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서사와 게임성, 한국어로 만난 ‘오니가 우는 나라’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란 그 무엇보다 두렵고 슬픈 일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죽음은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의 종언이기에 고통스러운 삶보다도 더 꺼려진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면 어떨까? 영혼이 확실히 존재하고 윤회전생을 통해 다시 태어남이 약속된 세상이라면. 그래도 여전히 죽음은 두렵고 슬프기만 한 일일까.
올 여름 국내 정식 발매를 앞둔 신작 액션 RPG ‘오니가 우는 나라(鬼ノ哭ク邦)’는 이러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제물과 눈의 세츠나’, ‘로스트 스피어’로 잘 알려진 도쿄 RPG 팩토리가 개발하고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이 한국어를 담당하며, 무엇보다 ‘반숙영웅’의 아버지 토키타 타카시가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를 맡아 큰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죽음을 슬퍼해선 안되는, 윤회전생의 나라
윤회전생으로 생명이 꽃피는 세계. 사람들은 부여 받은 삶을 찬양하고 내세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 죽음에 대한 비탄이란 산 자를 얽매고 죽은 자를 주저하게 하는 일. 그러니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윤회전생을 가로막는 금기에 해당한다. 때문에 이 세계의 사람들은, 눈물을 거두고 웃는 얼굴로 죽은 자를 떠나 보낸다
하지만 애써 눈물을 거두려는 마음에도 구원은 필요한 법. 그리하여 죽은 자의 방황하는 영혼 즉 미혼을 구제하고 산 자와 죽은 자, 현계와 유계를 조정하는 존재가 탄생하였으니. 사람들은 그들을 망인지기라 불렀다. 망인지기는 미혼의 미련을 풀어주어 내세로 보내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마음을 느끼며 생명을 받드는 자이다.
‘오니가 우는 나라’의 주인공 카가치는 하얀 머리칼이 인상적인 젊은 망인지기다.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여의고 망인지기 쿠시의 손에 자란 그는, 다소 염세적이지만 알고 보면 속 깊은 청년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쿠시의 딸이자 소꿉친구인 마유라와 함께 어엿한 망인지기가 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중. 그리고 이 시점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본격적인 게임 소개에 앞서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번역이다. ‘오니가 우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액션 RPG지만 전투만큼이나 독특한 세계관과 서사의 비중이 크다. 특히 마요이토(迷イ人), 이쿠토모리(逝ク人守リ) 같은 난해한 명사가 많이 나오는데 이를 미혼, 망인지기처럼 적절한 의역하여 본뜻과 어감을 모두 살리는데 성공했다.
귀화혼, 단순한 무기를 넘어 신뢰하는 동료로
도쿄 RPG 팩토리의 전작 ‘제물과 눈의 세츠나’와 ‘로스트 스피어’는 고전 JRPG가 주었던 재미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오니가 우는 나라’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는 초창기 액션 RPG와 비슷하다. 쿼터뷰로 선형적인 맵을 전진하며 다가오는 적을 쓰러트리는 알기 쉬운 구성이다.
이렇게만 보면 단조로운 게임 같지만 여기에 본작만의 특징인 귀화혼이 다양성을 더한다. 귀화혼은 이름 그대로 망인지기에게 깃들어 힘이 되어주는 우호적 영혼이다. 게임 내에 총 11종이 존재하며 한 번에 네 개까지 편성해둘 수 있는데, 어떤 귀화혼을 불러내는지에 따라 카가치가 사용하는 무기와 기술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령 처음부터 가지고 시작하는 아이샤는 장검이 주무기로 공격간 빈틈이 적고 대시가 재빠른 공방일체 밸런스 타입. 반면 다음으로 얻는 자프는 거창 돌격으로 공격의 폭은 좁으나 사거리가 길고 점프를 통한 입체적인 기동이 강점이다. 이처럼 평타뿐 아니라 이동기, 스킬까지 귀화혼에 따라 바뀌니 사실상 11종의 각기 다른 캐릭터인 셈이다.
다만 귀화혼에 따라 무기가 바뀐다고 귀화혼 자체가 곧 장비는 아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여러 아이템을 얻게 되는데 칼은 아이샤, 창은 자프와 같은 식으로 적합한 귀화혼에게 장착해주자. 또한 불필요한 아이템을 재료로 삼아 원하는 문기를 강화하거나, 공격력 증가 혹은 이동속도 증가 등의 옵션이 붙은 영석을 장착할 수도 있다.
귀화혼과 함께 전투를 수행하다 보면 화면 하단에 동조율이 점차 높아지게 된다. 동조율이 높을수록 공격력이 증가하여 유리하긴 하지만 반대로 방어력이 감소하니 스킬을 써서 어느정도 낮춰줄 필요가 있다. 혹은 동조율이 100%까지 찼을 때 순간적으로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귀화곡화를 쓰는 방법도 있다. 일종의 변신이나 폭주 같은 느낌이다.
귀화혼도 한 명의 영혼이므로 저마다 살았을 적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 역시 ‘오니가 우는 나라’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스킬 포인트를 모아 스킬을 해금할 뿐 아니라 각 귀화혼의 사연을 듣는 게 가능하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귀화혼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수록 단순한 무기가 아닌 진짜 파트너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고유한 스토리와 시스템에 흥미가 동한다면
귀화혼이 카가치의 액션을 담당한다면 맵 자체에도 독특한 요소가 눈에 띈다. ‘오니가 우는 나라’의 세계는 현계와 유계로 나뉘며 망인지기는 언제든 둘 사이를 오갈 수 있다. 다만 유계는 산 자가 잠시도 버틸 수 없는 위험한 곳으로 망인지기라 해도 마찬가지. 대신 현계에서 염지기라는 특정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그 일대에선 유계로 진입해도 괜찮다.
현계와 유계는 서식하는 몬스터가 다르고 사물의 배치도 달라지는 등 서로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현계에서 움직이거나 파괴할 수 없는 물체를 유계에서 제거하는 등 게임 진행을 위한 간단한 퍼즐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유계 일대는 크리티컬 확률 상승이나 이동속도 저하처럼 고유한 섭리가 작용하기도 한다.
즉 윤회전생이 가능한 세계라는 독특한 설정, 귀화혼을 교체하며 싸우는 전투, 현계와 유계를 오가는 모험이 ‘오니가 우는 나라’를 이루는 세 가지 특징이다. 아울러 본 기사에선 다루지 않은 신비한 소녀 린네와 증오의 화신 흑야차를 중심으로 한 사건의 전말은 본편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과연 윤회전생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필자가 느끼기에 ‘오니가 우는 나라’는 단점이 분명하지만 그보다 장점이 더 큰 작품이다. 확실히 최신작답지 않게 투박한 그래픽과 어딘지 답답한 모션은 액션 RPG로서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본작이 들려주고자 하는 서사가 좋았고, 11종의 귀화혼을 수집하고 다루는 전투 시스템도 나름대로 파고드는 재미가 있다.
비록 해외에선 진즉 출시되어 이미 평가가 끝난 작품이지만 그냥 묻히기에는 너무 아쉬운 이야기기도 하다. 액션 RPG ‘오니가 우는 나라’는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을 통해 올 여름 한국어화 정식 발매할 예정이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