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매력 총집합 우주 생존기, '스페이스 헤이븐' 체험기
이따금씩, 게이머로 살다 보면 할 게임이 없어서 심심한 기간이 찾아오곤 하죠. 흔히 말하는 게임불감증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 시기에 새롭게 출시될 게임이 비어 있어서 말그대로 할 게임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게이머들은 어떻게든 할 게임을 찾아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새 게임을 찾아다니죠.
그래서 저도 지난 몇 주 스팀 상점을 이잡듯이 뒤졌습니다. 그러다 한 게임이 눈에 들어왔죠. 그렇게 찾아낸 버그바이트에서 제작한 ‘스페이스 헤이븐’ 은 지난 5월 22일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게임입니다. 가격은 2만원대로 인디 게임으로서는 적당한 선이죠.
게임의 구조는 아직 간단합니다. 튜토리얼을 빼면 준비된 시나리오도 하나죠. 이미 구축되어 있는 기지에서 새로 우주선을 건조하고 항성계를 탐험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AI 를 조정해서 우주선을 만든다, 라는 멘트에서 으레 생각할 법한 구조들은 다 갖추어져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 장르를 미리 해본 사람이라면 아주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죠.
기본적으로 이 게임을 간단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몇가지 레퍼런스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림월드’, ‘FTL’, ‘엔드리스 던전’ 이 대표적인데요. ‘FTL’ 처럼 우주선이라는 도구를 중심으로, ‘림월드’ 처럼 각자의 패턴을 가진 AI를 조율해서, ‘엔드리스 던전’ 처럼 던전 크롤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게 그런 게임들을 적당히 섞어서 베꼈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 정도의 느낌이죠. 뭐, 이런 인디 게임 필수 요소를 모두 모아놓은 특성에다가 감성 가득한 도트 그래픽으로 인디 게임 팬이라면 눈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게임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 게임에서 크롤링하게 되는 던전은 다름 아닌 항성계라는 겁니다. 현재 ‘스페이스 헤이븐’ 에 마련된 우주는 크게 한줄기로 되어 있고, 처음에는 얼핏 그저 우주를 여행하는 것인가 보다 싶지만 그 구조를 들여다보면 일직선의 던전 크롤링에 가깝다는걸 알게 됩니다. 각각의 항성계들은 한 칸 앞까지 도달하기 전에는 무엇이 있는지 내용을 확인할 수 없고, 비용을 계속 지불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다음 성계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계속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어느 정도 비용을 들이고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때 어느정도의 결과를 얻을 수 있나를 고민하게 되죠.
이처럼 이 게임이 로그라이크적인 면모를 보이는 부분은, 이 게임의 큰 줄기는 불확정성을 기반으로 한 선택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모든 선택에는 일정량의 비용과 위협이 수반된다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로그라이크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부분은 매우 강하게 로그라이크에 영향을 받은게 눈에 띄기 때문에 추가로 분류하자면 로그라이트로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본래 이런 장르에서 게임이 엄청나게 재미있게 느껴지는 때는 이제 막 어느정도 자력갱생이 가능한 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유지보수와 앞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플레이하는데 대략적으로 어떤게 필요한지 감이 잡힐 때입니다. 게임에 있는 모든 도구가 내 것 같고 무엇을 할지 생각하게 되는 기 시기가 오면 이제 게임을 본격적으로 플레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틀에서 이 게임은 훌륭합니다. 일단 자원의 순환 구조는 기초적이지만 너무 복잡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죠. 얼음, 구리, 강철 등 광석을 채취하여 제련한 재료로 바꾸고, 그 재료들로 다시 건축에 쓰이는 여러 블록들, 그리고 생명유지에 필요한 자원으로 변환되죠. 이런 자원의 순환 구조는 너무 단순한 선형구조로 짜게 되면 게임이 너무 간단해서 재미가 없고, 그렇다고 모든 자원이 제각각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도 필요 이상으로 복잡도를 높여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함선을 만들고 유지하고, 탐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소의 결합입니다. 빌딩에서부터 자원 관리, AI 최적화, 전투 진행, 다양한 선택지를 고르는 고민 등 여러 장르의 요소가 아주 복합적으로 녹아있고, 이게 바로 제가 앞서 3가지나 되는 예시를 든 이유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 분명 각각의 항성계는 일종의 던전인 만큼 항상 흥미로운 변수를 담고 기대를 불러일으켜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변수라고 한다면 버려진 폐함, 그리고 채취 가능한 자원, 적이나 중립으로 등장하는 NPC 함선들입니다.
배를 구성하는 각 시설도 그렇습니다. 시설의 가짓수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각 시설들은 현재 각자 자원이나 역할을 하나씩 배분 받아 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사용될 뿐이고, 그 순환 구조를 한 번 만들고 나면 그 이후로는 새롭게 추가할 시설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이 시설들이 질적으로 상승하지도 않기 때문에 뭔가 확충하고 함선의 능력을 올리려면 공간을 늘리고 같은 시설을 더 많이 짓는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단조롭게 만드는 편입니다.
선원 AI는 현재 이 게임의 가장 알쏭달쏭한 부분인데, 어떨 때는 너무 멍청해서 대체 어떻게 이렇게 행동하는지 궁금하지만, 어떨 때는 기가막히게 잘 짜여진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각 행동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동선을 짜는 것 까지는 좋지만 그 행동 분류가 큰 편이라 정확히 내가 의도하는대로 분업하거나 행동하도록 만드는건 불가능합니다. 또 별도로 전투 배치를 위한 AI 모드가 없어서, 전투가 벌어지거나, 또는 생명 유지가 안되서 치명적인 상황인데도 취침과 휴식시간을 칼같이 지켜서 자멸하는걸 보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현재 가장 부족한 부분은 중반 이후의 게임 콘텐츠입니다. 본격적으로 항성계를 탐험하게 되면 하게 되는 플레이는 광물을 캐고, 버려진 유령선을 탐험해 외계인을 때려잡고 인양하거나, 또는 해적선을 때려잡아 나포하고 선원을 고용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플레이들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고, 그리고 많은 핵심 메카닉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큰 기대를 품고 온갖 고민을 하며 흥미롭게 플레이하게 되는 초반에 비해서 매우 비루해지고, 아직은 오래 반복 플레이를 하기엔 부족한 편입니다.
다만 이 외에도 자잘한 문제점들이 있는 편임에도 제가 모두 언급하거나 이 문제점들로 이 게임 자체를 저평가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일단 얼리 액세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리 액세스가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건 바로 1. 게임의 큰 틀, 거시적인 구조가 완성되어 있을 것, 2. 개발자가 제시한 향후 개발 플랜이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 것 입니다. 즉, 충분히 높은 구체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제가 이 게임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이 기본 틀이 향후 추가되는 콘텐츠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되기에 최적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많이, 그리고 섬세하게 보완된다면 이 게임은 이 가격대에서는 말도 안될만큼 완전한 게임이 될 듯 합니다.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