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성 작가가 말하는 ‘달빛조각사’, 소설 그리고 게임
카카오게임즈 하반기 최고 기대작 ‘달빛조각사’ 정식 론칭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8월부터 진행된 사전 예약 참가자는 어느덧 300만 명을 넘어 게임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방증하고 있다. 이처럼 뜨거운 열기는 ‘게임의 신’이라 불리는 카카오게임즈와 ‘바람의 나라’ 아버지 송재경 대표의 후광도 있겠으나, 역시 동명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향한 성원이 가장 클 것이다.
남희성 작가가 2007년 첫 선을 보인 판타지 소설 ‘달빛조각사’는 주인공 위드가 VR(가상현실) 온라인 게임에서 조각사라는 이색 직업을 가지고 겪는 모험담을 그렸다. 지금은 판타지 소설의 메인스트림이 된 VR 게임이란 컨셉을 일찍이 시도하여 대중화시킨 명작으로, 덕분에 남희성 작가는 게임 판타지의 대부라 불리기도 한다.
기자가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의 ‘달빛조각사’ 개발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2016년 봄이었다. 그야말로 거장과 거장의 만남이었고, 게임 판타지의 대표격 작품이 진짜 게임이 되는 상황 자체도 흥미로웠다. 이후 모바일 게임으로는 상당히 긴 3년여 개발 기간을 거쳐 드디어 정식 론칭이 목전에 다가왔다. 그사이 원작 소설 역시 12년이 넘는 장기 연재의 끝을 맺었다. 남희성 작가에게도, 주인공 위드에게도 그야말로 긴 여정이었다.
소설 ‘달빛조각사’은 완결되고 게임 ‘달빛조각사’는 론칭한다. 묘한 엇갈림인 듯도 하고 바통을 넘겨받는 듯도 하다. 이에 오랜 집필을 마무리하고 휴식을 취하는 남희성 작가와 함께 소설 그리고 게임 ‘달빛조각사’ 이야기를 나눴다.
● 반갑다. ‘달빛조각사’ 완결로부터 3개월이 흘렀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 루리웹과 인터뷰라니 반가운 마음이 크다. ‘달빛조각사’를 장기 연재하느라 새로운 소설에 대한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최근 몇 년간 익명으로 매년 하나씩 습작을 연재해왔다. 지금도 가볍게 글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가는 와중이다. 내년 초 정도에 게임 혹은 정통 판타지 소설을 새로이 선보일 계획이다.
● 12년간 집필한 작품을 끝맺는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소회가 남다를 듯하다
: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하나의 세계관에 머무르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즐거운 작업이었다. 이제 끝이라는 아쉬움보다는 다시금 새로운 글을 쓴다는 즐거움도 가지고 있다. 물론 ‘달빛조각사’의 소소한 에필로그가 남아있기도 한데, 주인공인 위드는 평생 잊지 못하고 품어갈 듯하다. 내 아들을 위드처럼 키울까 싶기도 하고(웃음).
● 12년 전 ‘달빛조각사’를 첫 문장을 써가던 시절과 완결된 지금, 무엇이 바뀌었나
: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다음달 생활비를 걱정하곤 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작가로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 자체에 훨씬 익숙해진 덕분일까. 먹고 살기 힘든 때에도 그날 글이 잘 풀려서 재미있게 나오면 행복했는데, 글이란 쓰면 쓸수록 어려워져서 지금은 그때보다 더 힘들기도 하고 그만큼 보람도 느낀다.
● 게임도 마찬가지지만 ‘콘텐츠에 돈을 지불한다’는 의식이 커져서, 더 이상 예전처럼 소설의 불법 텍스트 공유가 횡행하지 않는다
: 과거에는 생존이 걱정될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되어 다행이다. 개인적으로 텍본 단속을 하던 일이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글만 쓰면서 즐겁게 살다가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날락하고 피의자나 그들의 부모와 언성 높여 싸우며 자초지정을 설명하고… 대부분 좋은 분들이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사람들과 엮이고 다투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후회했던 적도 많다.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쉬는 동안 게임도 좀 했나. 그러고 보니 평소 게임을 즐기는 편이지 궁금하다
: 게임을 상당히 좋아한다. 중, 고등학생 시절 새벽까지 게임하는 일상이 가장 즐거웠고 방학 때는 어떤 게임을 하느냐가 행복한 고민이었다. ‘달빛조각사’를 쓰기 전이나 후나 거의 매일 게임을 즐기는 삶이다. 전략, 시뮬레이션, RPG 경영 장르를 선호하고 웬만한 대작은 가리지 않고 해보는 편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심시티’, ‘삼국지’,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부터 ‘풋볼 매니저’, ‘피파’, ‘배틀그라운드’, ‘리그 오브 레전드’, ‘더 위쳐’, ‘림월드’, ‘토탈 워’까지.
특히 ‘스타크래프트’는 꽤 잘하는 편이라 KPGL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99년도 즈음 이기석씨가 우승하여 초고속 인터넷 광고를 찍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지방에 살고 귀차니즘 때문에 16강 이후로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그때 대회에 나가 상위권에 올랐다면 프로게이머로 인생이 바뀌었을지도(웃음).
● 게임 판타지의 대부라 할 수 있는데 이제 정말 본인 소설이 게임으로 만들어진다. 구체적인 기획은 언제부터 이루어졌나
: ‘달빛조각사’는 VR 게임을 무대로 삼았기 때문에 게임화는 일종의 로망이었다. 퀘스트와 전투, 필드에 대해 상상할 때도 진짜 게임임을 고려했을 정도니까. 그러다 실제 게임화 기획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5, 6년 전으로 기억한다. 우선 엑스엘게임즈와 미팅을 한 번 하고 그 1년 뒤부터 본격적인 계약에 대해 이야기 나눴었다.
● ‘달빛조각사’라면 원하는 게임사가 많았을 법한데,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화 함께하기로 결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중학교를 다닐 적에 처음으로 ‘쥬라기 공원’이란 머드 게임을 접했다. ‘달빛조각사’의 원형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가령 ‘티라노사우루스가 등장했습니다’ → ‘명령어: 발로 차’ → ‘돌려차기로 강하게 걷어찼습니다. 대미지 647’ 이런 식으로 텍스트로 즐기는 온라인 게임이었다. 이렇다 할 그래픽 기반은 아니었지만 글줄을 읽고 상상하며 그 세계관에 빠져들곤 했다. 고등학생 즈음에는 하이텔에서 최고 레벨을 달성했고 길드를 만들어 유저 이벤트도 주최했었다.
그렇게 몇 년간 빠져 살던 ‘쥬라기 공원’을 만든 이가 바로 송재경 대표이고, 이후 국내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를 개발한 것도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 ‘아키에이지’는 한창 글을 쓰던 시절이라 ‘온라인 게임만큼은 빠져들지 말자…’라는 다짐 탓에 해보진 않았지만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즐겨봤다. 결과적으로 엑스엘게임즈에서 연락이 왔을 때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 송재경 대표나 남희성 작가나 모바일보다는 PC, 콘솔 게임에 익숙한 세대다. 이왕이면 PC MMORPG로 만들고픈 욕심도 들었을 텐데
: 그런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달빛조각사’ 소설이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난 것처럼 ‘달빛조각사’ 게임 역시 보다 많은 유저가 즐길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 게임화에 있어 원작자의 역할은 천차만별이다. IP만 내주고 신경을 끄기도 하고 거의 개발자 수준으로 관여하는 경우도 있다
: 사내 테스트에 함꼐 참여하여 여러 의견을 주고 받았다. 서윤은 꼭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 ‘달빛조각사’ 테스트에 참여해보니 감상이 어떤가. 정식 론칭 이후에도 열심히 즐길 생각인지
: 개발이 막 시작되었던 초기 버전과 1년 정도 개발된 버전, 그리고 올해에만 두 가지 버전을 해본 것 같다. 초기 버전은 그래픽을 제대로 완성하기 전이라 솔직히 ‘이게 뭐야’ 싶었고(웃음), 그 다음 버전부터는 열심히 즐겼다. 다만 보안 문제 상 개발사 내에서만 다운로드와 패치가 가능하여 보통 설치하면 일주일 이상 플레이하긴 어렵더라.
그럼에도 필드에서 제이크(송재경 대표)를 때려잡겠다는 이상한 집념에 불타서 광렙하고, 실제로 라비아스의 피라미드에서 직접 마주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덮치려고 보니 레벨과 장비빨에 밀려서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갔다. 게임이 정식 론칭하면 당연히 또 즐길 계획이며 현질도 아주 실컷 하려 한다. 부(富)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
● 소설이 게임화되면 아무래도 모든 것을 그대로 구현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런 점은 꼭 살려달라’고 주문한 바가 있나
: 기본적으로 개발사와 좋은 신뢰 관계에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을 주문하기 보다 전반적인 느낌이 실사보다는 아기자기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전했다. 어린 독자들도 게임을 플레이할 텐데 유혈이 난무하는 ‘달빛조각사’는 보고 싶지 않았다.
● 그렇다면 최근 트렌드와 다소 다른 SD 캐릭터는 남희성 작가가 직접 의견을 전달한 부분이었나
: 그렇다. 처음부터 내 의견은 SD였다. 물론 그 부분은 개발사의 자체적인 판단이 더 컸겠지만 개인적으로 ‘달빛조각사’의 자유로운 느낌을 살리기에 SD가 좋다고 봤다. 어린 독자들도 많고.
● 게임에 오리지널 시나리오도 들어간다는데 혹시 이런 부분을 직접 써주거나 검수했나
: 게임이 오리지널 시나리오까지 직접 쓰진 않았다. 다만 내 생각보다도 소설 속 이야기가 많이 반영되어서, 게임 진행과 소설의 내용이 일치하는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유저가 직접 위드가 되는 형태는 아닌 듯한데, 원작의 주요 등장인물을 게임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
: 상상하면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웃음).
● 이제와 얘기지만, 판타지 소설에서 조각사라는 직업을 내세운 발상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 음, 좀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냥 해보고 싶었다. ‘달빛조각사’가 다섯 번째 글이었는데 무엇보다 스스로 재미있을 거 같은 글을 쓰고자 했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아무래도 무리수처럼 느껴지는데 그래도 그냥 해보고 싶었다. 더불어 소설을 오래 쓰면서도 예술 분야에 대해선 잘 몰라 조각가 주인공과 함께 공부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 소설에서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 게임에서 조각사라는 직업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 직업의 즐거움과 보상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에서의 노가다는 주인공이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일반 유저가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 그러면 남희성 작가는 게임을 즐길 때 딜러, 탱커, 서포터 중 어떤 역할을 선호하는 편인가
: 무조건 딜러다. 힐러는 ‘에버퀘스트’에서 조금 해봤는데, 역시 그냥 실컷 때리는 게 좋더라.
● 긴 인터뷰 고맙다. 어느덧 ‘달빛조각사’ 사전 예약자가 3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만큼 원작을 향한 팬덤의 성원이 굉장하다
: 게임 ‘달빛조각사’를 기다려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부디 로열 로드에서 멋진 경험을 즐기기 바란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