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가 아닌 승리의 드라마가 메인인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더비'
2016년 개발 사실을 발표한 뒤, 2017년 인게임 PV 영상을 공개한 바 있는 우마무스메는 당초 미디어믹스로 시작한 타이틀이었다. 단, 게임의 개발에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사전등록만 2년 넘게 진행하며 애니메이션이 먼저 자리잡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그리고 2021년 2월 24일. 정말로 오랜 개발 기간 끝에 우마무스메라는 타이틀은 일본 시장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게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언뜻 보면 신기한 일일 수 있다. 실제 경주마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펼치는 레이스 게임이 왜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일까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다분히 특정 팬층을 노렸을 것 같은 게임이, 굉장히 넓은 범위의 팬들에게. 동시에 연관이 없던 팬들에게도 관심을 끌고 있으니까.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이런 의문은 금세 사라지게 된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여부와 별개로 시스템 자체가 잘 짜여져 있어서다.
솔직히, 게임 플레이 전까지 이렇게 빠져들 줄 몰랐다.
PVP가 존재하지만 다른 콘텐츠와 비교했을 때 비중은 크지 않다. 게임 플레이의 대부분이 우마무스메를 육성하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도출된 최종 결과물을 스토리나 PVP와 같은 콘텐츠에서 사용하는 방식이어서다. 즉, 게임의 근간은 어디까지나 같은 장르의 게임이 주력으로 내세우는 경주마의 육성, 시뮬레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캐릭터의 능력치를 키우고, 스킬을 붙이며 경기하는 육성 시뮬레이션이다.
육성과 경기 두개의 트랙으로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셈이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바로 육성 부분이 된다. 육성 부분은 ‘복잡함’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앞서 우마무스메마다 설정된 조건이 다르듯이, 육성 과정에서 주어지는 목표도 서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목표 설정은 일종의 변수가 되기도 하는데, 사전에 설정된 우마무스메의 특징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기도 한다. 때로 일부 우마무스메들은 다른 캐릭터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목표 난이도로 설정되어 있다. 목표 설정은 캐릭터의 기반이 되는 경주마들의 업적을 가져온 것이기에, 고증을 반영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육성 목표는 캐릭터마다 내용과 수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능력치는 훈련을 통해서 증가시킬 수 있고, 여기에는 사전에 배치한 서포트 카드들이 영향을 미친다. 앞서 캐릭터마다 주력 능력치와 성격이 다르다고 언급한 것처럼, 서포트 카드 또한 육성 방향에 맞춰서 배치하고 효율을 고민하는 전략의 영역에 속한다.
어떤 능력치를 주력으로 올릴 것인지. 추입 / 선입 / 선행 / 도주로 구성된 네 개의 ‘각질’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 캐릭터의 특성에 표기된 주력 경기장의 거리에 따라서 서포트 카드의 배치 / 스킬의 배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이 또한 플레이어의 전략에 따라서 변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캐릭터의 특징, 나의 전략을 고려해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육성 시스템을 통해서 최종 도출된 결과물은 기록에 남게 되고, 이를 다음 우마무스메 육성에서 사용하는 구조다. 때문에 이 게임의 육성은 그 복잡함과 더불어 깊이까지 갖추고 있다. 각 레이스마다 최수 요구치가 있기 때문에 최소선을 맞출 필요성이 생기고, 이를 스탯 인자를 이전에 육성한 캐릭터에서 계승하고, 다시 육성하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육성에서 마감된 결과물들은 다시 다음 육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 캐릭터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육성 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이벤트와 선택지. 캐릭터의 성격에 따른 능력치 증감 등으로 인해서 결과물이 계속해서 다르게 도출된다. -물론, 매번 같은 선택지을 한다면 비슷하게 결과물이 나오겠지만- 심지어 골드쉽과 같은 널리 알려진 괴팍한 성격의 말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훈련을 하겠다고 다른 훈련을 패스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사이게임즈는 매번 조금씩 차이가 있는 이러한 결과물들을 다시금 육성에 사용하게 만듦으로써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 육성의 루프로 플레이어들을 인도하고 있는 셈이다. 매번 할 때마다 결과가 조금씩 다르고 완벽하게 같은 결과물과 흐름이 나오기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육성 시스템은 분명한 장벽이 될 수 있다. 일본어로만 게임을 플레이할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니다. 한국어로 번역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시스템 전부를 파악하기 까지는 분명히 시간이 걸릴 만한 부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명확한 단점들은 레이스에서의 계획적인 연출과 흐름으로 충분히 희석된다.
만약, 레이스의 연출이 투박했다면 없었을 장점이기도 하다.
레이스는 육성에 의한 결과값으로 도출된다기 보다는 여기에 약간의 변수가 더해지는 구조다. 육성한 스킬과 능력치는 그대로 출전하지만, 다른 말과 함께 레이스를 뛰기 때문에 발생하는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육성을 거친 나의 캐릭터가 스킬을 사용하듯이, 다른 캐릭터들도 스킬을 사용한다. 심지어 그런 캐릭터들이 한 레이스에 10개가 넘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뜻대로 레이스가 진행되리란 예상과 달리, 변수는 레이스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계획은 있었을지라도, 다른 캐릭터들로 인한 변수가 한가득.
예를 들어보자. ‘라이스샤워’라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후반부 코너를 지나 마지막 직선에서 상대를 추월할 때 발동되며, 선두로 달리면 안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여기에 제대로된 발동을 위한 능력치 조건 등을 생각하면, 작은 변수로도 스킬이 발동되지 않는 구조다. 일단, 너무 속도를 내서 선두를 지켜도 안되고 너무 후위에도 있어서는 안되는 셈이니까.
따라서 라이스샤워는 여러모로 난이도가 높은 캐릭터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뉴비 절단기일까) 하지만 이러한 장애물을 넘어, 결정적인 순간에 스킬 연출이 뜨고 역전극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된다. 이전에 수없이 실패를 했어도. 하위권에 머물렀어도 오직 이 한번의 경험이 모든 시간과 노력을 보상할 정도의 쾌감이 된다.
레이스 종반에 5~6위 하던 라이스샤워가 스킬을 쓰고 튀어나온다? 아. 이건 환호를 못참는다.
이 구간에서 집중하는 것은 선두그룹이다.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구간에 주목하며, 속도감 있는 연출을 곁들인다. 캐릭터들의 흐르는 땀, 추격하는 말을 힐끗 쳐다보는 시선. 빠른 속도를 강조하는 집중선. 그리고 한껏 목청높여 캐릭터의 이름을 외치는 아나운서의 중계까지. 모든 관심을 선두로 모은다.
자, 여기서 플레이어가 육성한 말의 스킬이 쭉 발동되고 중간 그룹에서 선두까지 치고 올라온다면? 그리고 카메라를 수평에 놓는 골인 지점 바로 직전에서 아슬아슬하게 역전 우승을 한다면? 아무것도 조작하지 않았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이 발생한다. 반대로 AI가 이러한 모습으로 선두에 있는 플레이어를 추격한다면? 그 또한 긴장감이 되어 결승점까지 화면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라스트 스퍼트 구간의 연출은 의도적으로 순위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심지어 이 짜릿한 한 편의 드라마는 캐릭터마다 다른 흐름으로 짜여져 있다. 캐릭터마다 출발 포지션과 전략이 다르고 스킬이 발동하는 시점과 카타르시스가 찾아오는 타이밍이 다르다. 따라서 다양한 캐릭터를 계속 육성할수록 이전과는 다른 지점에서의 흥분감이 연속적으로 찾아오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육성의 복잡함은 특유의 연출을 통해서 심리적 보상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 레이스와 다른 캐릭터의 육성으로 넘어가는 것을 통해, 더욱 세밀한 육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형태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닝라이브는 사치일 뿐. 빨리 다음 레이스 준비하러 가야한다.
변수를 극복하고 계획을 오롯이 성공으로 만들어 냈다는 즐거움. 그리고 이를 어느 정도 조정하기 위한 세밀한 육성 관련 콘텐츠.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없었던 것 같은 요소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가져오면서 우마무스메는 육성과 레이스라는 두 가지 콘텐츠로 플레이어를 계속해서 유도한다.
그렇기에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위닝 라이브를 스킵한다는 플레이어들의 말은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명확한 타겟층이기에 유입되었을 수 있겠지만, 게임 시스템이 다른 영역으로 플레이어를 이끌고 있다. 이쯤되면 모에화나 성우들의 연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아주 치밀하게 짜여진 육성과 레이스. 이 두 콘텐츠가 주는 즐거움이 의인화된 캐릭터가 주는 감정적 보상보다 더 크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육성에서 들이는 시간과 레이스 연출의 짜릿함.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드라마가 메인 콘텐츠다.
호불호는 갈릴 것이 분명하나,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과정을 넘어서면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할수록 ‘소녀들이 뛴다’는 개념을 개발진이 플레이 측면에서 고민하고 시스템과 연출을 구축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캐릭터 상품의 연장선에서 잘 만든 게임이 아니라, 내부의 게임 플레이가 무척이나 치밀하게 구축되었기에 다른 게임들이 교훈삼을 만한 부분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존 경주마를 배경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 그리고 이 드라마를 어떻게 게임 플레이로 만들어 낼 것인지를 고민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캐릭터들의 드라마가 게임 속으로 녹아들면서 플레이어는 훈련이라는 노력의 시간을 갖고, 자신의 노력이 레이스에서 보답받는 경험이 일관된 흐름으로 빈틈 없이 짜여져 있다.
예를들면, 하루우라라를 육성한다거나.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의 메커니즘과 드라마를 계속해서 제공하는 게임 플레이. 연출을 고려하면, 2017년 공개 당시의 모델링이어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첫 PV에서 선보였던 것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기에 어디까지나 만약이라는 이야기다. 미디어 믹스의 연장선에서 나온 게임이란 쉬운 선택을 하지 않고, 게임을 구조적으로 완전히 재탄생시킨 사이게임즈 개발팀에 찬사를 보낸다.
우마무스메는 현재 일본어만 서비스되고 있으며, 게임 플레이를 위해서는 VPN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상태다. 국내 서비스 여부는 공식 발표되지 않았으나, 만약 국내 출시가 된다면 충분히 즐길만한 타이틀임은 분명하다. 그것도 시간이 너무 잘 간다는 걱정을 하면서 플레이할 정도로 말이다.
우마무스메 애니메이션을 모르더라도. 경마에 관심이 없어도. 모에화라는 취향의 장벽이 있어도. 치밀하게 기획된 시스템과 연출이 선사하는 드라마는 충분히 감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