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게임이 선택한 '언리얼 엔진 5', 얼리 액세스에 대하여
9세대 콘솔이 세상에 나오고 벌써 반 년여가 흘렀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차세대에 진입했다는 체감은 그리 들지 않는다. 일단 기기 자체가 품귀거니와, 아직 그 성능을 온전히 다 이끌어낼 게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콘솔은 게임을 구동하기 위한 장치이고, 진짜 9세대다운 무언가를 느끼려면 그만큼 기술적으로 혁신된 작품이 받쳐줘야 한다. 게임 업계가 지난 5월 27일 얼리 액세스 론칭한 ‘언리얼 엔진 5’에 주목하는 이유다.
※ 관련 기사: 차세대 게임 엔진 '언리얼 5'가 흥미로운 점 5가지
에픽게임즈의 신형 ‘언리얼 엔진 5’는 나나이트, 루멘, 월드 파티션, 풀바디 IK 솔버, 메타사운드 등 강력한 기술로 차세대 게임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제껏 실험적으로만 사용되던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을 완전히 본 궤도에 올리고, 별도 작업 없이도 엔진이 알아서 그래픽을 최적화해주는 기능도 적용했다. 뿐만 아니라 캐릭터가 이동할 때 지형의 구성과 경사도, 재질 등에 따라 동작이 적절히 변화하는 애니메이션 모션 워핑까지 가능하다.
여전히 적잖은 AAA급 게임이 자체 엔진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기대작이 언리얼 엔진으로 제작되고 있다. 진정한 9세대 콘솔 게이밍이 시작되는 첫 날을 ‘언리얼 엔진 5’ 얼리 액세스가 끝나고 정식 서비스하는 날로 잡아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리라. 이에 본지는 에픽게임즈 코리아 박성철 대표, 엔진 비즈니스 리드 신광섭 부장과 ‘언리얼 엔진 5’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본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 언리얼 엔진 4와 언리얼 엔진 5의 결정적인 차이를 꼽는다면
성철: 2009년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언리얼 엔진 2로 라이선싱을 개시했다. 그렇게 언리얼 엔진 2부터 5까지 이어오며 항상 중시한 점은 게임사의 입장에서 개발 환경과 생산성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언리얼 엔진 5가 이전 엔진과 가장 결정적으로 차이나는 건 신기술인 나나이트와 루멘이라 본다. 나나이트는 자원의 제약이나 프레임을 걱정하지 않고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폴리곤을 구현할 수 있다. 우리가 CG 영화를 보면 실사와 거의 구별이 안 가지 않나. 그건 자원의 제약 없이 아주 많은 폴리곤을 쓸 수 있는 후작업 CG이기 때문이다. 나나이트를 쓰면 그 정도의 효과를 리얼타임으로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루멘의 경우 빛 반사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레이트레이싱 기술을 소프트웨어적으로 처리해주는 기능이다. 이처럼 극한까지 강화된 디테일과 실제 같은 빛 반사가 합쳐진 덕분에, 내가 지인들에게 결과물을 보여줘도 다들 “에이, 이거 사진 찍은거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 언리얼 엔진 5로 개발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일까
성철: 일단 자사의 ‘포트나이트’는 언리얼 엔진 5가 정식 론칭되는 내년 초보다 한 발 앞서 포팅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아마도 올해 중에는 적용될 듯하다. 그 외에 타사 게임은 콘솔이든 PC든 모바일이든 개발 기간이 최소 1~2년은 걸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빨라야 2022년 말, 일반적으로는 2023년부터 언리얼 엔진 5로 제작된 게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포트나이트’를 먼저 포팅하게 되면, 관련하여 확보한 노하우도 공개하나
광섭: 그렇다. 우리가 직접 언리얼 엔진 4로 만든 ‘포트나이트’를 언리얼 엔진 5로 포팅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테스트해보고 개선하려 한다. 게임에 따라서는 단순히 엔진이 지원하는 기능만으로 포팅이 어려울 수 있는데, 이때 참고할 만한 가이드도 제공할 예정이다. 더 중요한 부분은 ‘포트나이트’를 언리얼 엔진 5로 포팅한 후 여러 플랫폼에 서비스함으로써 플랫폼별 안정성을 검증한다는 것이다.
● 언리얼 엔진 5가 실제로 개발 일선에서 대중화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성철: 현재로선 차세대 콘솔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게임 엔진이 언리얼 엔진 5뿐이다. 따라서 차세대 콘솔을 위한 게임을 개발하는 이들은 곧장 사용하리라 본다. PC 게임도 나나이트와 루멘을 활용하여 기존 그래픽과 선을 긋는 고품질 옵션을 제공하는 형태가 될 것 같다. 모바일의 경우 하드웨어 스펙 한계로 나나이트와 루멘의 지원이 힘들 수 있는데, 그럼에도 광활한 오픈월드 제작이 수월한 등 생산성 향상이 크게 이루어져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모바일 기기에선 나나이트와 루멘 같은 신기술을 언제쯤 활용할 수 있을까
광섭: 태생적으로 모바일 기기는 저전력으로 오랫동안 사용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따라서 그만큼 퍼포먼스를 내는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년에 삼성 ‘엑시노스’가 AMD GPU를 가지고 나오는 걸 보면 앞으로 모바일 기기도 점차 사양이 올라갈 듯하다. 우리도 계속해서 나나이트와 루멘을 모바일 기기에서 돌리고자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는 중이다. 향후 기기가 준비된다면 충분히 지원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외에도 모바일 게임 개발을 위한 워크 플로우를 개선하고 디버깅을 쉽게 하는 등 많은 계획이 있다.
● 혹시 벌써 언리얼 엔진 5로 게임을 개발 중인 국내 개발사가 존재하나
성철: 전세계적으로는 차세대 게임 가운데 46%가 이미 언리얼 엔진 5 사용이 확정된 상황이다. 국내도 물론 존재하지만 상황이 약간 다르다. 언리얼 엔진 5가 이제 막 얼리 액세스를 시작하고 정식 론칭은 내년이지 않나. 그래서 국내 개발사를 만나면 일단은 언리얼 엔진 4로 개발하다가 정식 론칭 후 갈아타도 어렵지 않다고 안내하는 중이다. 그 게임들이 향후 언리얼 엔진 5로 넘어온다면 최종적으로는 언리얼 엔진 5로 개발된 게임이 되는 거니까. 국내 주요 게임사의 경우 다들 앞으로 몇 년치의 엔진 라이선스를 계약한 상태다. 즉 이미 개발이 거의 완료된 작품들 외에는 자연스레 언리얼 엔진 5로 만들어질 것이다.
● 언리얼 엔진 5가 정식 론칭한 후, 이전 버전에 대한 사후 지원은 언제까지인가
성철: 공식적으로 사후 지원을 언제까지 할지는 내부에서 상의 중이다. 다만 언리얼 엔진은 이미 소스코드를 완전히 개방하고 있어 우리의 사후 지원이 없더라도 개발사가 엔진을 다루는데 별 문제가 없다. 이것이 24시간 운영을 전제로 한 국내 온라인 게임들이 주로 언리얼 엔진을 선택하는 이유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개발자가 소스코드의 컨트롤을 완전히 쥐어야 하니까. 언리얼 엔진 2, 3으로 제작된 게임들이 여전히 상용 서비스가 잘 돌아가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 나나이트를 활용하면 그래픽 작업 시간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단축될까
광섭: 작품마다 워낙 편차가 큰 부분이라 딱 얼마가 단축된다 답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현재는 먼저 하이폴리곤 매쉬를 제작하여 그걸로 노멀맵도 구축하고 로우폴리곤 매쉬도 만든다. 추가적으로 퍼포먼스를 위한 LOD 작업도 거친다. 반면 나나이트는 하이폴리곤 매쉬를 그대로 엔진에 적용할 수 있어 이후 과정이 필요 없다. 이렇게 생략되는 작업이 전체의 대략 20~40% 정도라 보고, 그에 따라 시간도 단축될 듯하다.
● 나나이트가 적용된 게임은 객체 하나의 용량이 상당히 클 것 같아 걱정스럽다
광섭: 많이들 오해하는 부분이다. 하이폴리곤 매쉬를 그대로 쓴다니까 용량이 엄청나지 않겠느냐는 것. 그런데 기존 방식인 노멀맵도 텍스처가 상당히 큰 편이다. 예를 들어 100만 개 트라이앵글을 가진 매쉬가 13~14mb 정도라 할 때 4K 노멀맵 텍스처는 20mb가 넘는다. 나나이트를 쓴다고 말도 안되게 용량이 커지는 게 아닌 셈이다. 또한 최근 새식구가 된 RAD툴의 우들 컴프레션을 활용하면 텍스처를 획기적으로 압축 가능하다. 나나이트란 기술 자체가 스트리밍에 의존하기에 고성능 SSD를 갖췄다면 더 좋겠지만 필수는 아니다.
● 언리얼 엔진 5을 활용하는데 있어 PS5와 XSX/S간 성능차가 존재하나
광섭: 이번에 공개한 '에인션트의 협곡' 샘플은 PS5와 XSX 모두 동일한 성능으로 30fps 구동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은 개발자들이 어떤 하드웨어에 대한 제약 없이, 하나의 콘텐츠로 여러 플랫폼에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두 기종의 성능차가 난다고는 말할 수 없고 그저 양쪽 모두 나나이트와 루멘이 아주 잘 작동한다고 답하겠다.
● VR과 관련해서 새로 추가되거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기능을 꼽는다면
광섭: VR 역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플랫폼이다. 언리얼 엔진 5는 업계에서 VR 개발의 표준으로 잡고 있는 OpenXR에 맞춰 VR 템플릿을 개선했다. 이제 VR 게임을 개발할 때 처음부터 핸드트래킹 등을 다 만들 필요 없이, 우리가 제공하는 탬블릿 위에서 원하는 콘텐츠만 변경해서 빠르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은 VR서 나나이트가 작동하지 않지만 앞으로 충분히 지원 가능한 부분이다. 특히나 퍼포먼스와 퀄리티가 중요한 VR 플랫폼이니만큼 이러한 부분도 아울러 기대해주기 바란다.
● 언리얼 엔진은 비게임 분야에도 진출 중이다. 성공 사례가 있다면 들려달라
성철: 압도적인 그래픽 퀄리티가 장점인 언리얼 엔진이니만큼 그런 부분이 중요한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주로 쓰인다. 디즈니+ 드라마 ‘만달로리안’, 영화 ‘존윅 3’, ‘포드 V 페라리’, ‘혹성탈출’, ‘스타워즈’ 등 약 160개에 달하는 유명 작품에 언리얼 엔진이 쓰였다. 방송의 경우 폭스 뉴스, ESPN, CBS, 빌리 아일리시 콘서트, MTV 어워드의 아리아나 그란데와 레이디 가가의 공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이벤트에도 사용됐다. 자동차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BMW, 폭스바겐, 아우디, GM부터 맥라렌, 포르쉐, 파가디 등 슈퍼카에 이르기까지 알만한 유명한 브랜드는 거의 다 언리얼 엔진을 선택했다.
● 그렇다면 언리얼 엔진이 활용된 국내 사례들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한다
성철: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파급력 있는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나라다. 그만큼 국내서 언리얼 엔진이 많이 활용되길 바란다. 이미 ‘기생충’, ‘승리호’, ‘스위트홈’ 등에서 언리얼 엔진이 쓰였고 KBS, MBC 같은 방송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 중이다. 우리 드라마가 스토리가 참 뛰어남에도 Si-Fi처럼 VFX가 많이 쓰는 장르에선 다소 소외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는 언리얼 엔진과 함께 그간 보기 힘들었던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어, 더욱더 훌륭한 한류 콘텐츠를 만드는데 일조하였으면 좋겠다.
● '에인션트의 협곡'처럼, 비게임 분야에서도 친숙히 다가갈 만한 추가 샘플이 나올까
성철: 지금보다 훨씬 더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를 계속 제작하는 중이다. 언리얼 엔진이 워낙 비게임 분야에서도 많이 쓰이다 보니, 본사 차원에서도 좀 더 일반 대중이 보기에 ‘와우~’할 수 있는 샘플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아쉽게도 이 자리에서 공개할 순 없지만.
● 앞으로 더 많은 언리얼 엔진 5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은데
성철: 언리얼 엔진 5 얼리 액세스를 발표한 후 이를 소개하는 웨비나를 국내서 가장 먼저 진행했다. 본사에서 제작하는 온라인 강좌 콘텐츠도 굉장히 많아서 앞으로도 계속 한국어화하여 제공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특정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웨비나를 기획 중이고 예년과 마찬가지로 언리얼 서밋도 크게 준비하고 있다. 언리얼 5 챌린지라는 새로운 행사도 있는데, 언리얼 엔진 5로 멋진 창작물을 만든 분에게 선물을 주는 재미있는 이벤트가 될 것이다.
● 에픽게임즈와 언리얼 엔진 5가 메타버스와 관련해 준비 중인 것이 있다면
성철: 요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버스 아닌가(웃음).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메타버스는 누구나 만들고 싶은 걸 창작하고 공유하는 오픈 플랫폼, 일종의 3D 버전 인터넷과 같다. 그러면서 현실과 경험적으로 거의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실감나는 생태계여야 한다. 현재는 이러한 메타버스가 다가가고자 준비하는 단계다. 장차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했을 때 일반 개인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고품질 디지털 보디를 만들 수 있도록 메타휴먼 크리에이터를 공개한 바 있다. 메가 스캔한 방대한 데이터를 언리얼 엔진 5로 곧장 인포트하는 것도 가능하다. 곧 또 보도자료가 나갈 텐데, 에픽 온라인 서비스에 새로운 기능이 무료로 들어갈 예정이기도 하다.
● 내년 초 언리얼 엔진 5가 정식 출시되면 기존과 다른 가격 정책이 적용될까
성철: 가격 정책은 변하지 않는다. 언리얼 엔진 5 에디터는 물론 소스코드까지 모두 개방한다. 기존 언리얼 엔진 4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무료로 사용하다가, 개발된 작품의 수익이 100만 달러(한화 11억 3,250만 원)를 넘기면 그때 로열티 쉐어를 받는 구조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