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슈프림 배틀, 과금이 전력의 결정적인 차이가 맞다는 것을
1979년 4월 7일, 테레비 아사히를 통해 저 기념비적인 ‘건담 대지에 서다(ガンダム大地に立つ)’가 방영되고 약 40년이 흘렀다. 사실 ‘기동전사 건담’은 본방 당시 시청률 저조로 조기 종영의 고배를 마셨지만, 점차 재평가를 거친 끝에 이제는 일개 TVA를 넘어서 일본 문화 산업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본가인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소설이나 설정집 등 관련 도서, 프라모델, 게임이 매년 끊임없이 제작되고 또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그러니까 건덕후 입장에서 ‘기동전사 건담’을 게임으로 즐기는 건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이제껏 ‘건담’ IP를 활용한 게임이 무수히 많았고 앞으로도 분명 그럴 테니. 차이가 있다면 시대 조류에 맞춰 모바일용으로 개발되는 작품이 늘어났다는 정도일까. 오늘 소개할 ‘건담 슈프림 배틀(Gundam Supreme Battle)’ 역시 최근 양대 앱마켓서 글로벌 론칭한 모바일 게임이다. 참고로 중국에선 벌써 몇 년 전부터 서비스 중이었는데 드디어 우리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중국에서만 서비스되던 '건담 슈프림 배틀'을 국내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한 명의 진성 건덕후로서 이건 찍먹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이끼마쓰~!
‘건담’ IP의 게임화 방식은 크게 정적이거나 동적이거나로 나뉜다. 정적인 방식의 대표작은 SRPG ‘SD건담 G제네레이션’ 시리즈고, 동적인 방식의 대표작은 실시간 액션 ‘건담 VS’ 시리즈다. 물론 모든 ‘건담’ 게임이 이 분류에 들어가진 않으나 대충 크게 보자면 그렇다는 것. 그리고 ‘건담 슈프림 배틀’은 명백하게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건담 VS’ 시리즈를 해봤다면 튜토리얼조차 필요 없을 만큼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많다. 사실상 ‘건대건M’이나 다름없다.
‘건담 VS’를 모르는 독자분들도 있을 테니 시스템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건담 슈프림 배틀’은 3D로 제작된 3인칭 액션 PvP 게임이다. 원작에 등장하는 다종다양한 MS(Mobile Suit, 그냥 로봇이라 생각하자)를 조작하여 네모진 전장에서 다른 게이머와 승부를 겨룬다. 대전 규칙은 1:1 개인전과 2:2 단체전을 지원한다. 출격 기체는 최대 4대까지 설정 가능하고, 자신이든 아군이든 격추될 때마다 화면 상단에 카운트가 줄어들어 먼저 다 소진한 쪽이 패배한다.
본작은 PvP 게임이다. 대전 시스템은 '건담 VS'를 거의 그대로 이식했다.
'건담 VS' 시리즈를 즐겼던 게이머라면 튜토리얼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
‘건담 VS’의 메인 플랫폼은 콘솔과 아케이드다. 즉 스틱을 움직이고 버튼을 연타하며 즐기는 게임이다. 그 형태와 구성을 모바일로 이식하긴 비교적 쉽지만 컨트롤러의 조작감까지 디스플레이 터치로 구현하는 건 한계가 있다. ‘건담 슈프림 배틀’의 터치 UI를 보면 화면 좌측에 원형 이동키와 네 방향 회피키가, 우측에 근접 및 원거리 공격과 특수기, 방어, 가속, 비행, 목표 변경키가 자리했다. 전투 도중에 EX 게이지가 다 차면 여기에 필살기가 추가된다.
그러니까 화면에 보이는 것만 세도 조작해야 할 키가 10개가 넘는다. 그야 다른 게임도 스킬까지 다 합치면 5~6개 이상인 경우가 흔하지만 솔직히 다들 자동화로 돌리지 않나. 반면 ‘건담 슈프림 배틀’은 완전 수동으로 실시간 대전을 벌이는 게임이라 피지컬이 훨씬 중요하다. 상대와의 거리, 대치 상황을 고려하여 빠르게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정확한 조작으로 응수해야 승리를 거머쥔다. 당연히 터치 UI는 답답하고 불편할 때가 많아 컨트롤러가 그리워진다.
아무래도 '건담 VS'의 다양한 조작을 터치 UI만으로 소화하기가 쉽진 않다.
피지컬을 많이 탄다. 신속히 목표를 전환하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진다.
모바일에 맞춰 게임을 좀 단순화하거나 편의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처럼 우직하게 ‘건담 VS’ 조작 체계를 터치 UI로 이식한 선택은 일장일단이 존재한다. 우선 장점은 덕분에 아주 피지컬을 타는 게임이 되었다는 것. 터치 UI에 익숙하다는 전제 하에 ‘건담 VS’에서의 움직임을 거의 다 재현 가능하므로 그만큼 대전의 깊이가 상당하다. 만약 모바일 게임이라고 시스템을 단순화했다면 ‘건담 VS’의 재미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으리라.
이어서 단점은 사실 장점과 똑같다. 아주 피지컬을 타는 게임이라는 것. 그런데 그게 터치 UI라는 것. ‘건담 VS’는 전형적인 배우긴 쉽고 달인이 되긴 어려운(Easy to Learn, Hard to Master) 게임이다. 흔히 대전 게임은 맞으면서 배운다고들 하지 않나. 그 배움의 과정에서 재미를 붙이도록 돕는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손에 착 달라붙는 컨트롤러다. 컨트롤러는 단순한 조작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재미 요소다. 그런 측면에서 터치 UI는 본작의 큰 단점인 셈.
어쨌든 우직하게 모든 조작을 구현한 덕분에 대전의 깊이는 제대로 살렸다.
한 번씩 손가락이 미끄러질 때마다 컨트롤러 생각이 간절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건담 슈프림 배틀’의 정체성은 ‘건대건M’ 즉 PvP 게임이다. 그래서 모든 콘텐츠가 상술한 대전 시스템 기반으로 채워졌다. 나름 여러 콘텐츠가 있긴 한데 실시간 매칭이냐 비동기냐, 사람이냐 AI냐, 랭킹이나 비랭킹이냐 차이지 결국은 다 대전으로 통한다. 스토리 모드의 경우 원작 재현을 정말 구색만 맞춰놔서 그냥 보상이나 받으려 미는 수준이다. 대전 시스템의 이식율 자체는 나쁘지 않으므로 ‘건담 VS’를 모바일로 즐기고 싶다면 한 번 해보는 정도.
다만 그렇다고 ‘건담 슈프림 배틀’이 마냥 착하게 이식에만 전념한 작품이란 건 아니다. 작금의 모바일 게임이 대저 그러하듯 본작도 P2W(Pay to Win)이다. 즉 돈 많이 쓴 사람이 이기는 구조란 건데, 이게 오롯한 PvP 게임에선 굉장히 문제가 된다. 앞서 계속 피지컬을 타는 게임이라고 해놓고 갑자기 딴소리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분명 피지컬을 타는 게임이긴 하다. 근데 그와 동시에 돈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PvP 외에 콘텐츠가 있긴 한데 비중도 적고 플레이 방식도 다 그게 그거다.
스토리 모드는 구색만 갖춘 수준. PvP를 하기 위한 게임으로 접근해야 한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건담 슈프림 배틀’에선 MS를 유료 가챠(랜덤 박스)로 뽑는다. 이미 소유한 기체가 나올 경우 조각이 되어 랭크업 재료로 쓰인다. 뽑은 기체는 다른 재화를 소모해서 강화도 해줘야 한다. 그러면 끝이냐? 아니다. 파일럿도 가챠로 뽑는다. 그것도 필살기를 해금하려면 각 기체에 배정된 전속 파일럿이 필요하다. 파일럿 역시 강화해줘야 한다. 진짜 끝일까? 그럴리가. 강화 파츠도 가챠로 뽑는다. 물론 이 3종 가챠와 별개로 패키지 상품도 판다.
가령 필자가 바알 건담을 몰고 싶다고 하자. 먼저 가챠를 돌려 레어 MS인 바알 건담을 확보해야 한다. 또 가챠를 돌려 레어 파일럿인 맥길리스 파리드도 영입한다. 내친김에 강화 파츠도 가챠로 뽑는다. 이제 바알 건담과 파일럿을 강화하고 파츠를 장착한다. 운 좋게 바알 건담이 또 나왔다면 랭크업도 시킨다. 이 모든 강화 수치가 기체 성능 즉 HP, 공격력, 방어력, 이동 속도, 다운 값, 공격 유도거리, 유도범위, 재장전 속도, 부스트 게이지에 합산된다.
기체 뽑기 정도는 예상했지만 파일럿과 파츠까지. PvP 게임인데 자비가 없다.
공격력, 방어력, 이동 속도, 재장전 속도, 유도거리와 범위까지. 완전 자본주의다.
모바일 게임이 돈돈돈 하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소한 RPG는 PvP가 아니라도 즐길 거리가 많은 편이다. 반면 ‘건담 슈프림 배틀’은 PvP가 사실상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PvP 게임은 무엇보다 밸런스가 중요하고, 그래서 스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BM 대신 스킨이나 신규 캐릭터를 팔아 수익을 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본작은 과감히 그 틀을 깨버렸다. 그냥 다 가챠다. 뭔가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 순 없을까, 하는 고민의 흔적조차 없다.
둘이 똑같이 빔샤벨로 베고 빔라이플도 명중시켰는데 상대는 멀쩡하고 나만 폐차 직전이면 기분이 어떻겠나. 피지컬을 타는 게임이긴 하니 ‘건담 VS’ 고수가 무과금 기체로 과금러들을 사냥하며 뉴타입이 된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본인이 과금러가 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중고 VITA라도 하나 구해서 ‘건담 VS’ 네트워크 대전을 즐기는 편이 좋지 않을까. 물론 모바일의 가장 큰 장점이 접근성이라 이쪽이 매칭이 훨씬 잘 되긴 하지만 말이다.
끝으로 게임이 좀 무겁다. 갤럭시 노트 10+로 플레이했을 때 그래픽은 봐줄 만하나 전체적으로 그리 매끄러운 느낌은 아니다. 메인 화면은 난잡하고 어디 들어갈 때마다 로딩이 걸린다. 특히 3D 모델이 크게 보여지는 격납고는 항상 몇 초씩 대기해야 한다. 뭔 서버를 쓰는지 네트워크 환경도 최악이다. 5G든 Wi-Fi6든 마찬가지다. 팬심으로 극복 못할 정도는 아닌데… 다행히 필자는 콘솔 게이머다.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본작을 삭제하고 콘솔을 켰다.
엄청 맵이 넓거나 그래픽이 끝내주는 게임도 아닌데 꽤나 무겁다. 거슬릴 정도.
꼭 모바일로 '건담 VS'를 해야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