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의 이와데 타카시 특별 추도 기획: 고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일본의 게임 그래픽을 되돌아 보자 (1)
2019년 8월에 세가(세가 게임스의 당시 명칭)의 VFX 아티스트, 이와데 타카시가 췌장암으로 향년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18일 날, 오미야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영결식에는 이와데의 옛 동료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모였고, 너무 일찍 작별을 고한 그를 추모했다.
식장에는 이와데가 제작에 참여한 게임 소프트와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본고에서는 총 3번에 걸쳐 이와데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서, 일본의 게임 개발 현장을 그래픽의 시점에서 되돌아보고 싶었다.
이번 기획의 취지
이와데는 확실히, 크리에이터로서 크게 주목을 받은 위치에 있던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최근까지 숨은 공로자로서, AAA 게임 개발에 공헌하고 있었다.
또한 CEDEC 2011에서 운영 위원에 참여하는 등, 커뮤니티 활동도 적극적이었고 필자가 관리하는 NPO 법인, IGDA 재팬에도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펙트 작업에 관한 인터뷰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이와데가 세가에서 활약한 1993년부터 2019년은, 일본의 게임 그래픽이 2D에서 3D로 방향을 크게 전환한 시기였다.
그 당시는 예술과 공학 기술이 합쳐지게 되면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개척해가는 시기였다.
누구나 도전을 할 수 있었고, 3DCG가 빠르게 진화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곤 했다.
거기서 이와데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참고로, 이번 취재는 유족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협력을 얻었다.
또한, 사실 관계 확인 등을 위해 세가로부터 남다른 협력을 얻게 되었다.
이에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
논리를 중시하는 고집스러운 디자이너
이와데는 1993년에 세가 엔터프라이스(당시 세가의 명칭)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후, 25년 이상을 세가의 외곬 크리에이터로 인생을 보냈다.
전반기에는 주로 『팬저 드래군』 시리즈에, 후반기에는 『용과 같이』 시리즈 개발에 종사했다.
특히 『팬저 드래군』 시리즈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는데, 세가에서 유일하게 메인 시리즈 4편에 전부 참여한 크리에이터였다.
이와데 타카시의 주요 게임 개발 연대기
발매년도/타이틀/발매기종/담당업무
1995 / 팬저 드래군 / 세가 새턴 / 아트 디렉터
1996 / 팬저 드래군 쯔바이 / 세가 새턴 / 아트 디렉터
1998 / 아젤 팬저 드래군 RPG / 세가 새턴 / 아트 디렉터
2001 / 헌드레드 소드 / 드림캐스트 / 치프 아티스트
2002 / 팬저 드래군 오르타 / XBOX / 아트 디렉터
2005 / 용과 같이 / PS2 / 이펙트 리더
※이후엔 『용과 같이』 시리즈에 이펙트 리더로서 개발 참여
『팬저 드래군』(1995) ©SEGA
『팬저 드래군(팬저)』, 『팬저 드래군 쯔바이(쯔바이)』, 『아젤 팬저 드래군 RPG(아젤)』 개발 당시,
이와데의 상사였던 쿠스노키 마나부(현 아제스토 소속)는 이와데의 입사 면접 당시 보조 면접관으로 배석됐다.
그 당시 이와데의 모습에 대해 쿠스노키는 이렇게 말했다.
"오래 전 일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와데 군은 성실하면서도 겸손했고, 내면에선 근성이 느껴진 기억이 납니다.
해외의 판타지 장르나 보드게임 등에 대해 조금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그리고 당시 전성이었던 게임인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스러운 판타지보단, 해외의 하이 판타지에 더 큰 흥미를 가지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죠."
쿠스노키는 1987년에 세가에 입사, 세가가 업무용 타이틀로 『보난자 브라더스』(1990), 『레일 체이스』(1991) 등을 개발했을 때, 디자이너(아티스트)로 참여했다.
세가 새턴이 출시됐을 땐 가정용 콘솔 팀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당시 "팀 안드로메다" 라 불린 『팬저』 개발팀 내에서 29세였던 쿠스노키는, 팀의 최고령자였다.
거기엔 이와데도 신인 디자이너로 배석되었다.
개발자는 십여 명 정도였는데, 업무용 타이틀 개발 베테랑(그래봐야 경력 6년차 정도지만...)과 신입 사원들로 혼잡한 팀이었다.
"3D 표현을 앞세운 세가 새턴의 발매로, 이미 폴리곤을 다루는 업무용 부서의 팀원 몇 명이 가정용 콘솔 쪽으로 이직하면서 팀이 구성된 걸로 기억나네요."
고대 문명이 낳은 생체병기, "공성생물" 에 의해 인류가 멸망한 세계에서, 최강이자 전설 속의 존재인 "드래곤" 을 조종하며 모험을 펼치는 3D 슈팅 게임.
...이것이 초대 『팬저 드래군』의 컨셉이다.
초기 3부작인 『팬저』, 『쯔바이』, 『아젤』의 개발 배경에 관한 것은,
전 세가 출신이자, 현 G-rounding의 COO 겸 디렉터인 후타츠키 유키오와 매니저인 요시다 켄타로의 GDC 2019에서의 포스트모템에서 공개됐다.
팬저 드래군은 원래 레이싱 게임으로 기획이 잡혔지만, 도중에 3D 슈팅 게임으로 변경되었다.
보통 이런 장르라면 전투기를 내세웠지만, 후타츠키가 "타고 싶은 교통수단이 있다면, 그건 드래곤이겠지." 라며 제안한 아이디어로 인해 플레이어가 드래곤을 타게 됐다는 일화를 가진 타이틀이다.
이 타이틀에서 쿠스노키는 후타츠키와 함께 원안과 비주얼 컨셉을 담당했는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자 디자인팀장으로서 세계관의 구축과 아트워크를 담당했다.
『쯔바이』에서는 오프닝 제작과 드래곤 디자인 등을 담당했으며, 『쯔바이』와 병행으로 개발된 『아젤』에서는 디렉터를 맡는 등, 메인 시리즈의 핵심을 떠받은 크리에이터 중 하나다.
이와데도 『팬저』에서 적(에너미)의 제작을 담당했다.
쿠스노키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모델링과 텍스처, 애니메이션 등을 3DCG 데이터를 이용해 개발한 것이다.
(당시엔 디자이너 혼자서 본인이 담당한 캐릭터를 전부 작업해야 하는 일이 흔했다).
이외에도 엑스트라 카메라 연출 등도 담당했다.
"게임 개발 자체가 소수의 인원으로 이루어졌고, 당시엔 각자 담당한 업무의 경계가 현재보다 더 애매한 점도 있어서, 디자인 외의 업무라도 적극적으로 제안을 하거나 건의를 해본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이 타이틀에서 이와데가 신입답지 않은 위업도 이뤄냈는데, 바로 타이틀의 로고 제작이다.
"로고의 기본 디자인은 이와데 군이 제작한 겁니다.
초본을 딴 후, 세계관에 맞춰 섬세하게 다듬었던 게 기억나네요.
이후에도 시퀄 시리즈의 로고 역시 전부 이와데 군의 초본을 바탕으로 삼았죠."
『팬저 드래군』 타이틀 로고 ©SEGA
바우하우스 사상을 계승한 일본 최초의 디자인 교육 기관, 쿠와자와 디자인 연구소.
사진 작가 아키야마 미노루,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 등 수많은 유명한 크리에이터들을 산출한 곳으로 알려졌다.
이와데 역시 이곳에서 디자인을 배운 사람 중 하나다.
쿠스노키가 회고하며 얘기하길,
"『팬저 드래군』 시리즈를 개발할 때를 제외하면, 이와데 군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해 많은 걸 얘기해줄 순 없지만,
제 생각을 이해해주고, 그걸 바로 비주얼로 반영해내는 능력은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애매한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세계관의 『설정』을 재빠르게 이해하곤 작업하기도 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평소에도 직감에 의존해 일을 진행하는 인재가 많았지만, 이와데 군은 자기는 어떻게 하고 싶으며, 왜 그래야 하는지 등의 이유를 확실히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 덕에, 그가 로고 디자인 제작도 맡게 된 것이다.
쿠스노키는 이와데의 논리주의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도 들려줬다.
"사실,『아젤』의 체험판에 등장한 적들의 이름은 제품판이랑 다른데, 체험판의 적들의 이름은
원래 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주민의 외형적인 특징(붉은 다리를 가진 적은 『오오아카아시』라 부르는 식)에서 따왔다는 이와데 군의 주장에 맞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아이디어는 평가가 별로 좋지 않아, 제품판에선 변경되었다.
어쨌든, 디자인 관점의 논리를 중시한 이와데 특유의 고집이라 보면 될 것이다.
To be continue...
그지 같은 새턴의 괴랄한 구조나 개발환경 속에서도 저 정도 기술을 뽑아낸 것만 해도 대단하다 되도 안하는 CPU 2개를 채용하면서부터 CPU 각각을 프로그래밍해줘야하고, 애초에 삼각 폴리곤이 아닌 사각 폴리곤 기술을 채용하고 승인한 세가 간부놈들이 등신임. 스즈키 유조차 디스한 기계인데 말 다했지
팬저 드래곤은 저의 인생겜 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시 스퀘어 인터뷰 "우리가 새턴으로 가지 않은 이유요? 자신이 없어서 입니다. 우리 프로그래머들은 새턴의 SH-2를 능숙하게 컨트롤할 수 없었습니다. 좀 더 쾌적한 환경을 원했고 그게 우리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간 이유입니다. 3D작업에서 SH-2 CPU와 새턴의 성능을 잘 다룰 수 있는 건 현재로선 아마도 세가 엔지니어들 뿐일 겁니다. 우리가 그만한 노력이나 (세가 하드에 대한) 관심도 없이 소니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작품을 내는 것이 우리의 비전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CPU 두 개 그래픽카드 두 개 ... 소니 사장이 뜯어 보고 이겼다고 만세 불렀다는 전설이 ...
그지 같은 새턴의 괴랄한 구조나 개발환경 속에서도 저 정도 기술을 뽑아낸 것만 해도 대단하다 되도 안하는 CPU 2개를 채용하면서부터 CPU 각각을 프로그래밍해줘야하고, 애초에 삼각 폴리곤이 아닌 사각 폴리곤 기술을 채용하고 승인한 세가 간부놈들이 등신임. 스즈키 유조차 디스한 기계인데 말 다했지
무슨게임하꾸야광배
CPU 두 개 그래픽카드 두 개 ... 소니 사장이 뜯어 보고 이겼다고 만세 불렀다는 전설이 ...
루리웹 7470428616
당시 스퀘어 인터뷰 "우리가 새턴으로 가지 않은 이유요? 자신이 없어서 입니다. 우리 프로그래머들은 새턴의 SH-2를 능숙하게 컨트롤할 수 없었습니다. 좀 더 쾌적한 환경을 원했고 그게 우리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간 이유입니다. 3D작업에서 SH-2 CPU와 새턴의 성능을 잘 다룰 수 있는 건 현재로선 아마도 세가 엔지니어들 뿐일 겁니다. 우리가 그만한 노력이나 (세가 하드에 대한) 관심도 없이 소니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작품을 내는 것이 우리의 비전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팬저 드래곤은 저의 인생겜 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팬저 드래곤 오르타는 엑스에서 4k 그래픽으로 하위호환 됩니다 팬저 드래곤이 인생게임이라고 하셔서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