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by Megan Farokhmanesh90년대 즈음, 크리스 멧젠은 새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신생 회사였던 블리자드에게 있어 당시는 형성기라 할 수 있었는데, 워크래프트가 1994년에 발매되었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없던 시절이었다. 그들이 잘 만든다고 생각되었던 실시간 전략 게임을 더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때였다.
스토리 및 개발 부사장인 멧젠은 미술 및 시네마틱 부문 부사장인 닉 카펜터와 함께 무언가 새로운 것의 초안을 짜고 있었다. 그건 공상과학과 판타지 위주의 서사시로, 여러 세력과 방대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멧젠에 의하면 그것은 "끝내줬다(badass)".
그것은 바로 ... 우주 뱀파이어였다.
"나머지 팀원들은 '글쎄다, 우주 뱀파이어는 좀 이상한데,'라 말했죠," 멧젠은 말했다. "'좀 더 대중적인 걸 하고 싶어' 라고요."
블러드라인Bloodlines은 멧젠이 2013년 발매된 두꺼운 블리자드 아트북 전까지는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게임으로, 블리자드의 이후 게임들— 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에 구성 요소로 흡수되었다. 멧젠, 그리고 블리자드는 새로운 RTS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게임의 주 컨셉은 세 가지의 독특한 종족으로, 셋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게임의 특징이 될 터였다. 그들의 문화는 어떠한가? 그들은 전투 속에서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그들의 전투 방식은 어떨까? 유닛 생산은 어떻게 진행될까?
이러한 질문들은 블러드라인이 갖추지 못한 중요한 질문들이었다. 블리자드는 그들의 새로운 프로젝트 스타크래프트에게 세례를 주었지만, 그 이름에는 다소 논란이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멧젠이 당시 그의 반응을 말했다. "진짜? 워크래프트 다음에 스타크래프트라고?"
"당시엔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요. 디아블로도 마찬가지였죠, 개인적으론요. 하지만 단어가 차츰 힘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 참 신기하지 않나요?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이 되어버리죠. 지금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다른 이름을 상상할 수조차 없네요."
스타크래프트의 역사는 길다, 여러 게임과 확장팩을 통해 17년 간의 연대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그 중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취소된 프로젝트도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2: 공허의 유산을 통해 블리자드는 얽히고 섥힌 짐 레이너와 사라 케리건의 이야기, 그리고 2010년에 시작되었던 삼부작을 마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세계와 함께한 블리자드의 시간 — 그리고, 더 정확하게, 스타크래프트 2 — 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를 마지막까지 이끌고 간다는 블리자드의 중압감은 끝이 났다. 이제는 블리자드가 놀아볼 때가 온 것이다.
스타크래프트가 있기 전
2015년의 크리스 멧젠은 블러드라인을 들고 온 꼬맹이보다 더 현명하고, 더 노련하며 침착하다. 그는 블리자드의 중역(농담)으로, 1994년 블리자드에 입사한 작가 당시로부터 먼 길을 걸어왔다.
멧젠은 당시의 그를 작가로서 평범한 사람이라 묘사한다. "지금도 그렇지만요," 그는 자신을 완성 작품에 많은 캐릭터와 세부 설정을 집어넣으려 투쟁하는 종류의 작가라 말한다. 그는 젊고 굶주렸으며, 자신의 증명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19세 청년이었다. 그는 그의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었으며, 그의 아버지가 그의 비주류 직업에 대해 조롱하는 걸 그만두게 할 수 있길 바랐다.
"스타크래프트 1을 만들던 당시 전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었어요," 멧젠은 회상했다. "당시 비디오 게임계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전례 없는 일이었죠."
"전 최선을 다했어요. 팀 전체도 그렇고요."
당시, 제작진은 현재 블리자드의 관점으로는 소규모로, 50명 가량이었다. 그들은 끈끈한 공동체였다. 목요일마다 10 - 20명 가량의 사람들이 동네 아일랜드풍 술집 Patsy's에 가라오케를 부르러 가곤 했다. 노래 실력은 좋지 못할 때도 있었고 경험자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그러했지만, 이는 구성원들이 서로 대화하고 어울리며, 긴장을 풀 기회가 되어주었다.
멧젠은 이 때 무렵이 바로 스타크래프트의 총괄 제작자 크리스 시거티를 만났을 때라 회상한다. 크리스 시거티는 당시 스타크래프트의 선임 테스터였으며, 막 해군에서 전역한 상태였다. 멧젠에 따르면 그는 당시 해병대풍 머리를 하고 있었다. 시거티는 QA부에서 일했기에 그들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3 제작 중 함께 일하게 되었고, 둘은 음악 친구가 되었다.
멧젠은 시거티를 "메탈 신"이라 묘사한다. 그리고 이 묘사는 게임 제작자보다는 락가수에게 어울릴 법한 머리에 한정한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상은 양팔을 편히 포개고 느긋한 투로 말하는 현재의 시거티와는 맞지 않는다. 그의 말은 느리고 침착하며, 마치 자상한 아버지와 같다 — 그리고 그는 실제로 자상한 아버지이다.
시거티 역시 먼 길을 걸어왔다. 그는 스타크래프트와 관련한 첫 작업을 20세 즈음에 시작했다. USC에 재학하던 시절의 여름날, 그는 용돈벌이로 테스터 일을 하게 되었다. 자칭 슈퍼 너드는 게임계에 깊게 빠져들게 되었다. 교육과정을 거치지도 않았고 대학 전공과도 상관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게임계를 자신의 새로운 목표로 삼게 되었다.
QA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게임 개발의 빠른 속도에 따라가려다 사무실 바닥에서 잠들곤 했다.
"그 때는 정신이 없었죠," 시거티는 말했다. "지금과는 많이 달랐어요."
멧젠은 이에 동의했으나, 그의 의견은 살짝 달랐다. 그에 따르면 블리자드는 다루기 쉬운 배였다. 그들이 방향을 한 번 정한 이상, 그들은 나아갔다.
"당시엔, ‘이봐, 우리 우주 게임 만들자!’ 수준으로 간단했어요," 멧젠이 말했다. "더 순수하던 시절이었고, 더 단순한 시절이었죠."
멧젠은 이 초기 시절을 "동킹콩 컨트리"에 비유한다. 즉, 당시는 비디오 게임에 있어 스토리가 미치는 역할이 지금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어릴 적, 멧젠은 D&D 책들과 마블 세계의 이야기에 완전히 꽃혀 지냈다. 그는 사람들이 끌릴 만한 아이디어를 깊게 파고들고 싶어했다. 팀이 스타크래프트의 씨를 심기 시작하자, 이러한 마음은 더욱 더 커졌다.
스타크래프트의 핵심 컨셉은 꽤 빨리 정해졌다. 세 종족 — "초능력 종족, 징그러운 종족과 하이테크 종족"의 구상은 고대의 프로토스, 인간 종족 테란과 벌레 종족 저그의 기반이 되었다.
"모두에게 전기가 통한 것 같았죠, 모두가 우리가 어떠한 게임을 만들게 될 지 바로 깨달았던 것 같아요." 멧젠은 말한다. "‘멋지다. 분명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야.'라 생각했어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과 당시의 우리의 제작능력에 있어 말이죠."
물론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의 첫 실시간 전략 게임이 아니었지만, 이는 좀 더 복잡한 영역으로의 한 발짝이었다. 워크래프트의 2종족 체제를 3종족으로 바꾸었다. 종족의 구성 캐릭터는 플레이어들이 그동안 봐 왔던 것과는 전혀 달랐고, 그들만의 전략과 플레이 방식이 있었다. 이는 회사에게 있어 새롭고 대담한 시도였다.
불행하게도, 팬들은 이를 처음엔 그렇게 보아 주지 않았다.
단지 성형수술이 아닌 것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의 판타지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신호탄이 되었다. 워크래프트 2의 발매 이후, 블리자드는 선택해야 했다. 많은 이들이 예상하듯이 워크래프트 3을 제작하던지, 아니면 RTS 세계에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 보던지.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의 첫 버전은 워크래프트 게임들에 쓰였던 엔진에 그림만 바꾼 물건이었다. 제작진이 게임의 초기 버전을 1996년 E3에 가지고 갔을 때, 팬들은 별로 감명받지 못 했다고 블리자드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마이크 모하임은 회상한다.
"우리는 게임을 보여줬고, 모두들 게임을 본 다음 말했어요.'오, 우주판 워크래프트(orcs in space) 같네요.' 우리가 기대했던 반응이랑은 많이 달랐죠."
상처받은 자존심과 함께, 블리자드는 기획 단계로 되돌아갔다. 게임 엔진은 작업과 개선이 필요했고, 개발진은 우주 배경의 멋진 RTS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재고해야 했다. 성형수술한 워크래프트는 통하지 않을 터였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는 주연 짐 레이너와 사라 케리건의 관계로 대표된다. 허나 이 커플은 초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크리스 멧젠은 레이너를 본디 우주판 카우보이로 구상했는데, "카우보이보단 우주"에 초점을 둔 편이었다. 케리건의 과거는 좀 더 밝았다. 블리자드는 그녀의 이름을 피규어 스케이트 선수인 낸시 케리건에서 따 왔는데, 그녀의 라이벌었던 토냐 하딩 —남편을 사주해 케리건의 다리를 부러트린 악녀 —를 노린 작명이었다. 이 경우, 농담의 타겟은 경쟁 게임 커맨드 앤 컨커와 그 등장인물 타냐였다.
"대놓고 말하기 힘든 게 너무 쪽팔린 일이었으니까요." 멧젠은 설명했다.
"당시엔 피규어 스케이팅 쪽에서 토냐 하딩과 낸시 케리건은 꽤 유명했어요.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 캐릭터를 무릎 다친 애 이름을 따서 케리건이라고 하자'고 생각했어요. 으, 퍽이나 재밌겠네! 너무 바보같았죠."
우주 카우보이인 레이너에 대응해 케리건은 요원이자 초능력 전사가 되었다. 멧젠이 이 두 커플 사이의 관계를 구상하던 중, 그는 시리즈를 구축할 만한 기본 뼈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까지, 특히 스타크래프트 2에 있어, 둘의 관계가 많은 부분의 기반이 되 주었다는 점이 재미있죠." 멧젠이 말했다. "정말 스타크래프트의 핵심(heart)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핵심적인 아이디어였던 건 아니었어요. 고속도로에서 생각났던 거였으니까요. 게임과 그 내러티브의 기반이 되는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그것은 제작 도중에 만들어진다는 거에요. 항상 큰 아이디어로 시작되지는 않죠. 게임이 형성됨과 함께 아이디어도 형성되어 가는 거에요."
"전성기 시절, 이스포츠의 발상지이자 종주국인 한국에선, 3개의 채널이 스타크래프트를 매주 매시간에 걸쳐 방송했어요."
큰 아이디어, 가령 케리건의 칼날 여왕으로의 진화같은 것은, 그 뒤에 찾아왔다.
"나는 제가 좋아하는 토르의 대사를 읽으면서 자랐는데 —셰익스피어 풍 대사가 많았죠 — , 그 때는 스탠 리 시절이나 월터 시몬스 시절이었어요." 멧젠은 말했다. "전 저그 캠페인에 셰익스피어 풍 이야기에 구약성경을 섞은 듯한 느낌을 주었어요. 하지만 전 그러기 위해 인간형 캐릭터가 필요했고, 마침 테란 캠페인의 끝 시점에선... '와, 만약에 그녀가 그렇게 된다면 —' 또 한 번, 우연하게 연결점을 발견하게 되었죠."
스타크래프트는 팬들의 안달 속에서 1998년에 마침내 출시되었다.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의 일부는 게임을 기다리는 과정과 게임의 개발 상태에 대한 추정을 소재로 팬 픽션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게임의 실체에 대한 음모론을 제시했죠." 모하임은 말했다. "하지만 저와 몇몇은 단지 불행한 일정 때문에 게임 출시를 막고 있던 거였어요. 그들은 자신을 [Operation] Can’t Wait Any Longer라고 불렸죠. 그들은 빌딩에 잠복해서는 밤에 얼마나 많은 차가 주차장에 있었는지 사진을 찍어대고, 가설을 만들어냈어요."
모하임은 이러한 장난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회사 주차당을 기어다니던 팬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침착해 보였다. 이 일화는 애정어린 투로 말해졌는데, 어쩌면 이는 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에서 operation cwal을 치트 코드로 만든 블리자드의 결정을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블리자드는 이미 게임 제작에 시간을 들이는 것에 대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워크래프트가 대중에게 회사를 알렸다면, 디아블로는 블리자드가 게임을 갈고 닦는 것을 강조하는 회사임을 알렸으며, 이는 오늘까지도 회사의 DNA 일부로서 남아 있다.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되자, 이 게임이 회사에게 한 공헌은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났다. 이 게임은 블리자드를 세계적 회사로 만들었으며, 블리자드의 첫 이스포츠였다. 이 게임은 한국에서 비상했다.
"전성기 시절, 이스포츠의 발상지이자 종주국인 한국에선, 3개의 채널이 스타크래프트를 매주 매시간에 걸쳐 방송했어요," 모하임은 말했다. "멋지기도 했지만,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도 했죠."
"오늘날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와 (당연히)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은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플레이되는 게임이에요. 이건 우리에게 있어 큰 신호였죠. 전 세계에서 블리자드 게임에 얼마나 관심 있는지에 대해서요. 스타크래프트 이후 우리는 모든 게임을 한국어로 현지화 해왔습니다."
"블리자드의 핵심 원칙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생각하라'인데, 이는 세계의 모든 플레이어들을 마치 블리자드의 일등 시민으로 대우하도록 생각한다는 거에요."모하임은 말했다.
(블리자드 세계화의) 불씨가 되었던 한국의 팬들은 2007년 그 결실을 얻게 된다.
초기의 분투
2012년, 전 R&D 부서 부사장이자, 회사를 떠나 길드워의 제작사 아레나넷을 창업한 패트릭 와이어트는 스타크래프트 1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겪은 우여곡절에 대한 블로그 글 시리즈를 연재했다.
폴리곤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회사의 초기 방향을 1년 짜리 프로젝트로 묘사했다. 개발진은 1996년 E3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라고 지시받았고, 그 결과는 "별로 흥미롭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비록 소셜 미디어의 부재 덕에 블리자드가 그들의 게임으로 인해 "두들겨맞는" 일은 없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개발진은 당황했다. 그는 이 불쾌감의 원인으로 한 경쟁사 게임을 지목했는데, 이는 바로 도미니언: 스톰 오버 기프트 3이었다.
"[도미니언 스톰]은 우리 게임보다 훨씬 야심차 보였어요." 그는 말한다. "우리는 혁신적인 게임을 만드는 걸로 유명했고 ... 우리 기준에서 우리는 정말 야심찬 게임을 만들고 있었죠."
Early StarCraft sketches from Blizzard's collection"그런데도 여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스타크래프트는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거에요. 이 게임은 우리 모기업이 우리가 뭐든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느껴서 만들어졌지, 우리가 이 게임을 너무 사랑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었어요. 사업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거지, 우리가 놀랍고 엄청난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고요."
마이크 모하임은, 와이어트의 발언에 대해 스타크래프트가 일 년의 개발 일정을 갖고 기획되었고, 그 뒤로 길어진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를 단순한 땜빵용 프로젝트로 간주했다는 발언에 대해 반박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처음부터 우리의 핵심 게임이었어요." 그는 말했다. "우리 모두 열성적인 공상과학 팬들이었고 그 장르의 게임을 항상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 우리는 대단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게임을 제 때 내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우리의 기준에 있어 적합하게 될 때 까지 세계관, 독특한 세 종족, 그리고 게임플레이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어요."
Original StarCraft sketches by Chris Metzen블리자드는 실제로 방향을 교정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에 찾아온 변화는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첫째로, 블리자드는 디아블로를 출하해야 했다. 그들이 스타크래프트의 작업을 재개했을 시점, 와이어트는 제작진이 디아블로를 완성하기 위한 철야작업으로 인해 지쳐 있었다고 말한다. 스타크래프트의 많은 부분이 재 작업을 필요로 했다. 시스템 교체로 인해 90-95퍼센트가 버려질 것이라고 와이어트는 추정했다. 철야작업은 또 다시 시작되었고, 비록 와이어트가 그가 블리자드에서 했던 일을 자랑스러워 함에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너무 지랄맞게 일했어요."
"'희생은 필요하다,’고" 그는 그 당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는 이걸 완성해야 한다는 이런 생각에 얽매여 있었어요. 우리는 이 전체 공정에 대해 좀 더 분별 있게 굴 수 없었죠 ... 우리는 이 게임에 열정을 가지고, 이 게임이 멋져지기를 바랬지만, 동시에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와이어트는 2000년에 회사를 떠났지만, 그 당시에도 그는 블리자드가 변화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게임을 발매해야 한다는 세속적 필요성은 게임이 위대해 질 때 까지 시간을 들이고자 하는 욕구로 대체되었다.
"스타크래프트로 우리가 한 번 깨지고 나서야 우리는 이 교훈을 회사 전체에 내재화시킬 수 있었어요,"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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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gon의 스타크래프트 특집 기사입니다. 분량이 많아 2부로 나눕니다. 오역/의역 많습니다.
몇 가지 반박을 달자면 밸런스는 스타크래프트의 마지막 패치까지도 안 맞아서 여전히 맵으로 밸런싱 해야했고, 전략 전술은 그 후속작인 스2에서도 여전 합니다. 그리고 워3와 스2 디자인이 스1에 못 미치다뇨. 게임의 운영방법과 철학이 스1과 다른 게임인거죠. 오히려 발전됐다면 발전된거지 퇴보는 아니라고 보네요. 스1우월주의 그다지 보기 좋진 않습니다.
스타2는 스타1 향수를 못잊고 새로운시그템에 적응못한 게이머의핑계라 쳐도 워3은 솔까 블자 Rts중 가장 훌륭한 게임성이라고 자부함... 꾀나 덕창적이기도 했고.. 자원보다는 유닛관리에 더 중점을 둔거도 꾀나 Rts에서는 이례적인시스템이고 전투와 컨트롤에 초집중된 액션에선 진짜 엄청난 명작임
후의 워3나 스2도 스1에는 한참 못미치는거같아서.. 2D와 3D의 차이인지. 이 글만 안적었어도 명글이었는데 저 글 적는 순간 똥글이 되버림
워3로 인해 지금의 AOS게임들이 쏟아져 나온 계기가 되었으니 워3가 어찌 스1에 한참 못미친다는 망발을 하는가... 이는 본인이 스1만 팠기때문이겄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네요 비록 스타크래프트 디자인의 컨셉 뼈대는 오함마 40k에게 빚지고 있지만 오함마도 스타크래프트 이후 디자인을 발전시키는등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점들을 보면 빚은 충분히 갚은거같아요. 더 개성적이고, 종래의 게임에서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디자인의 향연이었으니.. 모르는 사람이 봐도 테란, 저그, 프로토스는 확연이 서로를 구분할만큼 명확하죠. 이게 정말 포인트라고 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밸런스 담당자들의 천재적인 수학능력.. 공격력, 방어력, 공격타입 이 3가지의 절묘한 조화가 그야말로 바둑처럼 온갖 전략과 전술을 무궁무진하게 파생시키니(물론 초반에는 밸런스가 좀 안좋아서 맵으로 강제적인 밸런싱을 한게 크지만 그것도 묘미라면 묘미) 이스포츠로 발전하고 게임이 아직도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라 앞으로도 이런 구조적 디자인이 가능할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후의 워3나 스2도 스1에는 한참 못미치는거같아서.. 2D와 3D의 차이인지. 공유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길고 긴 여정이 어느정도의 단락을 지은게 참 감격스럽네요 내러티브나 시나리오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이 많긴 하지만 미친 캐릭터성과 연출, 구성으로 다 씹어버리니 ㅋㅋ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흥미진진하네요 2부도 기대합니다. 번역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십니다....
좋은 번역글 추천
어서 일해라!
번역 감사합니다!
Operation cwal이 그 뜻이었다니!
크.. 스타 전까지만해도 커맨드앤 퀀커와 막상막하였는데... 하지만 네트워크플레이가 대중화될수록 cnc가 불리해질 운명이긴 했지
캠페인면에선 거의 모든시리즈에서 커맨드앤퀀커가 늘 앞서는 쪽이긴 햇는데 일반 게이머들에겐 그런건 사실 무의미... 네트워크 플레이때문에라도 그냥 스타갸 압승 ㅇㅅㅇ
확실히 당시에 캠페인 구성은 스1보다 cnc가 더 재밌긴 했죠. 하지만 네트워크 + 3종족의 확연한 개성이 결국 스1이 살아남게 만든듯
스타 처음하면서 제일 놀랐던게 레이더 설치 안해되미니맵이 보인다는거랑 탱그에 생보병이 들이미는데도 안밟힌다는거였음.
링크 읽어봤는데 블리자드가 이 겜에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 알 수 있었음...
그리고 스타2를 개발하면서 했던 고민과 시행착오들; 그리고 스타같은 겜을 만드는 게 블리자드한테 굉장히 힘든 일이었구나... 음;;
잘 읽었습니다 추천.
확실히 저그 캠페인에서 초월체를 비롯한 순수 저그 간부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구약성서에 나올 법한 유일신 또는 선지자의 말투를 쓰는 것 같다는 반응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런 간부들은 오직 자기들끼리만 대화할 뿐 타종족의 그 어떤 일원과 직접 말을 섞는 모습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인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에 종족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케리건만을 제외하면요. 과연 저런 배경이 있었군요.
자기들이 애지중지 만든 게임이 그 당시로 생각치도 못 한 어떤 동양 나라에서 스포츠화 되고 열광하는 걸 봤을 때 기분이 묘했을 듯
흥미진진한 이야기네요 비록 스타크래프트 디자인의 컨셉 뼈대는 오함마 40k에게 빚지고 있지만 오함마도 스타크래프트 이후 디자인을 발전시키는등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점들을 보면 빚은 충분히 갚은거같아요. 더 개성적이고, 종래의 게임에서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디자인의 향연이었으니.. 모르는 사람이 봐도 테란, 저그, 프로토스는 확연이 서로를 구분할만큼 명확하죠. 이게 정말 포인트라고 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밸런스 담당자들의 천재적인 수학능력.. 공격력, 방어력, 공격타입 이 3가지의 절묘한 조화가 그야말로 바둑처럼 온갖 전략과 전술을 무궁무진하게 파생시키니(물론 초반에는 밸런스가 좀 안좋아서 맵으로 강제적인 밸런싱을 한게 크지만 그것도 묘미라면 묘미) 이스포츠로 발전하고 게임이 아직도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라 앞으로도 이런 구조적 디자인이 가능할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후의 워3나 스2도 스1에는 한참 못미치는거같아서.. 2D와 3D의 차이인지. 공유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길고 긴 여정이 어느정도의 단락을 지은게 참 감격스럽네요 내러티브나 시나리오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이 많긴 하지만 미친 캐릭터성과 연출, 구성으로 다 씹어버리니 ㅋㅋ
몇 가지 반박을 달자면 밸런스는 스타크래프트의 마지막 패치까지도 안 맞아서 여전히 맵으로 밸런싱 해야했고, 전략 전술은 그 후속작인 스2에서도 여전 합니다. 그리고 워3와 스2 디자인이 스1에 못 미치다뇨. 게임의 운영방법과 철학이 스1과 다른 게임인거죠. 오히려 발전됐다면 발전된거지 퇴보는 아니라고 보네요. 스1우월주의 그다지 보기 좋진 않습니다.
스타2는 스타1 향수를 못잊고 새로운시그템에 적응못한 게이머의핑계라 쳐도 워3은 솔까 블자 Rts중 가장 훌륭한 게임성이라고 자부함... 꾀나 덕창적이기도 했고.. 자원보다는 유닛관리에 더 중점을 둔거도 꾀나 Rts에서는 이례적인시스템이고 전투와 컨트롤에 초집중된 액션에선 진짜 엄청난 명작임
후의 워3나 스2도 스1에는 한참 못미치는거같아서.. 2D와 3D의 차이인지. 이 글만 안적었어도 명글이었는데 저 글 적는 순간 똥글이 되버림
후의 워3나 스2도 스1에는 한참 못미치는거같아서.. 2D와 3D의 차이인지. 이 글만 안적었어도 명글이었는데 저 글 적는 순간 똥글이 되버림
워3로 인해 지금의 AOS게임들이 쏟아져 나온 계기가 되었으니 워3가 어찌 스1에 한참 못미친다는 망발을 하는가... 이는 본인이 스1만 팠기때문이겄지..
도타2가 게임성이 뛰어나단 얘기를 듣는건, 자체의 독창성도 있지만 그런 에셋을 제공한 워크래프트의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전략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워3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훌륭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는 RTS라 봅니다. 그냥 스타의 위치가 지금의 '롤' 이었다보니 흥행 때문에 워3가 모자라서 안떴단 얘기도 나오나보네요;;
나도 스토리나 연출적인면은 스1이 좋다고 생각하는편인데. 특히 자날에서 케리건 인간만들어보려고 난리치는거랑 군심에서 케리건이 레이너 죽었다고 징징대는건 최악의 연출이었다고 생각함. 도리어 공유에서는 전반적으로 좋았음. 끝이 좋으면 다 좋은거지 뭐.
나는 장막을거두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엿보았지만, 그곳에는 오직 리사심슨뿐이였어...
너무 워크와 비슷하다는 평을 듣고 스타크래프트 초기버전이 갈아 엎어졌다는건 널리 알려진 얘길텐데 ㅋㅋ 역시 나름대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군요.
01410 인포샵에서 6만원에 다운받고 처음 플레이 했을때 충격은 참... 그림자가 천천히 벗겨질때의 감탄이 지금도 생생함
스타2 협동모드 비슷한 임무의 반복이긴 한데 친구랑 같이 하니 꿀잼 이더군요. 3인용 맵도 추가해 줬음 좋겠네요. 물론 만들기 좀 힘들겟지만 한친구는 같이 못함..ㅜ.ㅠ
빌로퍼 : 시무룩
저 폐기된 초기 스타1 개발화면 보면 입 벌어지죠 ㅋㅋㅋ 느낌이 뭐랄까 꼭 80 년대 어느 삼류회사의 듣보 슈팅게임 배경 느낌이라고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