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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디자인 방법론, ‘어크’에서 ‘심시티 빌드잇’까지

조회수 9789 | 루리웹 | 입력 2019.04.25 (17: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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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디자이너, 우리말로 흔히 기획자라 불리는 이들은 콘텐츠 제작의 타륜을 잡은 중요한 길라잡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프로그래머나 아티스트에 비해 업무 경계가 흐릿하고 능력의 계량화가 어려운 탓에, 마치 그 자체가 쓸모 없는 직군처럼 쉬이 오해 받기도 한다. 심지어 업계 종사자들도 게임 디자이너가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답하기 어려워한다.


이러한 애로사항은 신입과 중견을 가리지 않는다. 25일(목),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를 찾은 EA 헬싱키 스튜디오 이민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올해로 19년차 베테랑 게임 디자이너다. 그런 그조차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야?”라는 딸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지난 십여 년간 리얼타임월즈, 유비소프트, 로비오 엔터테이먼트, EA까지 세계 유수 게임사를 오가며 체득한 ‘게임 디자인 방법론’을 정리하고 공유하기로 결정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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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만상 개발 문화와 게임 디자인


당초 인문학을 전공한 이민우 디렉터는 (본인 회상에 따르면)술값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게임 개발에 입문했다. 그러던 것이 직업으로 발전하여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국내서 ‘오디션’을 만들었고, 이듬해부터 해외로 무대를 옮겨 ‘APB’, ‘어쌔신 크리드 4: 블랙 플래그’, ‘고스트 리콘: 팬텀’, ‘배드 피기스’, ‘배틀 배이’, ‘심시티 빌드잇’까지 들으면 알 법한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각 게임의 면면을 살펴보면 AAA급 싱글 게임부터 온라인 F2P, 모바일부터 콘솔, 내수용부터 해외 전개까지 게임 디자이너로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경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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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놀라운 점은 매 프로젝트마다 개발 문화가 상이하고, 그에 따라 게임 디자인 방법도 달리해야 했다는 것이다. 게임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협업과 소통이 중시되는지라 프로그래머나 아티스트에 비해 전반적인 개발 문화를 많이 탈수밖에 없다. 이민우 디렉터는 특히 개발 문화를 좌우하는 네 가지 요소로 지역, 제작물, 팀, 그리고 사람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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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역에 대한 예시로 그가 미국에서 참여한 ‘심즈 모바일’과 최근까지 핀란드에서 만든 ‘심시티 빌드잇’을 보자. 두 작품 모두 맥시스의 유명 IP ‘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역에 따른 개발 문화는 전혀 달랐다. ‘심즈 모바일’을 만든 미국 개발팀은 언제나 더 크고 더 높은 지점을 지향하며 프로젝트를 키우는 경향이 있었다. 반대로 ‘심시티 빌드잇’의 핀란드 개발팀은 소규모를 유지하며 애자일(Agile, 민첩성이란 뜻으로 탁상공론 단계를 줄이고 일단 개발을 진행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진척시켜 나가는 것) 방식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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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물에 따라서도 개발 문화는 바뀌었다. 유비소프트의 킬러 타이틀 ‘어쌔신 크리드’는 굉장히 거대한 프로젝트인 동시에 매년 결과물을 내야 했다. 개발 인력이 최소 1,000~1,400명 수준이라 메일 하나를 주고 받더라도 CC가 400명씩 붙을 지경이었다. 당연히 모든 의사 결정은 탑다운(Top-down, 수직적 명령 체계)으로 이루어졌고 일개 게임 디자이너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지극히 좁았다. 반면 F2P 게임인 ‘고스트 리콘: 팬텀’을 만들 때는 소수의 베테랑이 수평적 구조를 유지했으며, 비교적 적은 콘텐츠로 론칭이 가능하되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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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 의해 개발 문화가 좌우되었던 것은 로비오 엔터테인먼트에서 일이다. 두 신작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먼저 ‘배드 피기스’라는 게임은 ‘앵그리버드’ 신화를 이룩한 초창기 인력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이들은 기존 IP를 적극 활용하고자 했고 터치를 통한 관성 기반의 게임 플레이를 계승 및 발전시키는데 주력했다. 한편 신진 인력이 의기투합한 ‘배틀 배이’는 신규 IP 창출에 의욕적이어서 ‘새 비슷한 것도 절대 안돼!’라는 규칙까지 있었다고. 게임성 또한 리얼타임 PvP 슈팅으로 그전까지 로비오 엔터테이먼트가 시도해보지 않은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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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개발 문화를 바꾸는 경우는 EA 헬싱키 스튜디오에서 접할 수 있었다. 근래 ‘심시티 빌드잇’에 적용된 대표적인 업데이트로 길드 콘텐츠의 일종인 클럽과 PvP 모드인 워 디제스터가 있다. 클럽 시스템을 기획한 게임 디자이너는 실제로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고 안정적인 개발을 선호하는 인물이었다. 반대로 워 디제스터의 게임 디자이너는 경쟁하길 좋아하고 강렬한 충격으로 정체된 게임성에 변화를 불러오길 바랐다. 아쉽게도 해당 콘텐츠는 전통적인 ‘심시티’ 플레이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에게 큰 비판을 받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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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 크리드부터 심시티 빌드잇까지


그간 이민우 디렉터가 참여한 여러 프로젝트 중 대표작 네 편을 추려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고스트 리콘: 팬텀’은 유럽 지역에 서비스된 F2P 게임으로 싱가폴에서 개발됐다. 이들은 탑타운 구조를 거부하고 ‘디자이너 퍼스트’ 정신 아래 각자가 하나의 콘텐츠를 책임지고 개발했다. 대부분이 코어 게이머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달리고 싸울지 고민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만큼 완성도 면에서는 남달랐지만 확실한 대표자가 없는 구조상 전체적인 비전과 인사이트를 가지기 힘들었고 개발자간 소통에도 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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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의 ‘어쌔신 크리드: 블랙 플래그’ 개발팀은 상술했듯 빡빡한 탑다운 구조로 운영됐다. 10명 이하의 대표자가 결정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천여 명의 개발자가 콘텐츠를 조금씩 나눠 가졌다. 당연히 그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었다. 매년 게임이 나와야 하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언제나 잘려 나가는 기획이 한가득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년간 검증된 엔진과 훌륭한 제작 프로세스 덕분에 효율 자체는 매우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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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참여한 ‘APB’는 ‘GTA’ 원조 개발자 데이빗 존스가 독립해 만든 야심작이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안착에 실패했다. 워낙 경험 많은 인력이 모인만큼 크리에이티브와 디자인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좋았지만 그 외에는 문제투성이였다. 무엇보다 다들 싱글 게임만 만들어본 터라 라이브 서비스에 대한 감각이 없었고, 심지어 어떻게 수익을 거둘지도 정해 놓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유익한 경험도 했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시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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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현재 몸담고 있는 EA 헬싱키 스튜디오와 ‘심시티 빌드잇’. 핀란드는 사회 전반에 수평적 문화가 깔려 있고 소수정예를 중시한다. 당장 핀란드를 대표하는 게임사 슈퍼셀의 경우 일개 팀이 10명을 넘기는 법이 없고 최근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브롤스타즈’의 경우도 터무니 없이 작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이는 EA 헬싱키 스튜디오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심시티 빌드잇’은 22명이 만들었으며 라이브 서비스 4년차인 현재도 25명을 넘기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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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게임 디자이너만 디자이너가 아니라 개발팀 전원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핀란드 게임사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프로그래머도 아티스트도 거리낌 없이 게임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며 개발 전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렇게 모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책임자가 결정을 내리면 그걸 가지고 다시금 전체에 동의를 구한다. 만약 누구 하나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진행을 보류하고 다시금 함께 머리를 맞댄다. 분명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방법 같지만 한국이었으면 이틀이면 정할 거를 4개월씩 골몰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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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에는 즐길 수 있는 디자인을 하라


시대가 흐르며 게임의 트렌드도 변화하고 그때마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기획과 개발 역량을 발전시켜왔다. 과거 패키지 게임 시절에는 어느정도 기획을 위한 공식이 있었다. 첫 스테이지는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을 담고 있어야 하며 뒤로 갈수록 어렵지만 그만큼 캐릭터도 점차 성장한다는 그런 일정한 궤적. 당시 개발자들은 게이머의 플레이 경험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고, 작업량을 효율적으로 원숙하게 처낼 수 있는 디자이너가 고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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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오늘날에는 초기 개발 이상으로 라이브 서비스의 비중이 커졌다. 이제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확장팩을 내는 것이 아니라 보름 혹은 매주 업데이트가 이루어진다. 그만큼 게임 디자인 역시 게임을 즐겨주는 유저의 직접적인 피드백과 플레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더 이상 개발자의 총기와 고집만 가지고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유저와 소통하며 가치와 재미를 나누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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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5년 뒤에도 서비스할 수 있는, 계속해서 가치와 재미를 전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 괜찮은 매출 지표를 낼 수 있더라도 지속하고 확장할 수 없다면 그것은 좋은 디자인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게임 디자인은 디자이너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팀원 모두가 디자이너라는 마음으로 합심해야 한다. 핀란드 게임사 특유의 수평적인 문화와 애자일, 스크럼은 구성원 모두가 스스럼없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태고 긍정적이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양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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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민우 디렉터는 게임 디자인이란 한 마디로 ‘게임의 형태(Shape of the Game)를 만드는 일이며, 바꿔 말하면 플레이어의 여정을 스케치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우리가 게임에서 접하는 작은 시스템, 콘텐츠 하나에도 디자이너의 고민과 손때가 묻어 있는 셈이다. 이민우 디렉터는 현재 ‘심시티 빌드잇’ 팀을 떠나 신규 IP를 개발 중이다. 그의 철학처럼 5년, 10년 뒤에도 가치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게임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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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nA


● 해외 업체에서 일하는 게임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


: 해외에서도 한국 개발자들을 만나보면 개개인의 역량이 정말 훌륭하다고들 평가한다. 그래서 데려오려고 하다 보면 99%가 전화 면접에서 떨어진다. 우리가 잘하는 한국말도 전화로 하면 꼬이기 십상인데 외국어는 얼마나 더하겠나. 그냥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영어 회화를 많이 해보길 추천한다.


● 모두가 게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면, 결국 기획자 무용론에 힘을 보태는 꼴이다


: 확실히 사람은 누구나 말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누구나 게임 디자인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기획이 프로그래밍이나 아트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는 점도 이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거시적 관점에서 전체 디자인의 방향성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전문 디자이너의 영역다.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 리드 디자이너가 그걸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최종 결정을 내려줘야 한다.


● 팀원간 소통과 동의를 통해 수평적으로 의사 결정을 할 때, 인원이 너무 많으면 어쩌나


: 일단 인원이 너무 많으면 안된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팀 고유의 개발 문화를 유지하려면 15~25명 정도 규모가 한계인 것 같다. 그리고 소통이라 해서 꼭 회의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냥 복도를 지나는데 프로그래머가 나에게 와서 ‘이번 디자인이 이러저러해서 고쳤으면 해’ 그러면 그래? 알았어, 따라와봐’하고 곧바로 의견을 나누곤 한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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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3
BEST
블랙 플래그 갓-겜
MIKUMO☆ | (IP보기클릭)221.139.***.*** | 19.04.25 20:41
BEST

블랙 플래그 갓-겜

MIKUMO☆ | (IP보기클릭)221.139.***.*** | 19.04.25 20:41

와~ 업무메일에 CC가 400명이면.. 카오스네

新감자 | (IP보기클릭)59.9.***.*** | 19.04.26 07:46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외로운페트리코프

6년전

한샷퍼스트 | (IP보기클릭)124.62.***.*** | 19.04.2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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