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이 그럴듯한 목적을 갖고 살아가고싶지으며 끝을 맞이한다는 운명이 전해진 인생은 허무하게 끝나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길에서 수렵의 길만큼은 이를 명확하게 부정하고 사냥하는것이 존재 의의라고 할 수가 있지요.
목적을 가지고 싶다는 말 자체를 부정하는게 수렵의 숨겨진 진정한 의미이기도 하지요.
경원이 영사와의 문답에서 수렵의 사도인 경원의 말에는재앙으로 향하는 세상의 모든길은 선한 관념으로 포장되어있다. 그러니 그딴건 배제하고 싶고 자신은 좀 더 떳떳하고 싶다...
이를 좀더 확장해서 해석하면 수렵의 본질은 다음과 같지요.
목적을 가진다는 것은 재앙의 시작...대표적으로 풍요의 길 같은 수많은 이타적인 선행은 수많은 재앙의 시작이니 이유불문하고 목적이 있는 것들은 수렵의 길로서 무조건 사냥하자...그 과정과 결과가 목적없이 무의미하고 건조하고 황량한 결과물이라도 수렵의 길을 걷는자는 수렵의 길 걷는것 자체의 떳떳함으로서 만족한다.
사실 이 말은 어떤의미에 있어서는 페나코니의 어벤츄린과 아케론의 문답을 우회적으로 부정하기도 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어벤츄린: 죽기 위해 태어난 우리의 삶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결국 주사위의 끝에 정해진 것이 죽음일 뿐이라면 어째서 저항해야 하는지 ....왜 우리는 죽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걸까?...
이렇게 묻는면 아케론은 "모든 생명이 죽음을 향하는 것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이 우주에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수없이 많다" 이는 정해진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으며, 이에 따라 같은 결말이라도 전혀 다른 결과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
경원은 어벤츄린과 같은 그딴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재앙의 시작이니 의문을 품는 놈들은 사실상 풍요의 길을 걷는 흉물들과 기본적인 사상과 별반 차이 없으니 수렵으로서 사냥하자 그 과정과 결과가 설령 목적없이 무의미하고 건조한 삶이 지만 무의미하고 건조한 삶이 재앙이 있는 삶보다 좋으니까.
이는 너무 확대해석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비소와 호뢰의 대화에서 확신하게 되었고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부정하고 목적없이 현재만을 긍정하는게 수렵의 또 다른 요소라고도 생각되어지네요
비소가 사란일때 노예였던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보리인으로 부터 탈출을 시도할때 유성을 보고 유성에게 소원을 빌면 자유를 얻을수 있으며 자유를 얻어서 다른 여우족에게도 나눠주자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품었습니다.
다행이 우연히 운기군을 만나서 자유를 얻고 다른 여우족에게도 자유를 나눠줄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 확신을 하였지만 유성은 수렵의 란의 화살이고 사란을 비소에게서 구했지만 운기군은 물론이고 다른 노예 여우족들은 보리인과 같이 소멸해버렸지요.
사란은 비소라는 이름으로서 개명하고 선주의 군인으로서 활동하면서 유성은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소멸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비소는 두 번다시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고 소원을 빌었지만 하지만 란은 비소의 소원따윈 응답하지 않았지요.
이에 호뢰는 신들이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갈망을 위해 싸워야 하는 법이라고 답하지요.
비소는 호뢰에게 어떤 갈망을 가지고 있느냐고 질문을 하자 하늘의 별들이 보리인을 위한 광야가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답하지요.
이에 비소는 호뢰를 부정하고 오로지 수렵의 화살촉으로서 살아가겠다고 대답하지요.
그리고 비소는 사란일때의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절박함과 미래의 희망를 부정하며 오히려 비소로서의 과거와 미래를 무시하고 현재만을 긍정하며 운기군의 복무신조를 읖으면서 란에게 눈에 띄여서 란에게 무기를 하사받지요.
비소:하늘을 뒤덮는 구름처럼 선주를 지키리라, 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이 맹세를 지키리
사실 이렇게 고찰을 하니 비소의 과거를 공감하고 인정하며 동시에 적이지만 현재를 정확하게 통찰하여 흑막에게 농락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보리인의 미래를 위해 미래를 긍정하고 개척하는것은 비소가 아니라 호뢰이네요.
오죽하면 농담으로 호뢰에게는 악역이지만 개척의 의지가 있다고 고평가가 나오기도 하네요.
호뢰와는 반대로 비소는 과거도 미래도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자 란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비소에게 무기를 하사한 것이지요.
그리고 운기군의 복무신조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하늘을 뒤덮는 구름처럼 선주를 지키리라,(과거의 추함과 미래의 희망을 부정하고 덮어버리고 바라지 않고 오로지 목적없이 현재 만을 추구하리라)
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이 맹세를 지키리(목적없이 수렵의 길만을 걸으며 맹세한다)
저는 여기서 개척자가 수렵의 란에게 선택받는 일을 없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어지네요.
파멸의 행위를 일으키는 파멸의 나누크는 헤르타에서 나누크가 개척자에게 시선을 닿았다고 하는데
개척자 스스로가 과거가 불확실 하면서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현재 살기위해서 발버둥을 치면서 나누크가 개척자의 미래를 위하는듯한 혹은 유도하는 듯한 것 처럼 힘을 부여하는 듯한 묘사가 있지요.
이후 벨로보그에서는 과거의 벨로보그의 수호자들이 보존의 의지를 이어나가다가 지쳐서 무력감과 절망감을 계승할 정도라고 하지만 개척자는 수호자들의 과거를 전부 부정하지 않고 보존의 의지를 이어나간다는 현재와 미래를 위하는 선택을 하는 덕에 클리포트가 새로운 엠버 기원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벨로보그는 구원받을수 있었지요.
그리고 페나코니에서는 개척자는 과거 무명객이였던 과거 시계공의 과거와 페나코니의 역사를 접하면서 현재의 페나코니는 미하일 씨의 꿈속 페나코니는 질서에 속하지 않는다고 현재의 부조리를 부정하고 개척의 의지로서 미래를 소망하고 있다는것을 선언하면서 이에 시페가 눈을 떠서 개척자를 주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선데이를 놀라게 하였지요.
운명의길...파멸,보존,화합 이 3가지의 공통점은 개척의 길의 정체성을 가진체 과거, 현재 ,미래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면서 동시에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수렵의 운명의 길은 다릅니다.
수렵은 철저하게 과거와 미래를 부정하고 배제하는것과 동시에 오로지 현재만을 긍정하는것이 수렵의 길의 본질이니까요.
그렇다면 갤럭시 레인져는 무었이냐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정해진 규율이나 목적성 없으며 존재하는게 맞는지 모르는 불확실한 불문율만이 존재하지요.
그렇기에 갤럭시 레인져가 수렵의 이단아들 이면서 동시에 수렵의 길을 걷는 자들이라고 불리는 것이지요.