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보다 전통에 충실한 로그라이크,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 체험
로그라이크의 대부이자 시발점, '로그'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분명 매니아층을 상대로 하는 장르인 만큼, ‘로그라이크 답다’ 또는 ‘답지않다’ 라는 기준이 매우 중요한 평가의 잣대가 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 는 어느쪽인가 하면, ‘스컬’ 은 정통 로그라이크에서 일부 요소를 덜어내 조금 더 가볍게 만든 게임이다. 완전히 새로운 요소를 로그라이크 요소와 결합시켜 번뜩이는 게임을 만들어냈던 ‘크립트 오브 네크로댄서’ 나 ‘슬레이 더 스파이어’, ‘엔터 더 건전’ 같은 게임과는 다른 방향성이다.
2010년대 후반 들어 로그라이크는 다시 중흥을 맞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이들 게임은 대체로 로그라이크로서 필요한 기반적 요소들(가차없는 죽음, 무작위성, 어렵고 도전적인 난이도)이라는 핵심은 유지한 채 몇몇 요즘 트렌드에 불필요한 요소를 삭제하고 플레이 메카닉 면에서 새로운 것(리듬, 카드, 슈팅)을 접목시킨 게임이었다. 이것이 지금 로그라이크 또는 로그라이트 게임들의 개발 트렌드이며, 때문에 온갖 신선한 플레이 아이디어를 지닌 인디 개발자들, 그리고 신선함을 추구하는 플레이어들이 모여드는 장르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스컬’ 은 그런 새로운 플레이 메카닉을 추구하는 면모는 크지 않다. 플레이 메카닉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횡스크롤 액션 어드벤쳐이며 수많은 로그라이크 선배들이 지나쳐온 구조이다. 그리고 로그라이크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것들은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게임이다.
게임의 스토리는 흔히 알려진 용사 이야기를 반대로 비튼 방향으로 진행된다. 용사와 인간의 왕국에게 침략당해 마왕이 실종되고 초토화된 마왕성에서 조그마한 해골 병사가 일어나게 되고 그 해골을 주인공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이 각인을 통해 기본적인 능력치 뿐만 아니라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효과들을 획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대쉬 시에 무적으로 만들어주거나, 1회의 추가 목숨을 제공하거나, 머리를 교체할 때 여러 효과를 부여하는 식으로 강화할 수 있으며 새로운 플레이를 가능하게 해준다.
마왕성에 있는 다른 엔피씨인 인호족 사냥꾼은 시작시 사용할 수 있는 스컬을 하나 제공하고 마석을 제공하면 추가로 스컬을 내어준다. 오우거 상인도 구출하게 되면 이쪽은 아이템을 하나 제공한다. 역시 마석을 내고 추가 아이템을 지급받을 수 있다.
각 스테이지는 중간보스와 스테이지 보스를 가지고 있다. 중간보스는 최강의 적인 용사와 함께 마왕들을 침공한 모험가들로, 1스테이지에서는 한명이, 2스테이지 이후부터는 두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식이다. 모험가는 도적, 전사, 궁수, 마법사, 사제, 견습 용사이며 저마다 확실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사용하는 스킬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특정 스컬에 따라서 난이도가 급락하거나 급상승한다. 이들은 모두 궁극기를 가지고 있고 궁극기 시전 중에 일정량 이상을 타격하여 기술을 캔슬시킬 수 있다.
주인공 리틀본의 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교체 가능한 머리, 그리고 아이템이다. 게임의 플레이 핵심 변수는 바로 머리다. 스켈레톤은 머리를 교체하는 식으로 능력과 스킬이 모두 바뀌며, 최대 두개의 머리를 동시에 가지고 다니며 교체할 수 있다. 머리를 교체함으로서 생기는 변화는 거의 모든 부분이다. 기본 공격이 원거리인가 근거리인가하는 것에서부터 공격 속도나 연타 가능 횟수, 공격력, 전진 능력 등에서 모두 차이가 생긴다. 점프와 대쉬의 성능, 횟수도 변화가 생기기도 하며, 다운 어택이 가능 경우도 생긴다. 2개의 액티브 스킬은 당연하게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각 스컬의 컨셉도 중세 판타지라는 테마에 국한되지 않고 온갖 종류가 있어 재미있다. 락커, 라이더 같은 기상천외한 컨셉과 동시에 강력함을 자랑하는 스컬은 뽑는 것만으로 플레이가 매우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기본 공격 없이 5초 후 무조건 폭발하는 폭탄을 들고 뛰어다닐 뿐이지만 발군의 위력을 자랑해 컨셉 플레이가 가능한 스켈레톤 폭탄병 등, 여러 종류의 스컬이 계속해서 플레이하여 새로운 스컬을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아이템, 정수는 스컬과 별도로 작동하는 강화 요소로, 스컬 만큼이나 다양하고 커다란 플레이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필자가 겪었던 가장 재미있던 아이템은 이단 점프시에 아래에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었는데, 스피드 타입 스컬을 장착하고 이 폭탄 아이템, 그리고 훨씬 더 빠르고 자주 스킬과 대시를 사용하게 해주는 고장난 마력엔진 아이템을 조합하면 기본 공격을 하지 않고 오직 이단점프를 통한 폭탄질과 스킬 사용만으로 모든 적을 빠르게 처치하고 다닐 수 있었다. 아이템이 얼마나 나오는가 하는 부분도 순전히 운으로 결정되는 것이기에, 스테이지 하나를 깰 동안 대여섯개의 아이템을 얻기도 하고 한두개에서 그치기도 한다.
정수는 스컬 외에 별도로 사용가능한 액티브 스킬로 생각하면 편하다. 중요한 점은 스컬을 불문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으로 적을 일시에 얼리는 등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 정수를 사용한다면 스컬, 아이템과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사람들이 로그라이크 혹은 로그라이트, 또는 로그라이크 요소를 받아들인 그 무엇이든 아무튼 간에 이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는 크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주는 카타르시스’ 와 ‘수많은 변수와 가차없는 난이도를 숙련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만족감’ 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 는 그런 로그라이크적 플레이에 매우 충실하고 훌륭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자체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우선 그래픽은 분명 나쁘지 않은 2D 도트 그래픽이지만, 이제 인디 게임에서도 8~16비트풍 올드 도트는 너무 남발되어버린 스타일이고, 그나마도 ‘크립트 오브 네크로댄서’ 같은 게임은 강렬한 색감 대비와 특유의 조형감으로 변화를 꾀했지만 ‘스컬’ 의 도트 그래픽은 다소 뻔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음악의 경우에도, 곡 자체는 좋으나 분위기에 따른 음악 사용이 다소 획일적이다.
이는 분명 인디 개발인 만큼 어쩔 수 없는 한계점도 있었겠지만, 더 많은 인력과 시간, 자금이 필요하지 않은 방향으로도 보다 큰 차별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기에 아쉬움은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시청각적 부분도 분명 일정 수준을 충족한 것은 분명하며 플레이를 해치지 않게 잘 다듬어져 있다.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