아 콘텐츠로 보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