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게임즈, ‘백자이동궁명사각호·중화궁인’ 고국의 품에 안겨
민간 기업, 그것도 해외 게임사가 연이은 우리 문화재 환수로 세간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개발 및 서비스하는 라이엇게임즈는 19일(수),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 언론공개회를 진행했다.
이날 언론공개회에는 라이엇게임즈 박준규 대표는 물론 문화재청 정재숙 청장,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건길 이사장과 김상엽 팀장, 국립고궁박물관 지병목 관장이 자리하여 감사패를 나누고 우리 문화재 환수의 소회를 밝혔다.
문화재청 정재숙 청장은 “’리그 오브 레전드’ 게이머들이 라이엇게임즈에서 우리 문화재 환수도 하고 지킴이 활동을 열심히 하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들었다. 그런 여러분이 앞으로 한국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 이러한 문화재 사랑을 함께 실천해주지 않겠나. 금번 환수된 두 왕실 유물은 아주 희귀하고 가치가 큰 것들이다.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중히 보관하며 연구하여 그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리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전했다.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는 조선 왕실 및 관청용 도자기를 제조하던 분원 관요의 사각호다. 아랫면에는 정조의 딸이자 순조의 누이인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1836)의 궁가로 추정되는 ‘이동궁(履洞宮)’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주로 기록으로만 남은 19세기 궁가 백자가 실물로 확인된 드문 예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중화궁인(重華宮印)’은 손잡이(인뉴, 印鈕)가 서수(상서로운 짐승)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고, 도장의 글씨는 전서와 해서가 혼용된 독특한 형태를 보여준다. 그만큼 역사적인 가치가 큰 유물로 평가되며, 이에 관한 내용은 향후 연구를 통해 보다 상세히 밝혀질 것이 기대된다.
이들 두 점의 조선 왕실 유물은 지난 3월 각각 미국 뉴욕 경매에 출품된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견하였고, 라이엇게임즈가 조성한 ‘국외소재 문화재 환수기금’을 통해 무사히 매입할 수 있었다. 유물들은 조선왕실유물 전문기관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및 보존할 예정이며 앞으로 연구 및 전시 다양한 방면에서 요긴히 활용될 전망이다.
이로서 라이엇게임즈는 2014년 ‘석가삼존도’, 2018년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2019년 4월 ‘척암선생문집 책판’ 환수에 이어 4, 5번째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에 성공했다. 이는 라이엇게임즈가 매년 한국 문화유산 보호 및 지원을 위한 기부금을 전달함으로써, 수 억 원 규모의 국외문화재 환수기금을 조성하고 시의적절하게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2012년 재단 설립 이후 환수된 국외문화재는 지난 4월 환수된 ‘척암선생문집 책판’을 포함해 총 23건, 373점이며 이 중 라이엇게임즈가 2013년부터 지금까지 총 5건의 환수를 지원한 바 있다.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박준규 대표는 “역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조선 왕실 유물을 두 점이나 고국의 품에 안길 수 있어 뿌듯하다.”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게이머 여러분의 생각이다. 2개월여 전 ‘척암선생문집 책판’ 환수를 발표하고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후원자로서 기업 이미지를 재고하는 효과는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여러분이 이러한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는데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다음은 현장에서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두 왕실 유물을 뉴욕 경매에서 환수했는데, 입찰액이 어느 정도인가
: 매입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이 외부에 노출될 경우 문화재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향후 관련 기관이나 박물관이 문화재 환수를 진행하는데도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 사실 백자 자체는 그리 특출한 유물이 아닌데, 어떻게 환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나
: 물론 사진만 보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여러 전문가가 실물을 확인하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면밀히 검토했다. 이번에 환수한 백자는 왕실 가족의 삶을 보여주고, 분원 자기의 생산과 사용에 대한 역사적 사료가 될만한 유물이다.
● 라이엇게임즈는 국계 기업임에도 한국 문화재 환수에 전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리그 오브 레전드’를 서비스하는 다른 국가에서도 여러 사회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한국은 특히 일찍이 고민하고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온 대표적인 지역이다. 한국 사회와 게이머들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던 차에, ‘게임은 문화다’라는 생각에서 문화재 보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 게임을 젊은 층이 많이 즐기다 보니 이들에게 우리 문화의 가치를 환기해줄 수 있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한편, 라이엇 게임즈는 한국 문화유산 보호 및 지원을 위해 2012년 문화재청과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체결하고 약 8년간 누적 50억 원 이상을 기부해 왔다.
뿐만 아니라 서울문묘 및 성균관과 주요 서원 3D 정밀 측량, 조선시대 왕실 유물 보존처리 지원, 4대 고궁 보존 관리, 미국 워싱턴 D.C.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및 종로구 소재 이상의 집 새단장 후원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2017년 외국계 기업 최초로 문화유산보호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 해는 지난 해 추가 기부한 8억 원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청소년, 게이머와 함께 하는 문화유적지 탐방 역사 교육 및 무형문화재 지원 사업과 문화유산 분야 인적자원 지원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